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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30권, 정조 14년 7월 1일 기묘 1번째기사 1790년 청 건륭(乾隆) 55년

한강을 건너기에 편한 배다리에 관한 어제 《주교지남(舟橋指南)》의 내용

배다리[舟橋]의 제도를 정하였다. 상이 현륭원(顯隆園)수원(水原)에 봉안하고 1년에 한 번씩 참배할 차비를 하였는데, 한강을 건너는 데 있어 옛 규례에는 용배[龍舟]를 사용하였으나 그 방법이 불편한 점이 많다 하여 배다리의 제도로 개정하고 묘당으로 하여금 그 세목을 만들어 올리게 하였다. 그러나 상의 뜻에 맞지 않았다. 이에 상이 직접 생각해내어 《주교지남(舟橋指南)》을 만들었는데, 그 책의 내용은 이러하였다.

"배다리의 제도는 《시경(詩經)》에도 실려 있고, 사책(史冊)에도 나타나 있어 그것이 시작된 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지역이 외지고 고루함으로 인하여 아직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한가한 여가를 이용하여 부질없이 아래와 같이 적었다. 묘당에서 지어 올린 주교사(舟橋司)의 세목을 논변(論辨)하고 이어 어제문(御製文)을 첫머리에 얹혀 《주교지남》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1. 지형이다. 배다리를 놓을 만한 지형은 동호(東湖) 이하에서부터 노량(露梁)이 가장 적합하다. 왜냐하면 동호는 물살이 느리고 강언덕이 높은 것은 취할 만하나 강폭이 넓고 길을 돌게 되는 것이 불편하다. 빙호(冰湖)는 강폭이 좁아 취할 만하나 남쪽 언덕이 평평하고 멀어서 물이 겨우 1척만 불어도 언덕은 10척이나 물러나가게 된다. 1척 정도 되는 얕은 물에는 나머지 배를 끌어들여 보충할 수 없으므로 형편상 선창을 더 넓혀야 하겠으나 선창은 밀물이 들이쳐 원래 쌓은 제방도 지탱하지 못하는데 더구나 새로 쌓아서야 되겠는가. 건너야 할 날짜는 이미 다가왔는데 수위의 증감을 짐작하기 어려워 한나절 동안이나 강가에서 행차를 멈추었던 지난해의 일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또 강물의 성질이 여울목의 흐름과 달라서 달리는 힘이 매우 세차고 새 물결에 충격을 받은 파도가 연결한 배에 미치게 되므로 빙호는 더욱 쓸 수 없다. 그러므로 이들 몇가지 좋은 점을 갖추고 있으면서 이들 몇가지 결함이 없는 노량이 가장 좋다. 다만 수세가 상당히 높아 선창을 옛 제도대로 쓸 수 없는 점이 결점이다. 이것 역시 좋은 제도가 있는만큼 【아래 선창교(船槍橋) 조항에 보인다.】 염려할 것은 없다. 이제 이미 노량으로 정한 이상 마땅히 노량의 지형을 살피고 역량을 헤아려 논의해야 하겠다.

2. 물의 넓이이다. 선척의 수용을 알려면 반드시 먼저 강물의 넓이가 얼마인가를 정해야 한다. 노량의 강물넓이가 약 2백 수십 발이 되나 【발은 기준이 없으나 일체 지척(指尺) 6척을 한 발로 삼는다.】 강물이란 진퇴가 있으므로 여유를 두어야 하니 대략 3백 발로 기준을 삼아야 한다. 배의 수용 숫자를 논하는 데는 그 강물의 진퇴에 따라 적당히 늘이고 줄이는 것이 실로 무방할 것이다.

3. 배의 선택이다. 지금의 의견에 의하면 앞으로 아산(牙山)의 조세 운반선과 훈련 도감의 배 수십 척을 가져다가 강복판에 쓰고 양쪽 가장 자리에는 소금배로 충당해 쓰겠다고 하나, 소금배는 뱃전이 얕고 밑바닥이 좁아서 쓸모가 없다. 그러므로 5개 강의 배를 통괄하여 그 수용할 숫자를 헤아리고, 배의 높낮이의 순서를 갈라 그 완전하고 좋은 배를 골라 【모두 아래에 보인다.】 일정한 기호를 정해놓고 훼손될 때마다 보충하며 편리한 대로 참작 대처하는 것만 못할 것이다.

4. 배의 수효이다. 여러 가지 재료에 【종량(縱樑)과 횡판(橫板) 등이다.】 드는 경비를 알려면 반드시 배의 수효를 먼저 정해야 하고, 배의 수효를 정하려면 반드시 먼저 배 하나하나의 넓이가 얼마인가를 헤아려야 한다. 가령 갑이란 배의 넓이가 30척이 된다면 【5발로 계산한다.】 을이라는 배의 넓이는 29척이 되며, 병과 정의 배도 차례차례 재어서 등급을 나누어 연결하고 통틀어 계산하여 강물의 넓이 1천 8백 척에 【3백 발로 계산한다.】 맞춘다면 선척이 얼마나 수용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고, 각종 재료의 경비도 또한 이를 미루어 추정할 수 있다. 지금 경강(京江)에 있는 배의 넓이를 일체 30척으로 【만약 5발에 차지 않는 것이 있으면 그 척수에 따라 배의 수를 더해주어야 한다.】 계산한다면 강물의 넓이 3백 발 안에 60척이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5. 배의 높이이다. 대개 배다리의 제도는 한복판이 높고 양면은 차차 낮아야만 미관상 좋을 뿐 아니라 실용에도 합당하다. 【작은 배는 응당 얕아야 하고 큰 배는 응당 깊어야 한다.】 높고 낮은 형세를 살피려면 반드시 먼저 선체의 높고 낮음을 정해야 한다. 가령 중앙에 있는 갑이라는 배의 높이가 12척이 【2발로 따진다.】 된다면 좌우에 있는 을이라는 배의 높이는 11척 9치가 되며 좌우에 있는 병과 정의 배 또한 각각 몇푼 몇치씩 점차 낮아지게 함으로써 층차가 현저히 다르게 하지 말아야 한다. 우선 배 하나하나의 높이가 얼마라는 것을 배열해 놓는다면 한장의 종이 위에 차례로 분배할 수 있고 그리하여 군영의 대오를 정렬한 것처럼 한눈에 들어오게 한다면 문밖을 나가지 않아도 배다리는 손바닥 위에 환하게 있게 되는 것이다. 만약 1푼 1치를 따져 조금씩 줄이지 않다가 갑자기 높아지거나 낮아지게 된다면 미관상 좋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층차가 나는 곳에는 메우기가 힘들고 또 대나무발을 쳐서 미봉해야 할 것이다. 지난해 대나무발의 비용이 천 냥이 넘었는데 매년 이 비용도 또한 감당하기 어렵다. 지금 이 방법을 쓴다면 공석으로 덮는 정도에 불과하니, 이 어찌 비용을 줄이는 한가지 방법이 되지 않겠는가. 다만 배의 높이와 넓이를 미리 기록해 두어야 제때에 가져다 쓸 수 있다. 3월 이후에는 각처의 배가 각자 떠나 바람을 따라 표박하다보니 찾아 붙잡아 쓸 수 없으니 지금 마땅히 오강(五江)038) 의 선주로 하여금 각기 자기 선박이 정박해 있는 곳을 알리라고 하여 그것을 열서하여 책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면 이가의 배는 호남 어느 고을에 가 있고 김가의 배는 호서 어느 고을에 가 있다는 것을 일일이 파악한 후 특별히 근실하고 청백한 사람을 【여러 사람이면 폐단이 있을 수 있으므로 한두 사람이면 된다.】 골라 배가 정박해 있는 각처를 돌며 책에 기록된 것을 조사하여 그 배의 높이와 넓이의 척수를 재어 아무개의 배는 아무 배 아래라는 것을 일일이 적어 가지고 오게 해야 한다. 그런데 그 배의 높이를 재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물속에 들어간 높이이고 하나는 물밖에 나온 높이이니, 이것을 만약 정밀하게 하지 않으면 어긋나기 쉽다. 물밖에 나온 높이는 수직선으로 재야 하고 물속에 들어간 높이는 곡척으로 재야 하며, 완전한가 완전하지 않은가에 대해서도 또한 충분히 살펴서 공정하게 기록해야 한다. 이와 같이 한 다음에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려서 그 만들어진 책을 대조 검열하여 넓고 좁음을 헤아려 배가 몇척이 필요한가를 정하고 높고 낮음을 헤아려 차례차례 배열할 순서를 정하며, 완전한가 낡았는가를 가지고 취사선택의 표준을 정한다. 그리하면 곧 아무 갑선과 아무 을선이 몇 척이면 배다리를 놓을 수 있다는 것을 정할 수 있을 것이다. 명목이 이미 정해진 다음에는 각 선주들에게 알려서 배가 뽑힌 사유를 알게 하고 각처에 공문을 띄워 발송기일을 독촉하면, 담당 관리가 한 번 장부를 상고함으로써 배는 기일을 맞추어 모여들게 되고 다리는 하루도 걸리지 않아 완성할 수 있다.

