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정 홍낙성을 부처하고 합문 밖에서 물러가지 않은 대신들을 귀양보내게 명하다
명하여 영의정 홍낙성(洪樂性)을 부처하게 하고 승락없이 문을 밀치고 들어온 여러 신하들과 합문 밖에서 물러가지 않는 대신들을 먼 곳으로 귀양보내게 하였다. 시종하는 당상관과 당하관은 의금부에서 추문하고, 합문 밖에서 물러가지 않는 승지는 잡아다가 처리하며, 합문 밖에서 물러가지 않는 경재(卿宰)들은 잡아다가 추문한 다음 모두 당직(當直)에게 넘기도록 하였다. 낙성 등이 자전의 전교를 받들고 문을 밀치고 곧장 들어가 대현문(待賢門)에 당도하자 문에 자물쇠가 굳게 채워지고 액례(掖隷)들이 늘어서서 지키므로 들어가지 못하였다. 전교하기를,
"영의정이 된 사람이 어찌 억측을 할 수 있으며 또 어찌 함부로 들어올 수 있는가. 경례(敬禮)는 경례이고 분의(分義)는 분의이다. 영의정 홍낙성을 우선 성문 밖으로 내치라."
하고, 또 전교하기를,
"성문 밖으로 내치라는 명이 내린 뒤에 설사 자전의 전교를 받들고 왔다고 하더라도 이미 다른 대신이 있는 만큼 어떻게 감히 덮어놓고 그대로 머물러있을 수 있겠는가. 전 영의정 홍낙성을 영부사 채제공과 같은 형률로 시행하라."
하였다. 판중추부사 박종악(朴宗岳) 등이 아뢰기를,
"신들이 문을 밀치고 곧장 들어간 죄는 진실로 전혀 용서받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마는, 이런 위급한 때를 당하여 다른 일은 돌아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신들은 죽음이 있을 뿐 들어가지 못하면 물러갈 수 없습니다. 더구나 자전의 언문 전교를 받들고 와서 문 밖에서 방황하게 되니, 비단 뭇사람들의 심정만 억울할 뿐아니라 전하의 타고난 효성으로서 만일 자전의 전교가 소중함을 생각하신다면 어떻게 신들로 하여금 끝내 전하와의 면대를 얻을 수 없게 한단 말입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제신들이 이런 행위를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자전의 언문 전교는 관례에 따라 번역해서 승전색에게 말을 만들어 계품해 주기를 요청하는 것이 도리에 있어 당연한 것이다. 계품하여도 허락하지 않으면 합문 밖에 나와서 면대하기를 구할 것이요, 면대하기를 구하여도 허락하지 않고 합문을 닫아버리기까지 한다면 이내 합문을 밀치는 것은 그대로 혹 괜찮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지 않고 서로 이끌고 곧장 몰려들어왔으니 어찌 이런 나라의 체면이 있겠는가. 내가 자전의 전교가 소중함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경들의 처사도 이와같이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고, 또 전교하기를,
"경들의 이번 행위는 제멋대로 마구 한 행위에 가까우니 조정의 체면은 결코 이와 같아서는 안 된다."
하였다. 제신들이 합문을 밀치고 들어가자 문짝이 부서지기까지 하였다. 일제히 중희당(重熙堂) 앞의 창 밖에 이르러 눈물을 흘리며 다급한 소리로 아뢰기를,
"강화도에 있는 역적이 살아있어서 종묘 사직의 위태로움이 마치 한 가닥 머리카락과도 같은데 저번에 강가에서 일어났던 일 때문에 지금까지 뼈마디가 떨립니다. 다행히 우리 자전의 덕택으로 오늘이 있게 되었는데 전하께서 이번에 행한 조치는 또 무슨 일입니까. 가마와 종자를 이미 갖추어 보냈건만 신들은 듣지를 못하였으니 자전께서 언문 전교를 내리지 않았더라면 신들이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신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이르렀으니 접견하여 주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내가 지금 희정당에 있으니 대신은 입시해도 괜찮다."
하였다. 제신들이 물러가려 하지 않고 면대해줄 것을 힘껏 요청하자, 전교하기를,
"대신이 이미 자전의 전교를 받들고 왔다고 말하였으니 동시에 접견하는 것이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하고, 인하여 성정각(誠正閣)에 나와서 입시할 것을 명하였다. 종악이 눈물을 흘리면서 아뢰기를,
"이것이 무슨 일입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내가 앉아서 제신들을 기다린 지 오래되었다. 한결같이 침전(寢殿) 안에서 서로 버티고 있으니 이것이 어찌 도리인가."
