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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42권, 정조 19년 윤2월 13일 을미 1번째기사 1795년 청 건륭(乾隆) 60년

봉수당에 나아가 혜경궁을 위해 연회를 베풀다

봉수당(奉壽堂)에 나아가 혜경궁을 위해 연회를 베풀었다.

하루 전에 상침(尙寢)이 소속 인원을 이끌고서, 자궁(慈宮)의 자리를 행궁(行宮)의 내전(內殿) 북쪽 벽에 남쪽으로 향하게 설치하고, 인안(印案)을 자리 동쪽에 설치하고 향안(香案) 두 개를 앞 기둥의 왼쪽과 오른쪽에 설치하였다. 그리고 자궁의 자리 동쪽에 어좌(御座)를 설치하고, 섬돌 위에 북쪽을 향하게 배위(拜位)를 설치하고, 내전 안쪽 한중앙에 북쪽을 향해서 욕위(褥位)를 설치하였다.

전찬(典贊)이 내명부(內命婦)와 외명부(外命婦)의 시위(侍位)를 앞 기둥의 발[簾] 안쪽에 북쪽을 위로 해서 서로 마주보게 설치하고, 배위(拜位)를 내전의 앞쪽 오른편과 왼편에 설치하고, 외위(外位)를 뜰 중앙에 설치하였는데 모두 북쪽을 향하고 서로 대칭되게 하였다. 또 의빈(儀賓)과 척신(戚臣)의 시위(侍位)를 앞 기둥의 발 바깥쪽 좌우에 설치하였는데 북쪽을 위로 해서 서로 마주보게 하였으며, 배위(拜位)를 내전의 앞쪽 좌우에 설치하면서 북쪽을 위로 하고 서로 대칭되게 하였다.

전의(典儀)가 모시고 따라온 백관들에게 음식상을 차려 줄 자리를 중양문(中陽門) 밖의 동쪽과 서쪽에 설치하였는데 북쪽을 위로 하고 서로 마주보게 하였으며, 배위(拜位)를 길의 서쪽에 북쪽을 향해 서로 대칭되도록 설치하였다. 그리고 인의(引儀)가 의빈과 척신의 외위(外位)를 중양문 밖에 설치하고, 모시고 따라 온 백관의 외위를 좌익문(左翊門) 밖에 설치하였다.

이날에 이르러 여관(女官)이 사찬(司贊)·전빈(典賓)·여관의 자리를 발을 드리운 안쪽에 설치하였는데 전찬은 남쪽으로 조금 뒤에 있게 하였다. 여집사(女執事)가 좌통찬(左通贊)·우통찬(右通贊) 및 치사(致詞)를 대신 읽을 여집사의 자리를 섬돌 사이에 설치하고 찬창(贊唱)의 자리는 그 남쪽으로 조금 뒤에 설치하였는데 동쪽과 서쪽으로 나눈 뒤 모두 북쪽을 위로 삼게 하였다.

또 악장(樂章)을 선창(先唱)하고 후창(後唱)하는 여악공(女樂工)의 자리를 발의 바깥쪽으로 북쪽을 향하게 설치하고, 여집사 및 정재(呈才)072) 담당 여악공의 자리를 동쪽과 서쪽 모서리의 섬돌 부근에 설치하였는데, 여집사는 좌우로 나뉘어 북쪽을 위로 해서 서로 마주보게 하였고 여악공은 북쪽을 향하게 하면서 서로 대칭되게 하였으며 박자를 맞추는 여악공은 또 그 앞쪽에 있게 하였다. 그리고 여집사와 여악공의 외위(外位)를 뜰 한복판에 장막으로 막아 설치하고, 악공의 자리를 장막 밖에 설치하였다.

여관이 자궁의 술그릇 탁자를 앞 기둥의 발을 드리운 안쪽에서 남쪽 가까운 곳에 설치하고, 상의 술그릇 탁자를 자궁의 술그릇 탁자의 동쪽 앞에 설치하고, 명부(命婦) 및 의빈(儀賓)·척신(戚臣)의 술그릇 탁자를 시위(侍位) 남쪽에 설치하였다.

