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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33권, 정조 15년 10월 23일 갑자 1번째기사 1791년 청 건륭(乾隆) 56년

권상연·윤지충의 처벌을 청한 글과 홍낙안이 채제공에게 보낸 편지

지평 한영규(韓永逵)가 아뢰기를,

"서양의 간특한 설이 언제부터 나왔으며 누구를 통해 전해진 것인지 모르겠으나, 세상을 현혹시키고 백성을 속이며 윤리와 강상을 없애고 어지럽히는 것이 어찌 진산(珍山)권상연·윤지충 양적과 같은 자가 있겠습니까. 제사를 폐지하는 것으로도 부족해서 위패를 불태우고 조문을 거절하는 것으로도 그치지 않고 그 부모의 시신을 내버렸으니, 그 죄악을 따져보자면 어찌 하루라도 이 하늘과 땅 사이에 그대로 용납해 둘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은 흉적을 고을 옥에 맡겨두는 것 자체가 실로 형벌을 크게 그르치는 것입니다. 또 해당 고을 수령으로 말하더라도 자기 경내에서는 이 얼마나 큰 변고입니까. 마땅히 조정에 급히 알려 다스려야 할 것인데도 전혀 놀라는 일이 없이 태연하게 있다가 도리어 유생의 통문이 먼저 태학에 이르게 만들었으니, 그 윤리를 짓밟은 행위가 이보다 더 심할 수 없습니다.

요즈음 들으니 조사(朝士) 홍낙안(洪樂安)과 유생 성영우(成永愚)가 각기 장문의 편지를 만들어 사대부와 선비들에게 돌린다고 합니다. 영우의 편지는 신이 미처 보지 못하였으나 낙안의 편지는 보았습니다. 그 가운데 말하기를 ‘이전에는 나라의 금법이 무서워 어두운 골방에서 모이던 자들이 지금은 밝은 대낮에 제멋대로 다니면서 공공연히 전파하며, 예전에는 깨알처럼 작은 글씨로 써서 겹겹으로 덮어 싸 상자속에 넣어두었었는데 지금은 멋대로 간행하여 경외에 반포한다.’ 하였고, 또 ‘그 가운데 교주(敎主)가 바로 그들의 괴수이다.’ 하였고, 또 ‘빨리 천당에 돌아가는 것이 극락이 되고 칼날에 죽는 것이 지극한 영광이다.’ 하였고, 또 ‘오도(吾道)를 이단이라 지목하는데, 오도에서 사류축에 끼이지 못하는 것이 곧 그들의 소원대로 되는 것이다.’ 하였고, 또 ‘감히 간특한 학술을 하면서 그 무리를 많이 확보하기 위해 스스로 선봉이 되어 일을 시도하고 있다.’ 하였으며, 심지어는 ‘만약 이렇게 10년이 지나도 변고가 없으면 헛된 말을 한 죄를 받겠다.’고까지 하였습니다. 이른바 교주와 신도는 이미 편지를 낸 자가 있으니, 한 번만 물어도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청컨대 진산에 구금한 죄수 윤지충(尹持忠)권상연(權尙然) 등을 빨리 법조로 하여금 엄히 조사하여 사실을 알아내 나라의 법을 제대로 세우고 해당 군수는 귀양보내는 형벌을 시행하게 하며, 전 별검(別檢) 홍낙안과 진사 성영우도 역시 해부와 해조로 하여금 구두 공술을 받아 조사하여 엄히 처벌하게 하소서."

