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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38권, 정조 17년 11월 19일 무신 3번째기사 1793년 청 건륭(乾隆) 58년

영의정 홍낙성이 자전과 자궁의 존호를 올리도록 주청했으나 이를 불허하다

영의정 홍낙성이 2품 이상을 거느리고 빈청에서 아뢰기를,

"아, 훌륭합니다. 오늘은 바로 내년을 여는 동짓날이며 내년은 곧 우리 나라의 천 년에 한 번 있는 좋은 기회이자 모든 복이 몰려올 희망찬 해이기도 합니다. 자전의 연세가 50이 되고 자궁의 연세는 60이 되는데 옛부터 제왕들이 즐거운 일이나 경사스러운 일을 꼽을 때 이중의 한 가지만 있어도 아주 드문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더구나 우리 전하께서는 하늘의 도타운 도움을 받고 거룩한 왕업을 이어받아 위로는 자전과 자궁을 효성으로 받들고 아래로는 원자에게 무궁한 복록을 끼쳐주게 되었으니 좋은 경사가 한 해에 거듭 이른 것이요 상서로운 기운이 온 나라에 넘치고 있어 비단 우리 나라에만 일찍이 없었던 일이 아니라 아마 역사책에서도 찾아보기 드문 일일 것입니다.

우리 자전의 아름다운 덕과 훌륭한 업적은 인원 왕후와도 같으시고 큰 공로와 지극한 교화는 요(堯)의 딸을 능가하니, 윤리 강상을 백대에 밝히시고 종묘 사직을 만 년토록 공고히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궁께서는 전하를 낳아 길러서 나라의 앞날을 열어놓았으며 경사가 원손에게 미치게 하여 국가의 기틀이 반석처럼 공고해졌습니다. 그리하여 천승의 봉양을 갖추어 누리시고 장수까지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생각하건대 우리 전하의 지극한 효성과 한편 기쁘고 한편 두려워하는 정성으로 이해에 이런 경사를 만났으니, 이를 칭송하고 빛내는 방법에 대하여 신들의 구구한 말씀이 있기 전에 이미 그 사실을 아뢰고 애써 마음을 돌리게 하셨겠지만 지금 이 막대한 국가적 경사는 모두가 하늘이 돕고 영령이 도우셔서 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다시 생각건대 우리 경모궁(景慕宮)의 어질고 효성스런 성품은 신명을 감동시키고 말없이 스며드는 덕화는 온 나라에 흘러 넘쳤습니다. 복잡한 정무를 모두 주상의 뜻에 맞도록 처리하였고 궁궐 밖을 나오지 않았으나 명성은 이미 백성들 마음속에 배어 있어 그 훌륭한 덕과 빛나는 광영을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태어나신 해, 어느덧 육순이 다가오고 역사 깊은 나라의 운은 영원토록 전하여질 것이니, 전에 없던 경사를 만나니 받들어 모시지 못한 한이 더욱 애절해집니다. 끝없이 사모하는 전하의 마음과 보답하고 싶은 신민의 정성으로 숨겨진 덕을 들추어내어 경사를 거듭 내린 하늘의 뜻에 보답하는 것이 천리로 보나 인정으로 보나 어찌 그만둘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더구나 지금 양(陽) 하나가 다시 돋고 새해가 곧 다가와 성인이 동지를 만났으니 성대한 복록이 몰려올 것입니다. 종묘 사직에 있어서는 무궁한 영광이 되고 신민에 있어서는 고루 기뻐하는 기회가 되는 이때 화봉인(華封人)이 빌던 내용134) 대로 궁궐 뜰에서 세 번 만세를 부르고 빈지초연(賓之初筵)135) 의 시를 노래하며 공당(公堂)에서 만수 무강을 비는 것입니다. 훌륭한 업적을 천양하여 비석에 새기고 현창한 옥책을 경건히 올려서 크나큰 영광을 펼치는 일이야말로 당연히 준행해야 할 떳떳한 전례이며 뭇백성들이 마음으로 함께 축하하는 일인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자전에게 여쭈어 빨리 자전과 자궁에게 존호를 올리고 하례하는 성대한 의식을 거행할 것이며 경모궁에 존호를 올려 거룩한 덕을 찬양하고 전하의 효성을 빛내도록 하소서. 그리고 신들이 오랫동안 품고 있던 구구한 정성은 언제나 전하의 공덕을 찬양하여 하늘의 해처럼 그려내고자 하니 위로는 열성조에서 당연스럽게 행했던 전례를 따르고, 아래로는 온 나라 백성들의 똑같은 소원을 펴소서. 그런데 전하께서는 지나친 겸손으로 언제나 자신을 높이지 않는 뜻을 가지셨기에 신들은 주저하여 머뭇거리며 말을 꺼내지 못하고 이런 억눌린 심정을 품어온 지 지금 18년이 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제 하늘이 돌보아 나라의 경사가 냇물처럼 모여들고 옛날에 없던 경사를 만나 온 나라가 고루 기뻐하고 있으니, 이는 실로 천하가 다 아는 성상의 효성과 거룩한 덕이 하늘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오늘의 무궁한 복을 오게 한 것이기에 신들이 비로소 입을 열어 요청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아, 훌륭합니다. 우리 성상의 독실한 행실과 지극한 덕, 위대한 공적이 온 나라에 넘치고 모든 제왕들의 으뜸이 되므로 그 높은 덕을 백성들은 이름도 지을 수 없으며 빛나는 업적은 역사에 이루 다 쓸 수가 없습니다. 신들의 좁은 소견으로 어찌 감히 그 만분의 일이나마 형용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삼가 조야에서 칭송하는 내용과 귀와 눈으로 듣고 본 것을 가지고 말씀을 올리는 것입니다.

