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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31권, 정조 14년 11월 18일 갑오 1번째기사 1790년 청 건륭(乾隆) 55년

용산의 별영에 행차하여 서도와 북도의 무사들에게 활쏘기 시험을 보다

용산(龍山)의 별영(別營)에 행차하였다. 이날 서도와 북도의 별부료 무사(別付料武士)들에게 모화관에서 활쏘기 시험을 보일 것을 명하였다. 승여(乘輿)가 이미 조비되고 신호를 알리는 북이 울리기 전에 현임·전임 각신과 여러 승지와 약방 제조가 대궐에 들어가 면대를 청하자 모두 파직을 명하고, 이어 병조 판서에게 수어사(守禦使)를 겸임하게 하고 남소 위장(南所衛將) 김정서(金鼎瑞)를 가승지(假承旨)로 차임하도록 명하였다. 지사(知事) 김한기(金漢耆)가 상소하기를,

"신은 삼가 듣건대, 정치달(鄭致達)의 처가 도성에 잠입한 지 벌써 여러 날이 되었고 역적 종친이 또 강화도에서 도망칠 기미가 있다고 합니다. 위에 계신 성명께서 단속하기를 지극히 엄하게 하였다면 이런 말이 어떻게 나올 수 있겠습니까.

아, 을사·병오년간에 역적을 징토한 조치로 윤리가 이를 힘입어 바로 서게 되었고 국세가 이를 힘입어 안정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차차 오래되고 인심이 점차 안일에 빠지자 여기에서 흉악한 무리가 기세를 부리고 난역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한번 변하여 역적 김하재(金夏材)가 되고 두번 변하여 역적 구선복(具善復)이 되었습니다. 음흉한 조시위(趙時偉)와 간악한 우진(宇鎭)에 이르러는 독살스런 손길을 병오년에 뻗쳤고, 요사한 재간(在簡)과 광패한 신기현(申驥顯)은 품고 있던 앙심을 작년 겨울에 드러냈습니다. 실로 그 근원을 따져보면 이 어찌 모두가 을사·병오년간에 내세운 의리가 점차 흐려지고 화근이 되는 역적 괴수가 아직까지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오히려 곧 경기에 구류시킨 요물을 뽑아올리고 강화도에 가두어놓은 극악한 역적을 빼어내며 을사·병오년간의 비호 세력을 받들고 병오·기유년의 소굴을 보호하여 그들이 마음놓고 도성 안에 들어와 있게 하려 하니, 이것은 전하께서 이 의리를 능히 밝히지 못할 뿐 아니라 도리어 그것을 헐어버리는 처사이며 능히 엄하게 하지 못할 뿐 아니라 도리어 그것을 홀시하는 처사입니다.

저 을사·병오년간의 잔당은 틀림없이 앞으로 기회를 틈타서 날뛰며 팔을 걷어붙이고 일어나서 도성 안에 있는 것도 부족하여 필경은 대궐에 출입하기를 도모할 것이며, 대궐에 출입하는 것도 부족하여 필경은 홍인한(洪麟漢)정후겸(鄭厚謙)의 죄를 씻어줄 것을 도모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끝내는 왕위를 주고받은 대의를 흐리게 하고 역적 징토의 대의를 혼란시킨 후에야 그만둘 것입니다. 저 정치달의 처는 성상을 핍박하고 국권을 농락하였으되 아직까지 이 세상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으니 이것은 형벌을 크게 잘못 적용한 것입니다. 병오년 여름과 가을의 변란에 이르러서는 저 역적 종친이 실로 흉악한 무리의 소굴이 되어 기어코 나라의 명맥을 끊고 종묘를 남몰래 옮기려 하였는데, 전하께서는 어찌하여 징계할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기어코 두 흉물을 측근에 두려 하십니까. 성상 자신이야 비록 대단찮게 여긴다 하더라도 종묘와 자전(慈殿)·자궁(慈宮)의 위신에 대해서는 어찌하시렵니까.