하였다. 이때 제신들이 아직까지 중희당 앞에 있었는데, 사관을 보내어 문을 밀치고 곧바로 들어온 제신들이 모두 당도하였는가 묻게 하였다. 사관이 들어와서 모두 당도하였다고 아뢰자, 상이 이르기를,
"어느 때 전교를 내렸는데 이제서야 비로소 당도하였는가. 무엄한 신하들을 나는 만나고 싶지 않다."
하고는, 마침내 일어나서 내전으로 들어갔다. 종악이 옷자락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미처 잡지 못하고 물러났다. 이소(履素) 등이 선화문(宣化門) 밖에 나와서 면대하기를 요청하고 자전의 언문 전교를 번역하여 바쳤다. 상이 전교하기를,
"만일 합문을 닫아버렸다면 밀치거나 두드리는 것은 그래도 괜찮지만 내가 어느 전각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곧장 좁은 길을 찾아 동쪽으로 서쪽으로 제멋대로 마구 들어왔으니 비록 바쁘고 다급하다 하더라도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어찌하여 협양문(協陽門) 밖으로 물러나가서 반열을 지어 앉지 않는가."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9책 39권 52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461면
- 【분류】사법(司法)
○命領議政洪樂性付處, 排闥諸臣及守閤大臣遠竄, 侍從堂上堂下禁推, 守閤承旨拿處, 守閤卿宰拿問次, 竝出付當直。 樂性等奉慈殿下敎, 排闥直入抵待賢門, 門鑰牢鎖, 掖隷擺立不得入。 敎曰: "身爲首揆, 豈可臆料乎? 又豈可入來乎? 敬禮自敬禮, 分義自分義。 領議政洪樂性, 爲先門黜。" 又敎曰: "門黜命下之後, 雖以奉來慈敎爲言, 旣有他大臣, 則豈敢冒昧仍留乎? 前領議政洪樂性, 與領府事同律施行。" 判中樞府事朴宗岳等啓言: "臣等排闥之罪, 固知萬萬難赦, 而當此危急之時, 他不暇顧。 臣等有死而已, 不得入則不得退。 況奉慈殿諺敎, 而彷徨門外, 非但輿情之抑鬱, 以殿下出天之孝, 若念慈敎之有所重, 則豈使臣等, 終不得方寸之地乎?" 敎曰: "諸臣之爲此擧, 何也? 慈敎依例翻謄, 請承傳色措辭啓稟, 道理當然。 啓稟而不許, 則始當詣閤求對, 求對不許, 或至閉閤, 則始乃排闥, 猶或可也。 不此之爲, 相率直入, 寧有如許國體乎? 予於慈敎, 非不知所重存焉, 而卿等之事, 亦非可以如是者矣。" 又敎曰: "卿等此擧, 近於專輒, 朝體決不可如是矣。" 諸臣等排闥以入, 門扇至有破者。 齊至重熙堂前, 窓外垂泣疾聲奏曰: "島賊尙今假息, 宗社澟如一髮。 向來江郊之事, 至今骨顫。 幸賴我慈聖之德, 保有今日, 而殿下今此之擧, 又何事也? 轎子騶從旣備送, 而臣等未聞知。 苟非諺敎之下, 則臣等何以知之? 臣等冒死至此, 伏願引接。" 敎曰: "予方在熙政堂, 大臣入侍可也。" 諸臣不肯退, 力請賜對。 敎曰: "大臣旣以奉來慈敎爲言, 一時召接何難?" 因御誠正閣, 命入侍。 宗岳涕泣奏曰: "此何事也?" 上曰: "予之坐待諸臣久矣。 一味相守於臥內, 是豈道理乎?" 時, 諸臣尙在重熙堂前。 遣史官, 問排闥諸臣齊到否? 史官回奏曰: "齊到矣。" 上曰: "何時下敎, 而今始來到? 無嚴之臣, 予不欲見之。" 遂起入內。 宗岳欲牽裾, 不及而退。 履素等詣宣化門外求對, 翻進諺敎。 上下敎曰: "若閉闥, 則排之叩之, 猶或可也, 不知予之臨御何殿, 而直尋小路, 或東或西, 任自攔入, 雖曰忙急, 豈可如此乎? 何不退出協陽門外, 成班而坐乎?"
- 【태백산사고본】 39책 39권 52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461면
- 【분류】사법(司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