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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41권, 정조 18년 11월 5일 기축 1번째기사 1794년 청 건륭(乾隆) 59년

호서의 마량진에 이양선이 표류해 도착하다. 호서 수영에 역학을 설치하는 문제에 관해 우의정 이병모가 건의하다

이전에 이양선(異樣船)이 표류하여 호서의 마량진(馬梁鎭) 앞바다에 도착하였다. 배에는 모두 3개의 돛대가 있었고, 배 안의 사람들은 51명이었는데, 스스로 말하기를 ‘등주(登州) 황현(黃縣)의 사람으로 바다에 나와 고기잡이를 하다가 서풍을 만나 표류하다가 이 지역에 이르렀다.’ 하였다. 충청도 관찰사 이형원(李亨元)이 그것을 장계로 보고하자 서울의 역관을 보내어 사정을 물으니 다들 육로로 돌아가기를 원하였다. 이에 하교하기를,

"도수(道帥)와 도신(道臣)을 엄히 신칙하여 착실하게 호송하도록 하고, 경기 관찰사에게도 엄하게 신칙하여 유구국(琉球國)의 표류인들이 압송해 오던 행로에서 매우 소란스럽게 굴었던 것처럼 하지 말도록 하라. 별도로 살피고 검속하여 신영(新營)에 머물려 두고 신영이 비좁거든 홍제원(弘濟院)으로 옮겨 두라. 호서 수영이 관할하는 지방에는 표류인이 도착하는 경우가 빈번한데 이번 경우를 보니 역학(譯學)이 없어서 그 구차함이 막심하다. 역원의 도제거와 상의해서 별도로 자리 하나를 두는 것이 어떨지의 여부와 아울러 살아가는데 필요한 살림을 장만해 줄 방도에 대해 묘당으로 하여금 초기(草記)를 갖추어 여쭈어서 처리하게 하라. 이곳 외에 설치할 만한 곳도 사유를 갖추어 초기하도록 하라."

하였는데, 우의정 이병모가 복주(覆奏)하기를,

"충청 수영에는 일찍이 역학이 있었는데 중간에 임시로 없앴고, 함경도의 남북 병영에도 옛날에는 있었는데 지금은 없습니다. 만일 다시 설치하고자 한다면 충청도 수영이 가장 긴급하고 함경도의 남북영이 그 다음입니다. 다만 살아갈 살림을 장만해 주는 방도에 대해서는 끝내 좋은 대책이 없습니다. 자리를 별도로 설치할 경우에는 사세상 방애되는 점이 많고, 겸하여 설치한다면 일의 체면이 구차할 것입니다. 또 호서 지방에 표류해 오는 사람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니 우선 그대로 놔두소서."

하니,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41책 41권 34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520면
  • 【분류】
    외교(外交) / 군사(軍事)

○己丑/先是, 有異樣船漂到湖西之馬梁鎭前洋。 船凡三桅, 船中人五十一, 而自言以: "登州 黃縣之人, 駕海漁採, 遇西風, 漂至此地。" 忠淸道觀察使李亨元以其狀聞, 遣京譯官問情, 皆願從旱路歸。 敎曰: "嚴飭道、帥臣, 着意護送, 而畿伯處, 亦爲嚴飭, 勿若琉球國漂人押來之行路雜沓, 另加照檢, 接置於新營, 而新營如狹窄, 移接於弘濟院。 湖西水營所管地方, 漂人之來到頻數, 而以今番觀之, 無譯學, 其爲苟且莫甚。 與譯院都提擧相議, 別置一窠當否, 竝與接濟之方, 令廟堂草記稟處。 此外可置之處, 亦爲具由草記。" 右議政李秉模覆奏曰: "忠淸水營, 曾有譯學, 而中間權減, 咸鏡道南北兵營, 亦昔有而今無。 如欲復置, 忠淸水營爲緊, 南北兵營次之, 而接濟終無好策。 別設則事勢多掣, 兼置則事面苟簡。 且湖西漂人, 乃不常有之事, 請姑置之。" 從之。


  • 【태백산사고본】 41책 41권 34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520면
  • 【분류】
    외교(外交) / 군사(軍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