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교리 이동직이 신기현·윤영희·채제공·이가환을 죄주기를 청하다
부교리 이동직(李東稷)이 상소하기를,
"대계(臺啓) 속의 여러 역적들은 모두 다 천지 사이에서 잠시도 숨을 쉴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런데도 전하께서는 여러 사람들의 청을 윤허하지 않고 한결같이 용서해 주어 소굴이 더욱 공고해지고 뿌리가 점점 뻗어가기만 하여 근일에 와서는 흉악한 역적 무리가 배출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천토(天討)가 하루 늦추어지면 의리도 하루만큼 어두워지고 천토가 이틀 늦추어지면 의리도 이틀만큼 어두워집니다. 진실로 분명한 전지를 빨리 내려 세상이 모두 알게 육시(戮屍)의 벌을 시행함으로써 대성인(大聖人)이 명령을 미덥게 하는 의도를 보여야 할 것인데 여러 날을 고이 기다려도 아직 아무런 명령이 없으니 이 무슨 일입니까.
아, 역적 신기현이 남모르게 딴 뜻을 품고 있는데도 암암리에 그와 내통한 자가 누구였으며, 역적 기현이 감히 자성(慈聖)을 속였는데도 그를 도와주어 자기 편으로 삼은 자가 누구였습니까. 과거 시험장에서는 찌를 슬쩍 넘겨주고 옥정(獄庭)에서는 대질 공술을 하면서 그의 죄를 결정짓는 데 영향을 주기 위해 서슴없이 감싸주고 자진하여 딴 주장을 내세우기도 하였으니 또 무슨 변괴입니까. 그것은 그들이 남몰래 다른 모의를 의도하여 꾸민 지 이미 오래 된 것이고 또 평소에 물려받은 것입니다. 맨 먼저는 재상이 권리를 독단하는 흉악한 논의를 하게 되었고, 두 번째는 자전을 무함하는 역적으로 변했으며, 세 번째는 역적 자식에게 강경 찌를 슬쩍 넘겨주었고, 네 번째는 전하의 앞에서 역적을 두호하기까지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몸은 다르나 한통속이어서 앞에서 제창하면 뒤에서 호응하였던 것입니다. 말이 여기에 미치니 오싹 소름이 끼칩니다. 따라서 그들 맥락과 근원을 규명해 보면 그 역적은 바로 이재간(李在簡)과 기현의 후신이자 채제공(蔡濟恭)의 앞잡이인 것입니다. 그런데 양사가 합계하여 아뢰어서 그 부분을 지워버렸으니 어찌 매우 잘못된 처사가 아니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다시 원래 아뢰었던 것을 나라에 반포하여 그들이 극악한 역적임을 분명히 밝히시고 속히 견책하여 죄를 주소서.
아, 저 채제공이 군주를 저버리고 나라를 등졌으며 역적을 두호하고 악당과 무리를 이룬 죄를 어떻게 다 처벌하겠습니까. 지엄한 자리를 지척에 두고서도 조금도 주저하거나 꺼리는 기색없이 오직 제 가진 마음이 드러나지 아니할까 제 입지가 행여 흔들릴까 그것만을 두려워하면서 마치 역적을 위해 절의라도 세우려는 사람같았으니 그야말로 흉측하고 끔찍합니다. 그의 다른 죄악은 다 그만두고라도 일전에 전하의 비답 속에 ‘그것만 가지고 죄를 성토하더라도 어느 법인들 적용하지 못하겠는가.’ 하신 그 하교에 대해 신은 참으로 흠앙하고 가슴에 새겨 담았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빨리 삼사의 청원을 따라 나라의 기강을 진작시키고 백성의 뜻을 안정시키소서.
