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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35권, 정조 16년 5월 5일 임인 2번째기사 1792년 청 건륭(乾隆) 57년

사직 서유린이 유성한과 윤구종의 일로 상소하다

사직(司直) 서유린(徐有隣)이 상소하기를,

"신이 전하를 섬겨 온 지가 춘방(春坊)에서부터 지금까지 20여 년이 되었습니다. 전하의 모습을 가까이서 뵈면서도 부서(簿書)의 일에 바빠 좁은 소견으로 처음에는 감히 천지(天地)와 같은 큰 덕망과 하해(河海)와 같은 깊은 아량을 엿보지 못하였습니다. 매양 기무(機務)를 수접하는 여가와 경사(經史)를 토론하는 여가에 우러러 보건대, 백성에 대한 걱정은 조금 풀렸으나 부모를 사모하는 마음은 다하지 않아서, 육아장(蓼莪章)069) 을 읽다가 그만둔 뜻과 금옥(錦玉)이 편치 못한 정이 일찍이 동정(動靜)하는 사이와 사령(辭令)의 밖에 넘치지 않음이 없었으니, 전하의 이런 마음은 실로 혼자 계실 때에도 그렇게 하신 바이며 신명(神明)이 굽어보시는 바입니다. 지금 전하의 조정에서 북면(北面)하여 섬기는 자들이 전하의 마음을 모른다면 전하의 신하가 아니며 하루라도 전하의 마음을 잊는다면 전하의 신하가 아닙니다. 그러나 전하께서 차마 말하지 못하고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을 전하의 신하 역시 따라서 차마 말하지 못하고 감히 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차마 말하지 못하고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은 지엄(至嚴)·지경(至敬)·지중(至重)·지대(至大)하여 천지에 통하고 고금에 걸쳐서 없어지지 않고 실추되지 않는 의리에 대해서 잠시라도 소홀히 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지난번 흉적이 틈을 엿보아 일어나 윤강(倫綱)이 무너지고 끊어져 대동(大東) 예의의 윤리가 모두 장차 이적(夷狄)이나 금수(禽獸)의 지역으로 빠지게 되어 대소 신하가 차마 말할 수 없고 감히 말할 수 없는 말을 날마다 전하께 들려드리지 않을 수 없으니, 이것이 어찌 그만둘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하늘은 공평하고 그 이치가 매우 밝아서 충신은 결국 펴지는 날이 있고 역적은 마침내 요행으로도 도피하지 못하는 것이, 마치 좌계(左契)를 잡고 있는 것과 같아 아무리 먼 곳이라 하더라도 징험되지 않음이 없습니다. 이에 충량(忠良)은 힘쓸 줄을 알고 난역(亂逆)은 두려워할 줄을 알게 되니, 하늘이 사람을 인애(仁愛)하는 것은 속일 수가 없습니다. 모년에 충성을 바친 신하는 모두 정표(旌表)하고 증직(贈職)하며 영화가 자손에게까지 미친 것을 보면 틀리지 않은 이치를 이에서 더욱 징험할 수가 있는데, 유독 저 요행히 도피한 무리들이 자기 집 방에 누워서 죽기를 무고(無故)한 사람과 같이 하니, 이 때문에 충신(忠臣)과 의사(義士)들이 마음을 썩이고 뼈에 사무쳐 살고 싶지 않은 것처럼 하며 필연(必然)의 이치에 의심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역적 유성한이 한번 나오자 국론이 물끓듯 하였는데 본원(本源)을 거슬러 올라가자 옛 역적이 더욱 드러났으니, 어찌 황천(皇天)·후토(后土)가 국법이 오랫동안 펴지지 못한 데 크게 분노하여 이 전신(傳神)·호법(護法)한 역적으로 하여금 그 흉한 지류(支流)와 남은 무리들을 드러내게 하여서 끝내 도피할 수 없다는 이치를 밝힌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 군신 상하가 이런 의리를 강명(講明)한 것이 모두 몇 차례 됩니다. 전후의 연석(筵席)에서 천신(賤臣)이 울먹이며 진달하였고 전하께서는 울먹이며 답하기를 10여 년 동안을 하루같이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기유년 원(園)을 옮길 때 어제(御製) 지문(誌文)을 새겨넣기에 미쳐 신이 일을 감독하는 신하로서 이 역사에 참여하였던 까닭에 또 다시 한번 분명하게 진달하였는데도 남은 회포가 쌓인 지 4년이 되었기에 이제 이 기회를 인하여 감히 전에 드렸던 말씀을 다시 드립니다.