또 꽃을 바칠 때 올려놓는 탁자를 발 안의 동쪽에 설치하고, 휘건함(揮巾函)을 올려놓은 탁자를 그 다음에 설치하고, 꽃을 흩뿌리는 소반을 올려놓은 탁자를 발 바깥의 서쪽에 설치하고, 꽃병을 올려놓은 탁자를 섬돌 위 동쪽과 서쪽에 설치하고, 치사(致詞)를 올려놓은 상을 임금의 배위(拜位) 오른쪽에 설치하였다.

때가 되자 정리소의 대신 이하가 융복(戎服)을 갖추어 입고 제위(諸衛)를 독촉하여 내전의 문 바깥쪽 뜰에 벌여 세웠으며, 내전의 뜰 왼쪽과 오른쪽에 의장(儀仗)을 설치하였다. 산선(繖扇)·청개(靑蓋)·홍개(紅蓋)·정절(旌節)·봉선(鳳扇)·작선(雀扇)을 각각 두 개씩 앞 기둥의 발 바깥쪽 동쪽과 서쪽에 설치하였다.

행사 시작 3각(刻) 전에 여관·여집사·여악공 등이 각기 복장을 갖추고 외위(外位)로 나가 있다가 조금 뒤에 각각 자기 자리로 나아갔다. 정리사(整理使)가 뜰 한복판의 장막 바깥쪽에 악대(樂隊)를 벌여 세웠다. 의빈·척신·수행한 백관들은 융복 차림으로, 유생들은 청금(靑衿) 복장으로 각각 외위에 나아갔다.

행사 시작 2각 전에 내명부와 외명부가 각기 예복을 갖춰 입고 외위로 나아갔다. 인의(引儀)가 수행한 백관들을 나누어 인도하고 들어가 배위(拜位)로 나아가게 하였다.

행사 시작 1각 전에 여관 등이 모두 내합(內閤)으로 나아갔다. 여관이 무릎을 꿇고서 ‘준비하셔야겠습니다.’ 하고 보고하였다. 조금 뒤에 또 무릎을 꿇고서 ‘바깥 준비가 다 끝났습니다.’ 하고 보고하였다. 자궁이 예복 차림으로 나오자 여관이 앞으로 인도하였다. 악대가 여민락 령(與民樂令)을 연주하였는데, 자리에 오른 다음 향로의 연기가 피어 오르자 연주를 그쳤다.

여집사가 내합(內閤)에 가서 무릎을 꿇고서 ‘대기하셔야겠습니다.’라고 아뢰었다. 여관이 내명부와 외명부를 인도하여 배위(拜位)로 나아가게 했다. 여관이 ‘재배(再拜)’라고 말하자 악대가 낙양춘곡(洛陽春曲)을 연주하였다. 여관이 ‘국궁(鞠躬)’ ‘재배’ ‘흥(興)’ ‘평신(平身)’이라고 외치는 데에 따라 내명부와 외명부가 몸을 굽히고 두 번 절을 하고 일어나고 몸을 펴니 음악이 멎었다. 여관이 내명부와 외명부를 인도하여 각각 시위(侍位)로 나아가게 하였다. 여집사가 의빈과 척신을 인도하고 들어가 배위(拜位)로 나아가게 하였다.

여집사가 무릎을 꿇고서 ‘바깥 준비가 다 끝났습니다.’ 하고 아뢰었다. 상이 융복(戎服) 차림으로 나오자 악대가 여민락 령을 연주하였다. 여집사가 앞에서 인도하여 배위(拜位)로 나아가 북쪽을 향해 서게 하니 연주를 그쳤다. 악대가 낙양춘곡을 연주하였다. 상이 몸을 굽혔다가 절을 두 번 하고 일어나서 몸을 펴자 음악이 그쳤다. 상이 무릎을 꿇었다. 여관이 휘건(揮巾)을 올리라고 외치니 정리사가 장막 밖으로 가서 휘건을 바쳤다. 악대가 여민락 령을 연주하였다. 내시가 휘건을 전해 받아 여관에게 주었는데 여관이 전해 받아 자궁의 자리 앞에 올리니 음악이 그쳤다.

