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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44권, 정조 20년 5월 8일 임자 2번째기사 1796년 청 가경(嘉慶) 1년

장재곤이 경상도 13개 읍의 농지화 가능성을 말했으나, 거짓말이 드러나다

간민(姦民) 장재곤(張載坤)이란 자가 용동궁(龍洞宮)에 고하기를, "영남과 호남의 경계에 있는 지리산에서 샘물이 솟아나와 긴 강을 만들고, 그 강이 곧장 진주(晉州)로 흘러가 다시 김해(金海)에 이릅니다. 그런데 한번 장마가 지면 함안(咸安)·창원(昌原)·초계(草溪)·영산(靈山)·양산(梁山)·현풍(玄風)·김해(金海)·칠원(漆原)·의령(宜寧)·창령(昌寧)·밀양(密陽)·진주(晉州)·성주(星州) 등 13개 고을의 강에 인접한 토지가 모두 침수되어 한 포기도 수확할 것이 없게 됩니다.

이 강 상류에는 진주광탄(廣灘)지소두(紙所頭)라는 곳이 있는데, 양쪽 강안이 가파른 절벽이고 지세가 좁고 낮으며 중앙에 우묵한 곳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부터 물길을 뚫어 강물의 방향을 돌려 사천(泗川)의 바다로 흘러가게 한다면, 그 형세가 마치 병을 거꾸로 세워 쏟아붓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이곳은 바다와의 거리가 25리에 불과하고 뚫고 소통시킬 곳도 한 마장(馬場)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길을 뚫은 뒤에 지소두 아래에 제방을 쌓아 물이 범람하지 못하게 한다면 13개 읍의 허다하게 침수되던 곳이 장차 훌륭한 농지가 될 것입니다."

하였다. 이에 비변사가 본도에 공문을 하달하여 물으니, 경상도 관찰사 이태영(李泰永)이 장계하기를,

"보좌관을 보내 특별히 사정을 탐색하고 고을원들을 엄하게 경계하여 착실히 살펴보게 한 결과, 지역의 형세와 백성들의 뜻이 건의한 자의 말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지금 광탄에 제방을 축조한다 하더라도 낙동강의 하류는 그대로 있고, 지소두의 목에 물길을 뚫는다 하더라도 조곡(助曲)의 지맥(地脈)이 점점 높아지게 되면, 예전의 포구는 침수지의 가감이 없어 새로이 튼 물길은 유리하게 유도하기 어렵게 됩니다. 더구나 두류산(頭流山) 남쪽에서 발원한 물이 멀리 광탄에까지 흘러오는 과정에 절벽과 산록이 서로 뒤엉키면서 물살이 매우 빨라지니, 지금에 장정들의 힘을 빌어 하류를 막고 우묵하게 들어간 곳으로 선회하는 물살을 유도한다 하더라도, 한번 여름의 호우를 당하여 상류의 물이 급하게 불어나게 되면, 그 형세가 틀림없이 제방이 터지고야 말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이 제방을 쌓기 전보다 더 극심할 것입니다. 그리고 해읍의 성지(城池)가 강변의 아래에 위치하기 때문에 범람하는 사태는 본래 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다시 지소두에서 물길을 뚫을 만하다는 곳에 대하여 말하면, 그곳은 바다에서 30리의 거리에 있으며 땅의 형세가 점점 높아져서 물길이 왕왕 막히고 있는데, 실로 13개 고을의 백성으로 그 땅을 깎아 평평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가 13개 고을이 혜택을 입는다고 한 것은, 함안 등 9개 고을은 남강(南江)의 하류에 위치하고 있으니 혹 그럴 수 있겠다고 하겠으나, 성주 등 네 고을은 낙동강 상류에 있어 애당초 논의할 사안이 아니었습니다.

