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심대에 올라 꽃을 감상하고 편을 나누어 활을 쏘게 하다
세심대(洗心臺)에 올라 꽃을 감상하고 편을 나누어 활을 쏘게 하였다. 상이 도총관(都摠管) 이민보(李敏輔)에게 이르기를,
"매년 이 행차에 경들과 함께 올라왔었다. 신해년104) 봄에 내가 지은 시(詩) 가운데 ‘자리에 앉은 많은 백발 노인들, 내년에도 지금처럼 술잔 들으리.[坐間多皓髮 來歲又今樽]’라는 구절이 있었고, 그 이듬해의 이 모임에서 지은 시 가운데에도 또 ‘마음에 맞는 동서울 노인, 탈없이 시짓고 술잔 드누나.[會心東洛老 無𧏮又詩樽]’라는 구절이 있었는데, 이 모두가 경을 가리킨 것이었다. 오늘의 놀이 역시 경이 전담케 해야 하겠다."
하고, 이어 편여(便輿)를 타고서 선희궁(宣禧宮) 북문(北門)을 나갔다. 나이 60세가 넘은 신하들에게 모두 지팡이를 하사하여 산을 오르는 데에 편하게 하라고 명하였다. 마침내 옥류천(玉流泉)을 따라 수십 보(步)를 지나가서 세심대에 이르렀다. 상이 장막을 친 자리에 올라가 앉아 영의정 홍낙성(洪樂性)과 우의정 채제공(蔡濟恭)을 불러 보았다. 상이 이르기를,
"매년 이 때가 되면 꼭 이 세심대에 오르는데 이는 경치좋은 곳을 찾아 꽃을 감상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곳은 대개 경모궁(景慕宮)을 처음 세울 때 터를 잡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찌 한가하게 즐기려고 그러는 것이겠는가.
옛날 을묘년에 나라의 경사가 있고나서 고(故) 중신(重臣) 영성군(靈城君)이 여러 경재(卿宰)와 함께 필운대(弼雲臺)에 모여 기뻐하면서 축하하는 마음을 편 적이 있었다. 그때 영성군이 지은 시 가운데 ‘해마다 태평주(太平酒) 들며 길이 취하리.[每年長醉太平杯]’라는 구절이 있었는데, 그 필운대가 바로 이 세심대이다. 경들은 혹시 그런 일을 들어 알고 있는가.
올해야말로 천 년에 한 번 만나기 어려운 경사스러운 해이다. 경들이 고사(故事)를 엮어 기술하면서 옛사람들과 아름다움을 짝하여 오늘날의 태평스러운 기상을 표현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반드시 이달 안으로 날을 잡아서 이곳에 와 모였고 보면 올해의 이 놀이 또한 어찌 희귀한 일이 아니겠는가."
하고, 또 이르기를,
"지금부터 10년 뒤의 갑자년은 바로 경모궁의 중근(重巹)105) 이 되는 해이다. 그 때에 자궁(慈宮)께서 현륭원(顯隆園)에 가시어 참배하는 일이야말로 정리상으로나 예법상으로나 그만둘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이번에 자궁의 행차를 모시고 갔다가 환궁한 뒤에 수라(水剌)에 사용하는 기명(器皿) 등속을 그냥 본부(本府)에 놔두도록 하였는데 이것도 나에게 생각이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이었다. 10년이 지난 뒤에 경들이 다시 행차를 모신다면 어찌 희귀한 일이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지금 경들의 근력(筋力)을 보건대 모두 걱정할 것이 없겠다."
하였다. 이어 초계 문신(抄啓文臣) 김근순(金近淳)에게 명하여 세심대 밑에 거주하는 조관(朝官)과 유생들을 불러와 대기시키도록 하였다. 또 승지 이만수(李晩秀)에게 명하여 상이 직접 지은 소서(小序) 및 칠언(七言)의 소시(小詩)를 쓰라고 하고, 신하들에게 회답하도록 명하였다. 또 세심대 남쪽에 작은 표적을 설치한 뒤 자리에 참석한 무신 및 문신 중에서 활을 잘 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편을 나누어 활을 쏘게 하였다. 또 세심대 아래에 거주하는 무신 및 행차를 따라 온 장교(將校)들도 모두 활쏘기 시합을 벌이게 하고 상을 나눠주도록 명하였다.