6. 종량(縱梁)이다. 【배 위에 세로로 연결하는 것이다.】 종량을 돛대로 쓰면 세 가지 폐단이 있다. 대체로 돛대는 아래는 굵고 위는 가늘어서 연결할 때 자연히 울룩불룩하게 되고 판자를 그 위에 깔아놓을 때 매우 고르지 못한 것이 첫째 결함이다. 그리고 돛대를 연결할 때 많은 배를 쭉 펴놓기 때문에 1척의 배가 고장나도 【깨어지거나 물에 잠기게 될 때이다.】 옆의 배가 지장을 받아 고쳐 보충하기 불편한 것이 둘째의 결함이다. 그리고 돛대는 곧 상인들의 개인물건이므로 혹시 꺾어지기라도 하면 또한 백성들에게 폐단을 끼치게 되는 것이 셋째 결함이다. 지금 논의에 의하면 별도로 긴 나무를 깎아서 쓰는 것이 편리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이 할 경우 두 가지의 폐단은 구제할 수 있지만 1척의 배가 고장이 났을 때 곁의 배가 지장을 받는 폐단은 여전하다. 또 긴 장대는 다른 데서 구할 수 없고 오직 호남의 섬에서만 찍어와야 하는데, 바다로 운반할 때는 강물과 같이 나무를 떼로 매어 물에 떠내려보낼 수 없으므로 부득이 큰 배에 싣게 된다. 그러나 1척의 배를 가로지르는 긴 나무라서 많이 실을 수 없다. 혹은 배의 옆에다 달아 끌기도 하고 혹은 배의 머리에 매게 되는데, 배 하나에 많아야 수십 주를 끌고 오는 것에 불과하다. 천리의 바닷길을 항해하여 무사히 도착한다는 것도 기대하기 어렵거니와, 또 그 중간에 농간을 부리는 폐단이 속출하여 여러 고을이 소란스러울 것은 필연적인 형세이다.

이번엔 긴 장대를 쓰지 않고 많은 배를 연결할 때 다만 배마다 장대 1개씩 쓰는 것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배의 넓이가 5발이 되면 종량의 길이는 7발로 기준을 삼아 그 2발의 나머지 길이가 뱃전의 양편을 걸치게 해야 하니, 곧 갑이란 배의 종량이 을이란 배의 종량과 서로 맞붙는 것이 1발씩 되게 하고, 병이란 배의 종량과 맞붙는 것도 1발씩 되게 한다. 또 그 갑이란 배의 종량 끝부분이 을이란 배의 가룡목(駕龍木) 【곧 배 안에 가로지른 나무로서 배 안에 버텨놓아 한 간, 두 간으로 가르는 것이다.】 위에 맞닿아 을이란 배의 종량과 서로 합하게 하고 을이란 배의 종량 끝부분이 갑이란 배의 가룡목과 맞닿아 갑이란 배의 종량과 서로 합하게 한 다음 칡줄로 동이고 탕개로 조인다. 모든 다리를 차례차례 이런 식으로 만든다면 건들건들 유동할 리가 만무하다.

그러나 논자들은 오히려 완고한 긴 장대만 못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또 두 종량이 서로 맞닿는 곳에 구멍을 뚫고 빗장을 질러놓으면 더욱 안전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1척의 배가 고장난다 하더라도 양쪽에 동인 밧줄만 풀면 고장난 배를 고칠 수 있으니, 또한 어찌 장대를 길게 놓아 많은 배가 지장을 받겠는가. 【또 기구를 창고에 출납할 때에도 또한 매우 간편할 것이다.】 어로(御路)의 넓이를 4발로 정하였다면 1발 사이마다 1개의 종량을 놓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배마다 5개의 종량이 들 것이며 60척의 배에 들어가는 것은 3백 개가 될 것이다. 장대마다의 길이가 7발에 불과로 1척의 배에 1백 개는 충분히 실을 것이며 따라서 3척의 운반선이면 충분히 실어나를 수 있다. 그러므로 바다를 항해하느라 겪는 고난도 없게 된다. 종량의 크기는 네모로 깎되 면마다 1척으로 표준을 삼으면 쓰기에 알맞을 것이다.

7. 횡판(橫板)이다. 어로(御路)의 넓이가 4발이 된다면 횡판의 길이도 또한 4발이다. 횡판의 넓이는 1척 【곧 지척(指尺)을 말한다. 자의 규격이 영조척(營造尺)에 비하면 8푼이 적고 예기척(禮器尺)에 비하면 2푼이 많다.】 이상으로 표준을 삼고, 두께는 3치 【영조척으로 따진다.】 이상으로 표준을 삼는다. 그리고 강물의 넓이 1천 8백 척에 맞추자면 횡판 또한 1천 8백 장이 들어야 한다. 그 수송 방법은 배 1척이 3백 개를 충분히 실을 수 있다면 불과 6척의 운반선으로 넉넉히 실어나를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논의에 의하면 종량과 횡판에 드는 소나무가 적어도 5천 주에 밑돌지 않는다 하고 계사(計士)들과 간사(幹事)들은 그것도 부족하다고 한다. 이것이 이른바 계산에 밝지 못하고 간교한 폐단이 속출하는 원인이다. 이상에서 배정한 숫자로 계산한다면 보통 소나무 1주당 종량 2개가 나오고, 큰 소나무 1주당 횡판 4장이 나오게 되니, 보통 소나무는 3백 주이며 큰 소나무는 4백 50주다. 【이는 모두 넉넉하게 잡은 것이다.】 합하여 7백 50주면 충분히 여유가 있으니 5천 주가 든다는 말이 어찌 근사하기나 한 것인가. 종량에 쓸 나무는 장산곶(長山串)에서도 베어 올 수 있고, 횡판에 쓸 나무는 안면도(安眠島)에서도 베어 올 수 있다. 대개 큰 소나무는 주당 판자가 4개만 나오지는 않는다. 설사 몸통이 작은 것이라도 길이는 8, 9발은 넉넉히 되니, 그 절반을 잘라 두 토막으로 만들고 또 그 절반을 톱으로 켜면 1주에 횡판 4개는 나오고도 남음이 있다. 대개 소나무를 작벌할 때 농간을 부리는 폐단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전은 이를 기화로 사정을 쓰고, 상인은 이를 계기로 이익을 본다.

그러므로 해당 수령을 엄중히 신칙하여 직접 검사하고 낙인(烙印)을 찍어서 훗날 적간할 때의 증거로 삼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횡판은 반드시 큰 소나무를 베어 쓰고 어린 소나무는 잘 기름으로써 오래된 것을 쓰고 어린 것을 기르는 방법을 지켜야 한다. 종량에 쓰는 나무로 말하면 그 몸통은 작은 기둥에 불과하고 길이는 7발에 불과하며 나무는 3백 주에 불과하므로 서울근교의 어느 산에서나 편리한 대로 얼마든지 베어다 써도 될 것이다.

8. 잔디를 까는 일이다. 배다리를 놓는 방법을 강구한 지 오래되었으나 아직까지 잔디를 까는 일을 걱정해본 적이 없으니 이는 몹시 소홀한 처사이다. 대개 잔디는 다른 풀과 달라서 한해에 몽땅 떼어내면 5년 동안은 되살아나지 않는다. 지난해의 공사에 첫날에는 5보 이내의 간격으로 떼어냈고 다음날에는 10보 이내의 간격으로 떼어냈는데, 다음날 공력의 성과가 첫날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미루어 금년에 1백 보 밖에서 떼어내고 명년에 수백 보 밖에서 떼어내면 그 공사비용도 따라서 몇배로 늘어날 것이다. 또 역군을 모집하는 방법도 본디 낭비가 많다. 더구나 오합 지졸(烏合之卒)을 일일이 통솔할 수 없는 데다가 복잡하고 소란한 가운데 아전들의 농간이 늘어나게 된다. 매년 배다리의 부역에 잔디를 까는 일이 첫째의 폐단이 된다.

이미 각자의 배를 하나씩 연결하는 방법을 쓰는 이상, 각 배가 모이기 전에, 또 서로 연결하기 전에 즉시 각 배로 하여금 각각 그 배 위에 깔 잔디가 몇 장이나 들겠는가를 계산하게 한 다음, 미리 지나는 길에 【양화(楊花)나 서강(西江)같은 곳이다.】 각 배의 사공들이 힘을 합쳐 떼어내어 각기 자기 배에 싣고 갔다가 배를 연결한 후 각기 자기 배에 깔도록 미리 규정을 정하여, 그 선주들이 거행할 줄을 알게 한다면 이른바 만인이 힘을 합치면 하루도 못되어 완성한다는 격이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배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괴롭혀서는 안 된다고 하나 이미 대오를 편성한 【아래 대오를 결성한다는 조항에 보인다.】 데다가 이익까지 보게 되었으니 형편상 마다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삼태기나 가래와 같은 도구는 관청에서 마련하여 각 배에 나누어주고 혹시 그 배가 바뀌게 되면 【아래 상벌조항에 보인다.】 즉시 인계하여 영구히 맡아서 사용하되 연한을 정해야 한다. 혹시 기한내에 분실할 경우 각자 변상대치하도록 일정한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9. 난간이다. 난간은 어로(御路)의 가장자리에 말뚝을 세워 만드는 것이다. 1발마다 말뚝 1개씩 박는다면 좌우편에 드는 말뚝이 선창까지 7백 개에 불과하다. 그리고 작은 대발로 둘러치는데 대발마다 각각 5발로 기준한다면 좌우편에 드는 대발이 선창까지 1백 5, 60부(浮)에 불과하다.

