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한 유구인에 관해 전라도 관찰사 이서구가 치계하다
전라도 관찰사 이서구(李書九)가 치계하기를,
"유구국에서 표류해 온 사람 세 명이 영암(靈巖)의 이진(梨津)에 이르러 상륙하였습니다. 제주 통사 이익청(李益靑)이 일찍이 제주에 표류해 왔던 유구 사람에게서 그 나라 말을 배웠으므로 익청을 시켜 실정을 물어보니, 표류하여 온 사람이 익청과 함께 동행하기를 요구하였습니다. 실정을 물은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들은 어느 나라 사람들인가?’ 하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유구국 안에 있는 팔중산도(八重山島) 사람들인데 공문을 가지고 여나국도(與那國島)에 가기 위하여 7월 11일에 출발하였다가 동풍을 만나 표류해서 이 나라에 당도하였다.’ 하였습니다. ‘여나국(與那國)이란 어느 곳인가?’ 하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섬의 이름이지 국호가 아니다. 도주(島主)가 사는 곳이기 때문에 각 섬에서 공문을 올린다.’고 하였습니다. ‘여나국에는 관장이 몇 사람이나 되는가?’ 하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번을 들고 있는 세 사람의 선비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너희들이 사는 마을의 이름은 무엇인가?’라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신천촌(新川村) 사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함께 배를 탄 사람은 몇 사람이었는가?’ 하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11명이었다.’라고 하였습니다.
‘너희들의 성명은 무엇인가?’ 하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내 성은 미정(米精)이고 이름은 겸개단인야(兼个叚仁也)이다. 7명은 한 달 남짓 표류하던 도중에 굶주리고 지쳐서 쓰러져 죽고 4명만이 살아서 이곳에 도착했는데, 한 사람은 또 병들어 죽고 지금은 3명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살아 있는 세 사람의 성명은 무엇이며 나이는 몇 살인가?’ 하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배의 우두머리는 이름이 미정겸개단인야(米精兼个叚仁也)인데 나이는 28세요, 겸(兼)은 나이가 47세이요, 진세(眞勢)는 나이가 26세인데, 이들은 모두 살아 남았다. 그리고 삼야지(三也之)는 나이가 41세인데 병들어 죽었고, 행야(行也)는 나이가 25세요, 근당(謹當)은 나이가 54세요, 고당월(古當月)은 나이가 31세요, 여행(如行)은 나이가 38세요, 고당야(古當也)는 나이가 46세요, 저월(渚月)은 나이가 29세요, 수(壽)는 나이가 45세인데, 모두 다 굶주리고 지쳐서 떨어져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근당(謹當)·고당월(古當月)·여행(如行)의 나이가 표류하여 왔을 때 문답한 것과 어째서 서로 틀리는가?’ 하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지금 쓴 것이 진짜이다.’ 하였습니다.
‘너 한 사람은 성이 있는데 나머지 10명은 어째서 성이 없는가?’ 하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다른 10명은 밑에 있는 아랫사람이기 때문에 성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신천촌(新川村)은 너의 나라 도읍에서 몇 리나 떨어져 있는가?’ 하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중산왕(中山王)의 도읍은 물길로 3백 80리이고 여나국도(與那國島)와의 거리는 물길로 48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타고 온 배는 공선(公船)인가, 사선(私船)인가?’ 하고 물으니, 공선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병들어 죽은 사람의 시체는 어떻게 하였는가?’ 하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표류하다가 도착한 섬 가운데에 묻어두었다.’고 하였습니다.
‘나라에 있을 때 무슨 일을 하였는가?’ 하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시일에 따라 문서를 가져다 바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더러 농사를 짓기도 하고 배를 타기도 하고 목수 노릇을 하기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머리에 쓴 것이 없는 것은 어째서인가?’ 하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본래 없고 다만 상투를 틀은 다음에 정수리 가운데에 동곳을 꽂는다. 윗사람은 동곳을 은으로 하고 아랫사람은 동곳을 주석으로 한다.’고 하였습니다. ‘팔중산도(八重山島)에는 관장이 몇 명이나 되는가?’ 하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번을 들고 있는 세 사람은 본국에서 정해서 온 사람들로서 3년마다 교체한다. 우두머리 세 사람은 본도 사람들로 죽은 뒤에 대신 세우는데, 모두 선비들이다.’ 하였습니다. ‘농사짓고 수확하는 것은 어느 계절에 시작하는가?’ 하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벼·보리·조·콩 씨를 10월에 파종하고 다음해에 가서야 수확한다.’고 하였습니다. ‘세수(歲首)는 어느 달을 쓰는가?’ 하고 물으니, 인월(寅月)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부터 호송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겠는가?’ 하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이곳 사람들은 말이 같지 않다. 우리를 데리고 온 섬 사람이 우리 말에도 익숙하니, 그 사람과 함께 가고자 한다.’고 하였습니다. ‘배가 고프면 마땅히 먹을 것을 줄 것이요, 추우면 마땅히 옷을 줄 것이다.’ 하니, 대단히 감사하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유구국에서 표류하여 온 사람들이 무사히 바다를 건너온 것은 다행한 일이다. 섬 안에 마침 말을 아는 통사가 있어서 실정을 물을 수 있었으니, 이 뒤로 차차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게 하고 따로 요과(料窠)를 마련하여 각별히 권장하라는 내용으로 목사에게 분부하라. 해당 통사 이익청(李益靑)은 그가 올라오기를 기다려 해조로 하여금 따로 상을 주게 하라. 옛날에는 유구 사람들이 우리 나라에 왕래하여 우리 나라에서도 그곳의 소식을 알고 있었는데 근자에 와서는 그렇지 못하다.