전하의 효성을 말하면 타고난 천성과 날을 아끼는 효성으로 인륜에 독실하여 신명과 하늘을 감동시켰습니다. 10년 동안 약시중을 들어 깊은 사랑에서 타이름을 받으셨으며 복잡한 정무를 대신 처리하며 국가를 다스리는 노고를 나누어 맡는 중대한 부탁을 받았습니다. 자전과 자궁을 훌륭히 봉양한 효성은 동해에 비길 만하고 경모궁현륭원(顯隆園)에 대한 전례를 정한 것은 참으로 백대의 법이 될 만합니다. 의리에 관한 정미한 분석은 한(漢)나라 송(宋)나라를 능가하고 정성과 공경이 지극하기로는 요(堯)순(舜)을 필적할 만합니다.

은인(銀印)과 유서(諭書)로 선왕이 지극한 효성을 밝혔고 날마다 참배하고 달마다 성묘하는 데서 백성들은 사모하는 마음에 감동하였습니다. 왕업의 발판이 되었던 자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북관(北關)에다 비석을 세웠고, 열성조의 훌륭한 교훈을 천양하기 위하여 종묘에다 보감(寶鑑)을 만들어 바쳤습니다. 조종(祖宗)을 법으로 삼으려고 《갱장록(羹墻錄)》을 편찬하였고, 제사를 경건히 지내기 위하여 제품(祭品)에 대한 규정을 예로 정하였습니다. 진전(眞殿)에 초하루와 보름으로 참배를 몸소 행하여 춥거나 덥거나 빠뜨리지 않았으며 묘궁(廟宮)에 봄가을 제사를 대행시킬 적에는 밤이 새도록 앉아서 기다렸습니다. 세실(世室)을 미리 정하여 선왕의 공렬을 더욱 빛냈고, 규장각을 새로 지어 조상의 훈계를 경건히 모셨습니다. 정성을 다하고 신중을 다하는 마음으로 지극히 중대한 예를 거행하자 하늘이 굽어 살피시고 땅도 영험을 바쳐 천 년에 한 번 만나는 길조를 잡았고 30년 동안 쌓인 염원을 풀었습니다. 그 고을과 마을을 옮겼는 데도 백성들은 옮긴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고 소나무와 노송나무를 심었으나 관의 재물을 쓰지 않았습니다. 어진(御眞)을 봉안하여 혼정 신성의 예를 대신하였고, 행궁(行宮)을 지어 우러르고 의지하는 생각을 담았습니다. 공경하고 조심하여 받드는 정성은 순일하고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성상의 학문을 두고 말한다면 하늘이 낸 총명과 슬기로 일취 월장하여 하늘과 사람, 성품과 운명의 원리에 관해 훤하였고 역대 성왕이 주고받은 심법을 이어받았습니다. 성스럽고 더욱 성스러워 직접 《자양회통(紫陽會統)》을 편집하였고 앞 사람이 말하지 못한 것을 말하여 마침내 《태극강설(太極講說)》을 저술하였습니다. 신진들을 인도하기 위하여 팔도에서 선발하여 영재를 길렀고 사학(邪學)을 물리치기 위해 한 마디로 어리석은 풍속을 깨우쳤습니다. 치란 득실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사전(史筌)》을 만들었으며, 촉급하고 저속한 글을 읽지 못하게 하기 위해 경전(經傳)을 인출하여 반포하였습니다. 대체로 학문으로 말하면 땅과 바다를 한 품에 안은 것 같고, 문장으로 말하면 높은 하늘의 은하수 그것이었습니다. 어제 세 책은 한 글자 한 마디가 만세의 법이 되고, 윤음이 한 번 내리면 서민 남녀들이 사방에서 전송하고 있습니다. 몸소 실천하고 마음에 체득한 것이 그대로 덕화(德化)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유학을 숭상하고 도(道)를 중하게 여겨 비를 세우고 사우를 짓게 하였으며, 선비를 우대하고 어진이를 찾아 옥백(玉帛)으로 불러서 고무하고 진작함으로써 한 세상을 빛나는 문화의 세계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늘을 공경하는 것으로 말하면 밤낮으로 상제를 대하는 듯 엄숙하고 공경하고 두려워하였습니다. 섬돌에는 천체를 관측하는 기구를 설치하였고, 뜰에는 풍향을 재는 장대를 세웠습니다. 비오고 개는 일기에 일념을 두어 도에서의 장계를 잠시도 지체하지 말게 하였으며, 혹간 재해라도 만나게 되면 수라에 몇 가지 음식만을 올리게 하였습니다. 해와 달이 비치는 한 태만한 몸가짐을 하지 않았으며, 바람과 구름의 신에게 제사하는 의식을 새로 정하였습니다. 심지어 일반적인 글을 쓸 적에도 반드시 공경하고 삼가하는 정성을 다하십니다.