10. 닻을 내리는 일이다. 지난해의 역사 때에는 닻을 내린 것이 난잡하여 각 배의 닻줄이 서로 엉켰었는데, 만약 풍파가 일 때라도 당한다면 손상되기 쉽다. 닻을 내릴 때에는 의당 갑의 닻줄은 갑의 뱃머리에 닿게 하고, 을의 닻줄은 을의 뱃머리에 닿게 하여 서로 엉키는 일이 없이 간격이 정연하게 한다면 설사 풍랑이 인다 하더라도 자연 뒤엉키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11. 기구를 보관하는 일이다. 배마다의 크기가 서로 같지 않으니 각 배의 기구 【종량 등의 기구이다.】 또한 일정하지 않다. 그러므로 나누어 줄 때마다 쉽게 분별하지 못한다. 마땅히 기구마다 그 위에 대오의 【아래 보인다.】 몇 번째 배, 어떤 색깔, 몇 번째 도구라고 새겨서 각각 종류별로 모아 구별하여 새로 지은 창고에 간직하고 별도로 한 사람을 두어 그 출납을 맡아보게 하며, 또 각 대오로 하여금 인계인수를 명확히 하게 하면 자연 분실하거나 혼란한 폐단이 없을 것이다.

12. 대오를 결성하는 일이다. 대체로 군제에 있어 대오로 편성하여 질서있게 통제하는 법이 없다면 호령을 시행할 수 없고 상벌을 밝힐 수 없다. 지금 10인이 한배를 타도 오히려 사공이 있어 그 배를 지휘하는데 하물며 1백 척의 배가 하나의 다리로 묶여진 상황에 도맡아 통솔하는 사람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모이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을 때 누가 그 독촉을 맡으며, 반열이 서로 어그러질 때 누가 그 정돈을 맡으며, 공사가 부진할 때 누가 그 감독을 맡으며, 기구의 분실이 있을 때 누가 그 변상을 맡으며, 파괴된 것을 보수하지 않을 때 누가 그 규찰을 맡으며, 한 사람이 죄를 지고 백 사람이 서로 미룰 때 누가 그 책벌을 맡겠는가.

지금 마땅히 먼저 배의 수효를 정하고 고루 나누어 대오를 만들어야 한다. 가령 60척의 배로 하나의 다리를 만든다면 마땅히 제일 큰 배 1척을 강복판에 높이 세워 상선(上船)으로 정하고 60척을 여섯으로 나누어 각 10척의 배로 1대를 만드는데, 상선 북쪽에 있는 30척을 좌부(左部)의 3대로 삼고, 상선 남쪽에 있는 30척을 우부의 3대로 삼는다. 【배의 수효에 따라 고르게 나누어 명칭을 붙이고 편리하도록 대오를 묶는다.】 다음에는 3대 중에서 제1, 제2, 제3의 번호를 붙일 것이며, 그 다음에는 1대 중에서 제1, 제2로부터 제9, 제10까지 번호를 붙인다. 그리고 한 대마다 한 명의 대장(隊長)을 정하여 【혹은 사공, 혹은 선주 가운데서 골라 정한다.】 10척을 통솔하게 하며, 한 부마다 한 명의 부장을 정하여 【혹은 군교(軍校), 혹은 한산(閑散) 가운데서 골라 정한다.】 3개 대를 통솔하게 하며, 따로 별감관(別監官) 1인을 정하여 【경험이 있고 일을 맡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으로 정한다.】 상선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배다리에 대한 전체의 일을 총괄하게 한다. 그리하여 각기 그들로 하여금 질서있게 통제하게 하고 잘못하는 일이 있으면 그들에게서 곤장이나 태장을 맞게 한다. 1개 배에 잘못이 있으면 곧 그 대장(隊長)이 책임을 지고, 1개 대에 잘못이 있으면 곧 그 부장(部長)이 책임을 지며, 혹시 배다리 전체에 잘못이 있으면 곧 도감관(都監官)이 책임을 진다. 그리하면 배다리 안에는 자연 군사제도가 이루어져서 호령이 엄격하고 모든 사람들이 자기 일을 열심히 할 것이다. 거둥의 명이 있을 때에는 법대로 거행할 뿐, 조정에서 다시 강조할 필요도 없다. 그리하여 하루아침에 북을 울리고 떠나기만 하면 무지개같은 배다리는 이미 완성된다. 무엇 때문에 시끄럽게 모여 논의하며 알리기에 급급하여 수많은 사람을 소란하게 하고 많은 돈을 낭비할 필요가 있겠는가.

13. 상벌이다. 배다리의 역사는 매우 중대한 일로서 많은 사람들이 부역에 참가하고 많은 사람들이 쳐다본다. 상벌이 있어 권장하고 징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일을 추진해 나갈 것인가. 지금 마땅히 서울 부근 포구의 선주(船主)들을 불러 모아놓고 선박 생활의 큰 소원과 큰 이익으로써 앞을 다투어 서로 쟁취하려는 것이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 가령 삼남(三南)의 세곡 운반선 및 해서(海西)의 소금 운반선 등에서 그가 가장 하고싶어하는 일을 선택하게 하고 배마다 일단 주교안(舟橋案)에 들어가 대오에 편성될 경우 첩지를 만들어 주고 이권을 차지하도록 허락하면 【한계를 정하여 그것을 벗어나지 않게 한다. 혹시라도 세력을 믿고 위반하는 일이 발각될 경우에는 경중을 나누어 처벌한다.】 백성들이 자연 권장하게 될 것이며, 일단 범죄가 있을 경우 즉시 그 명단에서 제거하고 다른 배로 대신하게 하면 이익이 있는 곳에 벌책 또한 적지 않으므로 형장과 도형·유형을 쓰지 않아도 백성들은 자연 징계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될 경우 오강(五江)의 뱃사람들은 배다리에 편성되는 것을 좋은 직분으로 받들게 되어, 그 기회를 얻지 못한 자는 오직 얻지 못할까 걱정하고 이미 얻은 자는 혹시라도 잃을까 걱정하면서 혹시라도 남에게 뒤질세라 성력을 다해 일에 참가할 것이다. 은혜를 베풀면서도 낭비하지 않고 수고롭게 하면서도 원망을 사지 않고 위엄을 보여도 사나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또 그 부장이나 대장은 몇 번의 행차만 겪은 다음 변장(邊將)이나 둔감(屯監)으로 기용하도록 규정을 정하여 시행하면 더욱 격려하고 권장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14. 기한 내에 배를 모으는 일이다. 서울 부근 포구의 배는 언제나 9, 10월 사이에 각처로 갈려 나가 정박하여 겨울을 지내면서 봄조운[春漕]을 기다리는데, 이는 남보다 앞서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지금은 배다리의 문안에 원래 정해진 곳이 있어 이익을 차지하도록 허락해주었으므로 애당초 남과 이익을 경쟁할 일이 없다. 무엇 때문에 앞질러 가서 겨울을 지내겠는가. 봄 거둥은 정월 그믐께나 2월 초순에 하도록 정해졌는데, 비록 3월이 되도록 그대로 머물러 있다가 행차가 지나간 뒤에 조용히 바다로 나간다 하더라도 바람이 순한 때를 만나는 것은 오히려 이르다 할 것이다. 【그대로 1년내 떠다니면서 장사해도 지장이 없다.】 가을 거둥 때는 8월 10일께나 보름께 일제히 와서 대기하도록 특별히 조항을 세워놓고 영구히 준행하게 해야 할 것이다.

15. 선창다리이다. 지금 논의에 선창은 다리로 대신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방법은 얕은 물을 다리 밑으로 흘려보내어 그 물이 언덕을 핥아 무너뜨릴 우려가 없게 할 뿐이다. 만약 새로 불은 물이 갑자기 닥쳐와서 물결이 몇 자나 더 불어나게 되면 배다리는 물에 떠서 역시 몇 자나 높아지고 선창배는 그 자리에 박혀 움직이지 않은 채 물을 따라 오르내리지 못하므로 배다리를 쳐다보는 것이 마치 뜰에서 지붕을 쳐다보는 것 같을 것이니 이를 장차 어찌하겠는가. 그 대책으로는 하는 수 없이 배 1척을 뽑아내어 선창머리와 배다리의 머리 사이가 좀 떨어지게 한 다음 긴 판자를 깔아서 길을 연결하여 오르내리는데 지나치게 급하지 않게 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이 어찌 위태롭고 군색하지 않겠는가.

지금 장소를 이미 노량(露梁)으로 정하였는데, 노량의 밀물은 언제나 세차서 거의 3, 4척이나 높이 오르며 아침저녁으로 드나드는 바람에 갑자기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여 접응시기를 예측할 수 없으므로 그 방법은 소용이 없다. 여기에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사람들은 혹시 오활하다 하겠지만 실은 아주 안전한 것이다. 대개 그 효능으로 말하면 선창다리가 물을 따라 오르내려 배다리와 서로 오르락내리락하게 하는 것이니, 물결이 1장이나 더 불어나더라도 항상 배다리와 떨어지지 않고 함께 서로 유지하는 것이다. 이 어찌 좋은 방법이 아니겠는가.

