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학 유생 송도정 등이 이승훈 등 사학을 믿는 자들의 처벌을 청하다
관학 유생 송도정(宋道鼎) 등이 상소하기를,
"책을 사온 이승훈은 빌미를 처음 제공한 흉적이요, 교주 노릇을 한 권일신은 바로 호법(護法)하는 괴수입니다. 그 나머지 권철신·이윤하(李潤夏) 및 서로 전해주고 익힌 자들은 한결같이 왕법(王法)으로 처리하고, 신사원(申史源)이 지방관으로서 비호한 죄는 늦추어서 논죄하지 않을 수 없음이 분명합니다. 이에 전하께서 크게 윤음을 내리셔서 이단을 물리치고 정도를 넓히는 뜻을 효유하시면서 묘당에 오로지 맡겨 조사해 다스리는 책임에 힘쓰도록 하셨으니, 오늘날 성상을 받들어 보좌하는 책임을 맡은 자로서는 역시 끝까지 규명하고 통렬하게 다스려 성상께서 맡기신 뜻에 부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신들이 삼가 살피건대 요즈음 조정은 조용하고 한가하기만 할 뿐 불에 탄 사람을 구하고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는 뜻은 전혀 없으며, 고개를 숙이고 이리저리 살피기나 하여 밝은 눈으로 간담을 토로하는 의리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 오늘 규명하여 다스리는 일이 도리어 사학을 키우는 길을 열어서 다시 지난해의 전철을 밟게 되지 않을 줄 어찌 알겠습니까."
하니, 비답하기를,
"조정에서 물리치고 배척하고 금지하고 죄주는 것을 어찌 너희들의 말을 기다려서야 하겠으며, 또 혹시라도 어찌 너희들보다 소홀하게야 하겠는가. 조정에서는 먼저 조정의 사체(事體)를 살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선조(先朝) 무인년219) 에 황해도 지방에서 사학(邪學)이 생겨 거의 집집마다 사람마다 사당을 허물고 제사를 폐지하는 등 황해도에서 강원도에 이르기까지 그 신도가 많아져 중외가 자못 두려워하고 의심스러워 했으나, 선조께서는 일찍이 연석에서나 윤음 가운데 조금도 개의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시고, 스스로 일어났다가 스스로 없어지는 것으로 넘겨버리셨다. 그때 한 연신(筵臣)이 그 일을 조사하기를 청하자, 그때야 비로소 어사를 보내 조사해 다스리게 하시되, 단지 앞장서 말한 자 한 사람을 죽이게 하였을 따름이었다. 그때 연석(筵席)에 있던 사람 중에 고 대신 이종 성(李宗城)과 고 중신 이익보(李益輔)는 조정은 가볍게 힘을 쓰는 모습을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어사를 보내지 말 것을 힘써 주장하였고, 고 대신 이천보(李天輔)는 관찰사가 일찍 스스로 결정을 하지 못해서 조정에서 처분하도록 만들었다고 강경하게 말하면서 도신을 무겁게 처벌하자고 청하였다. 그런데 이번 일로 말하면 조정에서 말로 교시한 것이 선조 무인년의 처분에 비교하면 이미 배나 힘을 쓴 것이다. 이것은 나름대로 《논어》와 《맹자》의 훈계에 따라 늦추거나 엄히 하는 데에 차별을 둔 것이라 하겠다.
너희들이 수선(首善)의 땅에 있으면서 여러 사람들이 시끄럽게 말하는 것을 듣고는, 성스러운 조정의 성학(聖學)에 누를 끼침이 있을까 걱정해 처벌하고 토죄하자는 말을 진술할 생각을 한 것이니, 그 정성이 가상하고 마음이 가상하다. 그러니 어찌 몇 줄 만든 말이 꼭 하나하나 다 적중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를 끄집어내어 허물할 것이 있겠는가. 요청한 대로 조사 결과가 나오면 마땅히 수종(首從)을 가려 밝게 처분을 내리겠으니, 너희들은 물러가 학업을 닦아 더욱 열심히 위정 척사(衛正斥邪)의 방책에 힘쓰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3책 33권 54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257면
- 【분류】정론(政論) / 교육(敎育) / 사상-서학(西學) / 사법(司法)
- [註 219]무인년 : 1758 영조 34년.
○館學儒生宋道鼎等上疏曰:
"李承薰之貿冊, 乃其作俑之凶, 權日身之敎主, 卽護法之賊也。 其餘權哲身、李潤夏及轉相傳習者, 一以王章待之。 申史源之守土庇護之罪, 宜不容弛緩而不論也明矣。 乃殿下誕發絲綸, 諭以闢廓之意, 專委廟堂, 勉以覈治之責。 爲今日承弼輔相之任者, 亦窮覈痛治, 以副聖上委畀之意, 而臣等竊觀近日朝著之上, 雍容暇豫, 專欠救焚拯溺之意, 低徊顧瞻, 太無明目張膽之義。 又安知今日覈治之擧, 反開滋蔓之路, 復蹈向年之轍哉?"
批曰: "朝廷之所闢之斥之禁之罪之, 何待爾等之言, 亦豈或歇後於爾等乎? 朝廷先觀朝廷之事面, 故昔在先朝戊寅, 海西地方有邪學, 幾乎家家人人, 毁祠廢祀, 自海西而至于關東, 其徒寔繁, 中外頗惶惑, 而先朝未嘗槪示於筵席絲綸之間, 付之自起自滅之科, 有一筵臣, 請査其事, 始命差遣御史按治, 只誅倡言者一人。 其時在筵者, 故大臣李宗城, 故重臣李益輔, 以朝廷之不可輕示用力之意, 力言勿遣御史, 故大臣李天輔盛論道臣之不早自斷, 以貽朝廷之處分, 請重勘以懲之。 今番事, 朝廷之費辭敎, 視諸先朝戊寅處分, 已倍用力焉。 此則竊效論孟訓辭, 有緩嚴之別也。 爾等在首善之地, 聞多口之譁然, 恐有累於聖朝聖學, 思陳誅討之說者, 其誠可嘉, 其心可尙, 豈可以數段句作之言, 未必一一有中, 抉摘以爲疵乎? 依所請待査事出場, 當分首從, 明賜處分, 爾等退修學業, 益勵衛正斥邪之方。"
- 【태백산사고본】 33책 33권 54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257면
- 【분류】정론(政論) / 교육(敎育) / 사상-서학(西學) / 사법(司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