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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33권, 정조 15년 11월 8일 기묘 2번째기사 1791년 청 건륭(乾隆) 56년

윤지충과 권상연을 사형에 처하다

호남의 죄수 윤지충권상연을 사형에 처하고, 진산군(珍山郡)은 5년을 기한으로 현(縣)으로 강등하고, 진산 군수 신사원(申史源)을 그 지방에 유배하도록 명하였다. 그리고 경외에 효유하여 집안에 서양 책을 소장한 자는 관청에 자수하게 하고, 묘당과 각도(各道)로 하여금 각기 글을 읽고 행실을 닦는 선비들을 천거하도록 하였다. 형조가 아뢰기를,

"대신에게 문의하니, 좌의정 채제공은 의논드리기를 ‘윤지충권상연의 흉악하기 그지없는 죄가 소문에 자자하였으나, 신은 생각하기를 「일단 사람의 모습을 갖췄으면 똑같은 양심을 가졌을 것이다. 그들도 사람인데 어찌 그렇게 심한 악행을 저질렀겠는가.」 하면서 나름대로 반신반의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지금 도신의 계문을 보니, 그 부모의 시신을 버렸다는 것은 비록 낭설로 전해진 것이라 하더라도 사판(祠版)을 불태워버린 것은 모두 자복을 했습니다. 이단 사설(異端邪說)이 남의 자손들을 해침이 예로부터 어찌 한량이 있겠습니까마는, 이처럼 지극히 흉악하고 패륜한 일은 인류가 생긴 이래로 들어보지 못한 일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극률(極律)을 시행하지 않는다면, 인심을 맑게 하고 윤리를 바르게 할 수가 없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윤지충권상연 양적(兩賊)은 도신에게 분부하여, 여러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부대시(不待時)로 참형에 처하고 5일 동안 효수함으로써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강상(綱常)이 지극히 중요하다는 사실과 사학은 절대로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고 여겨집니다.’ 하였습니다.

신들이 삼가 《대명률(大明律)》의 사무 사술(師巫邪術)을 금지하는 조항을 보니 ‘무릇 모든 좌도(左道)로서 정도를 어지럽히는 술수나, 혹 도상(圖像)을 숨겨 보관하거나, 향을 피우고 무리를 모아 밤에 모였다가 새벽에 흩어지거나, 겉으로 착한 일을 하는 체하면서 민심을 선동하고 미혹시키는 경우, 괴수는 교형(絞刑)에 처한다.’ 하였고, 발총(發塚) 조에는 ‘부조(父祖)의 신주를 훼손한 자는 시신을 훼손한 법률과 비례한다. 자손이 조부모나 부모의 시신을 훼손하고 버린 경우에는 참수하되, 두 죄가 함께 발생한 때에는 무거운 쪽으로 논죄한다.’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윤지충권상연 등을 보면 요서(妖書)의 사특한 술수를 몰래 서로 전해 익히고, 심지어는 부조(父祖)의 신주를 직접 태워버렸으니, 흉악하고 패륜함이 이를 데 없어 사람의 도리가 완전히 끊어졌습니다. 위의 율에 따라 시행하소서."

하니, 윤허하였다. 전교하기를,

"호남의 죄수 윤지충권상연을 사형에 처하도록 이미 옥관의 의견에 따랐는데, 그들의 지극히 흉패함은 매장하지 않았다는 한 조항이 낭설이라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불에 태웠건 묻었건 따질 것 없이 사당 가운데 있던 신주에 의도적으로 손을 댔으니,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자라면 무슨 짓인들 차마 하지 못하겠는가. 사형에 처하는 것만도 오히려 헐한 처분이라고 하겠다.

요즘 백성들의 뜻이 나날이 투박해지고 정학(正學)이 나날이 황폐해가고 있지만, 그래도 이처럼 윤상(倫常)을 없애는 일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하였다. 어찌 다만 불손(不遜)하고 불친(不親)하다고만 말하겠는가. 무인년 해서(海西)의 일은 단지 촌 백성과 노파들이 무지하고 부끄러움을 몰라서 범한 일이었다. 그런데 · 두 사람은 더욱 천한 무리들과는 다르니, 그 떳떳한 이륜(彛倫)의 변고가 마땅히 어떻다 하겠는가. 이것이 형조의 문안을 판하(判下)하면서 먼저 정치의 교화가 백성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 것을 두려운 마음으로 탄식했던 까닭이다. 천리(天理)를 밝히고 인심(人心)을 바로잡는 방도로 볼 때 별도로 악을 징계하는 처벌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강상(綱常)에 관계되는데 어찌 격식에 구애받을 수 있겠는가.