먼저 길고 두터운 판자 수십 장을 엮되 긴 빗장과 은잠(隱簪)으로 연결하고, 【배의 밑창을 만들 듯한다.】 다음은 큰 나무를 둘러 아래위로 맞대고, 【배의 문을 만들듯이 한다.】 다음은 긴 판자로 뱃전을 각각 2층으로 둘러 막은 다음에 【나룻배를 만들 듯이 한다.】 헌솜으로 틈을 막아 물이 새어들지 못하게 하기를 꼭 배를 만드는 것처럼 한다. 그리고 나서는 그 머리를 배다리 밑에 닿게 하여 수면에 뜨게 하고, 그 꼬리는 곧바로 밀물의 흔적이 있는 경계를 지나서 언덕 위에 붙여놓는데 이를 이름하여 부판(浮板)이라 하고, 다음은 부판 위에 규정대로 다리를 만들되 그 높이와 넓이는 배다리로 기준을 삼아 배다리와 선창다리의 두 머리가 꼭 맞게 하여 평면으로 만들어서 【이전 제도처럼 빈틈이 나게 해서는 안 된다.】 그 길을 연결해 놓으면 물을 따라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여 배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배다리는 많은 배를 서로 연결하여 그 세력이 서로 버티기 때문에 발로 차고 밟아도 움직이지 않지만, 지금 이 부판은 단순하고 머리가 가벼운 만큼 큰 다리로 내리누르고 많은 말이 밟으면 떴다 잠겼다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것은 그렇지 않다. 대개 물에 뜨는 이치는 물체의 밑창이 클수록 물의 압력을 많이 받는다. 지금 부판은 수십 개의 큰 판자를 가로로 연결하여 물에 띄워놓은 만큼 그 물의 힘을 받는 것은 몇만 근 정도가 아니다. 그러나 또 한가지 명백하여 의심의 여지가 없는 방법이 있다. 먼저 아(丫)자형의 큰 나무 두 그루를 베어다가 두 개의 기둥을 만들어 선창다리의 좌우 머리에 마주 세워놓고 굵은 밧줄로 배다리 배의 【가장 가에 있는 배로서 선창다리와 맞닿는 배.】 가룡목(駕龍木)에다 동여맨다. 【물이 불을 때 주교의 배가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면 역시 편리한 대로 고쳐 동여맨다.】 다음은 아주 굵은 밧줄로 부판(浮板) 머리를 매어 【좌우를 다 그렇게 한다.】 세워놓은 기둥의 두 가닥이 진 위에 올려 걸고 밧줄 끝에 큰 주머니를 달아매고 많은 돌덩이를 주머니 속에 채워서 늘어뜨려 추로 만든다. 그리고 추의 무게는 반드시 늦춰지지도 않고 끌어당기지도 않게 하는 것을 한도로 한다. 늦추어지지 않게 한다는 것은 사람과 말이 선창을 밟아도 부판이 조금도 잠기지 않음을 말함이고, 끌어당기지 않는다는 것은 부판이 조금도 저절로 들리지 않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 판자는 이따금 떠오를 때는 있어도 【물이 불을 때를 말한다.】 잠겨들 때는 없을 것이니, 이 어찌 안전하고 또 안전하지 않겠는가. 조수가 밀려오는 곳이나 세찬 물이 불어날 때 이 방법을 제외하고는 선창다리와 배다리가 수시로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걱정을 없앨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부판을 이동하는 방법은 부판의 밑창에다 바퀴를 여섯 개나 여덟 개쯤 달면 5, 6인이 끌어도 언덕에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또 물체가 커서 보관하기가 불편한 것이 문제라면 그것을 두 척, 혹은 세 척으로 나누었다가 【가죽 과녁을 나누었다 합쳤다 하는 것과 같이 한다.】 필요할 때 다시 합친다면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이상에서 논의한 여러 가지 일은 넉넉히 여유를 두고 대충 말한 것에 불과하다. 만약 실지 일에 부닥쳐 조치하되 분수(分數)를 참작한다면 또 얼마간의 수를 줄일 수 있으며, 선창다리와 부판에 필요한 물건도 또한 충분히 그 속에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주교 절목(舟橋節目)에 ‘배다리를 설치할 때는 나룻길을 먼저 보아야 하는데, 노량진 건널목은 양쪽의 언덕이 마주 대하여 높고 강복판의 흐름은 평온하면서도 깊다. 그리고 그 길이와 넓이도 뚝섬[纛島]이나 서빙고(西氷庫)에 비하여 3분의 1은 적어 지형의 편리함과 공역의 절감이 오강(五江)의 나룻길 중에 가장 으뜸이다. 이에 노량진 길을 온천에 행차할 때와 선릉(宣陵)·정릉(靖陵)·장릉(章陵)에 행차할 때 모두 이 길을 이용할 것을 영구히 결정하고, 헌릉(獻陵)·영릉(英陵)·영릉(寧陵)에 행차할 때에는 광진(廣津)으로 옮겨 설치한다.’ 하였다.

이에 대해 논변하면 다음과 같다. 노량나루터의 지형은 북쪽 언덕은 높고 남쪽 언덕은 평편하고 낮으며 한결같이 모래사장으로 되어 남쪽 언덕과 북쪽 언덕의 형세가 다른데 양쪽 언덕이 마주 대해 높이 솟아있다고 한 것은 실로 잘못이다. 또 조수의 왕래로 인하여 수면의 높낮이가 조석으로 변하니 배다리 역시 응당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게 되는데, 강복판의 흐름은 평온하면서도 깊다는 말 또한 잘못이며 깊다고 한 말은 더욱 의미가 없다. 그러고 보면 배다리가 물을 따라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것은 사실 괜찮지만 양쪽 언덕에다가 다리를 만든다는 것은 가장 불편하다. 해설은 선창다리 조항에 보인다.

절목에 ‘배다리에 필요한 배는 나라의 배와 개인의 배를 섞어서 써야만 부족할 우려가 없다. 나라의 배는 훈련원의 배 10척과 아산(牙山) 공진창(貢津倉)의 조운선 12척을 쓰고 개인의 배는 서울 부근 포구의 배를 쓰는데, 혹시 큰물이 져서 나루가 불어날 때를 당할 경우 또한 예비하는 방도가 없어서는 안 되는만큼 서울 부근 포구의 배 10척만 더 정비해둔다.’ 하였다.

이에 대해 논변하면 다음과 같다. 나라의 배건, 개인의 배건 논할 것 없이 재어보기도 전에 어떻게 몇 척이 필요한지 알 것인가. 만약 훈련원의 배와 조운하는 배의 높이가 서로 맞지 않으면 그 중에는 필시 쓸 수 없는 것도 있겠는데, 지금 나라의 배와 개인의 배를 합쳐 42척으로 그 숫자를 결정하니, 이는 너무도 타산이 없는 말이다. 나머지 배 몇 척을 미리 준비한다는 것은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할 일이기는 하나, 양쪽 언덕까지 다리를 만들어 조금도 움직일 수 없다면 큰물이 져서 나루가 넓어질 때를 당하여도 나머지 배는 쓸 곳이 없다. 지난번 빙호(氷湖)에 큰물이 졌을 때도 어찌 나머지 배가 없어서 그리된 것이겠는가. 갑자기 큰물을 만나 나머지 배로 연결 보충하려 한다면 두 언덕의 다리를 헐고 다시 만드는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판자를 띄워 다리를 만든다는 말도 또한 부득이한 데서 나온 것이다.

절목에 ‘나라의 배나 개인의 배를 막론하고 정돈 단속하는 규정이 없으면 반드시 기강이 문란할 우려가 있고, 또 배를 부리는 것은 엄연히 강가에 사는 백성들의 생업이니, 그들 중에 부유하고 근실하며 일을 아는 사람을 뽑아 그로 하여금 선계(船契)를 모아 사공을 통솔하는 일을 도맡아 거행하게 하되, 선계에서 집행할 조건은 여론을 참작하여 별도로 절목을 만든다.’ 하였다.

이에 대해 논변하면 다음과 같다. 이 조항은 우선 배를 선택하여 완전히 결정한 다음에 다시 여론을 참작하여 편리하게 결정하는 것이 좋겠다.

절목에 ‘아산 공진창(貢津倉)의 조운선 12척을 주교사에 이속하여 선계(船契)로 넘기고, 조운의 규정은 모두 호서의 전례에 의하여 거행함으로써 선계에 든 사람들이 혜택을 보게 한다. 그리고 조운이 끝난 후 다리를 만드는 여가에는 먼 도나 가까운 도의 공적인 짐이나 사적인 짐을 막론하고 또한 한 차례씩 실어나르는 것을 허락한다.’ 하였다.

이에 대해 논변하면 다음과 같다. 배를 선택하는 조항에 이미 자세히 말하였다.

절목에 ‘개인의 배로서 선계에 든 것은 특별히 살아갈 밑천을 만들어주어서 참가하기를 즐겁게 여기는 길을 열어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삼남(三南)의 조운선과 각도의 전선·병선 가운데서 연한이 차 못쓰게 된 것을 모두 값을 받고 선계에 든 사람들에게 내주고 그 돈으로 배다리를 놓는 배를 보수하는 비용으로 삼게 하되 전선·병선으로서 연한이 차 못쓰게 된 것은 3년, 조운선으로서 연한이 차 반납된 것은 영구히 선계로 이속한다.’ 하였다.

이에 대해 논변하면 다음과 같다. 이것은 강가에 사는 백성들이 뇌물질을 하면서 도모한 것이다. 이미 세미 조운의 이익을 독차지하고 또 못쓰게 된 배의 이익을 독차지하게 한다면 선계에 든 자는 모두 몇 년이 안 되어 저마다 부자가 될 것이다. 못쓰게 된 전선 1척이면 수하(水下)의 큰 배 2척은 충분이 만들 수 있고, 못쓰게 된 병선과 조선 또한 각각 큰 배 1척씩은 만들 수 있다. 큰 배 1척에 드는 물량이 거의 천금에 가까우니 그 이익이 어찌 만금으로 논할 뿐이겠는가. 비록 값을 받고 내준다 하지만 해당한 값을 다 받지 못하는 이상 그들이 얻는 이익은 엄청날 것이다. 이미 이와 같을진대 다리를 만드는 모든 일을 일체 그 선계로 하여금 전적으로 담당하게 하는 것이 사리로 보아 당연하다. 지금 그 이익을 독차지하게 하고도 또 조정으로 하여금 허다한 돈과 곡식을 이전처럼 낭비하게 한다면 나라와 개인이 함께 이익을 보는 본의가 어디에 있겠는가. 조정에서는 1전을 허비하지 않고 그들을 시켜 거행하게 하더라도 반드시 좋아 날뛰면서 남에게 뒤질세라 앞을 다투어 달려들 것인데 지금 감히 한량없는 욕심을 내어 이익 외의 이익을 독점한다면 이 얼마나 통탄할 일인가. 이는 뇌물질의 소치가 아니면 필시 당상관 등이 속아서 한 말일 것이다.