삼가 생각건대, 우리 장헌 세자(莊獻世子)께서는 성인의 영명(英明)한 자질로서 영고(英考)의 거룩하신 가르침을 받들어 학문에 부단히 힘쓰고 심성을 닦는 공부가 날로 진보하였으며, 하루에 세 번 문안드리는 예(禮)를 이부자리와 수라 사이에 게을리하지 않으셨고 빛나는 덕성이 저절로 외모에 나타났습니다. 연석(筵席)에 임해서 어려운 문제를 제기하여 슬기롭게 해석함에 여러 유신(儒臣)들이 문득 굴복하였고, 아랫사람을 대함에 엄하면서도 온화하여 근시들도 깊은 속마음을 엿보지 못하였으며, 전궁(殿宮) 안은 지극히 화락하고 강역(疆域) 안은 화기(和氣)가 충만하였습니다. 대리(代理)하라는 명을 받들게 되어서는 갖은 어려움이 이를 것을 생각하시어 밤낮으로 공경하고 두려워하여 모두 성헌(成憲)을 따랐으니, 모든 신서(臣庶)치고 그 누가 목을 빼고 목숨을 바치려는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그런데 유독 김상로(金尙魯)홍계희(洪啓禧)는 효경(梟獍)같은 마음으로 감히 어두운 곳에서 귀역(鬼蜮)같은 꾀를 쌓아오다가 이때가 틈탈 만하다고 하고 이 기회에 도모할 만하다고 하면서 먼저 대리(代理)하는 일로부터 벌판의 불길처럼 맹위를 떨칠 계제로 삼고 몰래 틈 있는 곳을 엿보아 보호하는 사람을 원수로 보았습니다. 이로부터 옆에서 엿보는 것이 더욱 심해지고 수단이 점차 교묘해져 몰래 드러나지 않는 후원(後援) 세력과 결탁하고 좌우에 흉당(凶黨)을 깔아 놓아 없는 것을 가리켜 있다고 말하여 유언비어가 헤아리기 어려웠으며, 거짓을 가지고 진실로 만들어 위험한 칼날이 더욱 급해졌습니다.

대개 무진년·기사년 사이부터 무인년·기묘년 즈음에 이르기까지 화를 빚어내지 않는 날이 없었는데, 복강(復講)하는 청을 다시 더한층 관건으로 삼아서 한두 대신과 중신의 충정어린 마음으로 하여금 끝내 그 보익(輔翼)하는 공(功)을 이루지 못하게 하였으니, 하늘이여 어찌 차마 이렇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대저 김상로문녀(文女)를 끼고서 국본(國本)을 흔드는 데에 쓰지 않은 계책이 없었고 하지 않은 일이 없었는데, 함께 꾀한 자는 홍계희였으니, 김상로가 바로 홍계희이며 홍계희가 바로 김상로입니다. 홍계희는 또 천만 가지 죄악도 오히려 부족하게 여겨 극악한 역적 나경언(羅景彦)을 꾸며서 곧바로 급변(急變)을 도출하였으며 심지어 마중나가자는 말까지 앞장서 일으켜 기어이 드러낼 계책을 삼았으니, 천고의 흉악을 다 모으고 만대의 역적을 통틀어도 어찌 홍계희 같은 역적이 있겠습니까.

