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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43권, 정조 19년 11월 7일 갑인 1번째기사 1795년 청 건륭(乾隆) 60년

진하 정사 이병모 등을 소견하고, 문체와 관련하여 우리 나라 시문에 대해 논평하다

진하 정사(進賀正使) 이병모(李秉模), 관상감 제조 정호인(鄭好仁), 사역원 제조 윤시동(尹蓍東)·이시수(李時秀), 정례 이정소(定例釐正所) 당상 서용보(徐龍輔), 승문원 공사 당상(公事堂上) 이만수(李晩秀)성정각(誠正閣)에서 불러 보았다. 상이 병모에게 이르기를,

"사대(事大)하는 문서는 본래 신중하게 작성해야만 한다. 이번에 보내는 표문(表文)과 자문(咨文)을 경이 모쪼록 보살펴 주어야 하겠다. 그런데 근래의 문체(文體)가 점점 옛날과 같지 않으니 매우 걱정이 된다. 경은 식암(息菴)318) 의 시문(詩文)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니, 병모가 아뢰기를,

"역시 신으로서는 미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나는 우리 나라에서 명(明)나라 문체의 못된 폐단을 답습하게 한 풍조를 이 글이 실제로 열어놓았다고 생각한다. 그 자신은 그런 글을 짓는 것에 대해 꽃과 달을 새긴 비단과 같다고 하면서 동방의 찌든 때를 한 번 씻어내게 되었다고 하였지만, 순일하며 혼후한 점에 있어서는 태허정(太虛亭)319) 이나 사가(四佳)320) 등 제자(諸子)보다도 훨씬 못하다.

그리고 시라는 것은 세상 풍속을 교화시키는 것과 관계가 있으니, 보여주는 것이 있고 하소연하는 것이 있어야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잘못을 바로잡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가까이는 아비를 섬기고 임금을 섬기며 멀리로는 사방에 사신으로 가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모두 이 시의 효능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근세의 시들을 보면 슬프고 울적한 음조를 띠고 있으니 모두 시를 배우는 본뜻을 잃었다 하겠다.

읍취헌(挹翠軒)321) 이나 박 눌재(朴訥齋)322) 같은 이들의 시를 보면, 처음에는 좋게 여겨지지 않다가도 오래 보면 볼수록 좋아진다. 내 생각에 우리 동방의 시집(詩集)으로는 마땅히 이 두 시가(詩家)의 것을 정종(正宗)으로 삼아야 하리라 여겨진다. 그래서 일찍이 예전 홍문관에서 《천마잠두록(天磨蠶頭錄)》을 찾아내어 간행토록 하였고, 또 《눌재집(訥齋集)》을 간행하여 배포토록 하였는데, 이를 통해서도 순박한 경지로 되돌리려 했던 나의 고심을 엿볼 수가 있을 것이다.

삼연(三淵)323) 의 시를 누가 아끼지 않겠는가마는, 다만 그토록 화려하고 번성한 문족(門族)에서 이처럼 산야(山野)의 싸늘하고 파리한 어휘가 나오게 된 것이 어찌 우연이라고만 하겠는가. 또 농암(農巖)324) 의 문장을 그 누가 추중(推重)하지 않겠는가. 나 역시 매우 좋아한다. 그러나 자신은 늘 명나라 사람들의 어투를 피하려 힘쓴다고 했으나 가끔 그런 병통을 면하지 못한 곳이 나오곤 한다. 이런 경우를 두고 문장도 시운(時運)에 따라 오르락내리락 한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3책 43권 53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611면
  • 【분류】
    왕실(王室) / 외교(外交)

  • [註 318]
    식암(息菴) : 김석주(金錫胄).
  • [註 319]
    태허정(太虛亭) : 최항(崔恒).
  • [註 320]
    사가(四佳) : 서거정(徐居正).
  • [註 321]
    읍취헌(挹翠軒) : 박은(朴誾).
  • [註 322]
    박 눌재(朴訥齋) : 박상(朴祥).
  • [註 323]
    삼연(三淵) : 김창흡(金昌翕).
  • [註 324]
    농암(農巖) : 김창협(金昌協).

○甲寅/召見進賀正使李秉模、觀象監提調鄭好仁、司譯院提調尹蓍東李時秀、定例釐正堂上徐龍輔、承文院公事堂上李晩秀誠正閣。 上謂秉模曰: "事大文字, 自當致愼, 今番表咨, 卿須照察也。 近來文體, 漸不如古, 甚可憂也。 卿以息菴詩文, 作如何看?" 秉模曰: "亦自有難及處矣。" 上曰: "予則以爲, 我國之襲用文末弊, 此文實啓之。 自謂作文, 如錦繡花月, 一洗東方塵垢, 而其純實渾厚, 反不如太虛亭四佳諸子遠矣。 且詩者, 關世敎者也。 可觀可怨, 感發懲創。 近而事父事君, 遠而專對四方, 皆是也, 而近世噍殺之音, 皆失學詩之本意。 如挹翠軒朴訥齋諸詩, 初看不好, 久看愈好。 予以爲東方詩集, 當以此兩家爲正宗。 曾於舊弘文館, 搜得《天磨蠶頭錄》, 使之印行, 又命刊布《訥齋集》者, 亦見予回淳反朴之苦心也。 三淵詩, 孰不愛看, 而顧其華門盛族之中, 有此山野寒瘦之語者, 豈偶然也哉? 農巖文章, 孰不推重? 予亦甚好之, 而自家每稱力避明人口氣云, 而往往有未免處。 此所謂文章, 與時運高下者耶?"


  • 【태백산사고본】 43책 43권 53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611면
  • 【분류】
    왕실(王室) / 외교(外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