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융사 정민시가 북한 산성의 환곡 폐단을 아뢰다
총융사 정민시(鄭民始)가 아뢰기를,
"북한 산성의 환곡에 대한 폐단은 그 정도가 너무나 심합니다. 이른바 환곡을 뉘어두고 그에 대한 이자만을 받아들이는 일[臥還], 환곡을 빼내어 유용하고 허위 문서를 꾸미는 일[反秩], 사사로이 나누어주는 일[私分], 도거리로 받아가는 일[都受], 남의 환곡을 대신 바치고 그 댓가를 불려 받는 일[防納], 다른 사람에게 옮겨서 주는 일[移施], 남을 시켜 대신 받는 일[代點], 허위 장부를 꾸며 횡령하는 일[虛逋] 등의 모든 폐단이 없는 것이 없습니다.
올해의 새 환곡은 대부분 여러 해 묵은 환곡을 그대로 허위 문서를 만들어 놓은 것이므로 그 친족에게 물리지 않을 수 없으니, 실로 도민(都民)들이 지탱하기 어려운 단서가 됩니다. 이는 오로지 보환(保還)002) 과 부환(部還)003) 의 소치입니다. 해마다 당연히 나누어주어야 할 환곡이 2만 섬에 가까운데 이를 오로지 60, 70명의 보주인(保主人)의 손에 맡기니 각 사람의 이름 아래에 적어도 수백 섬씩이 돌아갑니다. 부환은 보주인들이 성 안의 무뢰배들을 거짓으로 꾀어서 많은 수량을 타가게 하여 모두 낭비하게 하고 환곡을 받아들일 때에 이르러서는 그 친족들에게 물립니다. 이 폐단을 없애지 않으면 군량미는 필시 남아 있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등록(謄錄)을 가져다가 상고해 보면 기사년004) 에 정한 절목(節目)에는 각 고을에 옮겨주는 것이 그래도 백성들이 제각기 받아가는 것보다 낫다 하여 서울 부근 기읍(畿邑)에 분배하여 내어주고, 남은 수량은 능군(陵軍)과 역졸(驛卒)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와서 다시 보환과 부환으로 만든 것은 지극히 부당합니다. 지금부터 옛 규례를 회복하여 각 고을에 모두 옮겨주고 능군과 역졸들이 제각기 받아가는 것도 폐단이 많으니 이것도 지방의 각 고을로 넘겨서 그 곳에서 받아 먹도록 해야겠습니다.
북한 산성의 평창(平倉) 부근에 사는 백성들과 부역을 진 무리들이 등환(等還)005) 이라고 일컬으면서 한 사람이 받아가는 수량이 수십 섬이나 됩니다. 이 역시 지방 고을의 예에 따라 통환(統還)006) 으로 나누어주어 함부로 받아가는 폐단이 없도록 하소서. 다만 보환을 없애버리면 평창에서 모집하여 들어오게 한 백성들은 의지하여 살아갈 방도가 없게 됩니다.
평상시의 보주인들이 봄에는 한 섬에 3되[升]씩의 이자를 받아먹고 가을에는 2말[斗]씩을 받아먹는데 이를 전부 지방 고을로 옮겨주면 백성들에게 미치는 폐단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옮겨주는 환곡 중에서 1섬마다 봄에는 전처럼 3되를, 가을에는 1말씩을 보주인에게 제급(題給)하면 공사간에 양쪽이 다 편리할 것입니다.
다만 현재 산성의 군량이 과반수나 축나서 8만 섬의 군량이 현재 남아 있는 것은 2만 섬도 되지 않고 이번에 받아들인 것은 겨우 3만 섬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 이를 모두 지방 고을로 옮겨준 뒤에 한 번 흉년이나 만나고, 또 경기 감영에서 받아서 그대로 유치하겠다고 요청하거나, 바치는 기한을 물려주거나 돈으로 대신 바치기를 요청한다면 북한 산성에는 장차 남아 있는 곡식이 없을 것입니다. 고 상신 조현명(趙顯命)은 받아서 그대로 유치하는 것은 한때의 작은 은혜에 지나지 않고 산성에 곡식을 저장하는 것은 국가의 대계(大計)인만큼 그 일의 시행을 허락할 수 없다 하였고, 고 중신 원경하(元景夏)는 고을로 옮겨준 환곡을 수량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고을의 수령은 해유(解由)에 구애를 주어야 한다는 내용을 진달하여 규정으로 정하였습니다. 그러니 지금 의당 옛 제도를 다시 밝혀서, 도신이 받아서 유치시키겠다거나 바치는 기한을 물려달라거나 돈으로 대신 바치기를 요청하는 경우에는 역시 규정을 어긴 법조문에 따라 처벌하고, 본청(本廳)이 특별 환곡이라는 명목으로 사사로이 주는 경우에도 무겁게 처벌해야겠습니다. 그리고 환곡을 나누어주고 수량대로 받아들이는 일은 묘당에서 절목을 만들어 계하(啓下)를 받아서 이를 준수하여 시행하는 바탕으로 삼게 하는 것이 타당할 듯합니다."
하니, 상이 대신들에게 이 일을 물었다. 좌의정 김이소가 그 말대로 따르고 수신(帥臣)을 모두 논죄할 것을 요청하니, 전교하기를,
"그 가운데서 아주 형편없고 가장 살피지 못한 자는 이방일(李邦一)이다. 그에게는 경들의 말대로 귀양보내는 법을 시행하라. 이주국(李柱國)은 허위 문서를 꾸며 횡령한 환곡의 수량이 신해년과 임자년의 두 해에 가장 많았으니 살피지 못한 죄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방일에 비하면 불법을 저지른 죄상이 드러나지 않은 것이 많으니 똑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주국에게는 우선 관직을 삭탈하는 법을 시행하라.