병신년 가을에 역적 나경언의 집을 못으로 만들 때에 신의 동생 서유방(徐有防)이 승지로서 근본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논의를 가지고 임종시에 우러러 아뢰었으니 지금 생각해 보아도 심골(心骨)이 모두 떨립니다. 아, 김양택(金陽澤)·홍인한(洪麟漢)은 삼포(三浦)에서 돛을 달고 뱃놀이를 하였고 역적 구선복(具善復)은 그날 아주 흉패한 일을 하였으니, 어찌 차마 그런 일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도 그들의 흉한 마음에는 바야흐로 스스로 변명할 수 있는 때라고 여겼기 때문에 목석(木石)도 차마 못할 일을 그들은 차마 하였고, 개·돼지도 차마 못할 일을 그들은 차마 하면서 천망(天網)도 없앨 수 있다고 말하고 인기(人紀)도 끊을 수 있다고 말하였으나 필경에 홍인한은 역적으로 죽고 구선복은 시가지에서 형벌을 받았습니다. 비록 본죄(本罪)를 바루지는 못하였으나 다같이 천주(天誅)와 관계되는 것입니다. 고금에 없는 역적 김하재(金夏材)가 역시 김양택의 집안에서 나왔으니, 이것은 천지가 뒤따라 죽이고 귀신이 뒤따라 죽인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이 삼가 연석에서의 대화를 보건대, 전하께서 오열하며 하교한 것이 하나는 ‘차마 말하지 못한다.’는 것이고, 하나는 ‘선세자(先世子)의 마음을 상할까 염려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차마 말할 수 없다.’는 한 단락은 신이 이미 앞에서 반복하고 이어서 반드시 토벌하는 것이 천리라는 것을 말하였습니다. ‘선세자의 마음을 상할까 염려된다.’는 하교는 신이 비록 우매하더라도 어찌 우러러 인정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경중으로 논한다면 이는 오히려 전하의 사정(私情)에 속하는 것으로, 천만세의 지극히 바르고 지극히 큰 공공(公共)된 의리에 비추어 볼때 어떻겠습니까.

아, 정휘량(鄭翬良)신만(申晩)의 무리에 대한 정절(情節)은 계묘년 겨울 중신(重臣) 윤숙(尹塾)이 상소하여 성토한 후에 삼사(三司)의 논의가 또 빈연(賓筵)에서 나왔는데, 전하께서 울먹이면서 ‘차마 들을 수 없다.’라고 하교하고 신 역시 그때에 울먹이면서 분명하게 진달했던 것입니다.

아, 저 두 역적이 역적 신광수(申光綏)와 긴밀히 관계를 맺고 정처(鄭妻)와 표리(表裏)가 된 것은 진흙탕 속에서 싸우는 짐승과 같았습니다. 이에 홍계희의 사주를 받아서 번갈아 흉서(凶書)를 낸 자가 있었고 김상로의 형세에 의지하여 전석에서 차마 아뢰는 자가 있었으며, 어그러진 말을 포고하고 소매 속에 감추어서 화답한 데 이르러서는 극에 달했습니다. 대개 이 정휘량신만 이하의 여러 적은 혹은 근본이, 혹은 여줄가리가, 혹은 부리가, 혹은 가지가 되기도 하면서 모두 김상로·홍계희와 관통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우리 선대왕의 전후 연교(筵敎)가 해와 별처럼 밝아 길가는 사람의 귀와 눈에도 분명하였으니 이는 비단 전하의 역신(逆臣)일 뿐만이 아니라 실로 이는 우리 선대왕과 우리 선세자의 역신인 것입니다. 어찌 빨리 천토(天討)를 행하여 밝게 오르내리는 신령을 위로하지 않겠습니까.

