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간 임제원이 올린 농우의 도살과 백징의 폐단에 대한 상소
대사간 임제원(林濟遠)이 상소하기를,
"올 가을 삼남(三南) 지방 농사 형편은 비오고 개이는 일기가 알맞아 파종과 김매는 시기를 잃지 않은 관계로 이 근래에 보기 드문 풍년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듣기에 논이 있는데도 모를 내지 못한 곳이 많이 있고 이미 모를 내기는 하였으나 너무 늦게 낸 곳도 많다고 합니다. 이는 흉년이 들고 전염병이 퍼져서 인력이 미치지 못한 소치이기도 하지만 실은 일소[農牛]가 너무나 귀한 소치라고 합니다. 농가의 으뜸으로 치는 물건 중에는 소가 제일인데 소를 길러 번식시키는 일은 점차 그전만 못하고 날마다 마구 잡아먹는 일은 이 근년에 가장 심해졌습니다. 이름 있는 고을이나 큰 도회지에는 성균관 하례들이 푸줏간을 설치하고 가난한 집과 피폐한 마을에서는 미욱한 백성들이 소를 잡아 고기를 나누어 먹습니다. 심지어 큰 거리의 늘어선 가게에는 쇠고기 파는 것을 업으로 삼는데 쌓아놓은 고기가 마치 산더미 같습니다.
그런데 그 폐단을 논하자면 호서(湖西)와 호남(湖南)이 앞장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소 한 마리의 값이 거의 백금(百金)이나 되어 논밭을 갈 만한 소가 없어서 사람이 대신 논밭을 파게 되므로 모를 내지 못한 것이나 늦게 내는 것은 형편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이 어찌 세운(歲運)의 탓이겠습니까.
아, 소를 도살하는 일을 나라 법으로 크게 금하고 있고 더구나 지금 농사를 망치는 폐단이 모두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금지하는 법을 거듭 밝히는 것이 바로 오늘의 급선무입니다. 그런데 도신(道臣)은 속전(贖錢) 거두는 일을 꺼려하여 묻지도 않고, 수령은 혹간 백성들을 소란스럽게 할까봐 내버려두어 수십 년 동안 언제나 하는 단속으로만 그침으로써 금지하는 법이 전혀 없는 것으로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계속 나가다간 논밭이 어떻게 묵지 않겠습니까. 각도에 특별히 신칙하여 엄중히 금지시키고 법을 어기면서 소를 도살하는 무리들은 일체 엄한 벌로 다스리면 아마 백성을 위하고 농사를 중히 여기는 실질적인 정사에 도움이 있을 것입니다.
모든 재해에 관한 정책은 흉년이 들 적마다 조정에서는 마음을 써서 걱정하고 감영과 고을에서도 마음을 다하여 혹시 조그마한 면적의 땅이라도 재해에 대한 면세에서 빠질까봐 애를 쓰기 때문에 백성들이 억울한 징세(徵稅)를 면할 수가 있지만, 풍년이 든 해에는 몇해 동안의 수확량을 평균으로 따져서 그 해의 총수확량으로 잡고 퇴짜놓는 것을 일삼아 각박하게 규정을 만들기 때문에 가련한 백성들만 그 해를 입고 있어 그것을 더욱더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올해는 큰 풍년이 들기는 하였으나 재해가 된 것이 대체로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초불(初不)’이고 또 한 가지는 ‘내불(內不)’이고 또 한 가지는 ‘만이(晩移)’입니다. 완전히 씨를 뿌리지 못한 것을 ‘초불’이라고 하고 절반은 모를 내고 절반은 내지 못한 것을 ‘내불’이라고 하고 모를 전부 내기는 하였으나 제철이 벌써 지났거나 김을 매지 못하여 끝내 결실을 거두지 못한 것을 통틀어서 ‘만재(晩災)’라고 합니다. 이는 모두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고 소가 아주 귀하여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근래 재해를 잡는 규정에 있어 ‘초불’ 한 가지는 응당 면세 대상이 되지만 ‘내불’과 ‘만재’는 허실(虛實)이 뒤섞이기 쉬운 까닭에 흔히 거론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올해처럼 비가 충분히 내린 때에는 이런 따위의 재해 명목은 사리에 맞지 않으므로 수령은 감사에게 감히 말하지도 못하고, 감사는 묘당(廟堂)에 감히 보고하지 못하여 필경에는 백징(白徵)하게 되니, 이에 대한 우려가 없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겨우 얼마 되지도 않는 곡식을 수확하고서 정량의 세금을 맞추어 바치게 되니 더욱더 억울한 일입니다.
