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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33권, 정조 15년 11월 8일 기묘 5번째기사 1791년 청 건륭(乾隆) 56년

수찬 신헌조가 상소하여 권일신·이승훈을 엄히 국문하기를 청하다

수찬 신헌조(申獻朝)가 상소하기를,

"홍낙안이 무너져가는 흐름 속에서 몸을 떨쳐 일이 일어나기 전에 환란을 염려하였으니, 성인의 무리가 되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그런데 대신이 그에 대해 깊이 책망할 것도 없는 자라고 배척했으니, 그 뜻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저 대신으로 말하면 나라의 두터운 은혜를 입고 혼자 재상 자리에 앉아 있는데, 전례가 없는 변고가 그 친지들 가운데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낙안의 사신(私信)이 있었으면, 편지를 본 뒤에 진실로 곧바로 진달(陳達)하여 위정 벽사(衛正闢邪)할 도리를 생각했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는 하지 않고 마치 병을 피해 의원을 꺼리는 것처럼 하면서 정론(正論)을 편 낙안까지도 마치 배척하는 것처럼 행동했으니, 저으기 대신을 위해서 개탄하는 바입니다.

신이 또 삼가 관학 유생의 상소에 대한 비답을 보니, 선조 무인년에 있었던 해서 지방의 요설(妖說)을 가지고 오늘의 일을 비유하셨습니다. 그러나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해서의 일은 단지 어리석은 백성들이 한때 잘못한 것인만큼 그때 대신들이 힘써 진정시킨 것은 사체(事體)를 얻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여겨집니다. 갓을 쓰고 책을 읽는 나라 안의 선비들이 서로 돌아가며 미혹된 나머지 똑똑한 사람치고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은 경우가 없으니, 세도(世道)를 걱정하고 훗날을 걱정함에 있어 어찌 해서의 일과 동등하게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오늘날에 지난날의 규범을 이끌어 대는 것은 평성(平城)이 포위되었을 때 간척무(干戚舞)를 추는 것과 거의 가깝지 않겠습니까.

신이 삼가 전교를 보건대 감사가 조사해 아뢴 데 따라 권상연·윤지충 두 적에 대해 빨리 죄안을 결정해 법대로 바로잡으라고 명하시면서 사설을 사라지게 하고 어지러운 풍속을 징계할 수 있을 것처럼 여기셨습니다. 그러나 이 학설에 점차 물든 것이 이미 시일이 오래된 만큼 거기에 휩쓸려 따르는 자들이 필시 ·에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교주인 권일신(權日身)과 최초의 빌미를 만든 이승훈(李承薰)을 엄히 국문해서 실정을 알아내고 하나하나 규명하여 차례로 처형해야만 세도(世道)를 일으켜 세우고 혼란의 싹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학(學)이란 한 글자는 그 체면이 자별한 것인데 서양의 술법을 감히 학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일전의 차자와 계문에서 혹 그 말을 쓴 경우가 있기에 신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방금 유생들의 상소를 보니 또 이를 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무부 무군(無父無君)의 술법을 학이라 부른다면, 공자·맹자·안자(顔子)·증자(曾子)의 학문은 어떤 글자로 불러야 하겠습니까. 이것이 비록 제대로 살피지 못한 실수라 하더라도 너무나 근거없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앞으로 상소나 아뢰는 말에 학이란 한 글자를 서양의 술법에 쓰는 것은 일체 금지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겨집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국문[鞫]이란 한 글자는 요즈음의 나쁜 습속인데, 그것을 입에 올리거나 글로 쓰기를 어렵지 않게 여기고 있으니, 그것이 도리어 세도와 관계가 있다 하겠다. 그리고 끝에 가서 상소나 아뢰는 말에 양학(洋學)이라 말하지 말고 양술(洋術)이라 부르라고 청한 일은, 그대의 말이 옳은 것인지 모르겠다. 학문에 정학(正學)과 사학(邪學)이 있는 것은 마치 ‘일덕(一德)’이라고 할 때의 덕과 ‘덕이 둘 셋이면 흉하다.’고 할 때의 덕과 ‘악덕(惡德)’이라고 할 때의 덕이 있는 것과 같다. 그리고 도(道)는 하나일 뿐이고 성(性)도 선(善)일 뿐이나 곧기가 마치 화살 같은 경우도 있고 굽기가 마치 자[尺] 같은 경우도 있다. 이(理)도 역시 성(性)이고, 기(氣)도 역시 성이다. 그러나 굽은 길이 직로(直路)에 무슨 누를 끼치며, 기(氣)가 어찌 이(理)에 뒤섞일 수 있겠는가. 나를 열어주고 물 대주는 곳에 있는 그대가 이처럼 고루한 말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3책 33권 58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259면
  • 【분류】
    정론(政論) / 사법(司法) / 사상-서학(西學)

○修撰申獻朝上疏曰:

"洪樂安能拔身於頹波之中, 慮患於未然之前者, 不害爲聖人之徒, 而大臣之斥以不足深責者, 未知其意之何居也? 噫彼大臣, 受國厚恩, 獨居鼎席, 無前之變怪, 出於親知之中, 至有樂安之私書, 則見書之後, 固宜卽卽陳達, 思所以衛正闢邪之道, 而不此之爲, 殆同諱疾忌醫, 竝與正論之樂安, 而有若詆斥者然, 竊爲大臣慨然也。 臣且伏見館學疏批旨, 有以先朝戊寅海西妖說, 比況於今日。 臣愚以爲, 海西之事, 只是愚氓之一時詿誤者, 則其時大臣之務從靜鎭, 可謂得體, 而今則不然。 自中之冠儒而讀書者, 轉相誑誤, 靡哲不愚, 世道之憂, 後日之慮, 豈可與海西之事, 同日而論哉? 然則今日之援引前規者, 不幾近於舞干戚於平城之圍也哉? 臣伏見傳敎, 因道伯査啓, 兩賊, 亟命結案正法, 如可以息邪說懲亂俗然, 此說漸染, 爲日已久, 靡然而從之者, 必不止於而已。 敎主之日身, 作俑之承薰, 嚴鞫得情, 一一究覈, 次第置辟, 以扶世道, 以杜亂萌焉。 學之一字, 體面自別, 而西洋之術, 敢稱以學? 日前箚啓, 或有用之者, 故臣竊非之, 卽見儒疏, 又未免焉。 無父無君之術, 稱之以學, 則之學, 當稱何字? 此雖不審之失, 亦見無稽之甚矣。 臣謂日後章奏之間, 稱學之一字, 於西洋之術者, 一切禁之宜矣。

批曰: "鞫之一字, 近來弊俗, 無難於開口下筆, 還有關於世道矣。 尾請章奏, 勿言洋學, 以洋術稱之事, 爾言未知爲可。 學之有正學邪學, 猶一德、德二三、凶德、惡德之稱焉。 至於道則一而已, 性亦善而已, 直或如矢, 曲或如尺, 理亦性, 氣亦性, 曲徑何累於直路, 氣豈混於理也? 不料啓沃之地, 有此固陋之言。"


  • 【태백산사고본】 33책 33권 58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259면
  • 【분류】
    정론(政論) / 사법(司法) / 사상-서학(西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