영남(嶺南)의 1만여 명의 장보(章甫)·진신(搢紳)이 이에 충분(忠憤)을 품고 서로 이끌고 와 대궐 문을 두드리며 진달한 것은 바로 군신 상하가 강명(講明)해야 할 큰 의리인 것입니다. 영남이 이와 같으니, 한 나라를 알 수가 있습니다. 한 나라가 함께 분개하여 함께 성토하는 것을 전하께서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아, 선세자의 지극한 덕과 순수한 행실은 비록 신의 집안에서 보고 기억하는 것만으로 말해도 이렇습니다.

신의 할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는 척연(戚聯)으로 조금 가까웠으므로 정성 성모(貞聖聖母)의 어찰(御札)이 때때로 내렸는데 문득 ‘세자의 출천지효는 고금에 견줄 자가 드물다.’라고 한 말씀이 지면에 가득 찼었습니다. 신의 할아버지가 매양 받들어 읽으면서 기쁨이 안색에 넘쳐 집안 식구들에게 보여주며 서로 경하하였습니다. 신의 아버지가 과거에 급제하여 처음 벼슬길에 나온 이후로 여러 차례 시강원 관원이 되었는데, 금직(禁直)에서 돌아오면 문득 신의 할아버지에게 말하기를 ‘아무 날 서연(書筵)에서는 어떤 경서를 진강(進講)하였는데 이처럼 철저하게 통달했고, 아무날 소대(召對)에는 어떤 책을 진강하였는데 이처럼 바로 깨달으시었으며, 기삼백(朞三百)의 역법(曆法)에 이르러서는 노숙한 선비들도 역시 풀기가 어려운데 환하게 통달하시어 시원스레 막힌 것이 없으시니, 국가의 만년 터전이 지금부터 시작되었습니다.’라고 하였는데, 신은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옆에서 익히 들어 어제의 일처럼 또렷합니다.

정축년 국휼(國恤) 때 신의 집안 여러 족속이 집사(執事)로 많이 입참하였는데 안색의 슬퍼함과 반벽(攀擗)의 슬퍼함을 좌우 사람이 차마 우러러 볼 수가 없었습니다. 선대왕께서 눈물을 뿌리면서 하교하시기를 ‘슬피 통곡하는 소리를 내가 차마 들을 수가 없다. 이렇게 하면 장차 어떻게 몸을 지탱하겠는가. 그대들이 이를 알아서 자주 죽을 마시도록 권유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신의 가족이 돌아와 신에게 전해 주었던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외고 있으며 일찍이 연석에서 이 사실을 아뢰었습니다. 또 원(園)을 옮길 때 집불(執紼)하면서 한 말은 실제 들은 바에 의해서 눈물을 섞어가면서 공손히 썼던 것입니다.

아, 선대왕의 자애와 어지심은 하늘과 같이 끝이 없고 선세자의 달효(達孝)와 깊은 학문은 신명에게 질정할 만한데, 흉도(凶徒)와 역당(逆黨)이 몰래 이루고 드러나게 날뛰는 것을 말미암아 마침내 천지에 끝없는 아픔을 이르게 했습니다. 말이 여기에 미치니 오장이 찢어질 듯합니다. 아, 하늘이여, 어찌 차마 이런 일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아, 《명의록(明義錄)》은 우리 나라의 《춘추(春秋)》입니다. 을미년·병신년의 역적은 바로 무진년·기사년의 역적이니, 을미년·병신년의 역적을 다스리는 것은 바로 무진년·기사년의 역적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성상의 미지(微旨)가 이 글에 부쳐져 있음을 신은 잘 알고 있습니다. 조정에 있는 신하들 역시 어찌 신이 알고 있는 바를 모르겠습니까. 대개 징토(懲討)하는 의리는 하나일 뿐입니다. 무진년·기사년에서 무인년·기묘년이 되었고 무인년·기묘년에서 을미년이 되고 병신년이 되었는데, 비록 1천 번 변하고 1백 번 괴이하게 얼굴 모습을 바꾸더라도 솜씨와 맥락은 한 판(板)에서 찍어낸 것과 같고 같은 수레바퀴 자국과 같아서 그 죄를 다스리는 것과 밝히는 것은 한가지 의리입니다. 이 한 ‘의(義)’ 자는 포괄하는 바가 매우 커서 성상의 미지(微旨)가 부쳐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급선무는 책을 짓는 한 가지 일보다 더 나은 것은 없고 책을 짓는 요령은 또 주토(誅討)하는 본의(本意)을 밝히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흉도들의 유래를 환하게 밝히고 주토하게 된 까닭을 분명하게 보여서 빨리 역적 김상로를 노적(孥籍)하라는 청을 윤허하시고, 아울러 정휘량신만 이하 여러 적에게 해당되는 율(律)을 쾌히 시행하소서. 인하여 한 부(部)의 책을 엮어내도록 명하여 대서 특필하기를 ‘을미년·병신년 이래 여러 역적 가운데서 아무 역적은 아무 죄로 죽였는데 그 근본은 모년의 역적이었고, 아무 역적은 무슨 죄로 추탈(追奪)하였는데 그 실제는 모년의 흉적이다.’라고 하여, 팔도에 전하고 만세에 전하여 의리의 근원과 목욕하고 토죄한 대의(大義)를 환히 알게 한다면 어찌 성대하지 않겠습니까.

