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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46권, 정조 21년 1월 15일 병진 2번째기사 1797년 청 가경(嘉慶) 2년

조운시 전선의 이용, 조곡의 운반 등을 정식을 만들어 시행하다

호조가 조운 절목(漕運節目)을 올리자, 하교하기를,

"조운에 관한 정사는 군사적인 성격을 겸하는 것으로, 옛날 주관(周官)의 제도로부터 한(漢)·당(唐)·송(宋)·명(明)에 이르기까지 조선(漕船)을 전선(戰船)으로 사용하였으니, 이 또한 군사와 농사가 서로 의지하는 일단이다. 우리 나라의 조창(漕倉)에 관한 법이 군사와는 무관한 것 같지만 사실은 양영(兩營)의 것을 대동청(大同廳)에서 옮겨오는 것과 훈국(訓局)의 삼수량(三手糧)은 그 의미가 같은 것으로, 급할 때의 수용이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없다. 옛날에는 소나무에 관한 정사가 소홀하지 않아서 삼남(三南)에 순차로 조선(漕船)을 건조하였으나 지금은 저처럼 민둥산이 되었으니 조창이 결단코 배를 내지 못할 것이다. 비록 이보다 더 큰 일이라도 시폐를 바로잡는 정사는 따로 때에 적절한 사의(事宜)가 있을 터인데, 유독 조운의 일에만 융통성이 없고 고집스러워 감히 말을 꺼내거나 손을 쓰지 못하니, 어떻게 그런 사리가 있단 말인가.

지난 겨울의 빈대(賓對)에서도 시험삼아 전선(戰船)을 써보자는 뜻으로 말이 나왔으니, 묘당이 자연히 별도로 요리(料理)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사목(事目)을 하달함에 있어, 먼저 준비에 대한 명령을 내려 배를 건조하라고 엄히 주의시키지 않는다면 어떻게 감·곤·읍·진(監閫邑鎭)들이 앞으로 식량 공급의 길이 있겠는가. 경은 대신(大臣)과 의논하여 먼저 배를 견고하고 정밀하게 만들어서 조곡(漕穀)을 운반할 방도에 대해 3도의 도수신(道帥臣)에게 공문을 보내라. 그리고 전선으로 시험해 보는 문제에 대해서는 특히 절목(節目) 중의 세부 항목이니, 그리 알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6책 46권 4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2면
  • 【분류】
    교통-수운(水運) / 군사-군기(軍器) / 재정(財政)

○戶曹進漕轉節目, 敎曰: "漕轉之政, 兼寓戎務, 自昔官之制, 以至, 漕船卽戰船, 此亦兵農相寓之一端。 我朝漕倉之法, 雖似不涉於戎務, 其實則與兩營之移劃大同, 訓局之三手糧, 同其義, 未必不爲緩急之需。 古則松政不踈, 三南次第設漕船, 而如今之如彼童濯, 則漕倉決不出也。 雖大於此之事, 救時之政, 自有時措之宜, 則獨於漕轉一事, 膠守偏信, 不敢容喙下手, 寧有如許事理乎? 前冬賓對, 亦以戰船試用之意, 旣發言端, 廟堂自當別般料理。 而今於此事目之頒下也, 若不以先甲之令, 嚴飭造船, 營閫邑鎭, 豈有來頭食効之道乎? 卿其就議大臣, 先以堅造精制, 將欲兼運漕穀之方, 關飭三道道帥臣。 至於試之之擧, 特節目間細節, 以此知悉。"


  • 【태백산사고본】 46책 46권 4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2면
  • 【분류】
    교통-수운(水運) / 군사-군기(軍器) / 재정(財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