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의금부사 홍억 등이 윤구종의 죄를 아뢰니 친국을 준비하게 하다
판의금부사 홍억(洪檍) 등이 면대(面對)를 청하니, 시임 대신과 원임 대신, 각신(閣臣)과 의금부의 여러 당상관, 삼사(三司)의 여러 신하들을 불러 접견하였다. 홍억 등이 아뢰기를,
"아까 ‘신하로서의 절개를 지킬 마음이 없었다.[無臣節]’는 세 글자를 가지고 반복하여 따져 물으니, 함부로 부도한 말을 하면서 ‘어제의 공초 중에 신하로서의 절개를 지킬 마음이 없었다고 한 것은 바로 제가 의릉(懿陵)에 신하 노릇을 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극도로 흉악한 말을 들으니, 마음이 오싹하고 뼈가 떨려서 차마 공초에 쓰지도 못하였고 또 감히 준례에 따라 아뢸 수도 없었기에 감히 이렇게 면대를 청한 것입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이게 무슨 흉악한 말인가. 이게 무슨 흉악한 말인가. 천지간의 사람으로서 어찌 이처럼 극악한 역적이 있단 말인가. 더없이 존엄한 곳에 대해 함부로 말하고, 심지어 임금을 욕하는 말까지 하였으니, 이 흉악한 말을 들음에 내 마음의 분함이 어떠하겠는가. 하늘이 낸 선왕(先王)의 효성과 우애는 동방에 사는 자로서 누군들 흠앙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가 어찌 감히 이토록 흉악한 말을 하는가. 하늘에 계신 선왕(先王)의 영혼이 밝게 내려다보신다면 놀라움과 통분함이 어떠하겠는가. 내가 선왕의 마음을 본받아 몸소 조사하는 데 임하여 즉시 사시(肆市)의 벌을 내리는 것이 정(情)과 법에 당연하지만 내일은 바로 영흥(永興)의 본궁(本宮)에 작헌례(酌獻禮)를 거행하기 위하여 재계하는 날이다. 이러므로 주저하는 것이다. 경들의 뜻은 어떠한가?"
하고, 영의정 홍낙성(洪樂性) 등은 아뢰기를,
"내일은 재계하는 일이 이미 소중하니, 비록 오늘이라도 결안(結案)을 받아 거행할 수 있습니다. 또 몸소 신문하지 않고 위관(委官)이 거행한다면 야심(夜深)한 때까지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채제공(蔡濟恭)은 아뢰기를,
"유성한(柳星漢)과 윤구종(尹九宗) 두 역적의 말이 지존(至尊)한 자리에까지 범한 것은 똑같습니다. 금일 신하된 자로서 어찌 이 두 역적을 가지고 미세한 차등이 있다고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상이 홍억(洪檍)에게 이르기를,
"죄인이 공초를 올릴 때에 그 안색을 살펴보고 그 말을 판단해 볼 때 거짓으로 미친 체한 것이 참으로 의심할 바 없더냐?"
하니, 홍억 등이 대답하기를,
"조금도 겁내는 뜻이 없고 현저하게 독한 기색이 있으니, 확실히 병을 핑계한 것이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선조(先朝)께서 신묘년058) 5월 전설사(典設司)에서 재숙(齊宿)할 때에 참으로 몸소 국문한 예가 있었지만 금번은 본궁(本宮)에 작헌례(酌獻禮)를 처음 행하는 일이니 더욱 신중하게 해야 할 점이 있고, 또 추국(推鞫)은 법의 뜻이 매우 가볍지만 지금은 사체가 특별하기 때문에 하문하는 것이다."
하니, 홍억이 아뢰기를,
"보잘것없는 한 명의 죄수는 곧 이미 승복한 역적인데, 어찌 꼭 몸소 국문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였다. 정창순(鄭昌順)이 아뢰기를,
"숙종(肅宗) 시대 경신년059) 의 옥사에서도 또한 몸소 국문하지 않았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국청을 설치하는 것은 다만 결안(結案)을 받기 위한 것일 뿐이니, 재계하는 날을 지낸 뒤에 법을 적용해도 마찬가지다. 내가 어찌 편한 것을 취하여 위관(委官)을 보내 대신 거행하게 하겠는가. 다만 재계하는 날은 더욱 특별히 소중하니, 경들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추국을 거행하고 즉시 결안(結案)을 받아 아뢰어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4책 34권 51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297면
- 【분류】왕실(王室) / 사법(司法) / 정론(政論)
○判義禁府事洪檍等請對, 召見時ㆍ原任大臣、閣臣、義禁府諸堂、三司諸臣。 檍等奏曰: "俄者以無臣節三字, 反復詰問, 則肆發不道之言, 以爲昨供中無臣節云者, 卽渠於懿陵, 有不臣之心云。 聞此窮凶絶悖之說, 心寒骨顫, 不忍筆之於草供, 又不敢循例修啓, 敢此請對矣。" 上曰: "此何凶言也? 此何凶言也? 頂天立地, 豈有如許劇逆乎? 莫尊、莫嚴之地, 肆然語犯, 至有詬天之說。 聞此凶言, 予心之痛迫, 當如何? 先王出天之孝友, 東土含生, 孰不欽仰, 而渠何敢發此凶言耶? 先王在天之靈, 於昭降監, 其所驚痛, 當如何? 以予體先王之心, 躬臨盤問, 卽施肆市之典, 情文卽然, 而明日卽永興本宮酌獻禮齋日也。 以是趑趄。 卿等之意何如?" 領議政洪樂性等曰: "明日虔齋, 旣有所重, 則雖今日, 可以捧結案擧行。 且旣不親問, 則委官擧行, 不至夜深矣。" 蔡濟恭曰: "星、九二賊之語犯至尊之地則一也。 爲今日臣子者, 豈可以此兩賊, 分別於錙銖之間乎?" 上謂洪檍曰: "罪人納供之際, 驗其色辨其辭, 其病之佯狂, 果無疑乎?" 檍等對曰: "少無恇怯之意, 顯有狠毒之色, 的是托疾也。" 上曰: "先朝辛卯五月, 典設司齋宿時, 果有親鞫之例, 而今番則本宮酌獻禮, 係是初行之事, 尤有所愼重者。 且推鞫法意甚輕, 今則事體自別, 故所以俯詢矣。" 檍曰: "幺麽一囚, 卽是已承款之賊, 何必親問乎?" 鄭昌順曰: "肅廟朝庚申獄, 亦不爲親問矣。" 上曰: "設鞫, 只爲捧結案而已, 則過齋後用法一也。 予豈取便, 而遣委官替行乎? 但齋日所重尤別, 不可不依卿等言。 以推鞫擧行, 卽捧結案以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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