음식상을 올릴 때에 악대가 여민락 만(與民樂慢)을 연주하고 음식상을 다 올리자 연주를 그쳤다. 꽃을 올릴 때에 악대가 여민락 령(與民樂令)을 연주하고 다 올리자 연주를 멈췄다. 상이 엎드렸다가 일어나서 몸을 폈다. 여악공 두 사람이 앞으로 나와 발 바깥쪽 한복판에 멈춘 뒤 동쪽과 서쪽으로 나누어 북쪽을 향해 서서 어제(御製)인 장락장(長樂章)을 불렀는데, 그 내용에 이르기를,

"성대한 연회는 태평 시대에나 있는 법, 오늘날 태평 시대의 기상이 넘쳐 흐르도다. 그 기상을 묻노니 어떤 것인가. 노인성(老人星)이 중천에 떠 밝게 빛나네. 봄철 장락궁(長樂宮)에 노인들 모여들고, 화봉인(華封人)073) 처럼 축하하러 부인들 참석했네. 긴긴 봄날 장락궁에서 술잔 올리며, 세 차례나 축원을 올리옵니다. 자손에게 끼쳐주신 어머님 은혜, 그 무엇이 이보다 높으오리까. 복록이 풍성하게 넘쳐 흐르며 찬란하게 빛나옵니다. 함지(咸池)의 북소리에 운문(雲門)의 거문고, 신선주(神仙酒) 따라 올리면서 해마다 축원하오리다."

하였다.

여집사가 상을 인도하여 발 밖에까지 이르자 여관이 이어 인도해서 자궁의 술그릇을 놓은 남쪽까지 가 북쪽을 향해 서게 하니 악대가 여민락 령을 연주하였다. 여관이 술을 따른 뒤 무릎을 꿇고서 상에게 바치니 상이 술잔을 받아 자궁의 자리 앞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술잔을 여관에게 주었다. 여관이 술잔을 넘겨받아 자리 앞에 놓았다. 상이 엎드렸다가 일어나서 몸을 펴니 연주를 그쳤다.

여관이 상을 인도하여 발 밖에 이르니 여집사가 앞장서서 인도하여 배위(拜位)에 간 뒤 북쪽을 향해 서게 하였다. 상이 무릎을 꿇으니 여집사가 상의 배위 앞으로 나아가 북쪽을 향해 꿇어앉은 뒤 치사(致詞)를 대신 읽었는데, 그 내용에,

"국왕 모(某)는 삼가 건륭(乾隆) 60년 윤2월 13일의 경사를 맞게 되었습니다. 효강 자희 정선 휘목 혜빈(孝康慈禧貞宣徽穆惠嬪) 저하(邸下)께서는 우리 왕실의 아름다운 덕을 계승하시어 장수하는 복을 받으셨으니 복록은 자손에게 흘러 넘치고 경사로움이 어머님에게 미쳤습니다. 삼가 축하하는 자리에 모시고서 경건히 술잔을 따라 올리오니 어머님의 연세를 아는 이 기쁜 날 칭송하는 소리 높이높이 울려 퍼집니다.

아, 즐거운 이 잔칫날 만물이 모두 다 은혜를 입고, 화창한 봄날 맞이하여 하늘의 도우심에 보답합니다. 어머님은 더욱 오래 사시어 크나큰 복록 받을 것이며 태평 시대는 끝없이 이어져 가리이다. 경하하는 마음 누를 길 없어 삼가 만세를 기원하는 술잔을 올립니다."

하였다. 【예문관 제학 이병정(李秉鼎)이 지어 올렸다.】

상이 엎드렸다 일어나서 몸을 펴자 여집사가 상을 인도하여 발 밖에까지 이르렀다. 여관이 이어 인도하여 전각 안의 욕위(褥位)로 나아갔다. 상이 무릎을 꿇었다. 여관이 자궁의 자리 앞으로 나아가서 무릎을 꿇고 아뢰기를 ‘분부를 내리소서.’ 하고 엎드렸다가 일어나서 서쪽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이에 분부를 내리기를 ‘전하와 경사를 함께 하겠다.’ 하고 자궁이 술잔을 드니 악대가 여민락천세만세곡(千歲萬歲曲)을 연주하였다. 여관이 나아가서 빈 술잔을 받아 자궁의 술그릇 탁자 위에 다시 놓자 음악이 그쳤다.