또 이가환(李家煥) 같은 자는 채제공에게 빌붙어 그의 후원을 받아왔으면서도 역모의 진상이 낭자하게 드러난 오늘까지 그는 그의 당여(黨與)로서의 처벌에서 빠져 있으니 그에게 있어서는 행운이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외람되이 벼슬자리에 머물러 있으면서 대각의 바른 논박도 무시하고 대신들이 소를 올려 배척하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의기양양하게 염치 불구하고 부임하여 갔으니, 그 방자하고 기탄없는 것이 비록 그들이 늘 하는 버릇이라고는 하지만 도대체 인간의 수치스러운 일을 모르는 자들이라 하겠습니다. 국가에서 전후로 인재 선발을 하면서 단지 문장 한 가지만을 보고 하였지만 괴이한 귀신 같은 무리라면 비록 하찮은 재예(才藝)가 있다고 치더라도 그것을 가지고 죄를 가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물며 그들의 문장이라는 것이 학문상으로는 대부분 이단(異端) 사설(邪說)들이고 문장이래야 순전히 패관 소품(稗官小品)을 숭상할 뿐입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경전(經傳)을 언제나 별 쓸모없는 것으로 보고 있으니 그들 문장은 문장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이단을 물리치고 정도를 지키는 이 때에 그러한 무리들을 그냥 내버려두고 논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은, 가환에게 성균관을 관리하도록 제수한 명을 아울러 환수하고 이어 사판에서 그 이름을 삭제하여 세도를 위하고 명기(名器)를 소중히 여기는 뜻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먼저 이가환의 문제부터 말하는 것이 좋겠다. 그대는 가환의 문체(文體)가 경전을 쓸모없는 것으로 여긴다는 말로 얘기를 삼았는데 그것이 바로 내가 한 마디 하고 싶으면서도 못하고 있던 문제였다. 그런데 그대가 그 말을 하니 참으로 이른바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격이다.
대체로 우리 나라가 비록 작으나 많은 백성이 팔역(八域)에 살고 있다. 그들을 다스리는 방법은 불과해야 날으는 것들은 날으는 것대로 물속에 잠겨 사는 것들은 잠겨 사는 대로 그들의 본성을 거스르지 않게 하고 모난 것은 모난 대로 둥근 것은 둥근 대로 기량에 따라 쓰면 그뿐인 것이다. 그것이 바로 형편에 따라 잘 이용하는 방법인 것이다. 주 부자(朱夫子)의 문장은 하늘 같고 땅 같고 바람 같고 구름 같으며, 권도와 정도를 적절하게 쓰고 천지의 기운을 닫았다 열었다 할 수 있는 큰 역량을 소유하여 오계(五季)의 누추함을 완전히 씻어버리고, 천 명의 대군을 깨끗이 물리치며, 그 맛이란 고기를 씹는 맛이요, 그 용도는 베나 비단처럼 쓰여져, 그 글을 읽노라면 마음이 상쾌해지고 맑아져서 마치 증점(曾點)의 비파 소리와 안자(顔子)의 거문고 소리를 듣는 듯하다. 그리하여 한 번 책을 펼쳐들면 종묘(宗廟)와 백관(百官)을 본 듯이 훌륭하고 장엄한 것이다. 그러나 왕양명(王陽明)은 유도(儒道)에 가까운 자품을 타고났으면서도 너무 지나친 데가 있어 오로지 양지(良知)에만 전력하고 반약(反約)만을 힘쓰면서 문학(問學)이라곤 아예 덮어두었다. 태원(太原)에서 뛰놀던 말이 그 높은 총령(蔥嶺) 사이를 내닫고 어디에서 온 새 깃발이 개울가 보루에 이채를 보이는 듯하였으나 끝내 성인의 문에서 버림을 당하지 않았던가.
더군다나 그 밑으로 내려와서 비속하고 음란하면서도 그럴싸한 맛을 지닌 자질구레한 패관 소품들을 입 가진 사람이면 한 마디씩 해보지만, 그것은 가령 귀자(龜玆)나 부여(夫餘) 같이 작은 나라들이 제각기 제 나름대로의 모양을 갖추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모기 눈썹이나 달팽이 뿔 정도로 보잘것없는 것과 같다. 그런데 그것을 집집마다 찾아가서 그 오류를 바로잡고 사람사람 다 만나서 그 틀린 점을 일정하게 고쳐주기로 들면 그 윗 사람이 된 자가 너무 힘들지 않겠는가.