전라도 진산군은 5년을 기한으로 현으로 강등하여 53고을의 제일 끝에 두도록 하라. 그리고 해당 수령이 그 죄를 짓도록 내버려두었는데 그가 감히 관청에 있어서 몰랐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가 먼저 적발했다는 것을 가지고 용서할 수는 없다. 일전에 대간의 계사에 대해서 역시 일의 결말을 기다려 처분하겠다고 비답하였으니, 해당 군수는 먼저 파직하고 이어 해부로 하여금 잡아다가 법에 따라 무겁게 처벌토록 하라.

그리고 그 책을 태우라는 요청에 대해서는 이미 형관(刑官)이 연석에서 아뢴 말에 따라 불태우도록 하였다. 그러나 어찌 한갓 법이 저절로 시행될 이치가 있겠는가. 집에 소장한 자는 관청에 알려 자수하도록 하되 자수한 자는 따지지 말고, 오늘 새벽으로 시행하는 시점을 설정토록 하라. 이른바 그 서책이 다시 새벽 이후에 적발되는 경우에는 무거운 벌을 시행하되 가장(家長)도 함께 처벌하며 결단코 용서해주지 말도록 하라. 이상의 내용을 금석 같은 법전에 기록한 뒤 묘당에서 먼저 오부(五部) 안의 마을에 엄히 밝혀 알리도록 하고 외방(外方)에도 똑같이 반포토록 하라.

이제 처리를 이미 엄하게 하여 이른바 사학의 일을 모두 결말지었다. 다시 이러쿵저러쿵하는 말을 공거(公車)에 올려 번거롭게 응수하게 한다면 오히려 아예 일삼지 않는 의리가 못될 것이니, 이렇게 분부하는 것이다. 지난번 대간의 계사와 재상의 차자에 대한 비답에서 ‘정학을 보위하라.[衛正學]’는 세 글자로 신신당부하며 사설을 물리치는 급선무로 삼도록 했었는데, 그 말이 비록 오활하고 먼 듯하지만 실로 의미심장한 것이다. 이제 두 사람을 처형한 뒤에 정학을 부식(扶植)하고 천발(闡發)하는 계책을 오활하고 멀다고 하여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지난번 초계 문신의 대책(對策) 가운데 답안지 하나를 보니 ‘산림에서 자취를 숨기고 있는 사람을 먼저 낭잠(郞潛)228) 과 읍리(邑吏)로 시험적으로 써서 바로잡는 방법으로 삼으라.’ 하였는데, 매우 조리가 있는 견해여서 이번 일의 조사가 끝나 결말이 난 뒤에는 그 말을 쓰려고 하였다. 그러니 현재 진산의 빈 자리에 뽑힌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을 보내도록 전조(銓曹)에 분부하라.

또 연석(筵席)에서 근본을 바로잡는 방안을 말할 때, 대신이 ‘경전을 학습하고 정(程)·주(朱)를 존중하며 곤궁한 속에서도 꿋꿋이 유속(流俗)에 물들지 않은 자를 특별히 뽑아서 진출시키라.’고 했는데, 대신의 말이 참으로 좋다. 묘당으로 하여금 책을 읽은 선비들을 뽑아서 아뢰도록 하라. 식년시(式年試)가 멀지 않으니, 지금이 그 적기이다. 몸을 신칙하고 행실을 닦는 도내의 선비들에 대해서도 역시 묘당으로 하여금 각도의 방백들을 엄히 신칙하여 실다운 마음으로 그 명령에 부응하도록 하라. 먼저 낭잠(郞潛)에 시험해도 능히 감당을 하고 다음에 지방관으로 시험해도 적합하고 미루어 고문(顧問)의 지위에 올려도 넉넉히 감당할 만한 자를 식년마다 원래 천거하는 숫자 이외에 뽑도록 하되 비록 한두 사람이라 할지라도 각각 찾아서 반드시 연내에 조정에 보고하도록 하라. 사서(邪書)를 관청에 보고하는 것은 서울은 20일을 기한으로 하고, 각도는 각기 명령이 도착한 날부터 따져 20일 후를 기한으로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3책 33권 56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258면
  • 【분류】
    사법(司法)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사상-서학(西學)

  • [註 228]
    낭잠(郞潛) : 낭청의 서리.

