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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33권, 정조 15년 10월 14일 을묘 2번째기사 1791년 청 건륭(乾隆) 56년

심이지를 평양부에 유배하고 조진명은 금갑도에 귀양보내다

심이지평양부에 유배하고 조진명금갑도(金甲島)에 귀양보냈다. 의금부가 아뢰기를,

"전 평양 감사 심이지의 구두 공초에 ‘조진명이 3년 동안 재임하면서 좌수(座首)·별감(別監)·도감(都監)·집헌(執憲)·약정(約正)을 뽑아 차출한 숫자가 6백 60여 인입니다. 그 중에는 향천(鄕薦)으로 차출한 것도 있고 면보(面報)로 차출한 것도 있고 백성의 구제를 도운 공로로 차출한 것도 있는데, 이 숫자는 도합 1백 70여 인이며, 이들은 돈을 바친 일이 없습니다. 또 사적인 안면으로 남의 청탁을 받고 차출한 것도 있고, 혹은 아전이나 향임(鄕任)에게 속아서 차출한 것도 있고, 또 간혹 아객(衙客)들이 중간에서 차출받으려 한 것도 있는데, 도합 4백 90여 인으로서 이들이 바친 돈이 3만 4천 600여 냥이나 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또 향청(鄕廳)에서 관례로 준 것도 있고 차출을 도모하여 뇌물로 준 것도 있고, 중간에 없어진 것도 있습니다. 올해 2월 조진명이 체직되어 떠난 뒤에 그에 관한 소문이 파다하였으므로 너무도 놀랍고 분통스러워 체지(帖紙)를 받은 사람들을 잡아다가 돈을 주고받은 사실을 따져 물었더니, 돈은 모두 일을 맡았던 간사한 향임과 아객들의 손에 들어갔으나 아객과 아전, 향임들에게서 그 금액을 다 받아낼 길이 없었습니다. 허다한 차출 체지가 모두 진명에게서 나왔고 허다한 간사한 폐단도 모두 진명에게서 생겨난 것이라, 이 때문에 진명에게서 받아들이게 한 것이 1만 1천 4백여 냥이며 아전과 향임에게 받아낸 것은 3천 8백여 냥이었습니다. 무뢰하고 간사한 무리들이 서로 결탁하여 속임수로 가져간 수량에다가 또 형편을 관망하고 도피한 자도 있으므로 이것은 잡아다가 받아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다 받아낸 다음에 사실에 근거하여 보고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을 끝내기 전에 먼저 은혜로운 견책을 받아 서둘러 유배지로 가게 되었으므로 결국 그럭저럭 덮어둔 죄를 면치 못하게 되었으니, 그 죄가 만번 죽어 마땅합니다.’ 하였습니다."

하니, 판부하기를,

"어제 대질시키라고 한 전교에 이미 대략 말하였지만, 이 공초를 보니 생각했던 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감영의 관하에 이런 아객의 수중에 빠진 탐욕스런 수령이 있는데도 한 도를 규찰하는 자리에 앉아 즉시 알아내지 못하였다. 그 관직에 있을 때 만약 한마디 말로 엄하게 금지하였더라면 진명은 결코 따르지 않을 리가 없다. 이 때문에 ‘부족한 사람을 벼슬에 임명하는 것은 그 사람을 해치는 것이다.’는 성인의 말씀을 심이지에게 인용하여 유시하는 것이다. 진명의 죄악을 차츰차츰 조성시킨 것도 심이지이고 평양의 백성들로 하여금 예전(禮錢)을 마련하여 바치느라 소란을 피우게 한 것도 역시 심이지이다. 특별히 제수되어 나간 자가 이토록 내 뜻을 저버렸으니, 먼 변방에 유배되는 벌을 어찌 피할 수 있겠는가. 현재 옥에 갇힌 심이지평양 그 지방에다 서둘러 유배하는 벌을 시행하라."

하였다. 금부가 또 아뢰기를,

"전 평양 서윤 조진명의 구두 공초에 의하면 ‘친지의 사적인 안면에 구애되어 청탁을 들어주기에 이르렀고, 아객인 박지온(朴志溫)을 너무 믿어 장교(將校)와 향임을 차출할 때 그 간교한 실정을 살펴보지 못하여 3년 동안에 차출한 숫자가 많았습니다. 전 감사가 이미 아객과 그때 함께 나쁜 짓을 한 향임들을 엄중히 조사하여 예전(禮錢)·잡비전(雜費錢)·뇌전(賂錢)을 일일이 받아내 도로 나누어 주고, 저에게서 받아간 것이 1만 4천 6백 냥입니다. 간사한 향임과 교활한 아객에게 농락을 당했든 당하지 않았든지 간에 전 도신이 조사한 숫자가 이미 명백하니, 장오죄에 대해 어찌 감히 변명을 하겠습니까.’ 하였습니다."