상이 엎드렸다가 일어나서 몸을 펴니 여관이 상을 인도하여 발 밖에까지 이르렀다. 여집사가 앞장서서 인도하여 배위(拜位)에 이르렀다. 상이 무릎을 꿇었다. 여집사가 외치기를 ‘세 번 머리를 조아려야 합니다.’ 하니, 상이 세 번 머리를 조아렸다. 또 외치기를 ‘천세(千歲)를 불러야 합니다.’ 하니, 상이 손을 마주 잡고 이마 위에 올리며 ‘천세’라고 하였다. 또 외치기를 ‘천세를 불러야 합니다.’ 하니, ‘천세’라고 하였다. 또 외치기를 ‘거듭 천세를 불러야 합니다.’ 하니, ‘천천세’라고 하였다. 천세를 부를 때마다 명부(命婦)와 여관(女官) 이하가 모두 선 자리에서 일제히 소리쳐 호응하고 악대가 낙양춘곡(洛陽春曲)을 연주하였다. 상이 엎드렸다가 일어나서 두 번 절하고 다시 일어나 몸을 펴니 연주가 그쳤다.

여집사가 상을 인도하여 발 밖에까지 이르렀다. 여관이 그 뒤를 이어 인도하여 내전 안 욕위(褥位)로 가서 서쪽을 향해 서게 하였다. 여집사가 의빈(儀賓)과 척신(戚臣)들을 나누어 인도해서 각각 자기 자리로 나아가게 하였다. 상이 무릎을 꿇자 정리사(整理使)가 수건을 바쳤다. 악대가 여민락 령(與民樂令)을 연주하였다. 수건을 바치고 나니 연주가 그쳤다.

음식상을 차례로 올리니 악대가 여민락 령을 연주하였다. 음식상을 다 올리자 연주를 그쳤다. 여관이 내명부와 외명부의 음식상을 차리고 여집사가 의빈과 척신의 음식상을 차렸다. 여관과 여집사와 산화(散花)를 담당하는 자들이 백관에게 술과 음식을 차리고 꽃을 뿌렸다. 백관이 자리에서 나와 술을 다 마신 다음에 네 번 절을 하였다. 인의(引儀)가 수행한 백관을 인도하여 나왔다.

자궁에게 탕(湯)을 올렸는데, 전해 받아 올리는 절차는 음식상을 올릴 때의 의례와 동일하였다. 악대가 여민락 만(與民樂慢)을 연주하다가 탕을 다 올리자 연주를 그쳤다. 첫 번째 술잔을 올릴 때 ‘선도(仙桃)를 바친다[獻仙桃]’는 정재(呈才)를 연희(演戱)하고 악대가 여민락환환곡(桓桓曲)을 연주하였다.

여관이 상을 인도하여 자궁의 술 탁자 앞으로 나아갔다. 여관이 장수를 축원하는 술을 따른 뒤 무릎을 꿇고 상에게 올리니 상이 술잔을 받아 자궁의 자리 앞으로 나아갔다. 여관이 외치기를 ‘무릎을 꿇으십시오.’ 하였다. 상이 무릎을 꿇고 술잔을 여관에게 주니 여관이 건네받아 자궁의 자리 앞에 올렸다. 자궁이 술잔을 들어 다 마신 다음에 술잔을 여관에게 주었다.

여관이 무릎을 꿇고 술잔을 받은 다음에 상의 술 탁자 앞으로 가서 술잔에 술을 따라 자궁에게 바쳤다. 자궁이 술잔을 받아 여관에게 주니 여관이 무릎을 꿇고 술잔을 받은 다음 상에게 올렸다. 상이 무릎꿇고 술잔을 받아 다 마신 다음 잔을 잡고 엎드렸다가 일어나 몸을 펴고 술 탁자 앞에까지 오니 여관이 무릎을 꿇고 술잔을 받았다.

상이 자리로 돌아가 술잔을 돌리게 하였다. 여관이 내명부와 외명부에게 술잔을 돌리고 여집사가 의빈과 척신에게 술잔을 돌렸다. 상에게 탕을 올렸는데 건네받은 절차는 위에서의 의례와 같았다. 여관과 여집사가 분담하여 내명부·외명부 및 의빈·척신에게 탕을 공급했다. 정재(呈才)의 연희가 끝나면서 연주가 멎었다.