절목에 ‘삼남에서는 고을의 세곡을 바치는 때로부터 실어나르는 일을 선계(船契)에 넘겨 그들의 생업을 돕고 있으나, 이것은 8개 포구 백성들의 생계이므로 전적으로 선계에 이속시킬 수 없다. 훈련원의 배는 자체적으로 정한 규정이 있고, 조운선은 이미 조세 운반을 거친만큼 더 논의할 필요가 없다. 수하(水下)의 개인배 30척에 대해서는 호남과 호서 두 도 가운데서 거리의 원근과 배값의 고하를 참작하여 절반씩 희망에 따라 떼어주고 주교사(舟橋司)로부터 호조와 선혜청에 공문을 띄워 나누어 보내도록 한다.’ 하였다.

이에 대해 논변하면 다음과 같다. 경강(京江)의 배가 옛날에는 천여 척이 넘었는데 지금은 수백 척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익을 내는 것이 점차 전과 같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조세곡을 나르는 데서 또 이익을 선계에 나누어주게 되었으니, 선계에 든 60척 외에 백 척이나 10척의 뱃사람들은 어찌 본업을 잃고 뿔뿔이 헤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특별히 편리하게 살아갈 근거를 강구함으로써 억울해 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절목에 ‘나라배와 개인배 52척을 합하여 하나의 선계를 모으고 배의 대장을 만들어 10척마다 각각 선장 1인을 낸다. 나라배 22척에 감관(監官) 1인을 차출하고 개인배 30척에 감관 1인을 차출하며 나라배와 개인배를 아울러 도감관(都監官) 1인을 차출하여 차례차례 통솔할 소지로 삼되, 감관 3인은 3군문의 별군관(別軍官)에 나누어 소속시켜 근무기간을 통산한 뒤에 혹시 빈자리가 나면 선계로부터 공정한 의논에 따라 후보자를 권점하여 주관하는 당상관에게 보고하고 각 군문에 공문을 뛰우며, 선장 역시 권점으로 차출하고 똑같이 보고한다.’ 하였다.

이에 대해 논변하면 다음과 같다. 배다리에 속한 배가 이미 하나의 선계로 이루어졌다면 나라배와 개인배로 나누어 둘로 만들 필요가 없다. 가령 배가 50척이 된다면 나라배, 개인배를 논할 것 없이 으레 섞어서 쓸 것이며, 10척마다 각각 대장(隊長)을 내고 25척마다 각각 감관 1인을 내어 좌부와 우부로 만들어야 한다. 이에 특별히 도감관 1인을 선출하여 그로 하여금 총괄적으로 거느리게 해야만 피차 서로 미루는 폐단이 없을 것이다. 감관 3인을 군문에 소속시키는 것은 매우 타당치 못한 것 같고 또 3인이 윤번으로 수직을 서게 되면 직무상 자연 지장을 줄 것이며, 기본관직에 임명하려면 군문 또한 모순되는 일이 많을 것이다. 그러므로 차라리 주교사의 벼슬만 전적으로 맡겨서 상근하는 자리로 만들고 차출시에는 그들로 하여금 후보자를 권점하게 하는 것이 무방할 것이다.

절목에 ‘관청을 노량진 접경에 짓되 사무보는 청사 8간, 목재창고 15간, 쌀창고 5간, 창고지기와 군사들이 수직하는 집 5간, 대문 1간, 곁문 1간, 헛간 3간으로 할 것이며 주교사에서 물자와 인력을 내어 짓는다. 수직에 관한 일은 감관 3인이 윤번제로 입직하고 하인으로는 창고지기 겸 대청지기 1명, 군사 1명이 영구히 도맡아 보게 한다.’ 하였다.

이에 대해 논변하면 다음과 같다. 이 조항은 그럴듯하기는 하나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절목에 ‘필요로 하는 여러 가지 잡물을 이미 주교사에서 조달하여 쓰기로 한 이상 물자를 해결할 방도가 없어서는 안 된다. 영남의 별회곡(別會穀) 중에서 대미(大米)를 2천 석씩 매년 떼어내 돈으로 만들어 쓰고, 쌀과 베를 쓸 곳이 있으면 공진창(貢津倉)의 조운미 중에서 적절하게 가져다 쓰도록 한다. 물자를 출납하는 데서 남는 것이 있으면 주관하는 당상관이 특별히 살피도록 한다.’ 하였다.

이에 대해 논변하면 다음과 같다. 배다리를 설치함에 있어 마땅히 일이 단순하고 비용이 절감되는 것을 첫째가는 계책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다면 대미 2천 석을 해마다 떼어낸다는 것은 대체적 의미로 보아 결함이 있는 것 같다. 포구 백성들의 생업은 조운(漕運)보다 더 앞설 것이 없는데, 일단 선계에 들면 그 이익을 독점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 머리가 터지도록 경쟁하여 혹시라도 빠질까 염려하며 심지어는 천금을 가지고 뇌물질을 하기까지 하니, 백성들이 크게 원한다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이미 그 크게 원하는 바를 들어준다면 다리공사가 하루도 안 되어 완성되리라는 것은 또한 손바닥을 보듯 훤하다. 그렇다면 그중에 필요한 약간의 경비는 매년 5백 냥이면 만족할 것이다. 또 전선과 병선, 그리고 조운선을 떼어주는 것은 이미 전에 없던 큰 이익인데, 또 한없이 많은 재물을 내어 한갓 뱃사람들만 더욱더 부유하게 만드는 술책을 쓰는 것은 완전히 몰지각한 처사이다. 쌀은 역부들의 요식 외에는 종전처럼 낭비할 필요가 없다.

절목에 ‘배다리를 만드는 제도는 배 자체의 대소에 따라 차례대로 이어붙인 다음에 닻을 내려 단단히 고정시키고 굵은 칡줄로 동이며, 또 크고 둥근 고리로 각 배의 상하 좌우를 연결하고 가는 칡줄로 꿰어 처맨 다음, 위에는 길이로 연결된 나무를 깔고 가로로 긴 송판을 깔고서 모두 간간이 크고 작은 못을 친다. 그 다음 빈 가마니를 펴 흙을 채우고 잔디를 입히며, 양쪽 가에는 난간을 설치하여 한계를 만든다. 그리고 배마다 사공 3명씩 나누어 배치하여 불을 단속하고 물을 방지하도록 한다.’ 하였다.

이에 대해 논변하면 다음과 같다. 다리를 만드는 제도는 의당 배의 높낮이에 치중해야 하는데 배의 대소만을 거론하니 이는 이미 그 방법에 어두운 것이다. 크고 둥근 고리를 다는 것은 한갓 공사만 번거롭고 도리어 흔들흔들 일렁이게 할 염려가 있으므로 더욱 부당하다. 빈가마니에다 흙을 채우는 것 또한 의미가 없다. 배의 높이를 헤아려 잇대어 연결하고 길이로 걸치는 나무의 양쪽 머리를 한데 묶어서 가룡목(駕龍木)에 연결한 다음에 긴 판자를 쭉 깔며 탕개로 바싹 조인 다음 빈가마니를 간간이 펴고 떼장으로 덮게 되면 그 이상 더할 것이 없다. 그리고 갑이란 배는 을이란 배와 밀착시키고, 을이란 배는 병이란 배와 밀착시켜 차례차례로 이렇게 하면 된다. 만약 큰 고리를 마주 박아놓으면 두 배가 연접된 부분에 자연 공간이 생기게 되니, 물결이 부딪칠 때 어찌 흔들리는 폐단이 없겠는가.

절목에 ‘긴 송판 4천 장은 통영(統營)안면도(安眠島)의 바람에 넘어진 소나무 중에서 판자를 만들어 쓰되, 판자의 길이는 9척, 두께는 2치, 넓이는 1척 2, 3치로 규정할 것이며, 통수영(統水營)에서 나무를 다듬어 배를 세내어 실어다가 저장해두고 쓰게 한다. 그리고 사용한 뒤에는 당상관과 도청(都廳)이 직접 숫자를 확인하여 입고시키는데, 그중에 만약 파손된 판자가 있을 경우에는 주교사에서 통수영으로 공문을 보내 바람에 넘어진 소나무 중에서 판자로 만든 것을 가져다가 하나하나 보충한다.’ 하였다.

