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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45권, 정조 20년 10월 18일 경인 1번째기사 1796년 청 가경(嘉慶) 1년

동지 정사와 부사를 불러 금화에 대한 금령·서책에 대한 금령을 논의하다

상참(常參)이 있었는데 차대(次對)도 겸하였다. 동지 정사(冬至正使)와 부사를 불러 접견하였다. 우의정 윤시동(尹蓍東)이 아뢰기를,

"우리 나라가 금화(金貨)에 대한 금령을 엄격하게 정해놓긴 했지만, 역관과 장사치들이 금령을 범해가며 저들 나라와 화폐를 유통해 온 지 오래되었습니다. 또 은화(銀貨)는 점차 귀해지고 금화로 얻는 이익은 크기 때문에 은은 규정으로 정해 놓은 수량도 채우지 못할 우려가 있으나 금을 몰래 팔았을 때에 얻는 이익이 적지 않으니 단지 저들 나라로 하여금 우리 나라에서 생산되는 금을 엿보게만 할 뿐입니다. 신은 간사한 짓을 할 여지를 만들어 놓아 나라의 금령을 우습게 보도록 만들기 보다는 차라리 화폐를 유통하여 국가의 경비에 보탬이 되게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 일은 나도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다. 이익을 좇는 것을 막기란 흐르는 냇물을 막는 것보다 어려운 법이다. 화폐를 다루는 방법은 물을 다스리는 것과 같아서 그 형세에 따라 이로운 쪽으로 인도해야만 한다. 또 금은 우리에게는 실로 쓸데없는 물건이니, 우리에게 쓸데없는 물건을 가지고 저들 나라의 유용한 물건과 바꾸는 것이야말로 화폐를 유통하는 방법일 것이다. 현재 우리 나라에는 은폐(銀幣)가 점차 귀해져 사신이 가지고 가는 것조차 정해진 수량을 충당해 주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니, 금을 은으로 바꾸어 실용으로 돌리는 것은 바로 시세에 따라 알맞게 처리하는 요령이라 하겠다. 그러나 처음 시작하는 일이므로 매우 신중해야 할 것이다."

하였다. 이어 송경 유수(松京留守) 조진관(趙鎭寬), 정사 심이지(沈頤之) 등에게 두루 물어보았는데, 모두 이번 사신의 행차 때부터 시행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먼저 시험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자,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이어 이지에게 이르기를,

"이번 사신 행차가 돌아올 때에 서책에 관한 금령을 금번에도 특별히 더욱 신칙해야 할 것이다. 이단과 잡술(雜術)에 관한 책만이 아니라 경서, 사류(史類), 문집류 등의 모든 책들도 우리 나라의 판본이 조금 커서 강독하는 자료로 적합하다. 중국 판본은 누워서 보기에는 편하지만 넘기면서 보기는 어렵다. 다리를 펴고 앉아서 마음이 태만해지지 않을 사람은 없는 법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5책 45권 32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674면
  • 【분류】
    왕실(王室) / 외교(外交)

○庚寅/常參, 兼行次對, 召見冬至正、副使。 右議政尹蓍東曰: "我國金貨, 禁令雖嚴, 象胥、商賈輩之冒禁通貨於彼國久矣。 且銀貨則漸貴, 金利則其博, 故常定之包, 雖患不足, 潛售之金, 獲利不少, 徒使彼國, 覘我産金。 臣謂與其啓奸竇而輕邦禁, 無寧通貨路而補國用也。" 上曰: "此事, 予亦有商量久矣。 防利之難, 甚於防川。 治貨之術, 宜如治水, 因其勢而利導之而已。 且金, 於我國, 實是無用之物。 以我國無用之物, 易彼國有用之物, 實是行貨泉之術也。 方今我國之銀幣漸貴, 使行之包, 未充常數, 則以金換銀, 歸之實用, 乃是因時制宜之要, 而事係創始, 正所難愼也。" 仍又歷詢松留趙鎭寬、正使沈頣之等, 皆以爲: "自今番使行, 先試其可行與否爲宜", 可之。 仍謂頣之曰: "使行出來時, 書冊之禁, 今番亦須另加申飭也。 非但異端雜術之書, 凡經書、史集等書, 我國板本稍大, 正合講讀之資, 而至於板, 則便於臥看, 難於繙讀。 未有箕踞而心不慢者也。"


  • 【태백산사고본】 45책 45권 32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674면
  • 【분류】
    왕실(王室) / 외교(外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