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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33권, 정조 15년 10월 16일 정사 1번째기사 1791년 청 건륭(乾隆) 56년

사헌부가 천주학을 엄금하기를 청하다

사헌부가 【 대사헌 구익(具㢞), 집의 임도호(林道浩), 장령 이태현(李泰賢), 지평 유숙(柳), 정언 박윤수(朴崙壽).】 아뢰기를,

"천주학(天主學)은 바로 이치에 어긋난 이단으로서 세상을 현혹시키고 백성을 속이는 것 가운데 가장 심한 것입니다. 연전에 조정에서 엄히 금지시킨 뒤에 그 뿌리가 영원히 끊어질 줄 알았으나 민간에는 남몰래 숭배하는 자들이 간혹 있다고 합니다. 이것도 이미 해괴한 일인데 요즈음 듣건대 호남 진산군(珍山郡)에 명색이 선비라는 자 몇 사람이 그 학문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며 심지어는 윤리를 손상시키고 의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 합니다.

읍의 수령이 엄하게 잡아가두고 통문이 태학에까지 이르러 온 세상이 떠들썩합니다. 경외를 막론하고 그들의 유혹에 걸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빠져들어가게 되면 장차 금수의 지경으로 정신없이 들어가고 말 것이니, 엄격히 타파하여 뿌리를 뽑고 근원을 막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청컨대 진산에 가둔 죄수는 도신으로 하여금 특별히 엄하게 조사하여 그에 해당한 율을 적용하게 하시고, 한성부로 하여금 오부(五部)를 엄하게 신칙하게 하여 만약 발견된 자가 있으면 그 책은 불태우고 그 사람은 죄줌으로써 민심을 바로잡고 혼란의 근원을 막는 근본으로 삼으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하필 위에서 번거롭게 처리할 것이 있겠는가. 도백에게 넘겨 그 죄에 따라 법대로 엄히 처벌하여 윤리를 높여야 할 것이다. 연전에 ‘이단이 도처에 만연한 것은 바른 학문이 밝지 않기 때문이다.’고 나의 비답에 거듭 말하였기에, 그 이후 밝지 못했던 것이 점차 밝아지고 만연하던 것이 수그러들 줄 알았었다. 풍문을 비록 전부 믿기는 어려워도 대간의 말은 반드시 분명한 증거가 있는 것일 것이다. 미혹을 깨우치고 바로잡는 대책으로 볼 때 마땅히 막고 물리치는 강도를 한층 더해야 할 것이다.

대체로 중국의 경우는 온 나라 밖에도 오히려 한량없는 땅이 있기 때문에 설사 우리 유학(儒學)과 배치되는 것이 그 사이에서 싹트더라도 마치 태양 앞의 반딧불같아 자질구레하게 금하지 않더라도 피해를 끼칠 것이 없지만 우리 나라는 그렇지 않다. 풍토가 좁게 막히고 산천이 서로 얽혀 있어 가증스런 말쟁이들이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으니, 이것이 조정에서 반드시 엄금하고자 하는 이유이다.

