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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47권, 정조 21년 8월 7일 계묘 1번째기사 1797년 청 가경(嘉慶) 2년

15일에 장릉을 참배할 때 진무사가 나가 주둔하게 하다

이달 15일에 상이 장릉(章陵)을 참배하려 하는 일과 관련, 병조에서 행행할 때의 척후와 복병을 표신(標信)과 병부(兵符)를 내어 징발하기를 청하는 일로 계품하니, 윤허하고, 하교하기를,

"진무사(鎭撫使)가 중군(中軍) 종사관(從事官)을 거느리고 장려(壯旅)와 의려(義旅) 각 1초(哨)씩을 뽑아내어 통진 부사(通津府使)와 함께 어가(御駕)가 가기 하루 전에 김포(金浦) 숙소에 주둔해 있다가 표신을 기다려 계엄을 풀도록 하라."

하였다. 우의정 이병모가 상차(上箚)하기를,

"병조의 계목(啓目)에 대해 판부(判付)하신 것을 보고는 밤새도록 지극히 방황함을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전후로 성상께서 하교하시어 정신(廷臣)을 준절히 책망하시면서 매양 망령되게 헤아리고 억측으로 요량하는 것은 큰 죄라고 하셨는데, 성상의 하교가 참으로 옳긴 합니다. 그러나 망령된 헤아림과 억측의 요량도 매양 혹 불행히도 맞는 적이 있으니, 오늘날 전하의 조정에 북향하여 섬기는 자가 깜짝 놀라며 움찔 두려워함이 있지 않겠습니까. 설사 참으로 다른 일은 없고 다만 보장(保障)의 군용(軍容)을 보고자 하실 뿐이라 하더라도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전하의 지나친 거조가 이미 적지 않다고 여겨집니다.

무릇 국가가 군민(軍民)과 굳게 결속하여 위급한 때에 의뢰함이 있는 것은 하나의 신(信) 자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제 막 섬 지방의 농사가 여물지 않았다 하여 특별히 조련을 정지시켜 뭇 민정(民情)이 기뻐하고 감격함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홀연히 장려(壯旅)와 의려(義旅)를 뽑아내어 주둔시켜 하룻밤을 지내게 한다면 기뻐하던 자가 시름겨워하며 기가 죽고 감사하며 축원하던 자가 놀라 의심할 것이니, 이것이 어찌 작은 일이겠습니까. 신이 비록 보잘것없으나 대중을 따라 급히 서두르는 데에는 이르지 않았는데, 정성이 조금도 미더움을 받지 못하여 죄만 더욱 쌓일 뿐입니다. 오늘날의 국가 형세를 논하건대, 반드시 정항(鄭沆)148) 처럼 불가(不可)한 도신(道臣)만을 얻은 뒤에야 유지할 수가 있으니, 어찌 한심하지 않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진무사(鎭撫使)가 나가 주둔하라는 명을 특별히 중지시키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선조(先朝)께서 행행하여 서교(西郊)에서 묵을 때의 호위도 진무영(鎭撫營)의 군병을 썼는데, 하물며 김포(金浦)의 숙소는 진무영과의 거리가 다만 근교(近郊) 사이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렇다면 해영(該營)의 군병을 조발(調發)하여 해군(該郡)의 숙소를 호위하는 것은 옛날의 전례에 비하면 크게 폐해를 제거했다고 할 만하고 또한 크게 비용을 줄였다고 할 만하다. 이에 앞서 조련을 정지하라는 명은 바로 이번에 뽑아내어 쓰기 위함이었다. 2만여 명을 휴식시키는 것을 2백여 명의 징발과 비교하면 그 많고 적음과 어려움과 쉬움이 또 과연 어떠하겠는가. 경이 차자로 진달한 것은 도리어 근래의 지레 헤아리는 속습(俗習)을 본받은 것임을 면하지 못하니, 저으기 경을 위해 취하지 않는 바이다. 의사로써 뜻을 지레 헤아리며 뜻으로써 일을 지레 헤아려 일마다 모두 지레 추측하는 공부를 쓰려 한다면 세상에 어찌 조처할 만한 일이 있겠는가. 또 진실로 이와 같다면 장릉(章陵)에 행행하는 것까지도 어찌 명령을 내리던 초기에 중지하기를 청하지 않았는가."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7책 47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37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군사-군정(軍政) / 군사-중앙군(中央軍) / 군사-병법(兵法)

  • [註 148]
    정항(鄭沆) : 강화 부사로 있으면서 영창 대군(永昌大君)을 죽였음.

○癸卯/以是月十五, 上, 將謁章陵, 兵曹以幸行時斥候伏兵, 請出標信兵符, 徵發啓稟, 允之, 敎曰: "鎭撫使率中軍從事官, 抄出壯旅義旅各一哨, 與通津府使, 駕臨前一日札駐於金浦宿所, 待標信解嚴。" 右議政李秉模上箚曰: "伏見兵曹啓目判付, 竊不勝終夜彷徨之至。 前後聖敎之切責廷臣者, 每以妄度臆料爲大罪, 聖敎誠然矣。 然而妄度也臆料也, 每或不幸而有中, 則今日北面於殿下之廷者, 其不有瞠然而驚, 懍然而駴乎? 設使眞無他事, 而只欲觀保障軍容, 臣愚死罪, 以爲殿下過擧, 已自不少。 夫國家之固結軍民, 緩急有賴者, 不過一信字耳。 纔以島農未稔, 特令停操, 群情歡感, 可以想見。 而今忽抄出壯義, 札駐經宿, 歡欣者愁沮, 感祝者驚疑, 此豈細故也? 臣雖無狀, 不至於隨衆劻勷, 而誠未一孚, 罪徒層積。 論今國勢, 必須得如, (但)此道臣不可之人, 然後始可維持, 寧不爲之心寒也哉? 伏乞特寢鎭撫使出駐之命。" 批曰: "先朝幸行時, 西郊經宿, 環衛猶用鎭撫營軍兵, 況金浦宿所, 距鎭撫營特莽蒼間? 則調發該營軍兵, 環衛該郡宿所, 比之古例, 可謂太除弊, 亦可謂太省費。 前此停操之命, 政爲今番之出用。 而二萬餘名休息, 較之二百餘名徵發, 其多寡難易, 又果何如也? 卿之箚陳, 未免反效近來逆探之俗習, 竊爲卿不取。 以意逆志, 以志逆事, 事事皆欲用逆推工夫, 則世豈有可措之事乎? 且苟如是也, 則竝與章陵幸行, 何不請寢於令初乎?"


  • 【태백산사고본】 47책 47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37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군사-군정(軍政) / 군사-중앙군(中央軍) / 군사-병법(兵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