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실록32권, 정조 15년 3월 17일 신묘 1번째기사
1791년 청 건륭(乾隆) 56년
육상궁을 참배하고 봉안각을 봉심하다
육상궁(毓祥宮)을 참배하고 봉안각(奉安閣)을 봉심(奉審)하였으며, 선희궁(宣禧宮)·연호궁(延祜宮)·의소묘(懿昭廟)에 작헌례(酌獻禮)를 거행하고, 장보각(藏譜閣)을 살펴보았다. 상이 근신들과 함께 세심대(洗心臺)에 올라 잠시 쉬면서 술과 음식을 내렸다. 상이 오언근체시(五言近體詩) 1수를 짓고 여러 신하들에게 화답하는 시를 짓도록 하였다. 이어 좌우의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임오년072) 에 사당을 지을 땅을 결정할 때 처음에는 이 누각 아래로 하려고 의논하였으나, 그때 권흉(權兇)이 그 땅이 좋은 것을 꺼려서 동쪽 기슭에 옮겨 지었으니, 지금의 경모궁(景慕宮)이 그것이다. 그러나 궁터가 좋기로는 도리어 이곳보다 나으니, 하늘이 하신 일이다. 내가 선희궁을 배알할 때마다 늘 이 누대에 오르는데, 이는 아버지를 여윈 나의 애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이다."
하였다. 누대는 선희궁 북쪽 동산 뒤 1백여 보 가량 되는 곳에 있다.
- 【태백산사고본】 32책 32권 35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211면
- 【분류】왕실(王室)
- [註 072]임오년 : 1762 영조 38년.
○辛卯/展拜于毓祥宮, 奉審奉安閣, 行酌獻禮于宣禧宮、延祜宮、懿昭廟, 審藏譜閣。 上與近臣, 登洗心臺少憩, 宣醞宣飯, 上賦五言近體詩一篇, 命諸臣賡進。 謂左右曰: "壬午廟宇之卜地也, 始議於此臺下時, 權凶忌其地美, 移就東麓, 今景慕宮是也。 宮地之美, 反勝是地, 天也, 而予每謁宣禧宮, 輒登玆臺, 蓋所以寓予終天之痛也。" 臺在宣禧宮北園後百餘步。
- 【태백산사고본】 32책 32권 35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211면
- 【분류】왕실(王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