이른바 제주에 들여 보낸 역학(譯學)이라고 하는 자들은 아무 데도 쓸모없게 되었으니, 이번에는 사역원으로 하여금 특별히 젊고 총명하고 민첩한 사람을 정하여 그들을 데리고 의주에 이르게 하라. 혹 저들 속에 있게 하면 그 나라 말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미진한 것이 있으면 유구에서 조공을 바치는 해에 다시 들여보내어 그 말의 음운을 번역하여 알게 할 일을 도제거로 하여금 알게 하라."
하고, 이어 또 하교하기를,
"유구국에서 사람들이 표류하여 온 것은 곧 공물을 바쳐온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다. 처음에는 홍제원(弘濟院)에서 접대하고자 하였는데 다시 생각하여 보니, 그 돌보아주는 바에 마땅히 특별한 예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제 연신(筵臣)의 말을 들으니 10월 10일에 고달도(古達島)에 와 닿게 될 것 같다고 하니, 며칠 후에는 마땅히 올라올 것이다. 날씨가 춥기가 이와 같으니, 경기 감사에게 엄히 신칙하여 의복과 털로 된 방한구 등의 물건들을 만들어 두었다가 한강을 건너오기를 기다려 새 감영에 맞이해 두고 몸소 가서 위로하여 주도록 하라. 그리고 떠나보낼 때에도 정해진 것 이외의 노자를 후하게 주어 사행 편에 따라가게 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1책 41권 7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507면
- 【분류】외교(外交)
○全羅道觀察使李書九以。 琉球國漂人三名, 到靈巖 梨津下陸, 濟州通事李益靑曾於琉球人漂來本州, 學得言語, 故使益靑問情。 漂人要與益靑同行, 馳啓問情記。
問: "爾們在何國?" 答: "琉球國之內八重山島人, 持公事如與那國島, 七月十一日出船, 逢東風漂到此國。" 問: "與那國何地?" 答: "島名, 非國號。 島主所居處, 故各島呈公文。" 問: "與那國官長幾員?" 答: "在番三人士也。" 問: "爾們所居村名?" 答: "新川村人。" 問: "同船幾人?" 答: "十一人。" 問: "爾姓名云何?" 答: "我姓米精, 名兼个段仁也。 七人漂流朔餘, 飢困落死, 四人生到此地, 一人又病死, 今有三人。" 問: "生存三人姓名年歲?" 答: "船頭米精兼个段仁也名, 歲二十八, 兼歲四十七, 眞勢歲二十六, 竝生存, 三也之歲四十一病死, 行也歲二十五, 謹當歲五十四, 古當月歲三十一, 如行歲三十八, 古當也歲四十六, 渚月歲二十九, 壽歲四十五, 竝飢困落死。" 問: "謹當、古當月、如行歲與漂渡問答, 何以相左?" 答: "今書者爲眞。" 問: "爾一人有姓, 十人何無姓字?" 答: "十人下下, 故姓字無。" 問: "新川村距國都幾里?" 答: "中山王都, 水路三百八十里, 距與那國島, 水路四十八里。" 問: "所乘船, 公船, 私船?" 答: "公船。" 問: "病死人屍體’, 答: "埋置漂到島中。" 問: "所在國時所業?" 答: "時日文書納人, 或農或船, 或爲木工。" 問: "頭無所着何也?" 答: "本無, 只有結䯻, 頂心貫簪。 上人簪銀, 下人簪錫。" 問: "八重山島官長幾員?" 答: "在番三人, 自本國定來, 三年交替, 頭三人, 本島人死後代立, 皆士也。" 問: "耕稼收穫, 始於何節?" 答: "稻種子、靑種牟子、粟種子、大豆種子付十月, 明年始收。" 問: "歲首用何月?" 答: "寅月。" 問: "自此當有護送之人。" 答: "此處人言語不同, 領來島人, 且慣我言, 要與同去。" 問: "飢當饋飯, 寒當給衣。" 答: "多謝。"
敎曰: "琉球國漂人之無事渡海可幸。 島中適有解語之通事, 能爲問情, 此後次次訓誨, 別設料窠, 各別勸課之意, 分付牧使。 當該通事李益靑, 待其上來, 令該曹別爲施賞。 昔則琉球人往來於我國, 我國亦知彼音矣, 近來不然。 所謂濟州入去之譯學, 爲無用之物, 今番則令譯院, 另定年少聰敏之人, 領至灣上, 或彼中學其言語。 如有未盡條件, 琉球朝貢之年, 更爲入送, 飜解音韻事, 令都提擧知悉。" 尋敎曰: "琉球國漂人出來, 卽來貢以後初有。 初欲接置於弘濟院矣, 更思其所顧恤, 當有拔例。 今聞筵臣言, 十月初十日, 似已來泊古達島云, 數日後當上來。 日寒若此, 嚴飭畿伯, 造置衣袴及毛具等物, 待其渡江, 接置新營, 躬往慰諭。 發送時亦爲厚給應式外盤纏, 以爲順付使行之地。"
- 【태백산사고본】 41책 41권 7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507면
- 【분류】외교(外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