하고, 사간 이언호(李彦祜)와 헌납 이경운(李庚運)도 역시 · 양적의 일을 논하였는데, 헌부가 아뢴 내용과 같았다. 비답하기를,

"이단의 피해는 홍수나 맹수보다 더 심하니, 만약 발견되는 대로 엄히 징계하지 않는다면 세도(世道)와 사문(斯文)을 위해 걱정되는 것이 과연 어떻겠는가. 이것이 일전에 특별히 한 장의 윤음을 내린 이유이다. 그러나 소문을 하나 하나 다 믿을 수 없으며 용서할 수 없는 죄든 아니든 간에 설혹 그 소문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상도를 어기고 법을 범한 시골의 하찮은 한두 명의 무리들에 대해서는 그것을 처리하는 것은 한 명의 도신이면 충분하다. 법을 바르게 집행하여 죽여도 좋고 죄를 밝혀 형장을 쳐도 좋은 일이지만, 이는 모두 사실을 따져 살핀 뒤에 할 일이다. 그런데 이것을 법조로 하여금 해도의 일을 대신하게까지 하는 것은 비단 실제 진실이 호도될 걱정이 있을 뿐만이 아니다. 공자께서 ‘이단을 공격하면 해로울 뿐이다.’ 하지 않았던가. 공격이란 말은 전적으로 다스린다는 말이다. 전적으로 다스리기를 일삼는 것은 도리어 중국은 오랑캐를 치기를 일삼지 않는다는 뜻과 어긋나는 것이다. 이미 노출된 자에 대해서는 이미 도백에게 맡겨서 엄히 규명하도록 했으니, 설혹 적발되지 않은 자가 있더라도 차마 끝까지 찾아냄으로써 스스로 잘못을 고치는 길을 막아버릴 수 없다.

홍낙안 등의 문제도 사적인 편지의 문구를 가지고 묻는다는 것은 국가의 체통과 관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또 그 안에 별다른 내막이 있는지 어찌 알겠는가. 해당 수령의 문제는 이렇건 저렇건 사건이 본 고을에서 일어났으니, 역시 어찌 죄가 없겠는가. 조사하는 일이 끝난 뒤에 처분하겠다."

하였다. 홍낙안채제공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기를,

"합하(閤下)께서는 오늘 진산의 양적의 일을 어떤 변괴라고 보십니까? 대체로 서양학의 설은 그 유래가 이미 오래되었고 그 내용도 이미 충분히 들어 싫증이 날 정도입니다. 또 그 학술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 불행하게도 가까운 친구들 가운데서 나왔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이목에 익숙해서 크게 놀랍게 여기지 않으니, 비유하면 마치 물이 새는 배 안에 함께 앉아 있으면서 장차 함께 물에 빠질 것을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말이 여기에 미치니 심장과 뼈가 다 서늘합니다.

이른바 사학(邪學)이 아비도 없고 임금도 없으며 윤리를 무시하고 어지럽힘으로써 그 여파로 인한 해독이 참혹하고 유혹하는 것이 나날이 심해지고 있는 것은 합하께서도 이미 다 통찰하셨을 것이니, 어찌 소인의 여러 말을 기다릴 것이 있겠습니까마는, 요즈음 들어 크게 번성하여 그속에 빠지지 않은 자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합하께서 어떻게 모두 통촉하시겠습니까. 합하의 문하에 출입하는 자 가운데 곧고 바른 말과 깊은 우려로써 합하의 임금을 보좌하는 정치를 돕는 자가 있다는 말은 전혀 듣지 못하였습니다. 더구나 이 문제는 친구들과 관계되는 일로서 비방을 피하는 데만 급급한 세상에 누가 기꺼이 합하를 위해 서둘러 말하겠습니까.

