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교리 정래백이 형정의 부당함과 기강·언로·재용 등의 폐에 대해 상소하다
부교리 정래백(鄭來百)이 상소하기를,
"지금 재변이 일어나게 된 원인으로 말하면 진정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제방의 측면에서 말하건대, 허적(許積)과 김성탁(金聖鐸)이 범한 죄와 관련하여 단안(斷案)이 일단 확정되었고 국시(國是)가 이미 이루어졌는데도 죄명(罪名)을 특별히 씻어주시는 바람에 형정(刑政)이 타당함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택수(澤遂)와 홍섭(弘燮)의 지속(支屬)과 같은 자들까지도 양이(量移)300) 하거나 석방해 주도록 하셨으니, 이것은 또 어찌 된 거조이십니까. 만약 계속 이런 식이 된다면 흉역(凶逆)의 잔당들이 필시 앞으로 꼬리를 물고 헛된 생각을 품으면서 머리를 맞대고 억울함을 따지려 들 것이니, 생각이 이에 미치면 자신도 모르게 몸이 오싹해지기만 합니다.
기강의 측면에서 말하건대, 무엄하기만 한 습속과 분의(分義)를 범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여 일일이 셀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심지어는 함창(咸昌)의 아전이 관청 뜰에서 칼을 빼들었으니 그 죄야말로 용서할 수 없는 것인데도 여태 법을 적용하지 않고 있고, 통진(通津)의 백성이 임금의 행차 앞에서 외람되게 하소연을 한 그 일이야말로 예전에 없었던 것인데도 통렬하게 다스렸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이 비록 하찮은 일이라 할지라도 등위(等位)와 관계가 있는 일인데 작은 일이 점점 커지다 보면 무슨 변인들 생기지 않겠습니까.
언로(言路)의 측면에서 말하건대, 징토(懲討)하는 일이야말로 조정의 대론(大論)이라 할 것인데, 공(公)을 사(私)가 가리기도 하고 은혜가 거꾸로 의리를 엄폐시키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금령(禁令)으로 비호해 주기도 하고 엄한 분부로 입을 막아버리기도 하시기 때문에, 마음들이 이로 말미암아 서로 막히고 분위기가 이로 인해 저상(沮喪)되고 있습니다. 이 어찌 성스러운 조정의 아름다운 일이라 하겠습니까.
재용(財用)의 측면에서 말하건대, 태창(太倉)에서 녹봉을 반급(頒給)해 주는 것도 늘 부족한 걱정이 있고 외방 고을 창고에 남겨 둔 것도 모두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객사(客使)가 장차 이를텐데 그 지공(支供)하는 비용을 마련하기가 어렵고 호남의 농사가 흉년이 들었는데 진휼(賑恤)할 방책이 없습니다. 그러니 전(傳)에서 이른바 ‘나라가 나라답지 못하게 되었다.’고 하는 말과 불행히도 근사하게 되었다고 할 것입니다.
백성의 근심거리로 말하건대, 신(新)·구(舊)의 환곡(還穀)을 바야흐로 급히 독촉하여 거두면서 인족(隣族)을 침해하는 등 갖가지로 고달픔을 당하고 있는데, 관아에서는 백성의 주름살을 펴줄 정사를 생각하지 않고 있고 마을에서는 대부분 공포의 분위기만 감돌고 있습니다.
이 다섯 가지 조목 모두가 현재 당면한 급무(急務)이니, 오직 전하께서는 두려운 마음으로 경계하시고 통분스러운 심정으로 분발하시어, 제방의 측면에서는 엄밀하게 할 방도를 강구하시고, 기강의 측면에서는 엄숙하게 진작시킬 방도를 강구하시고, 언로의 측면에서는 그 길을 넓혀 줄 방도를 강구하시고, 재용의 측면에서는 넉넉하게 할 방도를 강구하시고, 백성의 근심거리에 대해서는 생활을 안정시킬 방도를 강구하도록 하소서. 그리고 그 나머지 여러 조항에 대해서도 유사(有司)로 하여금 차례차례 거행하게 하소서.
한편 신이 달포 전에 명을 받들고 동래부(東萊府)에 다녀왔는데 나름대로 진달드릴 의견이 있습니다. 그것은 즉 본부(本府)의 군교(軍校)들의 사기를 고무시키는 정사(政事)에 있어 실로 소루한 점이 많다고 하는 것입니다. 비록 서쪽 변방 및 북쪽 변방의 고을과 경기도 안의 독진(獨鎭)을 두고 말하더라도 혹은 급료를 주는 군관(軍官)을 두기도 하고 혹은 오래 근무하는 변장(邊將)이 있기도 한데 동래부만은 유독 이런 규정이 없습니다.