꽃을 넣어 지진 떡을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또 이우진(李羽晋)·유사모(柳師模) 등에게 명하여 유생 등 여러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어 한껏 취하고 배불리 먹게 하는 동시에 이 날의 즐거움을 기록하게 하였다. 남복래(南復來)에게 대내(大內)의 주방에서 만든 음식 한 소반을 특별히 내리면서 하교하기를,
"그대의 아비가 일찍이 계방(桂坊)106) 에 있었던 일이 특별히 생각난다. 돌아가서 처자들과 함께 나누어 먹도록 하라."
하였다. 또 승지에게 명하여 종이와 붓과 먹을 아동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면서 하교하기를,
"나는 이곳을 이웃 동네처럼 여기고 있다. 이 뒤로 행차가 도착하면 서인(庶人)이나 사인(士人)이나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부를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와서 모이되 각각 그 가문의 어른이 이끌고 와서 지영(祗迎)토록 하라."
하였다. 이날 날씨가 맑게 개이고 경치도 산뜻하였는데, 의장(儀仗)을 구경하고 음악 소리를 들으려고 도성의 사녀(士女)들이 양쪽 기슭에 빽빽히 모여들었다. 상이 또 하교하기를,
"내가 이 해에 이 놀이를 하면서 골고루 혜택을 베풀어주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하고, 선전관(宣傳官)을 보내어 떡과 밥을 나누어 먹이게 하였다. 또 영상과 우상에게 각각 법악(法樂) 1부(部)씩을 보내 집까지 인도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2책 42권 49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565면
- 【분류】왕실(王室)
- [註 104]
○登洗心臺, 賞花耦射。 謂都摠管李敏輔曰: "每歲此幸, 與卿等同登。 辛亥春, 予詩有坐間多皓髮, 來歲又今樽之句, 翌年此會, 又有會心東洛老, 無𧏮又詩樽之句, 皆指卿也。 今日之遊, 亦當使卿專管矣。" 仍乘便輿, 出宣禧宮北門, 命諸臣中, 年過六十者皆賜杖, 俾便登陟。 遂從玉流泉, 迤過數十武, 至洗心臺。 張幄陞座, 召見領議政洪樂性、右議政蔡濟恭。 上曰: "每年此時之必臨此臺, 非爲選勝看花也, 蓋爲景慕宮初建時卜地之基也。 予豈爲暇豫而然哉? 昔乙卯邦慶後, 故重臣靈城君與諸卿宰, 會弼雲臺, 以伸歡祝, 而伊時靈城之詩, 有每年長醉太平杯之句, 雲臺卽此臺, 卿等或有聞知者乎? 今年卽是千載難逢之慶年, 卿等修述故事, 匹美前人賁飾今日之太平, 亦好矣。 必於今日內, 選日來會於此地, 則是年是遊, 亦豈不稀貴耶?" 又曰: "此後十年甲子, 卽景慕宮重巹之年, 其時慈宮之詣園所展拜, 卽是情禮之不可已。 予於今番陪慈駕還宮後, 水剌所用器皿之屬, 姑爲留置本府, 此亦予意存焉。 十年後, 卿等復爲陪駕, 則豈不稀異? 今以卿等筋力觀之, 皆可無慮矣。" 仍命抄啓文臣金近淳, 召臺底居生朝官、儒生來待。 又命承旨李晩秀書御製小序及七言小詩, 命諸臣賡載。 又設小帿於臺之南, 與在筵武臣及文臣之能射者耦射。 又命臺底居生武臣及隨駕將校, 亦皆試射頒賞。 煎花糕, 宣饋諸臣。 又命李羽晋、柳師模等, 與儒生諸人, 均分醉飽, 以志今日之樂。 別賜南復來內廚饌一盤, 敎曰: "特念爾父之曾經桂坊也, 歸與妻孥共之。" 又命承旨以紙筆墨分賜諸童蒙, 敎曰: "予於是地, 視同隣閈。 此後駕臨, 人士老少, 不待招呼而來會, 各其門長率領祗迎也。" 是日天氣淸朗, 化景凈姸, 都人士女之瞻羽旄, 聽鍾鼓者, 簇擁兩麓。 又敎曰: "予以是年是遊, 不可無均霑之擧。" 遣宣傳官, 以餠食分饋之。 又賜領右相法樂各一部, 導至其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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