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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34권, 정조 16년 3월 15일 갑신 3번째기사 1792년 청 건륭(乾隆) 57년

우의정 박종악이 무토면세외 여러 문제를 아뢰다

우의정 박종악이 아뢰기를,

"각 궁방(宮房)의 무토면세(無土免稅)027) 는 호조에 납부하면 호조에서 각 궁방으로 나누어주는 것이 원래 규정인데, 궁속들은 혜택만 받으려 하고 해조(該曹)는 수송하는 것을 싫어하여 궁방이 직접 밖에서 받도록 하였으니, 밖에서 받는다는 것은 궁속들이 창고 뜰에서 받아가는 것입니다. 매 석(石)마다 더 받는 것이 매우 많아서 백성들이 그 피해를 받고 있으니, 엄하게 금단(禁斷)하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백성들은 궁결(宮結)의 세금 징수에 대해 몹시 고통스럽고 가련하게 되는 큰 폐단으로 여기고 있다. 즉위한 첫해에 윤음을 반포하면서 첫번째로 이 일을 제기하고 선왕께서 ‘살을 떼어낸들 무엇이 아깝겠는가.’라고 하신 전교를 되뇌이면서 특별히 궁에서 사람을 보내 세금을 받는 규정을 없애고 모두 호조에 수납토록 하여 호조에서 각 궁방(宮房)에 나누어 주되, 한결같이 선혜청(宣惠廳)에서 각 관청에 공물을 나누어 주는 법을 따르도록 한 규정이 금석처럼 굳건하고 명백하게 실려 있다. 지금 경의 말을 듣건대, 이른바 창고에서 직접 받는다는 말은 천만 놀라운 일이다. 명색은 비록 받아서 준다고 하지만 직접 수납하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 호조의 장관이 만약 살피고 경계하였다면 어찌 이런 일이 있었겠는가. 병신년028) 규정을 정한 이후로 창고에서 받아가는 법을 처음으로 시작한 해당 판서와 당상은 파직시키고 그후 따라서 인습한 판서와 당상관은 하나같이 모두 중하게 추고하라. 최초로 간사한 꾀를 부린 궁속(宮屬)은 해조(該曹)로 하여금 엄하게 조사하고 규명해내어 법에 의해 엄히 다스리라. 이러한 뜻으로 무토궁결(無土宮結)029) 이 있는 각도에 행회(行會)하여 다시는 국가의 법을 범하지 말게 하라."

하였다. 종악이 또 아뢰기를,

"안흥진(安興鎭)은 바로 강화도 외곽을 지원하는 곳이고 해로(海路)의 길목이니 국경 방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그런데 지금 오래 근무한 자를 첨사(僉使)로 임명하여 보내기 때문에 호령이 엄하지 않고 가렴주구가 너무 심합니다. 신의 뜻으로는 이력이 있는 무관을 가려 보내어 성과를 거두도록 하는 것이 합당할 듯하나 오래 근무한 자가 들어갈 자리가 적으니 또한 고민스럽습니다. 다른 도에 이력이 있는 자리와 서로 교환하면 양편이 다 편할 것이니, 해조(該曹)로 하여금 품의 처리하게 하소서."

하니, 따랐다. 종악이 또 아뢰기를,

"해미(海美)의 방선(防船)과 병선(兵船)이 정박하는 선창은 조수(潮水)가 물러가면 육지가 되기 때문에 매번 수군(水軍) 조련시에는 경내의 장정들을 동원하여 포구를 파낸 뒤라야 겨우 겨우 배를 끌어내리니, 백성의 피해가 매우 큽니다. 만일 급한 일이 있을 경우 어떻게 해볼 수 없는 형편입니다. 선창에서 10리 거리 내인 홍주부(洪州府)의 한 면에 선창을 만들기에 합당한 곳이 있으니, 그곳을 해미에 떼어 붙이소서."

하니, 따랐다. 얼마 안 되어 감사가 불편하다고 말함으로 인하여 도로 취소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4책 34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282면
  • 【분류】
    농업(農業) / 재정(財政) / 군사(軍事) / 교통(交通)

  • [註 027]
    무토면세(無土免稅) : 호조에서 거두어들일 토지세를 궁방이나 관아에 떼어주는 것.
  • [註 028]
    병신년 : 1776 영조 52년.
  • [註 029]
    무토궁결(無土宮結) : 궁방에 토지의 수세권(收稅權)을 내어준 전지(田地).

○右議政朴宗岳奏言: "各宮房無土免稅, 收納於戶曹, 自戶曹分給各宮房, 自是定例, 而宮屬輩欲其沾漑, 該曹厭其輸送, 直爲外受, 外受者宮屬輩, 自倉庭受去。 每石加捧甚多, 民受其弊, 請嚴加禁斷。" 上曰: "小民之於宮結徵稅, 爲切苦切矜之大弊巨瘼。 初元, 頒綸首提是事, 誦先王肌膚何惜之敎, 特罷宮差捧稅之規, 皆令竝納於度支, 自度支分給各宮房, 一倣惠廳分給貢物於各貢之法意, 事目昭載, 堅如金石, 則今聞卿言, 所謂倉底外受之說, 萬萬駭然。 名雖捧給, 無異直納, 度支之長, 若能察飭, 豈有是也? 丙申定式以後, 倉底外受倡始之當該判堂罷職, 其後循襲之判堂, 一竝從重推考。 最初作奸之宮屬, 令該曹嚴査究出, 照法痛繩。 以此行會, 無土宮結所在各道, 俾勿更犯邦憲。" 宗岳又奏言: "安興鎭, 乃是沁都外援, 海路咽喉, 其爲關防, 不輕而重。 今以久勤差送僉使, 故號令不嚴, 誅求太甚。 臣意則擇送有履歷武弁, 責其成效合宜, 而久勤窠窄, 亦可悶。 以他道履歷窠相換, 不害爲兩便, 請令該曹稟處。" 從之。 宗岳又奏言: "海美防、兵船留泊之船艙, 潮水退縮成陸, 故每水操時調發, 闔境民丁, 掘浦然後僅僅曳下, 民弊甚大。 脫有緩急, 勢莫奈何。 自船艙相距十里內, 洪州府一面, 有可合船艙處, 請割屬海美。" 從之。 尋因道臣言不便, 還寢。


  • 【태백산사고본】 34책 34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282면
  • 【분류】
    농업(農業) / 재정(財政) / 군사(軍事) / 교통(交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