이에 대해 논변하면 다음과 같다. 긴 송판 4천 장에 대한 말은 너무도 지각이 없다. 또 길이를 9척으로 하고 넓이를 1척 2, 3치로 마련한다는 것은 더욱 그 까닭을 알 수 없다. 노량나루의 넓이가 가령 2백 발이 되고 1발이 6척이라면 곧 1백 20척이 된다. 판자의 넓이가 1척이라면 필요한 것은 자연 1천 2백 장이 되고 이밖에는 더 필요치 않다. 설사 약간의 여분을 둔다 하더라도 무슨 4천 장까지야 되겠는가. 다만 어로(御路)를 4발로 정한다면 판자의 길이도 또한 4발이 되어야만 다리 위를 평면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9척의 판자로 마치 억지로 공간을 보충하는 것처럼 하는 것은 실로 잘못이다. 바람에 넘어진 소나무로 말하면 각처에 무슨 바람에 넘어진 소나무가 그리 많겠는가. 조정에서는 비록 바람에 넘어진 소나무가 허다하다고 알리지만 생소나무를 베면서 이름만 바람에 넘어진 소나무라고 하는 것이 의례적인 일이다. 이것이 이른바 이름만 있고 실속은 없는 것으로서 농간의 폐단이 더욱 많아지는 원인이다. 그러므로 차라리 필요한 수량을 정해 가지고 해당 도에 엄히 신칙하여 생소나무를 찍어 보내게 하는 것이 공명정대하게 처리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무의 길이와 넓이 또한 수심을 재고 배를 잰 자로 재단해야 서로 부합될 수 있다. 그러므로 서울에서 자 하나를 만들어 보내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통영은 너무 멀기 때문에 장산곶(長山串)안면도(安眠島)의 것을 가져다 써야 할 것이다.

절목에 ‘길이로 연결할 나무 4백 주는 그 길이는 25, 6척에서 30척에 이르며 끄트머리의 직경은 7치로 한다. 장산곶에서 찍어가지고 본 고을에서 배를 세내어 실어다가 저장해두고 쓰도록 하되, 숫자를 헤아려 입고시키고 파손된 것을 보충하는 등의 일은 긴 송판의 실례대로 처리한다.’ 하였다.

이에 대해 논변하면 다음과 같다. 길이로 연결할 나무의 마련도 지나친 것 같다. 모두 30척으로 계산해도 2백 50개면 충분하고 40척으로 계산하면 2백 개로 충분하다. 이것 역시 배의 척수를 측정한 뒤에야 실제의 수를 확정할 수 있다.

절목에 ‘선창에 놓는 다리에 소요되는 나무 1백 개도 또한 길이 20척에, 끄트머리의 직경이 8, 9치가 되는 것으로써 장산곶에서 찍어 본 고을로부터 배를 세내어 수송하고, 주교사에서 보관해두고 보충하는 등의 일 또한 긴 송판의 사례와 길이로 연결하는 나무의 사례에 의해 시행한다.’ 하였다.

이에 대해 논변하면 다음과 같다. 이 다리는 뱃머리와 서로 맞닿게 되므로 어로의 넓이도 마땅히 배다리의 길 넓이와 같아야 한다. 그렇다면 넓게 깔 긴 소나무 역시 배다리에 깐 긴 판자와 같아야 한다. 지금 20척으로 마련한 것은 기둥을 견고하게 하기 위한 것 같으나, 다리 위에 잡목으로 공간을 메우는 것은 물자만 낭비할 뿐이고 사용한 뒤에는 자연 없어져버린다. 이것 또한 긴 송판으로 배다리에 잇대어 깔았다가 해마다 그대로 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절목에 ‘생칡 30사리를 매년 제철에 경기 지역 산골의 생산되는 곳에서 사들여 저장해두었다가 사용한다.’ 하였다.

이에 대해 논변하면 다음과 같다. 생칡 1사리라도 여러 고을에 배정하면 온갖 폐단이 생길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소한 물자는 서울에서 사서 쓰고 외방 고을에 폐단을 끼치는 일은 일체 없애야 한다.

절목에 ‘선창머리의 다리에 펴는 싸리바자를 2백 부(部) 정도 주교사에서 사들여 쓰게 한다.’ 하였다.

이에 대해 논변하면 다음과 같다. 긴 송판을 쓰기로 했으니 바자는 쓸 필요가 없다. 빈가마니 위에 흙을 덮는 것으로 충분하다.

절목에 ‘크고 둥근 고리와 각종 철물은 주교사로부터 필요에 따라 사다가 쓰며 이를 두드려 주조할 때에 드는 숯값과 모든 공임비용 또한 주교사에서 마련하여 쓴다.’ 하였다.

이에 대해 논변하면 다음과 같다. 철물은 그리 널리 쓰이지 않고 그 중 큰 고리는 더욱 쓸 데가 없다.

절목에 ‘빈 가마니 5천 장에 대하여 별영(別營)에 2천 장, 경기 연변의 각 고을에 3천 장을 미리 배정해놓았다가 필요할 때 가져다 쓰게 한다.’ 하였다.

이에 대해 논변하면 다음과 같다. 빈 가마니 3천 장은 그 값이 수십금에 불과하지만 이를 나누어 배정하면 폐단을 끼치게 되므로 서울에서 마련하여 쓰는 것이 마땅하다.

절목에 ‘탕개로 쓸 참나무 3백 개는 주교사에서 값을 주고 사다 쓰게 하되 그것을 저장해두고 보충하는 등의 일은 역시 다른 목재의 실례에 의하여 시행한다. 그리고 다리 위의 빈 곳을 메우고 좌우편에 난간을 만들기 위한 약간 작은 서까래나무는 주교사로부터 필요할 때 사다가 쓰고, 난간 위의 가름대나무는 긴 대나무를 사서 쓰되 다 보관해두게 한다.’ 하였다.

이에 대해 논변하면 다음과 같다. 난간 위의 가름대나무를 긴 대나무로 하는 것 또한 폐단이 있을 것 같다. 약간 가는 서까래나무 중 조금 긴 것을 쓰는 것이 무방하고 또 오랫동안 사용하는 방법이 된다.

절목에 ‘다리를 만들 때의 역군과 흙을 져나르고 잔디를 떠 나를 군정은 선계(船契) 중에서 특별히 장정을 택하여 쓸 것이며, 인부들의 품값은 2전 5푼 정도로 하고 따로 우두머리를 정하여 그가 거느리고 부역에 참가하게 한다.’ 하였다.

이에 대해 논변하면 다음과 같다. 이 조항은 가장 잘 생각하지 못한 점이다. 부근에서 잔디를 뜨는 것을 해마다 규례로 삼는다면 잔디를 어떻게 감당해내겠는가. 또 허다한 군정을 모아들일 경우 비록 일일이 감독하고 신칙한다 하더라도 허구한 날 품값을 받는 것만 생각한다면 그 돈을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더구나 잔디를 뜨는 곳은 점점 멀어져서 공사는 배나 더디므로 그 폐단을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이미 잔디 입히는 조항에 자세히 언급하였거니와 이 방법을 제외하고는 달리 다른 방법이 없을 것이다.

절목에 ‘주교사의 도제조는 세 정승이 으레 겸하고, 제조는 병조 판서, 한성 판윤, 세 군문의 대장이 으레 겸하고, 주관하는 당상관은 준천사(濬川司)를 주관하는 당상관이 겸하여 관리하며, 도청(都廳)도 준천사 도청(濬川司都廳)이 또한 겸하여 관리한다.’ 하였다.

이에 대해 논변하면 다음과 같다. 제조는 여러 사람이 필요치 않다. 두세 사람으로 하여금 주관하게 하면 책임을 전담시킬 수 있고 명령이 여러 갈래로 나가는 폐단이 없을 것이다. 또 생각건대 장차 주교사에 혹 사고가 있으면 3정승이 분주히 지시를 기다리게 되고, 여러 당상관들도 모두 중요한 임무로 겸직까지 하게 되니 조정의 처분도 반드시 모순될 것이다. 그 인원을 줄이고 책임을 전담시키는 것이 실로 온당하다.

절목에 ‘다리를 만드는 공사에 재곡(財穀)을 출납하는 것은 주교사의 주관 당상(主管堂上)이 전적으로 관리하여 거행하고, 예겸 당상(例兼堂上)은 다리 공사를 할 때 윤번으로 왕래하면서 검열하며 감독한다. 또 다리를 만들 때 세 군문의 장교 각 3인과 군사 각 6명을 영리하고 근실한 사람으로 정하여 보낸다. 또 다리를 만들 때 주교사의 주관 당상이 나가볼 적에는 수어청(守禦廳)과 총융청(摠戎廳) 두 군영의 전배(前排)를 전례대로 정하여 보낸다. 또 주교사에서 인장 하나를 만들어 사용한다. 또 원역(員役)은 준천사 원역(濬川司員役)이 겸임하여 거행하고 주관 당상의 하인 1명과 창고지기 겸 대청지기 1명, 군사 1명을 특별히 배치한다. 더 설치한 원역의 요포(料布)와 겸역(兼役)한 원역에게 더 주는 요식에 관한 일은 준천사의 전례에 의해 참작하여 별도로 마련한다. 또 영남의 별회곡(別會穀)을 돈으로 만드는 조항과 아산(牙山)의 조운군에게 주는 베는 준천사와 양사(兩司)에서 돈으로 만드는 규례에 의하여 균역청(均役廳)에서 받아두었다가 주교사 주관 당상의 공문이 있을 때 필요한 수량을 수시로 출납한다. 아산의 세미 운반에 필요한 쌀은 주교사에서 받아 내려보내되, 각 군영 군향색(軍餉色)의 예에 의하여 도청(都廳)이 전적으로 관리하여 거행한다. 조운선을 만약 개조하거나 뱃바닥을 고칠 일이 있으면 균역청의 가외로 떼주는 예에 의하여 안면도(安眠島) 부근 고을의 미포(米布) 중에서 필요한 양을 바꾸어 준다.’ 하였다.