오늘날 도성의 경우부터 우선 말하면 친구사이의 사대부와 선비들은 대부분 거기에 물들었고, 다른 동네의 길을 잘못 들어간 젊은이들에게도 파급되었습니다. 특히 총명하고 재주있는 선비들이 열에 여덟 아홉은 거기에 빠져버려 남은 자가 거의 없으며, 서로 친하다가 서로 욕하는 것이 술 취한 것도 같고 미친 것도 같습니다. 이전에는 나라의 금법이 무서워 골방에서 모이던 자들이 지금은 환한 대낮에 멋대로 돌아다니며 공공연히 전파하며, 이전에는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써서 겹겹으로 덮어 상자 속에 숨겨 놓았던 것을 지금은 공공연히 간행해서 경외에 반포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무지한 하천민과 쉽게 현혹되는 부녀자들은 한 번 이 말을 들으면, 목숨을 걸고 뛰어들어 지상에서 살고 죽는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영원한 천당 지옥설에 마음이 끌려 일단 끌려 들어간 뒤에는 현혹된 것을 풀 길이 없습니다. 특히 경기와 호서 지방의 경우는 한없이 넓은 그물에 모든 마을이 다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니, 지금 손을 쓰려고 해도 해진 대바구니로 소금을 긁어 담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더욱 두려운 것은 그 가운데 교주는 곧 그들의 괴수로서 선물 꾸러미가 산더미처럼 쌓이는가 하면 명령이 뜻대로 시행되어 한 번 통고를 하면 역마를 둔 것보다 빠르며 밤낮으로 돌아다녀 촌락이 뒤숭숭합니다. 이는 모두 호서 지방에서 상경한 사람이면 말하지 않는 자가 없는 사실로서 소인이 근거없이 억측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소인이 무신년에 조정에서 임금을 뵈었을 때 황건적(黃巾賊)백련교(白蓮敎)의 사건을 끌어다가 증명하였는데, 그 당시 반박하는 말들이 남을 해치려는 생각이 있다고 하여 사방에서 비난하는 소리가 지금까지 그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상황으로 보면 소인이 그 당시에 한 말은 사실 지나친 말이 아니었습니다. 소인이 지금 또 감히 오늘날 교주가 반드시 장래의 역적이 될 것이라고 장담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천하에 지극히 무궁한 것은 사태의 변화이고 절실히 삼가야 할 것은 조짐이라고 봅니다. 간사하고 착하지 못한 무리가 어느 시대인들 없겠습니까. 그러나 만일 그들이 많은 사람을 불러 모을 수 있는 힘을 빌어 그 흉계를 꾸미게 된다면 저 살기를 싫어하고 죽기를 즐기는 무리와 윤상을 무시하고 어지럽히는 자들이 무슨 생각을 갖지 않고 무슨 변괴를 도모하지 않겠습니까.

성왕께서 이 세상을 인도해 가는 것은 예악 형정(禮樂刑政)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인데, 이 무리들은 임금과 아비를 길가는 사람처럼 보고 윤상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니, 이미 예악으로 감화시킬 만한 대상이 아니며, 또한 빨리 천당으로 돌아가는 것을 지극한 즐거움으로 여기고 칼날에 죽는 것을 지극한 영광으로 알고 있으니, 역시 형정(刑政)으로 인도하고 다스릴 자들도 아닙니다. 설령 소인의 말이 모두 착각이고 지나친 생각으로서 황건적이나 백련교와 같은 변고가 없다손치더라도 윤리와 강상이 이미 사라지고 사람의 도리가 끊어져 없어진 것에 이르러서는 실로 돌이켜 깨닫게 할 희망이 없어 그들이 오랑캐와 짐승으로 바뀌는 것을 앉아서 그냥 보고만 있을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어찌 성명(聖明)께서 위에 계시고 교화와 정치가 청명한 시대에 갑자기 근거없는 변괴가 생겨 성스러운 시대의 풍교(風敎)를 뒤흔들 줄 알았겠습니까. 합하께서는 위로는 세상에 드문 성상의 총애를 받고 아래로는 한 시대의 종장으로 계시면서 그것을 장차 수수방관하고 한결같이 어찌할 수 없는 것으로 미뤄버리실 것입니까. 지난 무신년 가을에 합하께서 조정에서 아뢴 것이 간곡하고 절실하여 실로 한 시대를 경각시키는 지침이 되었으니, 그 때 이단의 설이 약간 수그러들 줄 알았던 것은 사실 이에 힘입은 것이었습니다. 다만 한스러운 것은 당시의 금령이 단지 그들을 사류 속에 끼워주지 않는 처벌에 국한된 점입니다. 명령이 엄하지 않고 형벌이 준엄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쉽게 깔보고 범하기를 어렵게 여기지 않아서, 얼마 안되어 또 다시 전처럼 되는 것입니다.