저 가환으로 말하면 일찍이 좋은 가문의 사람이 아닌 것도 아니었지만 백 년 동안 벼슬길에서 밀려나 수레바퀴나 깎고 염주알이나 꿰면서 떠돌이나 시골에 묻혀 지내는 백성으로 자처하였던 것이다. 그러자니 나오는 소리는 비분 강개한 내용일 것이고 어울리는 자들이라곤 우스갯 소리나 하고 괴벽한 짓이나 하는 무리일 것 아닌가. 주위가 외로우면 외로울수록 말은 더욱 편파했을 것이고 말이 편파적일수록 문장도 더욱 괴벽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오채(五采)로 수놓은 고운 문장은 당대에 빛을 보고 사는 자들에게 양보해 버리고 이소경(離騷經)이나 구가(九歌)를 흉내냈던 것인데 그것이 어찌 가환이 좋아서 한 짓이었겠는가. 조정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마침내 내가 복을 모아 백성들에게 나누어 준다는 기자의 홍범(洪範)을 길잡이로 하고 거룩한 공적과 신비로운 교화를 남기신 선왕의 뒤를 이어 침전에다 특별히 탕탕평평실(蕩蕩平平室)이라는 편액을 달고 정구 팔황(庭衢八荒) 네 글자를 크게 써서 여덟 개의 창문 위에다 죽 걸어 두고는 아침 저녁 눈여겨 보면서 나의 끝없는 교훈으로 삼아오고 있다. 그리하여 한미한 집안의 누더기를 걸친 자들을 초야에서 뽑아 올렸는데 가환은 그 가운데 한 사람인 것이다. 그대는 가환에 대해 말하지 말라. 가환은 지금 골짜기에서 교목(喬木)으로 날아 오른 것이고 썩은 두엄에서 새롭게 변화한 것이다. 그의 심중을 통해 나오는 소리가 왜 점차 훌륭한 경지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근심하는가. 설사 가환이 재주가 둔하여 사흘 동안에 괄목할 만한 성장이 없다손 치더라도 그의 아들이나 손자가 또 어찌 번번이 양보만 하고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훌륭하게 내지 않겠는가.
맹단(盟壇)에 올라 주도권을 잡고 긴긴 밤 흐리멍덩한 꿈 속에서 대일통(大一統)의 권한을 다시 밝히는 것을 자기 책임으로 삼으리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준수한 백성도 있고 우둔한 백성도 있어 먼저 깨닫고 늦게 깨닫는 차이는 있으나 일단 깨닫고 나면 같은 것이다. 설사 혹 아둔하여 탈을 벗지 못하는 자가 그 사이에 끼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태양 앞에 횃불이며, 군자에게 있어 소인이고, 고니에게 있어 땅 속의 벌레인 것이니 주인은 주인노릇하고 손은 손노릇하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그래서 공자가 《시경》 3백 11편을 편집하면서 상간(桑間)·복상(濮上)의 시를 법도에 맞고 의미 심장한 대아(大雅) 사이에다 함께 끼워 넣었던 것이다. 오늘 이 정성이 담긴 깨우침을 들은 자들이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는 마음에 느낌을 받고 구비하기를 바라는 것에 대해 경계하여 저도 모르는 사이 날로 선한 데로 옮아가 집집마다 듣기 좋은 소리가 있게 된다면 나는 그것이 나라의 운명을 영원하도록 하늘에 비는 근본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고, 이어 전교하기를,
"비록 비답은 내렸으나 금령에 저촉되는 말이 많으니 원소(原疏)는 승정원으로 하여금 태워버리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6책 36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352면