이에 대해 논변하면 다음과 같다. 이상의 여러 항목은 원래 자질구레한 것으로서 배다리의 일을 토의 결정한 다음 적당히 조치할 수 있다."


  • 【태백산사고본】 30책 30권 65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149면
  • 【분류】
    왕실(王室) / 교통(交通)

  • [註 038]
    오강(五江) : 서울 근처의 한강(漢江)·용산(龍山)·마포(麻浦)·현호(玄湖)·서강(西江)임.

○己卯朔/定舟橋之制。 上旣奉顯隆園水原, 將歲一展省, 以江路渡涉, 舊典用龍舟, 而其法多不便, 改用舟橋之制, 命廟堂撰進節目, 未稱上旨。 上乃親自運思, 爲《舟橋指南》, 其書曰:

舟橋之制, 載之《詩》, 見於史, 昉之久矣。 我國僻陋, 未之能行, 予於燕閒之暇, 漫錄如左。 廟堂撰進舟橋司節目, 爲之論辨, 仍以御製文, 弁其首, 名曰《舟橋指南》。 一曰形便。 舟橋形便, 自東湖而下露梁爲最, 何者? 東湖流緩岸立爲可取, 然水闊而路迂爲不便矣。 冰湖水狹爲可取, 然南岸勢緩而延遠, 水纔添尺, 岸退十丈。 添尺之淺水, 不能引餘船以補, 則勢將增廣船槍, 而船槍爲新水所囓, 原築者猶不能支, 況可以新增乎? 渡涉之期日已屆, 水勢之增減難度, 則半日江次鑾路之停留, 往年事可鑑也。 且水性異於灘駛, 其趨迅甚, 新波衝濤, 及於聯船, 冰湖尤不可用矣。 都不如露梁之兼是數者之美, 而無是數者之病。 但湖勢頗高, 船槍不可用舊制。 然亦有良制, 【見下槍橋條。】 不足爲慮。 今旣以露梁爲定, 當以露梁審勢量力而論之。 二曰水廣。 欲知船隻之容入, 必先定水廣之幾何。 露梁水廣約二百數十把, 【把無定限, 當一切以指尺六尺爲一把。】 然水有進退, 宜存餘剩, 大約以三百把立準。 論其容入之數, 而隨其進退闊狹, 量宜增減, 固無傷矣。 三曰擇船。 今議將以牙山漕船及訓局船數十隻, 用之江心, 兩邊則以鹽船充用, 蓋鹽船舷薄而底窄, 不堪用, 莫如統括五江船隻, 量其容入之數, 分之高低之次, 擇其完好之品, 【幷見下。】 永定記號, 隨毁隨補, 從便酌定。 四曰船數。 欲知雜色 【如縱樑橫板等。】 經費之容入, 必先定船隻之數; 欲定船隻之數, 必先量每船之廣爲幾何。 假如甲船廣爲三十尺, 【以五把論。】 則乙船廣爲二十九尺, 丙丁船次第尺量, 分等聯合, 統以計之, 以應水廣一千八百尺, 【以三百把論。】 則可知船隻容入爲幾許艘, 而雜色經費, 亦可以此推定。 卽今京江船廣, 統以三十尺, 【若有未滿五把者, 則隨其尺數, 當增船數。】 則應水廣三百把, 當入六十隻矣。

五曰船高。 蓋舟橋之制, 中隆而兩邊殺, 然後不惟觀美, 亦合實用。 【小船當淺, 大船當深。】 欲審隆殺之勢, 必先定船體之高低。 假如中甲船高爲十二尺, 【以二把論。】 左右乙船高爲十一尺九寸, 左右丙丁船亦各以分寸, 次次降等, 以漸而殺, 不使層級懸殊。 先列每船之高爲幾許, 則可於一紙上, 鱗次分排, 有如營陣擺列, 瞭然在目, 則不出戶, 而舟橋已掌上矣。 若不以分寸降殺, 而倐高倐低, 則不但有欠觀美, 其層級交違處, 艱辛補空, 又鋪笆子而彌縫之。 去年笆子價直費逾千金, 每歲此費, 亦難支當。 今用此法, 則不過以空石, 掩覆之而已, 又豈非省費之一端? 但船之高廣, 預先錄置, 然後可以臨時取用, 而三月以後, 各所船隻, 各自裝發, 隨風飄泊, 莫可搜捕。 今宜令五江船主, 各自其船隻所泊處, 列書成冊。 假如船在湖南某邑, 船在湖西某邑, 一一該括然後, 另擇勤幹廉白者, 【多人慮或有弊, 只一二人亦可。】 徇行各所船隻止泊處, 考成冊所載, 尺量其高廣爲幾許尺, 每某名某船下, 一一懸錄以來, 而第其尺量高低, 便有兩段, 一爲入水之高, 一爲出水之高, 此若不精審, 則易致乖舛。 出水之高, 宜用垂線, 入水之高, 宜用曲尺, 其完不完, 亦須十分精審, 從公該錄。 然後且待其回來, 照閱成冊, 廣狹而定幾隻容入之數, 高低而定鱗次分排之序, 完弊而定擇揀取舍之宜, 則卽可定某甲船某乙船幾許隻, 當爲舟橋船矣。 名目旣定, 然後知委各其船主, 俾知被抄之由, 發關各處, 督其發送之限, 則有司一按簿, 而船可如期而集, 橋可不日而成矣。 六曰縱梁。 【船上縱結者。】 縱梁之用帆竿, 有三弊, 蓋帆竿下豐上殺, 聯結之際, 自致輪囷, 鋪板其上, 甚不平均一也。 帆竿聯結橫亘多船, 一船有欠, 【或破或沈。】 傍船受害, 改補不便二也。 帆竿卽商賈私物, 如或傷折, 亦係民弊三也。 今議別斫長木, 削而用之爲便好。 如此則雖捄其二弊, 一船有欠, 傍船受害之弊, 固自如矣。 且長竿不可他求, 只可斫取於湖南島中, 而海運之際, 莫可如水上木之結筏漂運, 則勢將載之巨舶, 而橫亘一船之木, 不可多載。 或牽之船傍, 或繫之船頭, 每舶多不過携來數十竿矣。 千里駕海, 利稅難期, 且於其間奸弊層生, 列邑騷繹, 勢所必至。 今不用長竿, 而聯亘多船, 只以每船用結一竿爲準約。 船廣爲五把, 則梁長以七把爲準, 使其二把之餘長, 分跨船舷之兩界, 卽甲船之縱梁與乙船之縱梁, 相遇相結者, 爲一把長, 又與丙船之縱梁, 相遇相結者, 亦一把長矣。 又其甲船縱梁之盡頭處, 正當乙船之駕龍木 【卽舟中橫木, 以撑船腹, 分爲一間二間者。】 之上, 而與乙船縱梁相合, 乙船縱梁之盡頭處, 正當甲船之駕龍木, 而與甲船縱梁相合, 以葛纜縛之, 以撑杠促之。 通一橋次次用此法, 則萬不游移矣。 然議者猶以爲不如長竿之完固云爾, 則又於兩縱梁相遇處, 相對鑿孔, 以椓簪揷之, 則尤爲萬全矣。 然則一船雖有欠, 只解其兩邊縛纜, 則改其該船而已, 又焉有長竿亘聯, 多船受害之弊哉? 【且於出納庫舍之際, 亦甚輕便。】 御路約廣四把, 則每一把之間, 當置一縱梁, 然則每船當入縱梁五箇, 而六十艘所入爲三百箇矣。 每竿長不過七把, 則一舶恰載百餘箇, 三隻漕船可以從容輸致, 而無駕海掣肘之弊矣。 縱梁之大小, 則削以四觚, 每面以一尺爲準, 足以中用矣。 七曰橫板。 御路之廣, 爲四把則橫板之長, 亦四把矣。 廣則以一尺 【卽指尺。 尺樣比營造尺減八分, 比禮器尺加二分。】 以上爲準, 厚則以三寸 【營造尺。】 爲準。 應水廣一千八百尺, 橫板亦當入一千八百張矣。 其輸運之道, 一舶恰載三百箇, 不過六隻漕船, 足以從容輸置矣。 今議以爲縱梁橫板所入松木, 小不下五千株, 計士及幹事輩, 猶以爲不足, 是所謂分數不明, 奸弊層生者也。 就以上項排數者計之, 則中松一株, 出縱梁二箇, 大松一株, 出橫板四張, 則中松爲三百株, 大松爲四百五十株。 【此皆存剩磨鍊。】 合爲七百五十株, 而綽綽有裕矣, 五千株之說, 豈或近似? 縱梁木則雖長山串可以取來, 而橫板木則當取於安眠島。 蓋松之大者, 一株不唯四板而止也。 雖其體少者, 幹長足爲八九把, 截其半爲兩段, 又鋸其半, 則一株四板, 恢恢有餘矣。 蓋斫松之際, 奸弊不一, 吏緣爲私, 商緣爲利。 嚴飭各該守令, 親自照檢, 另標烙印, 以爲日後摘奸時考數, 而橫板則必斫用大松, 勤養幼松, 俾存用舊蓄新之方。 至於縱梁木, 體不過小柱, 長不過七把, 株不過三百, 京山閒漫處, 從便取用, 亦無不可。

