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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39권, 정조 18년 1월 3일 신묘 2번째기사 1794년 청 건륭(乾隆) 59년

태묘 제향에 대한 의례을 조절토록 전교하다

전교하였다.

"조상을 제사하는 도리는 성경(誠敬)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성경이 지극한 다음에야 신명의 감응을 말할 수 있다. 체(禘) 제사에서 이미 강신(降神)을 한 다음에는 제사 지내는 사람들의 정성이 없어져서 태만하다고 공자(孔子)도 탄식하였다. 지금 태묘의 큰 제사를 지내는 데에 대한 의문(儀文)에는 조절해야 할 부분이 많다. 만일 성경이 처음 신(神)을 맞이할 때와 차이가 없게 하려면 지극히 중하고 엄격한 전례(典禮)라 하더라도 의당 충분한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 가운데 성경에 도움이 되고 의문에 손상이 없는 것은 바로 적대(炙臺)를 받드는 절차를 바로잡는 일이다. 집사가 많다 보니 신중하게 고를 수 없고 이미 신중하게 고르지 못하고 보니 사람마다 몸을 깨끗하게 재계하였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올라다니며 바쁘게 움직일 때에는 혼잡하여 뒤죽박죽이 되니, 제물을 올리는 일이 지체되는 것은 오히려 이차적인 일에 속한다.

또한 억만 년 영구히 행할 대책으로 말하더라도 조절할 것에 대하여 더욱 마음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더구나 현재 사용하는 도식(圖式)이 원래 정한 의절과 어긋나고 있는 것도 상탁(床卓)이 좁은 데에 연유된 것이다. 그러니 이제 소·양·돼지의 적대를 담은 세 상자를 바깥 큰 상자에 합하여 담아 놓는다면, 봉조관(捧俎官) 한 사람이 들어와서 천조관(薦俎官)에게 전달하고 천조관은 이를 받아서 대축(大祝)에게 주고 대축은 묘사(廟司)와 함께 적대의 상에 받들어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올해의 춘향 대제(春享大祭)부터 이를 기록하여 규례로 삼으라. 희생(犧牲)을 담는 상자를 만들어 둔 지가 벌써 오래되었으나 봄철의 참배하는 날을 기다려 규정을 정하는 것은 대체로 그 사유를 미리 고하는 의리를 부친 것이다. 이와 같이 하면 봉조관을 임명하는 데 있어 친향(親享)할 적에는 각 묘실(廟室)에 1명씩 배정하고 섭향(攝享)할 적에는 통틀어 5명을 배정하면 된다. 그리고 대향(大享) 때의 진설 도식(陳設圖式)은 한결같이 원의 도식(原儀圖式)의 예에 따라 종묘서(宗廟署)에 보관하도록 하라."


  • 【태백산사고본】 39책 39권 2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436면
  • 【분류】
    왕실(王室)

    ○敎曰: "享先之道, 莫尙於誠敬, 誠敬篤至, 然後可以言格神。 禘之旣祼, 聖人猶歎其怠忽焉。 今之太廟大享儀文, 合有商量者多。 如使誠敬, 無差於迎神之初, 雖於至重至嚴之典禮, 當有所十分硏究。 其中有助於誠敬, 無損於儀文, 卽捧俎節次之釐正也。 執事多而無以愼擇。 旣無以愼擇, 則其能人人齋潔, 未可知也。 況登陞駿奔之際, 雜遝顚錯, 至於薦獻之遲滯, 猶屬第二件。 且以億萬年悠久之計言之, 其所裁酌, 尤當致意。 況時用圖式之有違原儀, 亦由於床卓之窄狹。 今若以牛羊豕俎三匣, 合盛於外大匣, 使捧俎官一人入傳于薦俎官, 薦俎官受而授大祝, 大祝與廟司奉奠于俎床。 自今年春享大祭, 著以爲例。 牲匣之造置已久, 待春展謁日定式, 蓋寓告其由之義也。 如是則捧俎官之差塡, 親享時各室各一人, 攝享通差五人, 而大享陳設圖式, 一依原儀圖式, 藏于本署。"


    • 【태백산사고본】 39책 39권 2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436면
    • 【분류】
      왕실(王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