두 번째 잔을 올릴 때 ‘금척(金尺)’이라는 정재와 ‘하늘의 밝은 명을 받고 황제의 은혜를 입었다[受明命荷皇恩]’는 정재를 연희하고 악대가 여민락청평악(淸平樂)을 연주하였다. 여관이 명부(命婦)를 인도하여 자궁의 술 탁자 남쪽으로 가서 북쪽을 향해 서게 하였다. 여관이 장수를 축원하는 술을 술잔에 따라 명부에게 주었다. 명부가 술잔을 받아 자궁의 자리 앞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술잔을 여관에게 주었다. 여관이 건네받아 자궁의 자리 앞에 올리니 명부가 자리에 엎드렸다. 자궁이 술잔을 든 뒤 여관이 빈 술잔을 받아 명부에게 주니 명부가 술잔을 받아 자궁의 술 탁자 위에 다시 놓았다. 여관이 명부를 인도하여 제자리로 돌아가게 하였다. 【세 번째 잔부터 일곱 번째 잔까지는 명부와 의빈·척신 중에서 자궁의 유지(有旨)를 받든 사람들이 차례로 술잔을 올렸는데, 그 절차는 위에서의 의례와 같았다. 의빈과 척신은 자궁에게 잔을 올린 다음에 상의 술 탁자로 가서 술을 따라 상에게 올렸는데, 상이 술잔을 들어 마신 다음 술잔을 주면 다시 술잔을 받아 술 탁자 위에 놓고 물러갔다.】 탕을 올리고 술잔을 돌리는 절차는 첫 번째 잔을 올렸을 때의 의례와 같았다. 정재가 끝나면서 음악도 멈췄다.

세 번째 술잔을 올릴 때 ‘포구락(抛毬樂)’이라는 정재(呈才)와 ‘무고(舞鼓)’라는 정재를 연희하고, 악대가 여민락(與民樂)오운개서조곡(五雲開瑞朝曲)을 연주하였다. 정재가 끝나자 연주도 멈췄다.

네 번째 술잔을 올릴 때 ‘아박(牙拍)’이라는 정재와 ‘향발(響鈸)’이라는 정재를 연희하고, 악대가 천세만세곡(千歲萬歲曲)을 향악(鄕樂)과 당악(唐樂)으로 번갈아가며 연주하였다. 정재가 끝나자 연주도 멈췄다.

다섯 번째 술잔을 올릴 때 ‘학무(鶴舞)’라는 정재를 연희하고, 악대가 여민락유황곡(惟皇曲)을 연주하였다. 정재가 끝나자 연주도 그쳤다.

여섯 번째 술잔을 올릴 때 ‘연화대(蓮花臺)’라는 정재를 연희하고, 악대가 여민락환환곡(桓桓曲)을 연주하였다. 정재가 끝나자 연주도 그쳤다.

일곱 번째 술잔을 올릴 때에 ‘수명을 연장한다[壽延長].’는 정재를 연희하고, 악대가 여민락하운봉곡(夏雲峰曲)을 연주하였다. 정재가 끝나자 연주도 그쳤다.

처용무(處容舞)를 추자 악대가 정읍악(井邑樂)여민락을 향악(鄕樂)과 당악(唐樂)으로 번갈아 연주하였다. 첨수무(尖袖舞)를 추자 악대가 낙양춘곡(洛陽春曲)을 연주하였다. 정재가 끝나자 연주도 그쳤다.

여악공(女樂工) 두 사람이 나와 발[簾] 밖의 한복판에 이르러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어서 북쪽을 향해 선 다음 상이 지은 관화장(觀華章)을 불렀는데, 그 내용에,

"자궁의 덕 순일함이여, 대지(大地)와 같아 표현하기 어려워라. 말없이 은혜 널리 베푸심이여, 태평 시대 열리게 도와주셨도다. 온갖 복록이 모여듦이여, 마치 강물처럼 흘러 넘치도다. 자손들 갈수록 번창함이여, 해마다 경사가 이어지도다. 북두성마냥 밝으심이여, 숭산(嵩山)처럼 높고 높도다. 보책(寶冊)에 상서(祥瑞)를 기록함이여, 봄날 잔치 열어 술을 따르도다. 아, 자궁의 덕 아름다워라, 이번에 회갑을 맞으셨도다. 화창한 이 시절 완상(玩賞)함이여, 만물이 어울려 화락하도다. 새로 지은 고을에서 기쁨을 누림이여, 집집마다 노랫소리 울려 퍼지네. 떠 오르는 저 해와 달처럼 천년토록 만년토록 오래 사소서."