영재(永災)에 있어서는 나라 재정에 크게 관계되는 만큼 결수(結數)를 한정하여 정한 규정이 전부터 있으나, 작년 같은 전에 없던 수재로 봇도랑이 평지가 되고 논밭 두렁이 뒤바뀐 경우는 결코 한두 해 동안에 도로 논밭으로 일굴 수가 없습니다. 영남 지방처럼 마구 보고한 경우는 참으로 제대로 조사하지 못한 잘못이 있으나 그 밖의 각도에 있어 정해진 숫자대로 똑같이 따른다면 다소 백징의 폐단이 없을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것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소에 대한 문제는 경의 말이 적절하다고 하겠다. 그저께 연중(筵中)에서 묘당으로 하여금 별도 대책을 강구하여 정하도록 신칙하였었는데 지금 경의 상소 내용이 또 이와 같으니 각도에 엄히 신칙하여 실질적인 효과가 있도록 해야겠다. 조세 문제는 이번에 각도의 근만(勤慢)에 대해 그 일체를 묘당에 위임하였다. 그 일이라면 민생 고락에 크게 관계되는 일이므로 다시 묘당으로 하여금 낱낱이 신칙하여 조그마한 면적의 땅에 대해서라도 무리한 조세 징수가 없도록 하라고 해야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8책 38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409면
- 【분류】농업(農業)
○大司諫林濟遠上疏曰:
今秋三南之農, 雨暘如期, 播耘不愆不失, 爲挽近罕有之豐, 而第聞有田而未之移者居多, 旣移而失於晩者亦夥。 此雖飢饉癘疫, 人力不逮之致, 而實緣耕牛之絶貴也。 農家長物, 以牛爲本, 而畜産繁庶, 漸不如前日, 宰殺狼藉, 最甚於近年。 名邑大都, 泮隷設舖; 窮蔀殘閻, 頑民分肉。 甚至通衢列肆之間, 販鬻爲事, 有肉如坻。 若論其弊, 兩湖爲先。 如是也, 故一牛之直, 幾至百金, 無牛可耕, 以人代鑿。 未移與晩移, 固其勢致然, 此豈歲之罪也? 噫! 犯屠, 有國之大禁也。 況今傷農之弊, 一至於此, 則申明禁條, 正爲急務, 道臣嫌於收贖而不問, 邑倅慮或擾民而任他, 十數年內, 付之例飭, 蕩然爲無禁之域。 若此不已, 幾何不田野不闢乎? 另飭諸道, 嚴加禁斷, 法外宰殺之類, 一切痛繩, 恐有補於爲民重農之實政也。 凡干災政, 每當凶年, 則朝家軫念營邑着意, 惟恐把束之見漏, 故爲小民者, 庶免冤徵, 至於豐年, 較數歲之中而執其總, 點退爲事, 操切成規, 可哀者民, 偏被其害, 尤不可不慮也。 今年雖大豐也, 而所以爲災者, 大抵有三。 一曰初不也, 一曰內不也, 一曰晩移也。 全不落種之謂初不, 半移而半不移之謂內不, 雖畢移而節序已過, 稂莠未祛, 竟不得食實者, 通謂之晩災。 此皆人力不逮, 牛畜絶貴而然也。 近來執災之規, 初不一條, 自在應免, 而內不與晩災, 虛實易混, 故多不擧論。 況此雨澤周洽之歲, 此等災名, 不近事理, 守令不敢言於道臣, 道臣不敢聞於廟堂。 畢竟白徵, 不無其慮, 則僅收升斗之穀, 準納(秸)〔結〕 總之賦者, 尤爲可冤。 至於水災, 大關國計, 限以結數, 自有定式, 而昨年無前之水, 溝澮間成平陸, 畦畛或經滄桑, 決非一兩年內所可還起者。 濫報如嶺南, 則誠有不審之失, 而外此諸道, 一遵定數者, 又安知無多少白徵之弊? 此亦不可不慮也。
批曰: "牛事, 卿言可謂適宜。 再昨筵中, 飭令廟堂別般講確, 卿疏又如此, 嚴飭諸道, 俾有實效。 田政事, 今番諸道勤慢, 一付之廟堂。 此政民生艱樂之大關捩, 更令廟堂, 枚擧嚴飭, 毋或有把束之勒徵。"
- 【태백산사고본】 38책 38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409면
- 【분류】농업(農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