대체로 저 무리들은 오도(吾道)를 가리켜 이단이라 하고, 오도에서 사류에 끼워주지 않는 것이 바로 그들의 지극한 소원대로 되는 것이라 합니다. 그러니 어떻게 그들이 두려워할 줄 알고 조심할 줄 알겠습니까. 또 한스러운 것은 그 당시 합하의 아뢴 내용이나 이 대간(李臺諫)의 상소문이나 소인이 선비들의 시험문제로 내놓았던 말들이 모두 단지 그 교리만 공격하고 사람을 공격하지 않은 점입니다. 이 때문에 그것이 모두 근거도 없고 결론도 없는 일이 되어 버렸던 것인데, 당시의 의견들은 또한 어찌 그 사람들이 친구간이라 하여 의견들은 고의로 덮어두고, 비호하려는 생각에서 그랬겠습니까. 다만 그 사실은 비록 매우 뚜렷하더라도 그 사람들은 대부분 겉치레를 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 하나 조사해 낼 수도 없고 또 이런 종류의 성토는 범죄사건을 조사해 내는 것과 달라 몰래 염탐해서 알아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만 드러난 것만 가지고 말하기 때문에 모두 적당히 넘어가는 혐의를 모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윤지충의 무리들이 나온 것은 실로 죄인을 잡았다는 점에서 다행스러운 것입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은 곧 강상입니다. 우리 나라는 예의로 나라를 세워 지금 수천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비록 지극히 패란하고 무도한 자가 있더라도 부모가 살았을 때는 섬기고 죽으면 장사지내는 예를 감히 어기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혹 예법에 틀리고 어긋나는 일이 무식하여 함부로 행동하는 저 시골구석의 천민들 속에서 나오더라도 오히려 동네에서 배척하고 수령이 징계하여 한 치도 이를 어기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직 저 윤지충의 무리들은 오히려 감히 스스로를 오랑캐와 짐승에 붙이면서, 조상의 신을 소귀신과 뱀귀신에다 빙자하여 제사를 폐지하는 것도 모자라 초상을 당하더라도 혼백(魂帛)을 세우지 않고 부모가 죽어도 조문을 받지 않으며, 심지어는 그 조상의 신주를 불태우기까지 합니다. 그런 줄을 모르고 가서 조문하는 사람이 있으면 곧 대답하기를 ‘축하할 일이지 위로할 일이 아니다.’라고 합니다. 아, 실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천리가 생긴 이후 어찌 이런 변괴가 있었겠습니까.

율문에 이르기를 ‘남의 신주를 손상시킨 자는 그 죄가 살인과 같다.’고 하였는데, 더구나 제 손으로 그 조상의 신주를 태워버렸으니, 이는 시역(弑逆)의 변괴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설령 윤지충의 무리가 본성을 잃고 미쳐서 이런 변고를 일으킨 것이라 해도 사형죄를 면하게 할 수 없는데, 더구나 이단의 설을 빙자하여 오도(吾道)에 대항하여 선왕(先王)이 만든 예를 원수처럼 보고 흉악하고 패역스러운 짓을 기꺼이 하는 자이겠습니까. 그 죄악을 따져 보면 흉역보다 백 배나 더하니, 이런 것을 분명히 처벌하지 않는다면 삼강 오륜은 다시는 찾을 길이 없고 4백 년 동안 예의를 지켜 온 우리 나라가 장차 침몰해서 짐승과 오랑캐의 구역이 되고 말 것입니다. 생각이 이에 미치면 어찌 가슴이 막히지 않겠습니까.

지금 이단에 종사하는 자들은 모두 침을 흘리면서 윤지충의 무리들이 한 짓에 감복을 하면서도 다만 예법이 두렵고 형벌이 앞에 있기 때문에 그래도 망설이고 두리번거리며 감히 멋대로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 권철신(權哲身)이 체천하지 않은 신주를 묻어버린 것과 이윤하(李潤夏)가 조상의 제사를 폐지한 것과 같은 일은 비록 소문은 있지만 아직 드러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만약 조정에서 지충을 헐하게 처벌하는 것을 보게 되면 반드시 골짜기로 달리는 여울물이 일단 터지면 걷잡을 수 없는 것처럼 될 것입니다. 합하께서는 장차 무슨 방법으로 그 형세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듣건대 본 고을의 수령이 이미 그 집에 편지를 보내 합하에게 전달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합하께서는 과연 어떤 모양으로 결정하여 지시하셨습니까?