백성을 보살피는 것으로 말하면 어린아이를 보호하듯이 은혜를 베풀고 행여 다칠세라 걱정하는 마음 간절하십니다. 정월의 첫 번째 신일(辛日)에는 해마다 몸소 농사가 잘 되기를 빌며, 정월 초하루에는 권농의 윤음을 내리십니다. 내수사에 속한 노비를 찾아내는 제도를 폐지하여 공천(公賤)들이 다시 사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고, 궁방(宮房)에서 토지를 떼어 받는 제도를 폐지하여 힘없는 백성들이 억울하게 세금을 무는 괴로움을 면하게 하였습니다. 태형(笞刑)과 장형(杖刑)에 관한 규정을 거듭 신칙한 것은 한(漢) 문제(文帝)가 육형(肉刑)을 제거한 것과 같고, 백성을 사랑하고 돌볼 규칙을 반포한 것은 주(周) 문왕(文王)이 고독(孤獨)에게 은혜를 베푼 것과 일치합니다. 죄인을 심리하는 일에 애를 써서 반드시 죽을 사람을 살게 할 방도를 구하였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길을 열어서 원통한 처지를 모두 씻어주었습니다. 수재나 화재로 집이 떠내려가고 무너진 백성은 모두 구조를 하였고, 가뭄과 홍수와 전염병으로 고통을 받으면 이내 조세를 감면하는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창고를 열고 배로 실어오는 곡식도 부족하여 내탕고(內帑庫)의 재물을 나누어 주기까지 하였고, 신역(身役)을 면제해 주기 위하여는 신포(身布)와 호환(戶還)이 승려에게도 혜택이 미치게 하였습니다. 전복을 따서 바치는 수량을 감해 주어 바닷가 백성에게도 혜택이 미쳤고, 섣달에 바치는 제도를 폐지하여 깊은 산골짜기에도 은택이 미쳤습니다. 여름에 꿩사냥을 하지 않아 마을 사람들이 편안하고, 가을에 바치는 게를 절반으로 줄여 바닷가 백성들의 부담이 가벼워졌습니다. 장물 취득과 탐관 오리를 엄격하게 다스리고 법을 잘 지키며 열심히 근무하는 관리를 발탁하는 등 한밤중까지 마음 쓰시는 것이 오직 백성들을 화합하게 하고 나라의 운명이 영원하기를 비는 데 있습니다.