하였다. 여악공이 노래를 마치고 내려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여관이 자궁의 앞에 나아가고 또 상의 앞에 나아가서 상을 치웠다. 악대가 여민락 만(與民樂慢)을 연주하였다. 여관 및 여집사가 명부 및 의빈·척신의 상을 치웠다. 음악 연주가 그쳤다.

여관이 ‘일어나실 때가 되었습니다.’라고 외쳤다. 여관이 상을 인도하여 발 밖에까지 이르자 여집사가 앞장서서 인도하여 배위(拜位)에 이르렀다. 여집사가 의빈과 척신을 인도해 내려와 배위로 나아가게 하였다. 악대가 낙양춘곡을 연주하였다. 상이 몸을 굽혀 두 번 절하고 일어나 몸을 펴니 연주가 그쳤다. 여집사가 상을 인도하여 나가니 악대가 여민락령(與民樂令)을 연주하였다. 합문(閤門) 안에 이르니 연주를 그쳤다. 여집사가 의빈과 척신을 나누어 인도해서 나갔다.

여관이 내명부와 외명부를 나누어 인도해서 도로 절하는 자리로 나아가니 악대가 낙양춘곡을 연주하였다. 내명부와 외명부가 몸을 굽혀 두 번 절을 하고 몸을 펴니 연주를 멈췄다. 여관이 자궁의 자리 앞에 나아가서 무릎을 꿇고 예식이 끝났다고 아뢰었다. 여관이 내명부와 외명부를 나누어 인도해서 나갔다. 자궁이 자리에서 내려오자 악대가 여민락령을 연주하고, 다시 합문 안에 이르자 연주를 멈췄다. 상이 직접 연회를 베푸는 의절(儀節)을 정하였는데 모두 7칙(則)으로 되어 있었다.


  • 【태백산사고본】 42책 42권 33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557면
  • 【분류】
    왕실(王室)

  • [註 072]
    정재(呈才) : 춤과 노래 등의 연예.
  • [註 073]
    화봉인(華封人) : 요(堯)임금 시대에 화(華) 땅에 봉해진 사람으로서 수(壽)·부(富)·다남자(多男子)의 세 가지 일로 요임금을 축원했다 함. 《장자(莊子)》 천지(天地).

○乙未/御奉壽堂, 進饌于惠慶宮。 前一日, 尙寢帥其屬, 設慈宮座於行宮內殿北壁南向, 印案於座東, 香案二於前楹左右。 設御座於慈宮座東, 拜位於階上北向, 褥位於殿內當中北向。 典贊設內外命婦侍位於前楹簾內, 北上相向, 拜位於殿前左右, 外位於庭中, 俱北向相對。 又設儀賓、戚臣侍位於前楹簾外左右, 北上相向, 拜位於殿前左右, 北上相對。 典儀設陪從百官宣饌位於中陽門外, 東西, 北上相向, 拜位於道之東西, 北向相對。 引儀設儀賓、戚臣外位於中陽門外, 陪從百官外位於左翊門外。 至是日, 女官設司贊、典賓、女官位於簾內, 典贊在其南稍後。 女執事設左右通贊及代致詞女執事位於階間, 贊唱在其南稍後分東西, 俱北上。 又設女伶先後唱樂章位於簾外北向, 女執事及呈才女伶位於東西偏階, 女執事分左右, 北上相向, 女伶北向相對執拍, 女伶又在其前, 女執事、女伶外位於庭中隔帳, 工人位於帳外。 女官設慈宮壽酒亭於前楹簾內近南, 御酒亭於壽酒亭之前在東, 命婦及儀賓、戚臣酒卓於侍位之南。 又設進花盤卓於簾內在東, 揮巾函卓次之, 散花盤卓於簾外在西, 花樽卓於陛上東西, 致詞案於御拜位之右。 時至, 整理大臣以下具戎服督諸衛, 陳列於殿門外庭, 儀仗於殿庭左右, 繖扇、靑蓋、紅蓋、旌節、鳳扇、雀扇各二於前楹簾外東西。 前三刻, 女官、女執事、女伶等各服其服, 就外位, 少頃各就位。 整理使陳皷樂於庭中帳外, 儀賓、戚臣、陪從百官以戎服, 儒生以靑衿服, 各就外位。 前二刻, 內外命婦各具禮服, 就外位。 引儀分引陪, 從百官入就拜位。 前一刻, 女官等俱詣內閤。 女官跪, 贊內嚴, 少頃又跪, 贊外備。 慈宮具禮服, 女官前導, 樂作《與民樂令》, 旣陞座, 罏煙升, 樂止。 女執事詣內閤跪, 啓中嚴。 女官引內外命婦, 入就拜位。 女官曰再拜, 樂作《洛陽春曲》。 女官唱鞠躬、再拜、興、平身, 內外命婦鞠躬、再拜、興、平身, 樂止。 女官引內外命婦, 各就侍位。 女執事引儀賓、戚臣, 入就拜位。 女執事跪, 啓外辦。 上具戎服出, 樂作《與民樂令》。 女執事前導, 詣拜位北向立, 樂止。 樂作《洛陽春曲》, 上鞠躬、再拜、興、平身, 樂止。 上跪。 女官唱進揮巾, 整理使詣帳外進巾。 樂作《與民樂令》, 內侍傳捧授女官, 女官傳捧進于慈宮座前, 樂止。 進饌案, 樂作《與民樂慢》, 進訖樂止。 進花, 樂作《與民樂令》, 進訖, 樂止。 上俯伏、興、平身, 女伶二人進止簾外當中, 分東西北向立, 唱《御製長樂章》曰:

嘉會屬昇平, 昇平今有象。 厥象問如何?, 老人中天朗。 含飴駐我長樂春, 祝聖徠女封人。 春長長樂酌斗, 華祝至三。 壽母翼子詒孫, 功何嵬穰穰? 福祿光輝。 咸池皷, 雲門琴, 玉漿瓊液年年斟。

女執事導上至簾外, 女官承引至壽酒亭南, 北向立。 樂作《與民樂令》, 女官酌酒, 跪進于上, 上受爵詣慈宮座前, 跪以爵授女官, 女官傳捧置于座前, 上俯伏、興、平身, 樂止。 女官導上至簾外, 女執事前導, 詣拜位北向立。 上跪, 女執事進上拜位前, 北向跪, 代致詞曰:

國王諱恭遇乾隆六十年閏二月十三日。 孝康慈禧貞宣徽穆惠嬪邸下, 嗣京室徽, 膺海屋壽, 福流文孫, 慶邁魯母。 恭陪于華, 敬斟以斗, 喜深知年, 頌騰如阜。 於樂斯讌, 萬品咸囿, 迎春之和, 答天之祐。 萱暉彌永, 茀祿誕受, 太平萬億, 無疆悠久。 不勝慶忭之至, 謹上千千歲壽。 【藝文提學李秉鼎製進。】

