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실록 37권, 정조 17년 5월 24일 을묘 2번째기사
1793년 청 건륭(乾隆) 58년
강원도 진휼 정사가 끝나고 해당 관원을 가자하다
강원도 관찰사 신기(申耆)가 치계하기를,
"영월(寧越) 등 열 고을의 의탁할 곳 없어 위급한 처지에 놓인 백성들을 감영과 고을에서 서로 의논하여 구휼하였는바, 지난 세밑부터 차례로 고을을 돌면서 죽을 쑤어 먹이고 혹은 건량(乾粮)을 지급하여 5월 초순 이전에 진휼을 끝냈습니다."
하였다. 【영월·평창(平昌)·정선(旌善)·울진(蔚珍)·평해(平海)·원주(原州)·횡성(橫城)·홍천(洪川)·강릉(江陵)·삼척(三陟)의 기민이 총 7천 5백 9명이었는데, 감영과 고을에서 스스로 곡식 5천 7백 13석과 돈 8백 12냥을 준비해서 구휼하였다.】 이조가 복계하기를,
"수령으로서 스스로 곡식 4백 석 이상을 준비한 울진 현령 이종헌(李宗憲) 등에게 모두 아마를 내리는 은전을 시행하소서."
하니, 특명으로 벼슬을 올려주었다.
- 【태백산사고본】 37책 37권 40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390면
- 【분류】구휼(救恤) / 인사(人事) / 왕실(王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