의리를 천명하신 것으로 말하면 무인·기묘년의 화란의 뿌리를 찾고 병신·정유년의 역적들의 죄안을 바로잡았습니다. 살아남은 잔당들을 깨끗이 쓸어버리니 하늘과 땅의 법칙이 해와 별처럼 빛났습니다. 그리고 한 질의 《춘추(春秋)》가 있었기에 난신 적자가 두려워할 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라가 다시 있게 해 준 은혜에 감격하여 화양동(華陽洞)만동묘(萬東廟)의 현판이 빛나고 있고 백대의 풍교를 수립하기 위하여 영월(寧越)단종(端宗)의 제단이 우뚝합니다. 훌륭한 증직과 높은 품계가 신축·임인년의 누락된 충신들에게 두루 주어졌고, 추후에 배향하여 함께 제사지내기를 등자룡(鄧子龍)낙상지(駱尙志) 등 여러 사람들에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떳떳한 교훈을 심어놓으신 일은 천하 후세에 영원히 할 말이 있을 것입니다.

검소한 덕으로 말하면 평상시 곁에 있는 것은 서적뿐이고 평상시 입는 옷은 명주나 비단을 쓰지 않으며, 깔개와 요는 해어지는 대로 기워서 쓰고 의복은 여러 번 빨고 또 빨아서 입으십니다. 침전(寢殿)이 좁고 작은 것은 하우(夏禹)가 낮은 궁실에서 거처하던 일을 본받은 것이고, 음식을 줄여서 검소하게 한 것은 송(宋) 인종(仁宗)이 구운 양고기를 먹지 않았던 것보다 더하였습니다. 꼭 필요하지 않은 비용을 절감하여 내수사에 묵은 빚이 없어졌고, 경상비를 절약하여 호조에 찌지를 붙여 들이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장용영(壯勇營)을 설치하면서도 털끝만큼도 국가의 경비는 쓰지 않았으며 변경 고을의 어려움에 마음을 써 해마다 바치는 산삼(山蔘)도 감면하였습니다. 나아가 머리에 다리를 드리지 못하게 하고 무늬있는 두꺼운 비단옷을 입지 못하게 하여 선대의 뜻을 이으신 덕이 더욱 빛나고 사치하는 습속이 영원히 없어졌습니다.