아, 유성한(柳星漢)의 흉악한 정상은 조정 신하들의 소계(疏啓)에 밝게 나타나 있으므로 신은 다시 진달하지 않겠습니다. 이 적은 바로 무진년·기사년·을미년·병신년에 설치던 시랑(豺狼)의 종자인데, 잗다랗고 비천한 성한 같은 자가 역적질을 오히려 이와 같이 했으니, 의리가 막히고 인심이 빠져 들어간 것이 어찌 이런지경에까지 이르렀단 말입니까. 오래지 않아서 역적 윤구종(尹九宗)이 뒤따라 일어나 한 조각을 이루어 더욱 교활하고 더욱 참람하였는데, 이는 모두 흉도와 역당이 가면 갈수록 치열하게 서로 규합해 맺어 전혀 두려워할 줄을 모른 소치입니다. 어찌 전하께서는 아직껏 삼사(三司)의 청을 한번 윤허하시어 사방의 미혹됨을 밝히기를 아끼십니까. 아, 크게 밝은 것은 하늘의 이치이며 속이기 어려운 것도 하늘의 이치입니다. 성한구종 두 역적이 나옴에 하늘이 추토(追討)를 명한 것인데, 전하께서 만약 차마 말할 수 없고 감히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끝내 빨리 거행하지 않는다면 이 역적들은 마침내 율(律)에서 도피하여 이치가 징험될 때가 없게 될 것이니, 천하에 어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통분하고 울적함이 극에 이르러 전하를 위해 거듭 아룁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경이 지난날 보고 들은 것을 진달하여 연석(筵席)에서 다 털어놓지 못한 속마음을 일일이 들어 말하고 인하여 책을 편찬하여 펴 보일 것을 청하였다. 대체로 차마 말을 할 수 없고 말하기가 지극히 어려운 것을 형용하고 분석하는 즈음에 자세히 하다가 자세히 하지 못하면 도리어 막히고 어둡게 되며, 간략하게 하고자 하다가 간략하게 하지 못하면 근엄함을 잃을까 염려된다. 설사 대성인(大聖人)의 대수필(大手筆)로서 나를 인정해 주고 나를 죄를 주는 것을 천하 만세의 공의(公議)에 부치고자 한다 하더라도 결코 이 일에는 감히 한 마디 말이나 한 글자도 쓰지 못할 것을 알 수 있는데, 더구나 나의 경우이며, 또 나를 섬기는 자의 경우에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경은 모름지기 한 부(部)의 《인경(麟經)》070) 을 보라. 그 수십 가지 대의(大義)는 은미하면서도 완곡하고 완곡하면서도 정요하여 좁은 소견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가 없고 깊이 연구하고 힘써서 탐구한 연후에야 겨우 해와 별처럼 환하게 빛남을 엿볼 수가 있으니, 이것은 인경이 성인의 수필(手筆)인 까닭이다. 아, 《명의록》을 개국(開局)하여 편찬하는 것을 어찌 그만두겠는가. 내가 비록 배우지 못하였으나 이 의리는 성인에게서 취한 것이다. 어찌 많은 말을 하겠는가."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5책 35권 4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306면
  • 【분류】
    정론(政論) / 사법(司法)