신기현(申驥顯)을 발탁하라는 하명은 이 무슨 일입니까. 이 역적의 범행이 어떠하며 온 조정의 성토가 어떠하였습니까. 그럼에도 지금 갑자기 측근의 직책인 승지를 제수하고 계속하여 칭찬의 하교가 있어 그의 흉언을 일러 격언이라 하고 그 극악한 죄를 일러 무슨 죄가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역적 기현이 지난날에 올린 흉악 한 상소는 역적 징토를 가탁하여 금부 당상을 처벌할 것을 청하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국사를 독단한다.’고 말하였으니, 그가 노리고 있는 저의가 어디에 있는지는 길 가는 사람도 알고 있습니다. 그때 금부 당상이 거행한 일은 곧 자전의 하교를 받든 것인데 자전의 하교는 곧 종묘 사직을 위하고 전하를 위한 것으로서 천지간에 떳떳하고 귀신에게 질정할 수 있는 큰 의리인 것입니다. 모든 우리 나라의 신자(臣子)가 된 자는 다만 종묘 사직과 성상이 있음을 알 뿐이니, 큰 의리와 관계된 일을 어찌 떠받들지 않겠습니까. 지금 이것을 받들어 수행한 금부 당상에게 독단한다는 죄명을 씌운다면 이것이 어찌 감히 언급할 수 없는 지위에 계신 분을 핍박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그를 칭찬하시는 것은 지난날 그의 상소에 대한 비답 중 ‘윗분을 핍박할 것이 염려스럽다.’고 한 하교와 어쩌면 그렇게도 상반됩니까.

강화도의 일에 이르러서는 상하 관청과 연변의 두세 고을이 모두 텅 비었는데 죄인이 남몰래 빠져나가는 것을 누가 막겠습니까. 이런 것으로 미루어보면 전해오는 말이 헛된 말이 아님을 알 수 있고, 여러 날째 귀를 기울이고 들어봐도 아직까지 한 사람도 목숨을 내걸고 힘써 간쟁하는 자가 없습니다. 이것이 어찌 온 조정이 잠에 취하고 모든 관리는 혀가 굳어져 밖으로는 전하의 억누르는 위엄에 겁을 먹고 속으로는 사세나 관망하려는 버릇을 품은 데서 나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은 삼가 통탄스럽게 여깁니다. 신은 병든 몸을 싣고 적을 징토하는 의리로써 처음에는 기어서라도 길을 떠나려 하였으나 병세가 더욱 심하여 감히 이 미천한 신의 자식인 안성 군수(安城郡守) 김용주(金龍柱)를 시켜 승정원에 대신 글을 올리게 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이런 상소를 어찌 받아들일 수 있는가. 담당 가승지를 엄히 처벌하고 원소(原疏)는 승정원에서 찢어버리라."

하였다. 교리 성종인(成種仁), 부교리 박기정(朴基正)·윤영희(尹永僖), 수찬 이경운(李庚運)·박규순(朴奎淳), 부수찬 박종래(朴宗來)·김희조(金熙朝)가 상소하기를,

"지금 당장 걱정스러운 일이 날이 갈수록 더해지고 있습니다. 강화 유수는 이미 추천하였는데도 아직까지 보류하고 있으며, 경기 감사도 방금 추천하였으나 역시 낙점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켜야 할 땅에 그 방비를 비워놓은 지가 지금 며칠째이며 연로에서 죄인의 출입을 금할 자가 과연 누가 있습니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저도 모르게 뼈가 저리고 가슴이 서늘해집니다. 방비하는 절차와 규찰하는 방도를 하루 속히 신칙하여 중외의 의심하는 마음을 풀어주기 바랍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금지하는 것을 무릅쓰고 차자를 어제와 그저께 와서 올린 것도 이미 무엄하기 그지없는데, 또 어찌 감히 상소문을 옮겨 베껴 번갈아 바꾸어 올린단 말인가. 받아들인 승지를 엄중히 처벌할 것이며 원소는 되돌려 주도록 하라. 그리고 옥당 관원들에게는 다시 서용하지 않은 법을 적용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1책 31권 42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182면
  • 【분류】
    왕실(王室) / 군사(軍事) / 인사(人事) / 사법(司法) / 변란(變亂)

    ○甲午/駕詣龍山別營。 是日, 命行西北別付料武士試射于慕華館。 乘輿已駕, 嚴皷未下, 時原任閣臣、諸承旨、藥房提調, 詣閣請對, 竝命罷職, 仍命兵判, 兼察守禦使。 南所衛將金鼎瑞, 差假承旨。 時, 知事金漢耆上疏曰:

    臣伏聞鄭妻之潛入城闉, 已有日矣, 逆宗又自沁都有躱出之幾云。 聖明在上, 防限至嚴, 則此言奚爲而至? 嗚呼! 乙丙懲討之擧, 彝倫所賴以立, 國勢所賴而安者也。 日月稍久, 人心漸狃, 由是而凶黨增氣, 亂逆接踵。 一轉而爲賊, 再轉而爲逆, 以至凶、奸, 逞毒手於丙歲, 妖、悖, 售將心於昨冬。 苟究其源, 則何莫非乙丙義理之漸晦, 而禍根逆魁之尙在故耶? 今乃抽妖孽於畿累, 脫劇逆於島囚, 陪奉乙丙之奧援, 衛護丙己之窩窟, 肆然入處於輦轂之下。 是則殿下於此箇義理, 不惟不能明, 反有以斁之, 不惟不能嚴, 反有以忽之。 惟彼乙丙餘孽, 必將乘機跳踉, 投袂而起, 處城闉而不足, 必圖所以出入禁掖, 通禁掖而不足, 必圖所以洗滌, 掩翳授受之大義, 壞亂懲討之大防而後已也。 惟彼鄭妻, 危逼聖躬, 竊弄國柄, 而尙今容息於覆載之間, 已是失刑之大者。 至於丙午夏秋之變, 惟彼逆宗, 實爲凶孽之窩窟, 必欲斲喪國脈, 陰移宗祧。 何殿下不思懲毖, 略無畏愼, 必使兩凶, 欲處之肘腋也? 聖躬縱自輕, 奈 宗廟殿宮何哉? 驥顯陞擢之命, 此何事也? 此賊之負犯何如, 擧朝之聲討何如? 今忽特授近密, 繼有褒尙之敎, 以其凶言, 謂之格言, 以其極罪, 謂有何罪。 賊之向日凶疏, 假托懲討, 請罪禁堂, 以駭憤專輒爲言。 其指意所歸, 路人所知。 伊時禁堂之所以擧行者, 卽奉承慈敎也。 慈敎, 卽爲宗社爲聖躬, 建天地質鬼神之大義理也。 凡爲我臣子者, 只知有宗社有聖躬, 則大義理所關, 安得不奉承也? 今以奉承之禁堂, 歸之專輒之科, 則此豈非上逼不敢言之地乎? 今此褒奬之擧, 與渠疏批旨中爲慮上逼之敎, 一何相反至此哉? 至於沁都上貳衙, 沿路數三邑, 擧皆空曠, 罪人潛出, 誰當禁遏? 以此推之, 可知傳說之不虛, 而側聽屢日, 尙無一人碎首力爭者, 豈擧朝睡熟, 百僚舌强, 外怯殿下鉗制之威, 內懷渠輩觀望之習耶? 臣竊痛之。 臣以輿疾之義, 始擬匍匐登途, 病狀越添, 敢使賤息安城郡守臣龍柱替呈喉院。

    敎曰: "此等上疏, 豈可捧入乎? 當該假承旨, 當嚴處, 原疏, 自政院扯之。" 校理成種仁、副校理朴基正尹永僖、修撰李庚運朴奎淳、副修撰朴宗來金熙朝上疏曰:

    目下憂慮之端, 日甚一日。 沁留之已薦, 而尙今留中; 伯之方擬, 而亦不點下。 信地之虛其防守者, 今幾日矣; 沿路之任其禁截者, 顧何人也? 思之及此, 不覺骨顫而心冷。 伏願防守之節、紏察之方, 趁速申嚴, 以解中外疑慮之心。

    敎曰: "箚本之昨與再昨, 冒禁來呈, 已萬萬無嚴, 又何敢以疏移謄換呈乎? 捧納承旨當重勘, 原疏還給, 諸玉堂, 亟施不敍之典。"


    • 【태백산사고본】 31책 31권 42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182면
    • 【분류】
      왕실(王室) / 군사(軍事) / 인사(人事) / 사법(司法) / 변란(變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