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실록43권, 정조 19년 11월 6일 계축 2번째기사
1795년 청 건륭(乾隆) 60년
동지 정사 민종현 등이 중국의 황제 즉위와 연호 사용문제를 치계하다
동지 정사(冬至正使) 민종현(閔鍾顯)과 부사(副使) 이형원(李亨元)이 치계(馳啓)하였다.
"신이 역관(譯官)으로 하여금 연호(年號)를 고치는 문제와 정사를 물려주는 일을 탐문해 보게 하였습니다. 새로 황제가 될 사람은 십오왕(十五王)인 영염(永琰)으로서 일찍이 계사년에 가친왕(嘉親王)에 봉해졌는데 금년 10월 10일에 육경궁(毓慶宮)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원래는 동짓날에 황제의 자리를 전해주기로 했었는데 12월 1일에 일식(日蝕)이 있기 때문에 내년 새해 아침에 물려줄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영(永)이라는 글자를 휘(諱)하여 한서(漢書)에는 옹(顒)으로 고쳐 쓰고 청서(淸書)에는 점(點) 하나를 없애기로 했다 합니다. 연호는 가경(嘉慶)으로 정해 이미 헌서(憲書)311) 를 간행하여 반포했는데, 아직 널리 유포되지 않았기 때문에 헌서 하나를 봉성(鳳城)에서 간신히 구한 뒤 함께 봉(封)하여 올려보냅니다."
- 【태백산사고본】 43책 43권 52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610면
- 【분류】외교(外交)
- [註 311]헌서(憲書) : 시헌력(時憲曆) 즉 책력(冊曆)인데, 청 고종(淸高宗)의 이름이 홍력(弘曆)이기 때문에 역(曆)을 서(書)로 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