○命湖南囚尹持忠權尙然用大辟, 降珍山郡限五年爲縣, 配珍山郡守申史源于本地方, 曉諭京外, 家藏西洋書者, 告官自首, 令廟堂及諸道, 各擧讀書修行之士。 刑曹啓言: "問議于大臣, 則左議政蔡濟恭以爲: ‘尹持忠權尙然窮凶極惡之罪, 傳說藉藉, 臣意則苟具人形, 得同秉彝, 渠亦人耳, 其惡何至若是之甚, 竊有豈然其然之意。 今覽道啓, 棄其親屍, 雖是浪傳, 燒却祠版, 俱爲自服。 異端邪說之賊夫人子, 從古何限, 而如許至凶獰至悖惡之事, 自有生類以來未之聞者。 此不施以極律, 無以淑人心而正倫理。 臣謂尹持忠權尙然兩賊, 分付道臣, 衆民所見處, 不待時處斬, 懸首五日, 使億兆群生, 咸知綱常之至爲重, 邪學之絶可戒。’ 臣等謹考《大明律》禁止師巫邪術條曰: ‘凡一應左道亂正之術, 或隱藏圖像, 燒香集衆, 夜聚曉散, 佯修善事, 煽惑人心, 爲首者絞。’ 發塚條曰: ‘毁父祖神主者, 比毁屍律, 子孫毁棄祖父母父母死屍者, 斬。 二罪俱發, 從重論。’ 今此尹持忠權尙然等, 妖書邪術, 潛相傳習, 甚至於父祖祠版, 手自焚毁, 窮凶極悖, 人理滅絶, 依右律施行。" 允之。 敎曰: "湖南囚尹持忠權尙然, 用大辟, 旣從獄官之議, 而渠之絶悖至凶, 無係乎不埋葬一款之浪傳。 毋論焚與埋, 用意下手於祠中之版者, 是可忍, 孰不可忍! 猶屬歇後。 以今民志之日渝, 正學之日蕪, 猶不料有此滅倫敗常之擧, 亦豈但曰不遜而不親乎哉? 戊寅海西之事, 特不過村氓野婆輩無知沒恥之犯, 而兩竪, 尤與賤類自別, 則其爲彝常之變, 當如何? 此所以判下曹案也。 先以治化之未孚, 瞿然歎者, 其在明天理正人心之道, 宜有別般懲惡之典, 事屬綱常, 何拘格例乎? 全羅道 珍山郡, 限五年降縣, 置之五十三官之末。 該守令任其作罪, 其敢曰在官不知乎? 不可以渠先摘發, 有所寬恕。 日前臺啓, 亦以待結末處之爲批。 該郡守先罷其職, 仍令該府, 拿問照法重勘。 至於火其書之請, 旣從刑官筵奏, 而使之火之, 寧有徒法自行之理乎? 家藏者告官自首, 自首者勿問。 仍自今日, 屬之昧爽, 更以所謂厥冊, 現發於昧爽以後者, 施以重辟, 幷家長勘罪, 斷不饒貸, 載之金石之典, 自廟堂, 先自部內坊曲, 嚴明知委, 外方一體頒示。 今則處分旣嚴, 而所謂邪學事, 可謂出場。 復以如此如彼之說, 登徹於公車, 致煩酬應, 反非不事之義, 以此分付。 向於臺啓相箚之批, 申申以衛正學三字, 爲闢邪說之急務, 言似迂遠, 意實深長。 今於兩竪用辟之後, 其所扶植闡發之策, 不可以迂遠而忽之。 昨見抄啓文臣對策中, 有一券, 以林下隱跡者, 先試郞潛邑吏, 爲捄措。 此說深有槪焉, 欲待査事出場, 而用其言矣。 珍山見窠, 以抄選中人差遣事, 分付銓曹。 又於筵席, 語到端本之方, 大臣請以學習經傳, 尊尙, 固窮不染於流俗者, 拔例晉擢。 大臣之言, 誠好矣。 令廟堂抄選讀書之士以啓。 式年不遠, 此其時也。 道內飭躬修行之士, 亦令廟堂, 嚴飭諸道方伯, 實心對揚, 先試郞潛而可堪, 次試字牧而可合, 推以至於備顧問, 亦足當其任者, 式年原薦外, 雖一二人, 各加搜訪, 期於歲前登聞。 邪書告官, 京中限二十日, 諸道各計令到後二十日之限。"


  • 【태백산사고본】 33책 33권 56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258면
  • 【분류】
    사법(司法)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사상-서학(西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