하니, 판부하기를,

"대간의 상소에 이미 탐오한 사실을 말하였기에 내 생각으로는 그가 공금을 멋대로 썼거나 향임(鄕任) 자리를 멋대로 주물러 장오죄를 범한 것으로 여겼으므로 어제와 오늘 그 사실을 따져 물어 밝히라고 여러 차례 신칙하는 명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 이 공초를 보건대 여러 번 물어볼 것도 없겠으니 그가 한 행동과 그 문제의 전말을 말마다 사실대로 아뢰고 구절마다 자신이 책임지고 있다. 그의 공초를 통해서 비로소 공금을 축낸 것도 아니고 향임자리를 판 것도 아니며, 바로 세세한 약정·집헌 등을 차출하면서 받은 예전(禮錢)에 관한 일임을 알았다.

그러니 그의 소행을 탐욕이라 말하는 것이 옳겠는가, 장오죄라 말하는 것이 옳겠는가, 불법이라 말하는 것이 옳겠는가, 기만을 당한 것이라 말하는 것이 옳겠는가. 고금을 통해서 어찌 그의 행위처럼 무지하고 염치없고 터무니없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또 전 도신 심이지의 공초를 보면, 이른바 예전을 준 것은 모두 내력이 있는데 그에게서 받아낸 것은 약간에 불과하고 그 나머지는 모두 아객들에게서 받아냈으며 새 도백이 내려가 또 아직 받아내지 못한 나머지를 받아냈다고 하였다. 저 아객들이 만약 남모르게 농간을 부려 진짜로 삼켜먹은 것이 아니라면 요즘처럼 옛날같지 않은 인심으로서 몇 차례 신문을 받았다 하여 어찌 생판으로 준비하여 바치고 감히 한마디도 책임을 미루는 말을 하지 않았겠는가. 그렇다면 도백의 공술도 편들어 줄 수가 없다. 이 죄수가 말한 전 도백과 현 도백이 조사해 낸 것을 되돌려 준 숫자는 이미 감영에 도장을 찍은 문서가 있다고 하였으니, 끝내 자기 돈으로 만들었다고 억지로 지목할 수는 없다. 부당하게 취한 재물의 수효를 계산하는 문제는 논의하기 어려울 듯하다.

그러나 간사한 계책으로 옆에서 충동질하는 것에 빠져들어가 기꺼이 함께 나쁜짓을 한 결과가 되었으니, 이처럼 국가의 은혜를 저버린 자에 대해 만약 죄를 배가하는 법을 쓰지 않는다면, 악을 징계하고 완악함을 막는 원칙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곧바로 사형의 율을 적용하려 해도 죄에 꼭맞는 율이 없으므로 그를 살릴 것인가 죽일 것인가에 대해 마땅히 대신과 옥관들에게 널리 물어 처리해야 할 사안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니, 죽일 수도 있고 죽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특별히 그의 숙부인 충정(忠定)201) 을 생각해서 내 뜻을 굽혀 가벼운 쪽을 따른다. 이는 비록 고요(皐陶)로 하여금 이 옥사를 다스리게 하더라도 너무 지나치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죄인 조진명에 대하여 법을 어긴 장오죄를 법을 어기지 않은 장오죄에 준하여 처단하라. 대체로 장오죄로 사형을 당하는 법에다가 법을 어기지 않은 조항을 하나를 따로 두고 또 준(準)이란 한 글자를 준비해 두었으니, 사실은 같아도 실정이 다른 경우에 이 준이란 글자를 적용하면 죽을 사람이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법을 제정한 본의가 어찌 아름답지 않은가. 조진명을 이 율로 적용시킨 것은 다섯 가지 형벌이 다 바르게 된 가운데 이 좋은 형벌을 거울삼도록 하자는 뜻이니, 경 등은 이에 따라 알아서 거행하라. 그러나 매를 쳐서 유배하는 것은 너무 가벼우니, 사형을 감해 절도(絶島)에 유배하도록 하라. 간사한 짓을 한 아객 등은 해당 도의 감사로 하여금 법에 비추어 엄중히 처벌하게 한 뒤에 이른바 예전을 돌려준 내용과 함께 장계로 보고하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3책 33권 39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249면
  • 【분류】
    사법(司法)

  • [註 201]
    충정(忠定) : 조경(趙璥)의 시호.