지금 도리를 모르는 자들은 혹 말하기를 ‘스스로 자기 몸을 망쳐 그의 집안에 변괴를 저지른 한두 명의 유생에 대한 문제를 어찌 조정에까지 올릴 것이 있겠는가.’ 하는데, 이런 말을 하는 자들은 지충과 차이가 거의 없는 자들입니다. 지충은 이미 병으로 실성한 자도 아니고 또 전부터 패란했던 자도 아닙니다. 또한 감히 천주학을 믿어 자기의 무리를 늘릴 심산으로 스스로 선봉이 되어 인륜을 끊어버리는 일을 시험해 보는 것이니, 천하의 변고 중에 어찌 이보다 더 큰 것이 있겠습니까. 서리를 밟으면 장차 얼음이 얼 조짐이라는 것은 오히려 의례적인 말에 불과하고 황하가 터지면 물고기가 짓이겨지는 것과 같은 상황이 눈앞에 닥쳤는데, 합하는 또한 어찌 조금이나마 지체할 수 있겠습니까. 또 만약 그 죄를 다스리더라도 그 율에 합당하게 하지 않는다면 더욱 치죄하지 않는 것만 못하여 적의 기세가 더욱 거세질 것입니다. 참으로 다스리고자 한다면 시행으로만 그친대서야 어찌 말이 되겠습니까. 마땅히 큰 길거리에 목을 매달아 놓고 적의 무리를 호령하며 그 집터를 파서 못을 만들고 그 고을을 혁파하기를 마치 역적을 다스리는 법처럼 한 뒤에야 이단을 믿는 자들이 조금이나마 목을 움추릴 줄 알게 될 것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3책 33권 44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252면
  • 【분류】
    사상-서학(西學) / 윤리(倫理) / 사법(司法)

○甲子/持平韓永逵啓言: "西洋邪說, 未知出自何時, 傳自何人, 而其惑世誣民, 滅倫亂常, 豈有如珍山郡 兩賊者哉? 廢祭之不足, 焚其祠版, 拒弔之不已, 棄其親屍, 究厥罪惡, 何可一日容貸於覆載之間! 如此凶賊, 委之郡獄, 實是失刑之大者。 且以該邑倅言之, 境內此何等變怪? 固宜馳報按治, 而略無驚動, 一事伈泄, 反致儒通之先及於太學, 其爲滅倫, 莫甚於此。 近聞朝士洪樂安、儒生成永愚, 各發長書, 傳通於搢紳章甫之間。 永愚書, 臣未及見, 而第見樂安書, 則其中有曰: ‘昔之畏憚邦禁, 暗室屯聚者, 今則白日恣行, 公肆播傳, 昔之蠅頭細書, 十襲囊篋者, 今則肆然刊行, 頒諸京外。’ 又曰: ‘其中敎主, 便是渠帥。’ 又其言曰: ‘速歸天堂爲極樂, 死於刀刃爲至榮。’ 又曰: ‘指吾道爲異端, 而吾道之不齒士類者, 適從渠輩之願。’ 又曰: ‘敢爲邪學, 欲繁其徒, 自爲先茅以嘗試。’ 至曰: ‘如是十年而無變, 則請伏妄言之罪。’ 所謂敎主與其徒, 旣有發書者, 則一按可知。 請珍山拘囚罪人尹持忠權尙然等, 亟令法曹, 嚴覈得情, 快正邦刑, 該郡守, 施以竄配之典。 前別檢洪樂安、進士成永愚, 亦令該府該曹, 捧口招以爲査出痛繩之地。" 司諫李彦祜、獻納李庚運等, 又論兩賊事, 與憲啓同。 批曰: "異端之害, 甚於洪水猛獸。 若不隨現嚴懲, 其爲世道斯文之憂, 當如何? 此所以有日前別下十行也。 然傳說不可一一盡信, 無論罔赦之罪, 設如傳說, 鄕曲幺麽一二箇悖常干憲之類, 其所處置, 一道臣足矣, 正其律而誅之可也, 明其罪而刑之可也。 此在究覈以後事, 而至於令法曹, 替行該道之事, 不但有實事弄眞之歎。 聖人豈不言攻乎異端, 斯害也已乎? 攻之爲言, 專治之謂也, 以專治爲事, 反有違於中國不事夷狄之意。 於其已露者, 旣付之道伯嚴覈, 則設或有未及摘發者, 不忍窮搜極覓, 以遏其自新之路。 又如洪樂安等事, 以私書句語問之, 不特有關國體, 安知別般機關, 又在這裏乎? 該倅事, 以此以彼, 事在本邑, 亦豈可無罪乎? 當待査事決末, 處分矣。" 洪樂安蔡濟恭長書曰:

閤下, 以今日珍山兩賊事, 爲何許變怪耶? 大抵洋學之說, 其來已久, 其說已飫, 又其專治之人, 不幸近出於知舊之中, 故人皆聒耳慣眼, 不甚爲駭。 譬如同坐漏船, 不知其將胥溺。 言之及此, 心骨俱寒。 所謂邪學之無父無君, 蔑倫亂常, 流害之至憯, 誑惑之日滋者, 閤下之所已洞悉, 何待小人之更僕, 而至於近來之極熾極繁, 無人不入者, 閤下亦何以盡燭之也? 出入於閤下之門者, 一未聞有讜言正論, 深憂長慮, 以輔閤下承佐之治者。 況乎此事之事屬知舊, 工於遠謗, 誰肯爲閤下亟言之也? 今自京師而言之, 則知舊間縉紳章甫, 率多染迹, 他洞中誤入少年, 亦有延及, 尤其聰明才智之士, 十居八九, 餘者無幾, 潝潝訾訾, 如醉如狂。 昔之畏憚邦禁, 暗室屯聚者, 今則白日恣行, 公肆播傳; 昔之蠅頭細書, 十襲囊篋者, 今則肆然刊印, 頒諸京外。 其中下賤之無知, 婦孺之易惑者, 一聞此說, 捨命投入, 等棄地上之死生, 甘心萬劫之堂獄, 一入之後, 解惑無路。 至於畿湖之間, 尤是彌天之網, 村村里里, 無一得免。 今欲着手, 無異弊箄之救醎, 尤可怕者, 其中敎主, 便是渠帥, 苞苴山積, 命令惟意, 一有通告, 則急於置郵, 晝夜通行, 村閭竦動, 此皆自湖上京之人, 無人不道者, 非小人懸度而臆說之也。 小人之戊申廷對時, 引黃巾白蓮事以證之。 伊時雌黃之論, 謂有戕害之志, 四招噂踏〔沓〕 , 至今未息, 以今觀之, 誠非過語也。 小人亦非敢以今日之敎主, 必爲異時之作賊也。 天下之至無窮者, 事變也, 切可愼者, 幾微也。 桀黠不逞之徒, 何世無之, 苟其假此嘯聚, 以逞其凶, 則惟彼惡生樂死之徒, 蔑倫亂常之輩, 何慮之不有, 而何變之不圖也? 聖王之所以馭世者, 不出於禮樂刑政, 而此輩則視君父等於路人, 棄倫常同於弊屣, 旣非禮樂之所可漸磨, 而又以速歸天堂爲極樂, 死於刀刃爲至榮, 則亦非刑政之所可導齊者。 設令小人之所言, 皆歸於錯料過慮, 而保無黃巾白蓮之變, 至於倫綱之已淪, 人理之滅絶, 則實無挽回感悟之望, 坐見其化作夷狄與禽獸也。 豈意聖明在上, 化理淸明, 而忽生無中之變怪, 以梗聖世之風敎哉! 閤下上得不世之眷毗, 下爲一代之宗匠, 其將袖手立視, 一付之於無可奈何之域耶? 向在戊申秋, 閤下之筵奏, 懃懇剴切, 實爲驚世之指南, 伊時邪說之稍爲知戢, 誠爲賴此, 而第恨當時禁令, 只限於不齒士類之罰, 而令不嚴刑不峻, 則人之易狎而犯之無難, 曾無幾何, 又復如初。 蓋彼輩則指吾道爲異端, 而吾道之不齒士類者, 適中渠輩之至願也。 又何從而知懼而知戢也? 亦恨夫當時閤下之奏、李臺之疏, 與夫小人策士之言, 皆是只攻其道, 不攻其人, 故皆歸於沒摸捉無歇泊之事。 