  • [註 069]
    육아장(蓼莪章) : 《시경(詩經)》 소아(小雅)의 편명. 이는 효자가 부모를 제대로 봉양하지 못한 것을 서글퍼하여 지은 것이다.
  • [註 070]
    《인경(麟經)》 : 《춘추(春秋)》.

○司直徐有隣上疏曰:

臣之事我殿下, 粤自待罪春坊, 于今二十餘年矣。 瞻依日月之末光, 奔走簿書之期會, 蠡管之見, 初未敢窺測於天地之大、河海之深, 而每從機務酬接之暇, 經史討論之餘, 竊仰眉少舒, 慕不匱, 《蓼莪》廢讀之意, 錦玉靡安之情, 未嘗不溢於動靜之間、辭令之外。 殿下此心, 實屋漏之所臨, 神明之所監也。 凡今北面於殿下之廷者, 不知殿下之心, 則非殿下之臣也, 一日忘殿下之心, 則非殿下之臣也。 然而殿下不忍言不敢道, 殿下之臣, 亦從以不忍言不敢道。 惟此不忍言不敢道, 非或暫忽於至嚴、至敬、至重、至大, 通天地亘古今, 不泯不墜之義理而然也。 乃者, 凶賊闖發, 倫綱斁絶, 大東衣冠之倫, 擧將陷於夷狄禽獸之域。 大小之臣, 不得不以不忍言不敢道之言, 日聞於殿下之聽, 是豈得已也哉? 昊天不忒, 其理孔昭, 忠有終伸之日, 逆無竟逭之倖, 如執左契, 無遠不驗。 忠良知所勉, 亂逆知所懼, 天之所以仁愛於人者, 不可誣。 觀於某年秉忠之臣, 擧皆旌贈, 榮及子孫, 則不忒之理, 斯尤可驗, 而獨彼倖逭之徒, 臥斃牖下, 自同無故, 此忠臣、義士所以腐心痛骨, 如不欲生, 不能無疑於必然之理也。 賊一出, 國論如沸, 推本溯源, 舊逆愈彰, 豈非皇天、后土, 赫然奮怒於王章之外屈, 使此傳神、護法之逆, 露其支流餘裔之凶, 以昭夫必無終逭之理也耶? 嗚呼! 君臣上下, 講明此義理者, 凡幾遭矣。 前後筵席之上, 賊臣掩抑而陳之, 殿下掩抑而答之, 十餘年來, 一如一日, 而逮夫己酉遷園時御製誌文之入刻也, 臣以敦匠之臣, 與聞斯役, 又復一番洞陳, 而餘懷結轖, 四載于玆, 今因是會, 敢申前說。 恭惟我莊獻世子, 以上聖生知之質, 承英考遇物之誨, 學懋時敏, 敬篤日躋, 三朝之禮, 罔懈於寢膳, 晠德之光, 自著於溫文。 臨筵發難, 睿解輒屈群儒, 莅下莊穆, 暬御莫窺淵襟, 殿宮之中, 至樂融洩, 疆域之內, 和氣洋溢。 及奉舜攝之命, 益念周艱之投, 夙夜寅畏, 率由成憲, 凡厥臣庶, 孰無延頸願死之心, 而獨奈梟獍之腸, 敢蓄暗地鬼蜮之謀, 謂是時可乘, 謂是機可圖, 先從代理之擧, 把作燎原之階, 密占間隙之地, 仇視保護之人。 自玆以後, 旁伺益甚, 手段漸巧, 結幽陰之奧援, 布左右之凶黨, 指無謂有, 而飛言罔測, 將虛做實, 而危鋒轉急。 蓋自戊辰、己巳之間, 迄于戊寅、己卯之際, 莫非醞釀之日, 而復講之請, 又爲一層關鍵, 使一二大臣重臣之丹心赤血, 竟莫遂其輔翼之功, 天乎天乎, 胡寧忍此? 