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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36권, 정조 16년 11월 10일 을사 2번째기사 1792년 청 건륭(乾隆) 57년

각도 관찰사들의 시상과 삭직을 행하다

강원도 관찰사 윤사국(尹師國)을 가자하고, 전라도 관찰사 정민시(鄭民始)는 삭직하고, 경상·경기·충청·황해·평안·함경 6도의 관찰사들은 모두 봉록 10등(等)124) 을 감하라고 명하고, 전교하기를,

"지난번 거듭 명령을 내린 뒤에 여러 도가 그 명령을 받고 올린 장계와 열읍(列邑)에 알린 것들은 모두 관례를 따른 것에 불과했을 뿐이어서 내년 봄에 찌를 뽑아 적간(摘奸)할 예정이다. 이번 강원 감사의 장계와 장계에 덧붙인 글을 보건대 그가 제사에 정성을 쏟고 애썼다고 하니 그 정성과 마음이 갸륵하다. 하물며 도백의 몸으로 조정의 명령을 받들어 행하는 것은 의리상 당연히 그래야 할 것이다. 그것이 비록 그의 직분 안에 있는 일이지만 제사에 정성을 다한 노고에 대하여는 별도로 칭찬하여 권장함이 없을 수 없다. 강원 감사 윤사국을 특별히 가자하여 직분을 다하지 못한 여러 도신들을 격려하는 뜻을 보이라. 여러 도 중에는 내각(內閣)의 근신(近臣)이 관찰사로 나간 도가 네 도인데 그들이 거행한 짓들을 보면 너무 보잘 것이 없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지위가 일품이요 평소 사리에 밝다던 전라 감사조차도 도리어 강원 감사에게 선두를 양보하고 말았단 말인가. 그에게 갑절 무거운 율을 가하여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 소소한 일도 그렇게 소홀히 다루어 조정의 명령을 받들어 행할 줄 모르는데 어떻게 큰 도에 버티고 앉아서 자신의 이익만을 채우게 할 것인가. 전라 감사 정민시에게 빨리 삭직의 벌을 내리도록 하되 말이란 신의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되니 전지(傳旨)는 진곡(賑穀) 마련에 노력한 장계가 이른 뒤에 받도록 하라. 경상 감사 정대용(鄭大容)·함경 감사 김희(金憙)·경기 감사 서정수(徐鼎修)는 봉록 10등(等) 치를 감하라. 조정을 무서워해야 하는 도리에 있어서야 내각이고 아니고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충청 감사 이형원(李亨元)·황해 감사 이경일(李敬一)·평안 감사 홍양호(洪良浩)도 봉록 10등 치를 감하도록 하라. 집을 짓고 수리하고 하는 일들은 조정이 거듭 강조한 엄명이라고 핑계댄다니, 만일 이 혹한을 당하여 백성을 부린다면 그 죄가 더욱 어떠할 것인가. 날씨가 풀리기를 기다려 착실히 거행하도록 하라.

보통 제향에 대해 의례적으로 내리는 조정의 명령도 이처럼 제대로 받들지 않고 있고 보면, 근래 연달아 전교를 내려 경계하고 있는 이 때 흉년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은 수령들을 한결같이 덮어 주고 있는 삼남 도신들의 일은 너무 형편없다. 치적은 비록 낮더라도 앞으로 기대를 걸 만한 자라면 혹시 얘기가 되겠지만 틀림없이 감당 못할 무리들까지 모두 감싸 주고 있을 것이다. 암행 어사의 서계(書啓)가 책상에 가득 쌓여 있으니 이같은 국가 기강이 옛날에 언제 있었던가. 무슨 사사로운 정이 있기에 수령 두려워하기를 조정의 명령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인가. 삼남의 도신들 처분에 대해 묘당이 각별히 엄하게 단속하도록 하라. 그 중에서도 가장 줏대가 없는 자는 충청 감사이니 그에게도 엄한 공문을 보내 곡절을 자세히 물어 아뢰도록 하라.

근래 지방을 맡은 신하들이 자신을 살찌우기만 일삼고 백성들의 아픔은 돌보지 않으면서 오직 장계 속의 말들만 잘 꾸며 그것으로 눈앞만 미봉하고 죄를 면하는 방법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진짜 청렴하다는 소리는 전혀 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우선 도백들부터 팽아(烹阿)의 법125) 을 적용하지 않는다면 법을 어디에 쓸 것인가. 범처럼 무서운 어사를 암행시킨 것은 그들로 하여금 깨우치도록 하기 위함인데도 한결같이 태연스럽고 무관심하여 죄를 면하고 책임을 메꿀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털끝만큼의 효과도 없으니 몹시 놀랍다. 내년 보리 가을까지 각 도의 도신 중에서 가장 청렴하지 못한 자는 도사(都事)를 내보내 붙잡아오게 한 뒤에 혜정교(惠政橋)에 내가 직접 나앉아서 서울 백성들을 많이 모아 놓고 엄히 신문하여 자백을 받은 다음 장오(贓汚)의 형률을 적용하므로써 그 도의 창생들에게 사죄할 것이다.

