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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44권, 정조 20년 3월 17일 계해 4번째기사 1796년 청 가경(嘉慶) 1년

정리주자가 완성되다

정리주자(整理鑄字)가 완성되었다. 전교하기를,

"우리 나라에서 활자로 책을 인쇄하는 법은 국초(國初)부터 시작하여 태종조(太宗朝) 계미년에 경연에 소장하고 있던 고주본(古註本) 《시(詩)》·《서(書)》·《좌전(左傳)》의 글자를 대본으로 하여 이직(李稷) 등에게 명해서 10만 자를 주조하게 하였으니, 이것을 계미자(癸未字)라고 한다. 세종조(世宗朝) 경자년에는 이천(李蕆) 등에게 명하여 이를 고쳐 주조하게 하였으니, 이것이 경자자(庚子字)이고, 갑인년에는 경자자가 섬밀(纖密)하다는 이유로 경연에 소장하고 있던 《효순사실(孝順事實)》·《위선음즐(爲善陰隲)》 등의 책을 내다가 이를 자본(字本)으로 삼아 김돈(金墩) 등에게 명하여 20여 만 자를 주조하였으니, 이것이 갑인자(甲寅字)인데 이를 사용한 지 3백 년이 되었다. 내가 임진년에 동궁에 있으면서 대조(大朝)에 앙청하여 대내에 있던 갑인자로 인쇄한 《심경(心經)》《만병회춘(萬病回春)》 두 책을 내다가 이를 자본으로 삼아 5만 자를 주조하여 보관하였으니, 이것이 임진자이다. 내가 즉위한 원년인 정유년에는 관서백(關西伯)에게 명하여 본조 사람 한구(韓構)의 글씨를 자본으로 삼아 8만여 자를 주조하게 하여 역시 내각(內閣)에 보관하였다. 대체로 전후로 주조한 활자의 동체(銅體)가 일정하지 않아서 인쇄하려면 젖은 종이를 써서 고르게 붙이고 한 판을 찍을 때마다 별도로 몇 사람을 세워서 주묵(朱墨)으로 활판의 형세에 따라 교정을 하게 하는데도 오히려 비뚤어지는 염려가 있었으며 걸핏하면 시일이 걸리곤 하였다. 그래서 인쇄를 감독하는 여러 신하들이 누차 이를 말하였었다. 임자년에 명하여 중국의 사고전서(四庫全書) 취진판식(聚珍板式)을 모방하여 자전(字典)의 자본을 취해서 황양목(黃楊木)을 사용하여 크고 작은 글자 32만여 자를 새기어 ‘생생자(生生字)’라고 이름하였다. 을묘년에는 《정리의궤(整理儀軌)》《원행정례(園幸定例)》 등의 책을 장차 편찬·인행하려는 계획 아래 명하여 생생자를 자본을 삼아서 구리로 활자를 주조하게 하여 크고 작은 것이 모두 30여 만 자였는데 이를 ‘정리자(整理字)’라 이름하여 규영(奎瀛) 신부(新府)에 보관하였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4책 44권 29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637면
  • 【분류】
    출판(出版)

○整理鑄字成。 敎曰: "我東活字印書之法, 始自國初, 太宗朝癸未, 以經筵古註《詩》《書》《左傳》爲本, 命李稷等, 鑄十萬字, 是爲癸未字。 世宗朝庚子, 命李蕆等改鑄, 是爲庚子字, 甲寅, 以庚子字纖密, 出經筵所藏《孝順事實》《爲善陰隲》等書, 爲字本, 命金墩等, 鑄二十餘萬字, 是爲甲寅字, 行之者三百年。 予於壬辰在東宮, 仰請大朝, 以內下甲寅字所印《心經》《萬病回春》二書, 爲字本, 鑄五萬字藏之, 是爲壬辰字。 臨御之元年丁酉, 命關西伯, 以本朝人韓構書, 爲字本, 鑄八萬餘字, 亦儲之內閣。 大抵前後所鑄鑄字, 銅體不一, 其擺印也, 率用濕紙均黏, 每刷一版, 另立數人, 以朱墨逐勢句抹, 猶患欹斜, 動費時日。 監印諸臣, 屢以是爲言, 壬子命倣中國四庫書, 聚珍板式取字典字本, 木用黃楊, 刻成大小三十二萬餘字, 名曰生生字。 乙卯《整理儀軌》《園幸定例》等書, 將編次印行, 命以生生字爲本, 範銅鑄字大小竝三十餘萬, 名之曰整理字, 藏于奎瀛新府。"


  • 【태백산사고본】 44책 44권 29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637면
  • 【분류】
    출판(出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