其時議論, 亦豈以其人之屬於知舊, 而故爲掩庇之計哉! 只以其事雖極顯著, 其人則擧皆外开, 旣無以一一覈出, 而此等聲討, 又異於獄情之鉤得, 不可廉探採得, 但從顯著上說去, 故皆不免於呑棗之嫌矣。 今之持忠輩出, 而實幸罪人之斯得矣。 不可以移易者, 綱常是也。 我東以禮義立國, 于今累千年矣。 雖有至悖亂大無道之人, 不敢違越於生事死葬之禮, 而或有非禮越法之事, 出於鄕曲蚩氓無知妄作之科, 猶且鄕黨擯斥之, 官長懲治之, 俾不得逾此一寸。 惟彼持忠輩, 乃敢自附於夷狄禽獸, 憑藉其牛鬼蛇神,廢祭之不足, 則當喪而不立魂帛, 親死而不受弔問, 甚至於焚瘞其父祖祠版, 人有不知而往弔者, 輒應曰: "可賀而不可慰" 云。 噫嘻痛矣! 自有天地, 寧有此等變怪耶? 律曰: "傷毁人家祠版, 其罪與殺人同。" 又況自其手而燒毁其父祖祠版, 則是與弑逆之變, 少無異同。 設令持忠輩喪性狂易, 而爲此變, 亦不可饒其一律也。 況彼假托邪說, 力抗吾道, 仇視先王之制禮, 甘心凶悖之擧措者, 究其罪惡, 又是百倍於凶逆。 此而不施顯戮, 則三綱五常更無可尋之地, 而擧東方四百年禮義之域, 其將淪而爲鱗介侏(𠌯)〔離〕 之區。 念之及此, 寧不臆塞! 今之爲邪說者, 擧皆流涎感服於持忠輩作爲, 而特以禮防可畏, 刑法在前, 故猶且逡巡却顧, 不敢肆行。 如權哲身埋其不祧之主, 李潤夏廢其父祖之祀者, 雖有傳說, 尙未顯著矣。 若見朝家之歇勘持忠, 則必如湍水之赴壑, 一潰而不可收拾。 閤下其將何施而殺其勢耶? 卽聞本倅, 貽書其家, 已爲轉告於閤下云, 閤下果爲何樣決折而指敎之耶? 今之不識道理者, 或以爲, 此乃一二儒生, 自陷其身, 作變於渠家之中者, 何至推上於朝廷云。 爲此言者, 與持忠相去無幾矣。 持忠旣非病風失性, 又非從前悖亂者, 特以敢爲邪學, 欲繁其徒, 而自爲先茅, 以嘗試於滅絶人紀之事。 天下之變, 豈有大於此者? 履霜堅氷之漸, 尙屬例語, 河決魚爛之形, 迫在眼前, 閤下亦安得以少遲之也? 又若治之不當其律, 則尤不如不治之爲愈, 而賊勢轉益鴟張矣。 苟欲治之, 則一律何足道哉! 惟當懸之藁街, 號令賊徒, 瀦其家革其邑, 如治逆之法而後, 庶使爲邪論者少知縮頸矣。


  • 【태백산사고본】 33책 33권 44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252면
  • 【분류】
    사상-서학(西學) / 윤리(倫理) / 사법(司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