성안에 혜정교가 있는 것은 바로 백성을 위해 그런 일을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다리 이름도 그러한 것이다. 이 시기에 그러한 일을 어찌 그만둘 수 있겠는가. 묘당으로 하여금 별도의 공문을 내보내 두루 알리고 각 도의 포정문(布政門) 문루에다 게시하여 늘 눈여겨 보게 하도록 분부하라."

하였다.

이보다 앞서 각 도의 사직단·성황단·여단(厲壇)의 제사드리는 의식을 손보아 밝히도록 하라는 명령이 있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사국이 맨 먼저 본 도의 열읍에서 봉행한 일들을 조목별로 나열하여 계문한 것이 상의 뜻에 맞았기 때문에 이런 명령을 내린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36책 36권 30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355면
  • 【분류】
    인사(人事) / 사법(司法)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註 124]
    10등(等) : 여기서 등(等)은 3개월을 이른 말로 조선 시대 관리들의 녹봉은 1년을 4등(等)으로 나누어 지급하였다. 여기서는 2년 반의 녹봉을 감해 지급한다는 말이다. 《대명회통(大典會通)》 호전 록과(戶典祿科).
  • [註 125]
    팽아(烹阿)의 법 : 아 대부(阿大夫)를 팽형(烹刑:가마솥에 삶아 죽이는 벌)에 처한 법. 이는 전국 시대 제(齊)나라 위왕(威王)이 아(阿) 지방을 맡아 다스리는 대부(大夫)의 칭송이 측근들로부터 자자하였으나 실상을 살펴 보고서 그것과 다름을 알고는 곁에서 칭송한 사람들과 아 대부를 한꺼번에 팽형에 처한 것을 두고 이른 말이다. 《통감(通鑑)》 1 열왕(烈王) 재위 7년.

○命江原道觀察使尹師國加資, 全羅道觀察使鄭民始削職, 慶尙京畿忠淸黃海平安咸鏡六道觀察使竝越俸十等。 敎曰: "向於申飭之後, 諸道祗受狀本及知委列邑, 皆不過循例而已, 欲待明春, 抽栍摘奸。 觀此東伯狀啓及後錄, 其爲致精致勤於享事, 其誠可嘉, 其心可尙。 況身爲道伯, 奉行朝令, 義當若此。 此雖職分內事, 而享祀恪勤之勞, 不可無別般嘉奬。 江原監司尹師國特爲加資, 以勸諸道臣之不職者。 諸道之中, 以內閣近臣出按者, 卽四道而其所擧行, 萬萬無狀。 惜乎, 位躋崇秩, 素稱綜明之伯, 亦反讓頭於東伯乎? 宜施加倍之律, 以勸他人。 此等小事, 泛忽若此, 不知朝令之奉行。 其可坐擁雄藩, 徒使利己乎? 全羅監司鄭民始亟施削職之典, 言不可不信, 傳旨則賑穀拮据狀聞來到後捧入。 慶尙監司鄭大容咸鏡監司金憙京畿監司徐鼎修越俸十等。 畏朝廷之道, 何關於內閣與否乎? 忠淸監司李亨元黃海監司李敬一平安監司洪良浩亦爲越俸十等。 至於建屋修治等事, 諉以朝令之申嚴, 當此極寒, 萬一役民, 其罪尤當如何? 待解凍着意擧行。 尋常祭享, 例飭, 不奉朝令若此, 則近來連下飭敎之時, 歉歲不治守令之一味掩覆三南道臣事, 萬萬無狀。 治績雖劣, 來效可責者, 容或爲說, 其必不堪之類, 亦皆容護。 潛行繡衣之書啓, 堆積案上, 如許國綱, 古豈有之? 有何顔情, 畏守令甚於畏朝令乎? 三南道臣處分, 廟堂拔例嚴飭。 其中巽軟之尤甚者, 伯也。 亦令嚴關, 査問委折以聞。 大抵近來藩臣之惟事肥己, 不恤民隱, 唯以狀啓句語之磨琢爲目前彌縫免罪之方, 眞箇廉聲漠然無聞。 先從道伯不施烹之典, 法何施乎? 虎行之藏繡衣, 欲使此輩知警, 而然猶一味恬然恝然, 謂可以免罪塞責, 無絲毫之效, 萬萬痛駭。 限以明年麥秋, 諸道道臣中, 廉聲最乏者, 發遣都事拿來後, 殿座於惠政橋, 大會都民, 嚴訊取服, 施以贓汚之律, 以謝道內蒼生。 城內之有惠政橋, 卽爲民有此等之擧。 橋名如此, 此時此擧, 豈可已乎? 令廟堂別關行會, 卽令奉揭于各道布政門樓, 以爲常目之地事分付。" 先是, 以諸道社稷壇、城隍壇、厲壇祀享儀式之修明有飭命。 至是, 師國首先以本道列邑奉行事件, 條列啓聞稱旨, 故有是命。


  • 【태백산사고본】 36책 36권 30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355면
  • 【분류】
    인사(人事) / 사법(司法)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