장재곤의 성명은 호적에 실려 있지 않으며 행동이 거의 허황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수본(手本)을 보고서 일의 형세로 유추하건대 지극히 허황하다는 것을 어찌 몰랐겠는가. 해궁(該宮)의 사체는 다른 궁방(宮房)과는 특별하다. 해도에 물어보지도 않고 지레 먼저 결정한다는 것은 소중한 일을 소중하게 여기는 뜻이 없는 것이다. 비록 글을 만들어 판하(判下)하였더라도 해도의 장계를 받아 본 뒤에 처치하려 하였다. 그런데 지금 조사하여 올린 장계를 보니 요량했던 것에 벗어나지 않는다.

근래에 이러한 간교한 일의 폐단에 대하여 얼마나 엄중히 경계했던가. 이른바 ‘고발하는 자에 대하여는 네 번 고발하면 한 차례 상을 내린다.’는 법을 시행하지 말게 했다면 감히 상언(上言)하거나 정소(呈訴)할 수 있었겠는가. 백성들의 습속이 가증스러우나 간사한 백성들을 어찌 다 논하겠는가. 당해 차지(次知) 중사(中使)는 내시부로 하여금 각별히 엄중 조사하게 하고 앞으로 다시 이런 허황된 일에 대한 수본(手本)을 올릴 경우에는 해당 중사에게 등급을 올려 엄중 처치하는 법을 시행하라. 이러한 뜻을 해도에 지시하여 즉시 13개 고을의 수령에게 통지하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4책 44권 56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650면
  • 【분류】
    과학(科學) / 농업(農業) / 정론(政論) / 행정(行政)

○有姦民張載坤者, 告于龍洞宮曰: "嶺湖之界, 有智異山湧泉, 乃作長江, 直下於晋州金海。 一經潦水, 則咸安昌原草溪靈山梁山玄風金海漆原宜寧昌寧密陽晋州星州十三邑沿江田土, 盡被水沈, 一不掛鎌。 此江上流, 有晋州廣灘紙所頭爲名地, 兩岸高峻, 地勢狹低, 中有平凹處。 由此疏鑿而決水, 遵之泗川大海, 勢若建瓴。 距海不過二十五里, 疏鑿處, 亦不過一馬場, 而疏鑿後築堰於紙所頭之下, 使不得泛濫, 則十三邑許多水沈處, 將作良田" 云。 備邊司關問本道, 慶尙道觀察使李泰永狀啓曰:

起送褊裨, 另加採探, 嚴飭守宰, 着意審察, 則地勢民情, 與議者之言, 大相逕庭。 今夫廣灘之堰雖築, 而洛東之下流自在, 紙所之項雖鑿, 而助曲之地脈漸高, 則舊浦之沈墊, 無所加損, 而新項之流瀹, 難以利導。 又況頭流南泒, 發源旣遠, 至于廣灘, 崖麓相綰, 湍流甚駛, 今雖藉丁夫之力, 障其下流, 就平凹之處, 導其廻瀾, 而一經夏潦, 上流急漲, 則其勢必至於潰決而後已。 畢竟受害, 有甚於未防之前, 而該邑城池, 據在下沿, 汎濫之患, 在所不免。 且以紙所可鑿處言之, 距海門一舍之地, 地勢漸高, 水道往往有閼, 固不可以十三邑民, 剗平其地。 其云十三邑蒙利者, 咸安等九邑, 在南江下流, 容或爲說, 至於星州等四邑, 處於洛東上流, 初非可議。 所謂張載坤姓名, 不載於帳籍, 行止殆近於虛謊。

敎曰: "觀於手本, 推以事勢, 豈不知虛謊莫甚, 而該宮事體, 與他宮房自別。 不問該道, 徑先立落, 有非重所重之意。 雖有措辭判下, 欲待該道狀聞後處之。 今見査啓, 不出所料。 近來似此奸弊, 何等嚴飭? 所謂陳告人四告一賞之法, 亦爲勿施, 則乃敢上言, 又敢呈訴? 民習可惡, 而奸民何論? 當該次知中使, 令內侍府, 各別嚴勘, 此後更以此等虛謊之事手本, 則當該中使, 施以加等嚴處之律。 此意行會該道, 俾卽知委十三邑倅。"


  • 【태백산사고본】 44책 44권 56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650면
  • 【분류】
    과학(科學) / 농업(農業) / 정론(政論) / 행정(行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