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정 홍낙성 등을 소견하여 건저 및 진하사 차출, 연호와 정은 사용 등을 논의하다
영의정 홍낙성(洪樂性), 우의정 채제공(蔡濟恭), 판중추부사 이병모(李秉模), 이조 판서 심환지(沈煥之), 사역원 제조 윤시동(尹蓍東), 비변사 유사 당상 이시수(李時秀)를 재실(齋室)에서 불러 보았다. 낙성 등이 아뢰기를,
"원자궁(元子宮)의 학문이 일찍 성취되고 신장도 점점 커지고 있으니 미리 세자로 세울 대책을 내년에 추진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더구나 건륭 황제(乾隆皇帝)312) 가 여러 차례 언급을 했으니 그가 황제로 있을 때 진달하여 청하는 것이 또 온당할 듯싶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원자가 내년이면 7세가 되는데 바로 숙묘(肅廟)께서 책봉되셨던 나이와 같다. 그런데 내가 책봉된 것은 8세 때의 일인데, 전례(前例)는 가까운 것을 따르는 것이 옳고 일은 느지막하게 하는 것이 좋다. 책봉을 좀 늦추었다가 내후년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조금 전에 동지사(冬至使)의 별단(別單)을 보건대, 칙사(勅使)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한 기별이 없었다마는, 가경(嘉慶)이라는 연호(年號)를 이미 새 책력(冊曆)에 찍어서 간행하였고 심지어는 그것을 싸 봉해서 장계로 보고하는 일까지 있었다 한다. 따라서 재자관(齎咨官)이 갔다가 돌아올 때쯤이면 필시 책력을 반포해 주는 일이 있을 테니 진하(進賀)하는 일이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진하하는 사신에게 표문(表文)을 부쳐 보내기도 전에 반포하는 책력에 대연호(大年號)를 먼저 써서 회자(回咨)해 주는 일은 널리 서적을 상고해 보아도 과거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성대한 일이다. 따라서 사신의 행차는 비록 서서히 들여보내려 한다 하더라도 먼저 자문(咨文)을 보낸 뒤 표문을 보내는 이 한 조목만은 살펴 처리하는 것이 참으로 온당하겠다. 그리고 우리의 도리에 있어서는 미리 사신을 차출해 놓고 사신에 관한 일을 요리해 놓는 것이 매우 온당할 것이다.
다만 태상 황제(太上皇帝)의 위호(位號)는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만약 알려주는 자문이 오지 않는다면 또한 어떻게 곧장 쓸 수가 있겠는가. 책력을 반포하면서 보내오는 자문 편에 알려주기라도 한다면 그날이라도 즉시 행장을 꾸려 출발시켜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지체되더라도 칙서가 반포되기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보통 해마다 절사(節使)를 6월에 차출했다가 12월에 압록강을 건너게 하는 예에 비교한다면 너무 서두는 것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니, 낙성 등이 아뢰기를,
"조칙(詔勅)이 나오기도 전에 황력(皇曆)의 연호에만 근거하여 즉시 진하하는 사신을 보낸다면 혹 사체상으로 방해될 듯싶습니다. 그러나 사신을 기일에 앞서 차출해 놓고 해야 할 일을 정비해 두는 것은 참으로 좋게 여겨집니다."
하였다. 제공이 아뢰기를,
"우리 나라에서 칙사를 맞이할 때 각종 수요(需要)를 정은(丁銀)313) 으로 지출하는 것이 지금에 와서는 규례(規例)로 굳어졌습니다. 그런데 근년 이래로 정은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는데 머지 않아 칙사의 행차가 경내에 들어오게 되었으므로 안으로는 호조로부터 밖으로는 영부(營府)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이것 때문에 근심하면서 어떻게 계책을 세울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은을 사용할 때는 오직 품질이 좋으냐 나쁘냐만 따져야지 어떻게 색목(色目)만을 보고 쓸지 안 쓸지를 판별해서야 되겠습니까. 국내에서 생산되는 것 가운데 천은(天銀)314) 과 지은(地銀)315) 을 막론하고 만약 팔성(八星)316) 까지를 한도로 해서 준다면 칙사들도 이것이 정은(丁銀)의 명색(名色)이 아니라고 하여 절대로 퇴짜를 놓지는 않을 것이니, 이렇게 변통하여 처리하는 것이 온당할 듯 싶습니다. 그래서 일전에 조금 일을 처리할 줄 아는 훈역(訓譯)을 불러다가 이런 내용을 말해 주었더니 그들도 감히 받들어 주선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말하였습니다. 지금 이후로 칙사의 행차 때에 사용하는 은자(銀子)는 모두 국내에서 생산되는 은을 쓰는 것으로 영원히 정례화하여 시행케 하는 것이 편하겠습니다."
하니, 윤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3책 43권 52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610면
- 【분류】왕실(王室)
- [註 312]건륭 황제(乾隆皇帝) : 청 고종(淸高宗).
- [註 313]
정은(丁銀) : 순도(純度) 70퍼센트인 은.- [註 314]
○召見領議政洪樂性、右議政蔡濟恭、判中樞府事李秉模、吏曹判書沈煥之、司譯提調尹蓍東、備局有司堂上李時秀于齋室。 樂性等曰: "元子宮睿學夙就, 尺衣漸長, 豫建之策, 宜趁明歲。 況乾隆皇帝, 屢以爲言及, 其在位時陳請, 似又便順矣。" 上曰: "元子明年爲七歲, 卽肅廟封冊之歲, 而予之冊封, 在於八歲。 例宜從近, 事貴遲久。 冊封之遲待再明年, 不爲晩矣。" 上曰: "俄見冬至使別單, 勑奇則姑無的奇, 而嘉慶年號, 已有新曆之印行, 至有齎封狀聞之擧。 齎咨官回還時, 亦必頒曆, 不可無進賀之擧。 且賀使付表之前, 先書大年號於頒曆回咨, 博考載籍, 曠千古無可據之盛事。 使行雖欲徐徐入送, 先咨後表之此一款, 政合審理, 在我道理, 預爲差出使臣, 料理使事, 甚爲穩當。 但太上皇帝之位號, 如何書之? 若非知委之咨文, 亦豈可直書乎? 曆咨回便, 有知委, 則雖其日, 卽當治發, 否則雖遲待頒勑, 比諸常年節使之六月差除、臘月渡灣之例, 不至爲太預矣。" 樂性等曰: "詔勑出來之前, 只憑皇曆年號, 卽遣進賀之行, 或妨事體。 至於使臣之先期差出, 整備行事, 則誠便好矣。" 濟恭啓言: "我國迎勑時, 諸般所需, 以丁銀用下。 今則便成規例, 而近年以來, 丁銀幾乎絶種。 勑行非久壓境, 內而度支, 外而營府, 皆以是爲憂, 不知爲計, 而臣意, 則銀之所用, 惟品數高低是計, 豈可以色目, 判其用不用乎? 國中所産, 無論天銀、地銀, 若限以八星爲贈遺, 則勑行決不以此非丁銀名色, 有所點退, 如是區處, 似合便順。 故日前招致訓譯之稍解事者, 以是言及, 則渠輩亦不敢不以奉以周旋爲言矣。 從今以後, 勅行所用銀子, 竝用土産銀, 永爲定式施行爲便," 允之。
- 【태백산사고본】 43책 43권 52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610면
- 【분류】왕실(王室)
- [註 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