大抵之挾文女搖國本, 無計不至, 無事不有, 而與之謀之者也, 則便也, 便也, 而又千罪萬惡之猶自不足, 粧來劇賊景彦, 挑出卽地急變, 甚至倡起西郊迎候之說, 以爲必彰乃已之計, 集千古之凶, 窮萬代之逆, 亦安有如之凶逆哉? 丙申秋賊家潴澤時, 臣弟臣有防, 以承宣, 亦將溯本之論, 仰徹紸纊之下, 至今思之, 心骨俱顫。 噫嘻! 陽澤麟漢三浦張帆之遊, 賊當日窮凶絶悖之擧, 是可忍也, 是可忍也, 而渠輩凶腸, 方且以爲自明之秋, 故木石之所不忍, 而渠則忍之, 狗彘之所不爲, 而渠則爲之, 謂天網可滅, 謂人紀可絶, 而畢竟以逆斃, 藁街。 雖不明正本罪, 均是自干天誅, 而振萬古所無之賊, 亦出陽澤之家, 此非天地之所追誅, 鬼神之所追戮乎? 臣伏見筵話, 殿下之嗚咽下敎者, 一則曰不忍言也, 一則曰恐傷先世子之心也。 不忍言一段, 臣旣反覆於前, 繼之以必討之天理, 而若夫恐傷先世子之心之敎, 臣雖愚迷, 豈不仰認, 而論以輕重, 此猶屬殿下之私情也。 其於千萬世至正至大之公共義理, 何哉? 噫嘻! 輩情節, 癸卯冬重臣尹塾陳疏聲討之後, 三司之論, 又發於賓筵, 殿下爲之掩抑, 敎之以不忍聞, 臣於伊時, 亦有所掩抑洞陳者矣。 噫! 彼兩賊之綢繆逆綏, 表裏妻, 便同泥中之鬪獸, 而於是乎有受嗾, 而迭出凶書者, 倚勢而忍奏前席者, 以至告布之悖說, 和應之袖藏而極矣。 蓋此以下諸賊, 或源或委, 或根或枝, 莫不條貫於, 而惟我先大王前後筵敎, 昭揭日星, 塗人耳目, 則此非特我殿下之逆臣, 實是我先大王曁我先世子之逆臣也。 豈可不亟行天討, 以慰我於昭陟降之靈乎? 嶠以南萬餘之章甫、搢紳, 抱玆忠憤, 相率叫閽而所陳者, 卽是君臣上下所講明之大義理也。 嶠南如此, 一國可知。 一國之所共憤所共討者, 殿下可無從耶? 嗚呼! 先世子至德純行, 雖以臣家之所覩記言之, 臣祖在時, 戚聯稍近, 貞聖聖母御札, 有時下臨, 而輒以貳極出天之孝, 今古罕比, 亹亹十行, 動盈紙面。 臣祖每一擎讀, 喜溢於色, 出示家人, 相對慶賀。 臣父釋褐以後, 累叨宮銜, 歸自禁直, 輒語臣祖曰: "某日書筵, 進講某經, 而有如此窮格, 某日召對, 進講某書, 而有如此悟契, 至如朞三百之曆法, 老師宿儒, 亦所難解, 而融會貫通, 沛然無礙, 國家萬年之基, 其始自今。" 臣雖在弱齡, 從傍慣聽, 歷歷如昨日事。 丁丑國恤時, 臣家諸族, 多以執事入參, 顔色之慼, 攀擗之哀, 左右之人, 不忍仰視。 先大王揮淚而下敎, 若曰: "呼號之聲, 予不忍聞。 若是而將何以支乎? 爾等知此, 頻勸粥飮可也。" 臣之諸族, 歸傳於臣, 尙今記有而莊誦, 曾於筵席, 有所提達。 亦於遷園執紼之詞, 據其實聞, 和淚敬書。 