보환과 부환을 혁파하는 일은 지금 이미 규정을 정하였으니, 이 뒤로 만일 규정을 어기는 일이 있으면 해당 총융사는 도형(徒刑) 3년에 처하여 귀양보내고 2년 동안 금고(禁錮)하며, 특별 환곡의 금령을 어기고 법을 범한 자도 같은 죄로 처벌하라.
해마다 환곡을 모두 받아들였다는 장계가 있는데도 유명무실함이 이러하다. 묘당의 문관 출신 비변사 낭청을 시켜 초기를 올리고, 임명하여 보낼 때에 창고의 물품을 조사하는 일도 규정을 정하도록 하라.
기내(畿內) 천 리의 지역도 백성들이 거주하는 곳이라고 하였는데 더구나 도성 밑에 사는 백성들이겠는가. 이 뒤로 도민(都民)들은 절대로 환곡을 받지 말 것이요 설혹 강제로 환곡을 주는 경우에는 한성부에 와서 고발하여 해당 총융사의 죄를 따져 처벌하는 근거로 삼도록 하라."
하였다. 이에 보환과 능졸·역졸들이 불법으로 받거나 미리 지급하는 따위의 잘못된 규정을 모두 혁파하고, 경리청(經理廳)의 예에 따라 양주(楊州)·파주(坡州)·통진(通津)·인천(仁川)·부평(富平)·고양(高陽)·김포(金浦)·교하(交河)·안산(安山)·양천(陽川)·적성(積城)·포천(抱川)·과천(果川)·금천(衿川) 등의 14개 고을에 옮겨주고, 승창(僧倉)의 환곡은 예전대로 총섭(摠攝)을 시켜 주관하도록 절목을 만들어 시행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9책 39권 4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437면
- 【분류】재정(財政) / 구휼(救恤) / 군사(軍事) / 사법(司法)
- [註 002]보환(保還) : 보에서 놓은 환곡.
- [註 003]
부환(部還) : 5부에서 놓은 환곡.- [註 004]
○摠戎使鄭民始啓言: "北漢糴弊, 罔有紀極。 所謂臥還、反秩、私分、都受、防納、移施、代點、虛逋等諸弊, 無所不有。 今年之新還, 多是積年仍反, 不得不徵族, 實爲都民難支之端。 此專由於保還、部還之致。 每年應分近二萬石, 而專委於六七十保主人之手, 各人名下, 少不下數百石。 部還, 則保主人輩, 詐誘城內無賴之類, 多數受出, 幷歸浪費, 及其捧糴, 徵於一族。 此弊不革, 則餉穀必無餘存矣。 取考謄錄, 則己巳糶糴節目, 以各邑移轉, 猶勝民人私受, 附近畿邑, 分排出給, 餘數則分俵陵軍、驛卒, 而中間之又作保還、部還, 極爲不當。 自今復舊例, 幷爲移轉各邑, 而陵軍、驛卒之私受, 亦多弊端, 此亦各付地方邑, 使之受食。 北漢 平倉居民及負役輩, 稱以等還, 一人所受, 不下數十石。 亦依外邑例, 統還分給, 俾無濫受之弊。 但保還革罷, 則平倉募入之民, 無資賴之道。 常時保主人, 春食三升、秋食二斗, 而盡作移轉, 民弊不可不念。 移轉還穀中, 每石春則依前三升、秋則以一斗, 題給保主人, 則公私可以兩便。 第今城餉過半耗縮, 八萬石餉穀, 時在未滿二萬石, 今番收捧, 僅爲三萬石, 而盡作移轉之後, 一遇歉歲, 又自畿營或請捧留, 或請停退代錢, 則北漢將無餘穀。 故相臣趙顯命, 以捧留不過一時小惠, 山城儲穀國之大計, 不可許施; 故重臣元景夏, 以移轉未準捧邑守令, 解由拘礙事, 陳達定式。 今宜修明舊制, 而道臣之請捧留、停退、代錢者, 亦依違制之律, 本廳之私給別還者, 亦加重勘, 而分還準捧事, 自廟堂成節目啓下, 以爲遵行之地, 似爲得宜。" 上詢大臣。 左議政金履素, 請從其言, 而帥臣幷論罪, 敎曰: "其中甚無狀最不察者, 李邦一也。 依卿等言, 施以竄配之典。 李柱國則反作石數, 辛亥、壬子兩年最多, 不察之罪, 焉可逭也? 然比之邦一許多未現發之不法, 不可同日而語。 李柱國姑先施以削職之典。 保還、部還革罷事, 今旣定式, 此後若有違式, 該摠使徒三年定配、禁錮二年, 別還之違禁冒犯者, 同罪。 每歲有畢捧狀啓, 有名無實若此。 令廟堂文備郞草記差送, 時或反庫事, 亦爲定式。 邦畿千里, 猶曰民之所止, 況都下之民乎? 此後都民切勿受, 設或勒給, 來告京兆, 以爲論勘該帥之地。" 乃盡革保還及陵卒驛卒冒受預下等謬例, 依經理廳例, 移轉楊州、坡州、通津、仁川、富平、高陽、金浦、交河、安山、陽川、積城、抱川、果川、衿川等十四邑。 僧倉還穀, 依前, 使摠攝主管, 著成節目行之。
- 【태백산사고본】 39책 39권 4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437면
- 【분류】재정(財政) / 구휼(救恤) / 군사(軍事) / 사법(司法)
- [註 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