- 【분류】정론(政論) / 사상(思想)
○副校理李東稷上疏曰:
臺啓中諸賊, 孰非覆載間不可假息者, 而乃殿下不允群請, 一例容貸, 以致窩窟益固, 根柢漸蔓, 乃至於近日凶逆之輩出。 天討之一日不行, 而義理有一日之晦; 天討之二日不行, 而義理有二日之晦。 允宜亟降明旨, 快施顯戮, 以示大聖人信令之意, 而恭俟屢日, 尙無成命, 此何事也? 嗚呼! 逆驥之潛蓄異圖, 而暗連腸肚者誰也; 逆驥之敢誣慈聖, 而援作羽翼者誰也? 試院越講, 獄庭對供, 爲渠斷案, 而甘心營護, 挺身立幟者, 又何等變怪也? 此其陰圖異謀, 醞釀已久, 傳襲有素, 一發而爲院座專輒之凶論, 再發而爲誣逼慈旨之逆節, 三轉而爲逆孽越講, 四轉而爲前席護逆, 異身同腸, 前唱後應, 興言及此, 不覺澟然心寒。 苟究其脈絡源委, 此賊卽簡、驥之後身, 濟恭之前茅, 惟此合辭之爻周, 豈不萬萬失當乎? 伏乞更將原啓頒示國中, 昭布其爲劇逆, 快行誅討。 噫彼蔡濟恭背君負國, 護逆黨惡之罪, 可勝誅哉? 咫尺嚴威, 略無顧忌, 惟恐將心之不露, 立脚之不堅, 悍然若爲凶逆立節者然, 吁亦凶且憯矣。 其他罪惡姑無論, 日前聖批中, 只以此聲罪, 何律不可之敎, 臣實欽仰佩服也。 伏願亟從三司之請, 以振王綱, 以定民志焉。 又若李家煥附麗濟恭, 藉其吹噓, 今其逆節狼藉之後, 尙逭黨與之律, 在渠亦云幸矣, 而居留濫職, 不有臺論之駁正, 不顧大僚之疏斥, 揚揚冒赴, 其縱恣無憚, 雖曰渠輩恒習, 亦可謂不識人間羞恥事矣。 朝家之前後甄拔, 徒以其文華一事, 而如許怪鬼之類, 雖有薄藝小數之可稱, 不可以此而掩其罪, 況此輩所謂文華, 其學則多出異端邪說, 其文則專尙稗官小品。 至於經傳菽粟, 每視以弁髦, 亦不可以文華言也。 今當闢異衛正之日, 如此之類, 不可置而不論。 臣謂家煥管理成均之除, 一竝收還, 仍施刊削, 以示爲世道重名器之意。
批曰: "先從李家煥事言之可乎! 爾以家煥文體之弁髦經傳爲話欛, 卽予欲一言而未得其會者, 爾言之來, 眞所謂如癢得搔。 大抵我國雖小, 衆有八域, 其御之之道, 不過曰翔潛不拂其性, 鑿枘各適其器而已, 此乃因勢利導之術。 有朱夫子天地風雲, 奇正闔捭之大力量, 洗盡五季之陋, 掃却千人之軍, 其旨芻豢, 其用布帛, 讀之鏗鏗泠泠如聞點也之瑟, 顔氏之琴, 而一開卷, 庶窺其宗廟百官之盛。 然猶有陽明近道之姿, 矯枉之過, 而專精於良知, 反約是務, 而束閣於問學, 太原遊騎, 聘騖於蔥嶺之間, 何來勿脚之旗, 增彩於溪潭壁壘, 竟不免門墻之揮。 且況降此而瑣瑣稗品, 鄙俚淫畦之蕞蔀傍蔗, 喙喙爭鳴, 其視龜玆、夫餘之各具小成, 不翅若蚊睫蝸角, 而家家而正其謬, 人人而齊其舛, 爲其上者, 不已勞乎? 彼家煥未嘗非好家數, 而落拓百年, 斲輪而貫珠, 自分爲羈旅草莽。 發之爲聲者, 悲咜忼慨之辭也; 求而會意者, 齊諧索隱之徒也, 跡愈而言愈詖, 言愈詖而文愈詭。 絺繡五采, 讓與當陽, 《離騷》、《九歌》, 假以自鳴, 豈家煥之樂爲? 伊朝廷之使然。 肆予導箕聖斂時敷福之範, 承先王聖功神化之緖, 特書燕寢之扁曰蕩蕩平平室, 而庭衢八荒四大字, 遍題八牕之楣, 昕夕顧諟, 作我息壤。 於是乎蓽路藍縷, 披自草萊, 家煥其中一人耳。 爾莫言家煥。 家煥方自谷而喬, 化腐爲新。 由心之音, 何患不漸入佳境? 使家煥才鈍, 三日而未刮目, 若子若孫, 又豈必每每讓與, 不效自鳴之盛乎? 登盟壇執牛耳, 復明大一統之權, 於長夜醉夢之中者, 予以爲己任。 凡民秀蠢, 有先覺後覺之別, 覺則一也。 縱或迷未脫灑者, 介於其間, 此特太陽之於爝火, 君子之於小人, 黃鵠之於壤蟲, 主爲主客爲客, 斯其足矣。 故聖人編《詩》三百十一篇, 《桑間》、《濮上》之升, 竝列於《大雅》渢泱之際。 聞今日諄諄之誘者, 感發於推恕, 懲創於求備, 日遷善而不自知, 比屋有希音, 予則曰祈天永命之本也。" 仍敎曰: "雖已批下, 語多涉禁, 原疏令政院付丙。"
- 【태백산사고본】 36책 36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352면
- 【분류】정론(政論) / 사상(思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