上俯伏、興、平身, 女執事導上, 至簾外, 女官承引就殿內褥位, 上跪。 女官進慈宮座前跪曰: "宣旨。" 俯伏、興、西向跪。 宣旨曰: "與殿下同慶," 慈宮擧爵, 樂作《與民樂》 《千歲萬歲曲》, 女官進受虛爵, 復於壽酒亭, 樂止。 上俯伏、興、平身, 女官導上至簾外, 女執事前導至拜位。 上跪, 女執事唱三叩頭, 上三叩頭。 唱山呼, 上拱手加額曰千歲, 唱山呼, 曰千歲, 唱再山呼, 曰千千歲。 凡呼千歲, 命婦及女官以下, 皆於立位齊聲應之。 樂作《洛陽春曲》, 上俯伏、興、再拜、興、平身, 樂止。 女執事導上至簾外, 女官承引就殿內褥位西向立, 女執事分引儀賓、戚臣各就位。 上跪, 整理使進巾, 樂作《與民樂令》, 進訖, 樂止。 次進饌案, 樂作《與民樂令》, 進訖, 樂止。 女官設內外命婦饌卓, 女執事設儀賓、戚臣饌卓。 女官、女執事、散花執事者宣酒饌, 散花于百官, 百官離位飮訖四拜, 引儀引陪從百官出。 進湯于慈宮, 傳捧如進饌案儀。 樂作《與民樂慢》, 進訖, 樂止。 第一爵, 奏《獻仙桃》呈才, 樂作《與民樂》 《桓桓曲》, 女官導上詣壽酒亭, 女官酌壽酒, 跪進于上, 上受爵, 詣慈宮座前。 女官唱跪, 上跪以爵授女官, 女官傳捧, 進于慈宮座前, 慈宮擧酌進訖, 以爵授女官。 女官跪受爵, 詣上酒亭, 以盞酌酒, 進于慈宮, 慈宮受盞授女官, 女官跪受盞進于上, 上跪受盞, 擧飮訖, 仍執盞, 俯伏、興、平身, 至酒亭, 女官跪受盞, 上還就座。 行酒, 女官行內外命婦酒, 女執事行儀賓、戚臣酒。 進湯于上, 傳捧如上儀。 女官、女執事分供湯于內外命婦及儀賓、戚臣, 呈才訖, 樂止。 第二爵, 奏《金尺》呈才、受明命荷皇恩呈才, 樂作《與民樂》 《淸平樂》, 女官引進命婦, 詣壽酒亭南, 北向立。 女官以爵酌壽酒, 授命婦, 命婦授爵, 詣慈宮座前跪, 以爵授女官, 女官傳捧, 進于慈宮座前, 命婦俯伏。 慈宮擧爵, 女官受虛爵, 以授命婦, 命婦受爵, 復於壽酒亭, 女官引命婦還復位。 【第三爵至七爵, 命婦及儀賓、戚臣中, 稟承慈旨, 以次進爵如上儀。 儀賓、戚臣則進爵于慈宮, 次詣酒亭, 酌酒進于上, 上擧爵飮訖授之, 還捧復于酒亭而退。】 進湯行酒, 如第一爵儀。 呈才訖, 樂止。 第三爵, 奏《抛毬樂》呈才、《舞皷》呈才, 樂作《與民樂》 《五雲開瑞朝曲》, 呈才訖, 樂止。 第四爵, 奏《牙拍》呈才、《響鈸》呈才, 樂作鄕唐交奏《千歲萬歲曲》, 呈才訖, 樂止。 第五爵, 奏《鶴舞》呈才, 樂作《與民樂》 《惟皇曲》, 呈才訖, 樂止。 第六爵, 奏《蓮花臺》呈才, 樂作《與民樂》 《桓桓曲》, 呈才訖, 樂止。 第七爵, 奏《壽延長》呈才, 樂作《與民樂》 《夏雲峯曲》, 呈才訖, 樂止。 處容舞進, 樂作鄕唐交奏《井邑樂》 《與民樂》, 尖袖舞進, 奏《洛陽春曲》, 呈才訖, 樂止。 女伶二人進至簾外當中, 分東西北向立, 唱御製《觀華章》曰:

慈德之純, 厚載難名。 默運弘慈, 佑啓太平。 百祿是遒, 其至如川。 子孫振振, 吉慶年年。 如斗之邵, 如之高。 瑤冊紀瑞, 春酒燕毛。 於休慈德, 撫玆花甲。 時觀于華, 物采匝匼。 樂此新邑, 謠頌戶增。 維萬維億, 日月恒升。

唱訖, 降復位。 女官進慈宮前, 又進上前撤案。 樂作《與民樂慢》, 女官及女執事撤命婦及儀賓、戚臣卓, 樂止。 女官唱可起, 女官導上出至簾外, 女執事前導, 至拜位。 女執事引儀賓、戚臣, 降就拜位, 樂作《洛陽春曲》, 上鞠躬、再拜、興、平身, 樂止。 女執事導上出, 樂作《與民樂令》, 至閤內, 樂止。 女執事分引儀賓、戚臣出, 女官分引內外命婦, 還就拜位, 樂作《洛陽春曲》, 內外命婦鞠躬、再拜、興、平身, 樂止。 女官進當慈宮座前, 跪白禮畢, 女官分引內外命婦出。 慈宮降座, 樂作《與民樂令》, 還至閤內, 樂止。 上親定進饌儀, 凡七則。


  • 【태백산사고본】 42책 42권 33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557면
  • 【분류】
    왕실(王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