○竄沈頣之平壤府, 配趙鎭明金甲島。 義禁府啓言: "前平安監司沈頣之口招云: ‘趙鎭明三年在任, 座首、別監、都監、執憲、約正差出之數, 爲六百六十餘人, 而有以鄕薦差出者, 有以面報差出者, 有以補賑功勞差出者, 合爲一百七十餘人。 此則無納錢之事, 又有以顔私, 受人干囑而差出者, 或有以吏鄕欺蔽而差出者, 又或有衙客從中圖差者, 合爲四百九十餘人, 各人所納錢, 爲三萬四千六百餘兩。 有鄕廳例給者, 有圖差賂給者, 有中間消融者。 今二月趙鎭明遞去之後, 傳說狼藉, 故不勝驚惋, 推捉受帖各人, 究詰與受之跡, 則錢貨去處, 皆屬於任事之奸鄕與衙客, 而衙客吏鄕, 俱無盡數辦出之路。 許多差帖, 皆出於鎭明, 許多奸弊, 皆由於明, 故使之徵來於鎭明者, 爲一萬一千四百餘兩, 吏鄕處收捧爲三千八百餘兩。 無賴奸細之徒, 作契欺取之數, 又有觀望逃避者, 此則不可不捉得收捧, 故期於準捧準給後, 據實登聞之計矣。 未及了當, 先被恩譴, 蒼黃赴配, 不免爲因循掩置之科, 罪合萬戮’ 云。" 判曰: "昨於置對傳敎, 已略言之, 觀此所供, 無出於所料。 營下有此墨倅之入於衙客袖裏者, 身忝按道, 莫卽聞知。 在官時若以一言, 嚴加防戢, 則鎭明決無不從之理。 此所以賊夫人之聖訓, 引諭於沈頣之者。 駸駸然馴成鎭明之惡者, 頣之也, 使箕城之民, 繹騷於備納禮錢者, 亦頣之也。 出自特畀, 孤負至此, 嶺海之典, 烏可逭也? 時囚沈頣之, 卽其箕城地方, 亟施放竄之典。" 又啓言: "前平壤庶尹趙鎭明口招, 拘於親知之顔私, 至有干囑之聽施, 偏信衙客朴志溫, 將校鄕任差出之際, 莫察其奸狀, 三年之間, 厥數夥然。 前道臣旣已嚴査衙客及其時同惡之鄕任, 禮錢、雜費錢、賂錢, 一一徵出分給, 而責徵於渠者, 爲一萬四千六百餘兩。 無論奸鄕猾客之賣弄與否, 前道臣査出之數, 旣已明白, 則贓案何敢發明乎?" 判曰: "臺疏旣言貪饕, 意謂其贓汚在於犯用公貨與恣弄鄕任, 昨今以究問得情事, 屢下飭諭。 觀此供招, 不待累次盤問, 渠之所爲也, 本事委折也, 言言直告, 節節自當。 因渠供始知非公貨非賣鄕, 而卽瑣瑣屑屑, 約正、執憲等差任禮錢事也。 渠之所爲, 曰以貪可乎, 曰以贓可乎, 曰以不法可乎, 曰以見欺可乎? 往古來今, 寧有如渠所爲之無知無恥無形無狀者乎? 且觀前道伯沈頣之之供, 則所謂禮錢推給, 皆有來歷, 而渠處徵出者, 不過如干數, 其外皆徵於衙客輩, 而新伯下去, 又徵未捧之餘數云。 彼衙客輩, 若非暗地簸弄, 眞箇都呑, 則以近日人心之不古, 屢被拷掠之下, 寧或白地辦納, 不敢一言推諉乎? 然則道伯之供, 不可以右袒。 此囚言前伯時伯査出還給之數, 旣有營上踏印文案, 則不可勒歸於竟作己物。 計贓一款, 似難議到, 而醉墮奸計之慫慂, 甘爲同惡之歸, 如許辜負國恩之人, 若不用加倍之典, 烏在其懲惡戢頑之義乎? 然其直用死律, 律無可襯, 則其活其殺, 當博詢於大臣獄官處之。 更思, 可死不可死之間, 特念乃叔忠定, 屈以從輕。 雖使皐陶讞此獄, 不以爲失於太過。 罪人趙鎭明枉法贓, 准不枉法贓處斷。 大抵贓死之律, 另立不枉法一條, 又備准之一字, 凡於跡同情殊處, 下此准字, 則死者生焉。 制法之本意, 豈不美好乎? 以鎭明擬此律, 意在於五極咸中, 監于玆祥刑。 卿等依此知悉擧行, 而杖流太輕, 以絶島減死定配。 作奸之衙客等, 令該道道臣, 照法痛繩後, 幷與所謂禮錢之推給形止, 狀聞。"


  • 【태백산사고본】 33책 33권 39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249면
  • 【분류】
    사법(司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