태학은 곧 모범을 보이는 곳인데 달려나가는 방종한 마음과 객기(客氣)를 능히 통제하지 못하고 이따금 제 본분을 벗어나 외람된 행위를 하는 일이 있으므로 조정에서 그들의 방자한 짓을 그대로 방치해 둘 수 없어 부득이 경고와 책망을 약간 보였었다. 그런데 입으로 외고 귀로 듣기만 하는 껍데기 학업마저 거의 내팽개쳐버려 당당한 태학을 지키고 있는 자가 나이 80세 된 늙은 학구(學究)가 아니면 곧 서북 지방의 객지살이를 하는 두세 명의 유생뿐이니, 이는 실로 너무도 한심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괴상한 말과 부정한 설이 움추러들고 겁내도록 하는 문제는 그 책임이 꼭 태학에서 과거 공부를 하는 무리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고 범이 무서워 아욱을 캐지 못하는 형세는 진정 초야에 묻혀 글을 읽는 선비가 필요하다. 내가 현인을 대우하는 정성이 부족하여 비록 군자가 초야에 묻혀 있게 하더라도 시골마을과 항간에서 진실로 자신의 몸만 잘 지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부모는 그 자식을 가르치고 형은 그 아우를 격려하며 더 나아가 인척과 친지에게까지 힘이 미치는 대로 바른 도리를 일러 주고 밝혀 서로 갈고 닦는다면 그 성과가 장차 집집마다 사람마다 눈으로는 옳지 않은 책을 접하지 않고 입으로는 성인의 가르침이 아닌 것을 말하지 않게 될 것이니,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내가 비록 부덕하지만 군사(君師)의 지위에 있으므로 마땅히 이렇게 하는 것으로 노력하겠으나 또한 초야에서 행실을 닦는 선비들에게도 기대하는 점이 있으니, 각자 노력하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3책 33권 40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250면
  • 【분류】
    정론(政論) / 사상-서학(西學) / 사법(司法)

○丁巳/司憲府 【大司憲具㢞、執義林道浩、掌令李泰賢、持平柳 、正言朴崙壽等。】 啓言: "天主學, 卽一悖理之外道, 而惑世誣民之最甚者。 年前自朝家嚴禁之後, 庶幾永絶根本, 而閭巷間, 潛自慕效者, 間或有之云。 此已怪駭, 而近聞湖南之珍山郡, 有以士爲名者數人, 專治其學, 甚至於傷倫悖義之事, 不一而足。 邑倅嚴加拘囚, 通文至及太學, 一世喧藉。 勿論京外, 被其誑惑, 漸多陷溺, 則駸駸然將入於禽獸之域, 不可不嚴加打破, 期於拔本塞源之道。 請珍山郡拘囚者, 令道臣另加嚴覈, 快施當律, 使京兆嚴飭五部, 如有現發者, 火其書而罪其人, 以爲正民心杜亂源之本。" 批曰: "何必上煩處分? 付之道伯, 以其罪如法痛繩, 以尊倫常, 而年前以異端之橫流, 爲由於正學之不明, 十行判批, 言之重複, 庶幾其間, 不明者漸明, 橫流者寢息。 風傳雖難盡信, 臺言必有的據, 其在牖惑戢迷之方, 宜有申加防闢。 大抵中原, 則六合之外, 猶多不盡之地界, 設或與吾儒背馳者, 孽芽其間, 如螢爝之於太陽, 不屑爲無足貽害, 而我國不然。 風土之所偏塞, 山川之所阻閡, 憎玆多口, 釀成事端, 此所以朝家之必欲嚴禁者也。 太學, 卽首善之地, 而走作之放心客氣, 不能制持, 往往有出位越俎之擧, 朝家不忍任渠猖恣, 不得不略示警責。 竝與口耳之學, 絃誦之業, 幾乎闕如, 堂堂黌舍之間, 守而居之者, 非年八十老學究, 則乃西北羈蹤之數三縫掖, 此固萬萬寒心, 而異言詖說之淬礪畏憚, 其責未必在於庠序科目之類, 惟其藜藿不採之勢, 政須於林下讀書之士, 而緣予緇衣之誠未篤, 雖使君子在野, 鄕黨州閭之中, 苟以獨善爲恥。 父敎其子, 兄勖其弟, 以及姻親, 知舊力之, 所遍講而明之, 交相切磋, 則其爲效益, 將見家家人人, 目不接不經之書, 口不道非聖之訓, 豈不休哉? 予雖否德, 在於君師之位, 當以是自勉, 而兼有望於林下飭躬之士, 各思勉旃。"


  • 【태백산사고본】 33책 33권 40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250면
  • 【분류】
    정론(政論) / 사상-서학(西學) / 사법(司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