세상의 풍습을 바로잡으신 일로 말하면 패거리를 만들어 나라를 병들게 하는 피해를 통탄하고 외척이 정치에 간여하는 폐단을 거울로 삼아 등극 초기에 가차없는 영단으로 이리저리 뒤엉킨 소굴을 쓸어버리고 도와주고 비호하는 풍습을 통렬히 배척하였습니다. 선비들을 높이 등용하여 조정이 맑고 깨끗해졌고 어진이를 조건없이 등용하여 천지의 화한 기운이 합해졌습니다. 선비를 접견하는 때가 많아지자 환관과 궁첩들은 저절로 멀어졌고 제왕의 표준을 세워 교화가 이루어지자 남과 나 사이의 간격이 없어졌습니다. 당파에 치우침없이 공평하니 온 나라가 한집안처럼 되었습니다.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구분을 분명히 하자 백성들의 지향이 정해졌고, 서얼의 길을 터주는 정사를 시행하자 세상에 버려진 인재가 없게 되었습니다. 전랑(銓郞)의 자리를 폐지하여 벼슬을 얻기 위해 청탁하는 풍속을 억제하였고, 선비의 추향을 바로잡아 과거에 대한 규정을 엄격하게 하였습니다. 인재를 추천하는 법을 정비하여 미천한 신분의 사람들도 모두 등용되고, 선을 표창하고 악을 징계하는 전교를 거듭내려 효제(孝悌)가 권장되었습니다. 그 교화가 미치는 곳에 나라 전체가 따라서 감화되었으니 아, 훌륭합니다. 온 나라의 신민들이 아마도 피부와 골수에 젖어들도록 감격하고 진심으로 흠앙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 성상께서는 너그러움과 인자함이 천지와 짝이 되고 영걸스럽고 명철하기는 해와 달과 같습니다. 옥안(獄案)은 언제나 가벼운 쪽으로 처결하기에 뱀같은 미물들까지도 모두 감화되었고, 세신(世臣)은 반드시 곡진히 보호해 주기에 비와 이슬 같은 은혜가 두루 흡족하였습니다. 내 마음을 미루어 진심으로 남을 대하기에 딴마음을 품어 불안했던 자들도 편안해졌고, 드러나지 않은 미세한 원통함도 모두 살펴서 억울한 한을 꼭 풀게 하였습니다. 간한 말 때문에 조정에서 죄를 받은 이가 없고, 인재를 적재 적소에 썼기 때문에 한 가지 재주가 있는 사람도 반드시 기용되었습니다. 온 백성을 포용하여 감화시키는 바람에 자신의 삶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 없습니다. 이는 신들만이 하는 말이 아니라 바로 백성들의 말이며 또 백성들의 말일 뿐만 아니라 하늘과 조상들이 참으로 이를 굽어 살피고 계시는 것입니다. 전(傳)에 이르기를 ‘큰 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그 지위를 얻고 반드시 장수하며 반드시 이름을 얻는다.’ 하였습니다. 오늘날 신하된 자로서야 정성을 다해 호소하여 겸양만 하시는 전하의 마음을 기필코 되돌리고 오랫동안 쌓였던 작은 정성을 폄으로써 큰 공덕의 만분의 일이나마 천양하려고 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더구나 나라의 경사가 겹쳐서 장차 성대한 의식을 거행하게 되었는데 신들이 이 기회에 이 청을 하는 것은 사실 인정과 사리로 보아 그만둘 수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우리 성상으로서도 기쁨과 경사를 기념하는 마음에서 어찌 애써 여정을 따라 옥책을 함께 받으심으로써 모두 기뻐할 수 있는 방도로 삼지 않겠습니까.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다 윤허를 내리시어 온 나라 백성들의 간절한 소망에 부응하도록 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아, 내년의 경사는 우리 나라에 처음 있는 일로 훌륭하고도 훌륭한 경사이다. 나 소자가 우리 자전을 섬기기를 마치 선왕을 섬기듯이 하고 있는데 선왕 계해년·갑자년에 이미 거행하였던 성대한 의식을 오늘에 이어서 하면 되겠다. 또 우리 자궁의 연세도 꼭 육순이 되는데 소자를 낳아 기르시고 자자손손 경사가 계속되어 이 나라 억만 년 무궁한 복록을 열어 놓으셨다. 자전과 자궁의 좋은 경사가 이 해에 모두 겹쳤으니 만세를 불러 축하하고 축배를 올려 만수무강을 빌며 옥책(玉冊)과 금보(金寶)로 아름다운 덕을 천양하는 것은 바로 천리와 인정으로 보아 그만둘 수 없는 일이다. 몇 년을 손꼽아 밤낮으로 기다렸으며 간혹 곁에서 부드러운 낯빛으로 기쁨을 표시하는 잔치를 베풀고 정성을 바칠 방도에 대하여 구구절절 말씀을 올리기를 여러 번 하였으나 자전의 마음은 옛날을 슬퍼하여 지나칠 정도로 굳이 거절만 하였는데 이러한 때에 경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허락을 얻어내는 데 큰 힘이 되겠다. 이렇게 일제히 호소한 내용을 가지고 다시 가서 마음을 애써 돌리시도록 노력해 보겠다. 그리고 경모궁에 존호 올리는 의식은 이해가 오면 그 예를 거행하려던 것이 소자가 두고두고 가져왔던 숙원이기도 한데 이렇게 뭇사람들이 고마운 마음으로 청하는 데야 그 청을 따르는데 있어 어찌 다시 아뢰기를 기다리겠는가. 다만 존호를 의논하고 날을 받는 일은 당연히 자전의 허락을 받은 뒤에 해야 될 것이다.

나에게 존호를 올리겠다고 청한 일에 있어서는 설마 경들이 임방(林放)보다야 못하겠는가. 내가 연석에서 한 말은 사람마다 다 아는 바인데 경들이 알면서도 그 말을 한다면 이는 나를 믿지 못한 것이고, 믿고서도 말하였다면 이는 나를 알지 못한 것이다. 대체로 존호를 올리는 제도가 삼대(三代) 이후에 시작되었다고 하나, 근거할 만한 의의가 있고 논리 정연한 예문도 있어 명철한 임금들이 다들 그렇게 거행하고 또 그 제도를 수명했던 것이다. 그것은 위로 하늘의 사랑에 보답하고 뭇백성의 뜻에 따라 태평 성대의 아름다운 기상을 빛내기 위한 것이었고 또 우리는 우리대로 그 제도에 관한 규정과 법이 있어 내가 일찍이 선조에게 정성껏 간청하여 윤허를 받은 바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매우 부덕하고 무능하여 모든 나라 다스리는 법과 정치 규모에 있어 선조의 크고 훌륭한 업적에 비하면 만만번 따라갈 수가 없는 것이다. 선조의 겸양한 덕으로써도 애써 뜻을 굽혀 들어주었던 일을 내가 어찌 감히 독자적으로 경들에게 어기겠는가. 경들의 요청을 따르는 것도 선조의 뜻을 따르는 일 중의 하나인 줄을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뜻은 내가 이미 말하였는데 나의 말을 듣고서도 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은 결코 인인 군자(仁人君子)가 차마 할 노릇이 아닌 것이다.