중년(中年)에 조정에서 별기위(別騎衛)를 설치하고 매년 좌병영(左兵營)에서 기예를 시험한 뒤 우수한 자를 뽑아 장계로 보고해서 직부(直赴)토록 했습니다만, 일단 벼슬길을 찾아 발신(拔身)할 수 있는 계기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한 번 출신(出身)한 경우도 흐지부지되도록 방치해 두고 있는 형편입니다. 심지어 한산 군교(閑散軍校)의 경우는 애당초 특별히 격려하는 방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연습할 의욕이 없어진 가운데 활쏘는 기예 역시 점점 서툴어지고 있으니, 변방에서 무예를 숭상해야 하는 법도로 볼 때 소홀하기가 그지없다 하겠습 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지금 이후로 매달 기예를 시험하여 우수한 자를 뽑은 뒤 그들 모두에게 급료를 받는 군교와 오래 근무하는 장교의 자격을 부여하되 서쪽과 북쪽 변방의 예대로 해서 차차 거두어 쓰게 하고 변장(邊將) 한 자리와 말천(末薦) 한 자리를 허락해 주어야 하리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면 실로 그들을 격려시키고 위로하는 요결이 될 것이니, 묘당으로 하여금 품처(稟處)케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품처할 만한 것은 품처하게 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3책 43권 46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607면
- 【분류】정론(政論) / 과학(科學) / 재정(財政) / 인사(人事)
- [註 300]양이(量移) : 좋은 곳으로 적당히 이배(移配)해 주는 것.
○副校理鄭來百上疏曰:
目今致災之端, 固非一二。 以言乎隄防, 則積、鐸之負犯, 斷案旣定, 國是已成, 而特滌罪名, 刑政乖當。 至若澤、弘支屬之或量移或放釋, 此又何擧也? 若此不已, 則凶醜逆孽, 必將接跡而生心, 聚首而訟冤, 思之及此, 不覺澟然。 以言乎紀綱, 則無嚴之習, 犯分之端, 比比有之, 難以毛擧。 至於咸昌吏之露刃官庭, 罪固罔赦, 而尙不用法; 通津民之猥訴輦路, 事未前有, 而未聞痛繩。 此雖微事, 亦關等威, 積小成大, 何變不生? 以言乎言路, 則懲討, 朝廷之大論, 而私或蔽公, 恩反掩義, 庇以禁令, 鉗以嚴敎, 情志由是阻隔, 氣象以此消沮, 此豈聖朝之美事耶? 以言乎財用, 則太倉頒祿, 常患不足, 外邑留庫, 皆歸烏有。 客使將至, 而支供難辦, 湖農告歉, 而賙賑無策。 傳所謂國非其國者, 不幸近之。 以言乎民憂, 則新舊還餉, 徵督方急, 隣族侵漁, 愁苦多端, 官無察眉之政, 里多重足之形。 凡此五條, 俱是當今之急務, 惟殿下惕然警懼, 慨然奮發, 隄防則求所以嚴密, 紀綱則求所以振肅, 言路則求所以恢張, 財用則求所以贍敷, 民憂則求所以懷綏。 其餘諸條, 亦令有司, 次第修擧焉。 抑臣於月前, 奉命萊府, 竊有愚見之可陳者, 本府軍校奬勸之政, 實多踈虞。 雖以西北邊邑與畿內獨鎭處言之, 或有付料軍官, 或有久勤邊將, 而萊府則獨無此規。 中年自朝家, 設置別騎衛, 每年自左兵營試藝, 取其優等, 狀聞直赴, 而旣無求仕拔身之階, 故一番出身, 任其乾沒, 至於閑散軍校, 則初無別般激勸之方, 故無意錬習, 射藝漸踈, 邊上尙武之法, 踈忽莫甚。 臣謂自今以後, 每朔試藝, 取其優等, 竝與軍校久勤, 而依西北例, 次次收用, 許以邊將一窠, 末薦一窠, 則實爲激勸慰悅之要, 令廟堂稟處, 恐宜矣。
批曰: "可以稟處者稟處。"
- 【태백산사고본】 43책 43권 46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607면
- 【분류】정론(政論) / 과학(科學) / 재정(財政) / 인사(人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