嗚呼! 先大王止慈止仁, 與天無極, 先世子達孝邃學, 可質神祗, 而緣凶徒逆黨之暗售顯逞, 竟致天地罔極之痛。 言之及此, 五內欲裂。 天乎天乎! 胡寧忍此? 噫! 《明義錄》, 我東之《春秋》也。 乙丙之逆, 卽戊、己之逆也, 治乙、丙之逆, 乃所以治戊、己之逆也。 聖上微旨之寓在此書, 臣之所稔知, 而在廷之臣, 亦豈不知臣之所知也? 蓋懲討之義, 一而已矣。 自戊辰、己巳, 而爲戊寅、己卯, 自戊寅、己卯, 而爲乙未, 爲丙申, 雖其千變百怪, 換頭幻面, 而手勢也脈絡也, 如印一板, 如共一轍, 其所以治之也、明之也, 同一義也, 此一義字, 所以包括許大, 而聖上微旨之所以寓也。 然則在今日急先之務, 莫過於撰書一事, 而撰書之要, 又莫過於明誅討之本意也。 伏願殿下, 洞劈凶逆之所由來, 明示誅討之所以然, 亟允賊孥籍之請, 竝將以下諸賊, 夬施當律, 仍命構出一部之書, 大書特書曰: "乙丙以來諸賊中, 以某罪誅戮, 而其本則某年之逆也, 某逆以某罪追奪, 而其實則某年之凶也", 傳之八域, 垂之萬世, 使之瞭然知義理之源頭, 沐浴之大義, 則豈不盛哉, 豈不盛哉? 噫嘻! 星漢之凶情逆節, 昭布於廷臣疏啓, 臣不架陳。 此賊, 卽一戊、己、乙、丙之豺狼種子, 而幺麿卑微之如星漢者, 作逆作賊, 尙敢乃爾, 義理之堙塞, 人心之陷溺, 胡至此極? 曾未幾何, 賊踵發, 打成一片, 愈狡愈憯, 此莫非凶徒逆黨, 去益熾張, 互相紏結, 睯不知畏之致。 何殿下, 尙靳一允於三司之請, 以昭四方之惑也? 嗚呼! 孔昭者, 天理, 難誣者, 天理。 兩賊之出, 天所以命行追討, 而殿下若以不忍言不敢道之故, 終不之亟擧, 則是逆有終逭之律, 而理無可驗之時, 天下豈有是也? 痛迫憤鬱之極, 重爲殿下誦之。

批曰: "卿誦陳昔日覩聞, 歷擧筵席未罄之蘊, 而仍請編書敷示。 大抵言之不忍, 說之至難; 形容剖析之際, 欲詳而不能詳, 則反致堙晦; 欲約而不能約, 則恐失謹嚴。 假使大聖人大手筆, 知我罪我, 雖欲一付之於天下萬世之公議, 決知於此, 不敢措一辭而下一字。 況乎子乎, 又況乎事予者? 卿須看一部《麟經》。 其數十大義, 隱而婉, 婉而微, 有非管蠡所可迎刃而解者, 硏窮力賾然後, 僅或窺其日星之炳烺, 此所以《麟經》爲聖人之手筆也。 噫! 《明義錄》之開局撰次, 豈得已也? 予雖不學, 斯義則竊取於聖人, 予何多誥"


  • 【태백산사고본】 35책 35권 4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306면
  • 【분류】
    정론(政論) / 사법(司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