예는 물론 인정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의리에 의하여 예가 제재를 당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단지 남들이 숭봉(崇奉)이라고 하는 것이 나에게도 숭봉이 될 수 없다고 해서 첫째가는 의리를 공연히 경전에 기록해 놓기만 하는 것은 감히 하지도 않을 뿐더러 차마 할 수도 없다. 천년 뒤에나 아마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예가 제재를 당해야 할 처지이면 예를 제재하고 인정에 따라야 할 일이면 인정을 따르는 것이다. 나를 이해하고 내 뜻을 체득하여 나로 하여금 처음에 품은 뜻을 이루게 하는 것이 바로 임금의 뜻을 따라 아름다운 결실이 있게 한다는 일인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8책 38권 43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422면
  • 【분류】
    정론(政論) / 왕실(王室)

  • [註 134]
    화봉인(華封人)이 빌던 내용 : 화봉인은 화라는 지방의 봉강(封疆)을 맡은 사람. 요(堯)임금이 화를 순행할 때 이곳의 봉인이, 성인께서는 수(壽)·부(富)·다남자(多男子) 하라는 세 가지를 축원하였다 한다.
  • [註 135]
    빈지초연(賓之初筵) : 《시경(詩經)》 소아(小雅)의 편명(篇名). 위 무공(衛武公)이 술을 마신 뒤 저지른 잘못을 뉘우쳐서 지은 시.

○領議政洪樂性等, 率二品以上, 賓廳啓曰: "猗歟盛哉! 今日卽明年之亞歲, 而明年卽我東方千載一有之嘉會也, 諸福畢至之昌辰也。 慈殿聖壽, 恰滿於五旬, 慈宮寶籌, 儼躋於六旬。 從古帝王承歡飾慶, 有一於此, 猶云夐越。 伏況我殿下, 受皇天之篤棐, 履熙洽之鴻運, 上奉殿宮怡愉之歡, 下貽元良燕翼之謨。 吉慶荐臻於一歲, 祥和普洽於八域。 此非但國朝之所未有, 抑亦史牒之所罕覯。 惟我慈聖, 徽音偉烈, 克符仁元, 洪功至化, 遠邁女堯。 揭倫綱於百代, 奠宗社於萬年。 惟我慈宮, 誕育聖躬, 啓佑邦籙, 慶叶文孫, 基鞏磐泰。 享備養於千乘, 膺景祿於遐齡。 伏想我殿下篤至之孝、喜懼之誠, 當此歲逢此慶, 其所以揄揚賁巍之方, 不待臣等區區之言, 必有所導達而勉回者矣。 今此莫大之邦慶, 何莫非上穹之垂隲、陟降之默佑, 而洪惟我景慕宮, 仁孝之性, 通乎神明, 淵默之化, 流于率普。 攝理機務, 而裁決悉當於天意; 不出宮闈, 而聲聞自洽于民心。 盛德輝光, 於戲不忘。 式至于今, 誕降之辰, 奄屆六旬, 長發之祥, 永垂千禩。 値玆無前之慶, 益切不洎之思。 以殿下無窮之慕, 以臣民欲報之誠, 追加揄揚之盛禮, 仰答天休之滋至者, 此豈天理人情之所可已者哉? 矧今一陽初復, 歲律將新, 聖人履長, 茀祿鼎至。 在宗社爲無疆之休, 在臣民爲均忭之會。 其欲移華封之祝, 而行三呼於大庭; 頌《初筵》之什, 而稱萬壽於公堂。 闡揚徽猷, 載之琬琰, 祗獻顯冊, 鋪張宏休者, 是誠彝典之所當遵, 群情之所共祝者也。 伏願聖明, 仰稟慈旨, 亟擧殿宮進號宴賀之縟儀、追上景慕宮徽號, 以彰睿德, 以光聖孝焉。 抑臣等久懷區區之忱, 每欲揄揚功德, 模畫天日, 上遵列朝應行之典, 下伸擧國同情之願, 而聖德撝謙, 每存不自聖之意, 臣等囁嚅不發, 抱玆抑鬱, 于今十有八年。 幸玆皇天眷佑, 邦籙川至, 慶曠古昔, 歡均中外。 此實我聖上達孝大德, 仰格天心, 以致今日無疆之休, 臣等始可以開口而仰請矣。 猗歟盛哉! 我聖上篤行至德, 豐功盛烈, 洋溢八域, 卓冠百王。 蕩乎民無能名, 煥然史不勝書。 以臣等蠡管之見, 安敢形容其萬一, 而謹就朝野之所欽誦、耳目之所記睹陳之。 以言乎聖孝, 則根天之行, 愛日之誠, 篤於人倫, 格于神天。 十年侍湯, 荷聖諭於篤愛; 萬機代聽, 受重托於分勞。 殿宮養志, 放諸東海而準, 宮園定禮, 允爲百世之則。 義理精微, 度越; 誠敬篤至, 匹美。 銀印諭書, 先王昭其至孝; 日瞻月覲, 國人感其孺慕。 遂復念王跡之肇基, 貞氓永樹於北關; 闡列朝之盛謨, 寶鑑祗獻于太室。 法祖宗則書編羹墻, 敬祀享則禮秩籩豆。 眞殿之朔望躬謁, 雖寒暑而靡曠; 廟宮之禴嘗命攝, 撤更漏而坐待。 世室預定而先烈益彰, 奎閣新建而祖訓虔奉。 乃以必誠必愼之心, 克擧至重至大之禮。 天旣降監, 地亦效靈, 占千載一遇之兆, 伸卅年積費之念。 移其邑里而民不知遷, 樹之松檜而財不費公。 奉御眞而替定省之禮, 設行宮而寓瞻依之思, 洞屬之誠, 純亦不已。 以言乎聖學, 則天縱聰睿, 日將緝熙, 貫天人性命之原, 接精一授受之傳。 聖而益聖, 親輯《紫陽會統》; 發前未發, 遂著《太極講說》。 誘掖新進, 則八選而育英才; 攘斥邪學, 則一言而牖迷俗。 炳治亂得失之幾, 而撰定《史筌》; 噤噍殺鄙俚之文, 而印頒經傳。 蓋以學問則地負海涵, 文章則雲昭漢倬。 御製三集, 而隻字單辭, 爲法於萬世; 絲綸一下, 而匹夫愚婦, 傳誦於四方。 躬行心得, 發爲聲敎, 以至崇儒重道, 侈以碑祠。 禮士求賢, 招以玉帛, 皷舞振作, 躋一世於郁郁彬彬之域。 以言乎敬天, 則夙宵對越, 嚴恭寅畏, 階設儀天之器, 庭竪占風之竿。 一念雨暘, 而道啓毋滯晷刻, 或値災異, 而御膳只進數品。 日月所照, 褻容不設; 風雲之祀, 儀式新定。 以至尋常楮墨之間, 亦必致敬而致謹。 以言乎恤民, 則恩推若保, 念切如傷。 上辛祈穀, 歲必躬行; 元正勸農, 降以綸音。 革內司之推刷, 而公賤獲更生之樂; 罷宮房之折受, 而殘民免橫徵之苦。 笞杖申式, 同帝之除肉刑; 字恤頒則, 符王之惠孤獨。 勤審理之政, 求生必死; 開申籲之路, 無冤不洗。 水火漂頹, 皆有救助; 旱澇癘疫, 輒施蠲減。 賙飢則發倉、船粟之不足, 而至分內帑; 除役則身布、戶還之所推, 而竝及緇徒。 減鰒採而惠覃重溟, 罷臘供而恩曁深峽。 夏雉不獵, 閭里安堵; 秋蟹半蠲, 沿野息肩。 以至嚴贓汚之律, 擢循良之吏, 丙枕憧憧, 惟在於諴小民而祈永命。 以言乎明義理, 則溯戊己之亂本, 正丙丁之逆案。 遺凶餘孽, 廓掃氛翳, 天經地義, 昭揭日星, 一部《春秋》, 亂賊知懼。 以至感再造之恩, 則華陽之扁額斯煌; 樹百代之風, 則越中之壇墠載屹。 美贈峻秩, 遍加於辛壬遺忠; 追配竝侑, 亦及於諸人。 扶植彝敎, 永有辭於天下後世。 以言乎昭儉德, 則燕居所設, 只是書籍便服, 所御不用紬絹。 茵褥則隨弊而隨補, 衣襨則屢濯而屢澣。 寢殿窄小, 法夏禹之卑宮以居; 膳羞省約, 邁 之燒羊不食。 罷除冗費, 內司祛宿債之弊; 節省經用, 度支無標紙之入。 設壯營而絲毫不煩公費, 軫邊邑而蔘稏亦蠲歲貢。 以至於首䯻則設禁, 紋緞則申禁, 而繼述之德愈光, 奢靡之俗永祛。 以言乎靖世道, 則痛淫朋病國之害, 監戚畹干政之弊。 御極之初, 乾斷赫然, 掃除轇轕之窟, 痛卞助匿之習。 登崇士類而朝著淸明, 立賢無方而大和保合。 接士時多而宦官宮妾之自遠, 會極化成而彼此物我之無間。 蕩蕩平平, 庭衢八荒。 明好惡之分, 而民有定志; 行疏通之政, 而世無棄物。 罷銓郞而抑躁競之俗, 正士趨而嚴科擧之規。 飭薦剡之法而側陋咸揚, 申彰癉之敎而孝悌以勸。 功化所及, 匝域風動。 猗歟盛矣! 擧國臣民, 抑又有淪肌浹髓, 感激欽仰者。 惟我聖上, 寬仁侔乎天地, 英明倂乎日月。 獄案則每從惟輕, 而龍蛇皆化; 世臣則必思曲保, 而雨露普洽。 推心置腹, 反側自安; 察微燭隱, 幽枉必伸。 來諫諍, 則朝無以言獲譴; 任器使, 則人惟一藝必錄。 包容陶甄, 無物不遂。 此非徒臣等之言, 卽國人之言, 而亦非但國人之言, 皇天祖宗實監于玆。 傳曰: ‘大德必得其位, 必得其壽, 必得其名。’ 爲今日臣子者, 其敢不竭誠齊籲, 期回撝謙之聖衷, 得伸久鬱之微忱, 思所以揄揚大德之萬一也哉? 伏況邦慶荐疊, 縟儀將擧。 臣等之此時陳請, 固出於情文之所不能已, 而以我聖上飾喜志慶之心, 亦豈不勉循群情, 同受瑤冊, 以爲悅豫之道乎? 惟願聖明, 竝賜允兪, 以副擧國之顒望焉。" 批曰: "猗歟! 明年之慶, 初有於我朝, 盛矣盛矣! 予小子之事我慈殿, 如事先王, 先王癸亥甲子已擧之縟儀, 可述於今日。 且我慈宮寶齡, 恰躋六旬, 誕育小子, 毓慶長發, 以啓億萬年無疆之邦籙。 殿宮吉慶, 咸湊於是歲, 呼嵩而稱賀, 奉觴而上壽。 玉冊金寶, 揚美闡徽, 卽天理人情之所不容已。 幾年摟指, 夙宵顒企, 間亦從傍愉惋, 備陳飾喜伸誠之方者屢矣, 慈心愴昔, 過加固拒。 此際卿等此擧, 大有藉力於得請。 更欲將此齊籲, 以冀强回之敎矣。 閟宮追上之儀, 逢是年行是禮, 小子宿昔之至願。 在此感群情從群請, 何待再啓? 惟議號涓期, 當在得諾於慈旨之後矣。 至於上號於予躬之請, 曾謂卿等不如林放乎? 朝筵之諭, 夫夫之所曉, 卿等知而言之, 則是不信予也, 信而又言, 則是不知予也。 大抵上號之制, 雖昉於三代以後, 其義可據, 其文有秩, 明王哲辟之莫不講行而修明之者, 其出於仰答天眷, 俯循輿情, 以賁太平之休象, 亦自有我家典章。 予嘗積誠祈懇於先朝, 輒蒙允兪。 予甚否德無能爲, 凡屬治法政謨, 萬萬非跂及於先朝鴻功豐烈, 而以先朝撝謙之德, 猶且勉屈聖衷, 予何敢獨自違却於卿等乎? 非不知從之亦關繼述中一事, 而予意予已言。 聞予之言, 拂予之意, 決非仁人君子之所忍爲。 禮固緣情, 義以制禮。 特以人所謂崇奉, 非吾所謂崇奉, 不敢不忍以第一等義, 空載於經傳。 千載之下, 庶有知予心者。 當制禮處制禮, 當緣情處緣情, 恕予而體予, 俾予遂初志。 卽惟曰將順二字。"


  • 【태백산사고본】 38책 38권 43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422면
  • 【분류】
    정론(政論) / 왕실(王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