八曰鋪莎。 舟橋方略, 講磨已久, 未嘗以鋪莎爲憂, 此甚踈矣。 蓋莎草如非他種, 一年採剝, 五年不蘇。 去年之役, 初日取于五步之內, 次日取于十步之內, 而次日役功之所成, 已半于初日。 以此推之, 今年取于百步之外, 明年取于數百步之外, 則其所役費, 又當以次倍蓰。 且募軍之法, 本多浪費, 況烏合之卒, 不能一一蕫督, 而雜遝忽擾之中, 吏奸自滋, 每年舟橋之役, 鋪莎當爲第一弊矣。 旣行一船一結之制, 則各船未聚會, 未相結之前, 卽令各船, 各量其船上所鋪莎草之容入爲幾許塊, 預於歷路, 【如楊花、西江等。】 各其沙格, 共力採取, 各載其船, 各於就次結船之後, 各其鋪覆事, 預爲定式, 俾令各其船主, 知所擧行, 則所謂萬人齊力, 不日成之者也。 議者或以爲船人不可枉勞, 而旣編其隊, 【見下結隊條。】 又蒙所利, 則勢所不辭。 若其畚鍤之具, 自官營造, 分給各船, 或値該船遞易, 【見下賞罰條。】 卽令傳授, 永久掌用, 定以年限, 如或閪失於限內, 則各自徵代, 以作一定之規。 九曰欄干。 欄干當於御路邊揷椓爲之。 每一把揷一椓, 則左右所入, 幷船槍不過七百箇。 以小笆子周之, 而每笆各以五把爲準, 則左右所入, 幷船槍不過一百五六十浮矣。 十曰下碇。 去年之役, 下碇雜亂, 各船碇纜, 交結互撕, 而如當風拍波蕩之時, 則易致傷損。 下碇當使甲纜對甲船之頭, 乙纜對乙船之頭, 無相交結, 井井有間, 則雖有風浪, 自無掣鬪之患矣。 十一曰藏械。 每船之廣狹, 旣相不同, 則各其器機, 【如縱梁等。】 亦當參差。 每當分授, 未易卞別。 宜於每機之上, 銘刻其隊 【見下。】 第幾船某色, 第幾械, 各各類聚, 區別藏弆于新建庫合, 別置一人, 掌其出納。 又令各其隊, 統明其與受, 則自無閪失混淆之弊矣。 十二曰結隊。 凡軍制, 若非編隊束伍, 挨次節制之法, 則號令不可行矣, 賞罰不可明矣。 今夫十人共一舟, 尙有篙師爲之節制, 矧玆百舟共一橋, 而獨無統領以率之乎? 聚會不齊, 孰任其督; 班次相越, 孰任其整; 力役不競, 孰任其董; 器械有失, 孰任其徵; 破敗不補, 孰任其察, 一夫犯罪, 百夫互諉, 孰任其罰? 今宜先定船隻之數, 均分作隊。 假如六十艘爲一橋, 宜令別立第一大舶於江心爲上船, 分而爲六, 各以十船爲一隊, 而上船以北三十隻爲左部三隊, 以南三十隻爲右部三隊。 【第隨船隻之數, 均分立號, 從便作隊。】 次於三隊之中, 立第一第二第三之號, 次於一隊之中, 立第一第二, 至第九第十之號焉。 每一隊定一隊長, 【或篙工或船主擇人爲之。】 令統十船之事, 每一部定一部長, 【或軍校或閑散擇人爲之。】 令統三隊之事。 別定都監官一人, 【有履歷幹事者爲之。】 令居上船, 統管一橋之事, 各令挨次節制, 受其棍笞, 而每一船有欠, 卽其隊長任罪, 每一隊有欠, 卽其部長任罪, 或一橋有欠, 卽都監官任罪, 則一橋之內, 自成軍制, 號令嚴明, 百工趨事, 行幸有命。 但當如法擧行, 朝家不必更事申飭, 而詰朝皷行, 虹橋已完矣, 復安用囂囂聚議, 汲汲知委, 繹騷千人, 浪費萬錢之爲哉? 十三曰賞罰。 舟橋之役, 不輕而重, 千人赴焉, 萬人瞻焉。 不有賞罰, 而勸懲之, 何以濟之哉? 今宜招集京江船主, 詢問海舶生涯之所, 大願大利, 爭先趨取者爲何事。 假如三南稅穀及海西賑鹽等事, 擇其最所欲者, 每船一入舟橋案, 而編於隊伍者, 成給帖文, 許令專利, 【宜酌定其界限, 無令濫觴。 或有怙勢踰越, 有所現發, 則分輕重扺罪。】 則民自勸矣。 一有罪犯, 卽於船案, 除汰其名, 充以他船, 則利之所在, 罰亦不少, 不須刑杖、徒流, 而民自懲矣。 如是則五江船人, 將以編於舟橋, 奉爲華職, 未得之惟恐不得, 旣得之惟恐或失, 竭力趨事, 無敢或後。 惠而不費, 勞而不怨, 威而不猛者, 正爲是也。 又其部長隊長, 經過幾番行幸, 許調爲邊將, 或屯監之岐, 定式施行, 則尤爲激勸之方矣。 十四曰期會。 京江船每於九十月間, 分往各處, 掛泊經冬, 以待春漕者, 出於爭先取利也。 今以舟橋名目, 原有定處, 許令專利, 則初無與人爭先, 安用徑往過冬? 春幸約在正晦二初, 而雖或至季春, 仍留經過後, 從容駕海, 政値風和, 尙云早矣。 【仍又終歲行商, 無所掣肘。】 秋幸時則約於八月旬望, 一齊來待, 另立科條, 永久遵行。

十五曰槍橋。 今論船槍以橋代築爲上策, 然是法能令淺水, 疏流橋下, 不致嚙壞之患而已。 若新水忽至, 添波數尺, 則舟橋爲水所負, 亦高數尺, 槍船摏立不動, 不能隨水高下, 則仰視舟橋, 若庭瞻屋, 將奈何哉? 計不過拔出一船, 使槍橋之頭與舟橋之頭稍遠, 而鋪跨長板, 以連其路, 使陞降之勢, 不至太急而已, 豈不悚且窘哉? 今旣以露梁爲定, 則露梁之潮勢, 常常盛至, 幾爲三四尺之高, 而朝夕進退, 倐高倐低, 應接不暇, 其計亦無所施矣。 今有一法, 人或爲之迂闊, 而實則萬全。 蓋其效能, 令槍橋隨水高下, 而與舟橋頡頏, 雖波添一丈, 常與舟橋相守不離, 豈不美哉? 先編長大厚板數十張, 以長椓隱簪以聯之。 【如造船底。】 次以大木外帶, 上下以合之, 【如造船扉。】 次以長板, 環舷各二層以圍之, 【如造津船。】 襦袽以補罅隙, 使水不得漏, 一如船制。 次使其頭直接舟橋之底, 而浮于水面, 其尾直過潮痕之界, 而着于岸上, 名之曰浮板。 次於浮板上, 如法作橋, 其高廣以舟橋爲準, 使舟橋槍橋兩頭密接, 【不當如舊制之離開空隙。】 作爲平面, 以連其路, 則能隨水高下, 與舟無間矣。 或曰: "舟橋百舟相維, 勢力相撑, 故蹴踏而不動。 今此浮板, 勢單而頭輕, 以大橋壓之, 萬馬踏之, 能不乍沈而乍浮乎?" 云爾而是則不然。 凡浮法, 其底愈大而水力愈撑。 今此浮板, 橫聯數十大板, 浮之水上, 則其倚水力也, 不啻萬勻。 然又有一法之皎然無疑者, 先取丫頭大木二株, 削爲兩柱, 對立竪樹于槍橋左右頭之地, 以大纜縛之舟橋船 【最邊船與槍橋相接者。】 之駕龍木, 【水添時, 舟橋船有高下, 則亦當從便改縛。】 次以極大纜繫浮板之頭, 【左右各然。】 上掛于樹柱丫處, 次於纜端繫一大網囊, 次取許多石塊, 盛于囊中, 用作垂錘, 而錘之重, 須以勿放勿引爲度。 勿放者謂人馬踏槍, 而浮板不能沈入一分也, 勿引者謂浮板不能自擧一分也, 然則是板也。 能有時乎浮上, 【謂水添時。】 而不能有時乎沈入, 豈非萬全之萬全乎? 潮水所至之地, 疾水所添之時, 除非此法, 則槍橋舟橋之有時高低之患, 莫可捄矣。 若其浮板轉運之道, 就於板底, 量宜作六輪或八輪, 則不過五六人挈之, 可以登岸矣。 又若以體大, 藏弆之不便爲難, 則分爲兩隻或三隻, 【如帿革帿分合。】 臨時更合, 何足謂之弊也? 右所論各樣事宜, 不過說其大摠, 優數存剩, 若果臨事措置, 酌量分數, 則又當減其幾許數, 而槍橋浮板所入之需, 亦當恢恢出其中矣。

○舟橋節目曰: "舟橋安排, 津路爲先, 露梁津渡, 兩岸相對而高, 中流平穩而深, 且其長廣, 比纛島西冰庫, 三分減一。 地勢之方便, 工役之省約, 甲於五江津路, 則以露梁永定溫幸時及宣陵靖陵章陵幸行時, 幷用此路, 獻陵英陵 寧陵幸行, 移設於廣津。" 辨曰: "露梁津形, 北岸頗高, 而南岸平低, 爲一望沙場, 南北岸形, 已是不同, 則兩岸相對而高云者, 固誤矣。 且潮水往來, 水面之高下, 朝夕變幻, 則舟橋亦當隨而高下, 中流平穩而深云者, 亦誤矣, 深字尤無意味。 然則舟橋之隨水之高下, 固無傷, 而兩頭作橋, 最是難便。 解見槍橋條。 節目所入船隻公私船, 參互取用, 然後可無不足之弊。 公船則以訓局船十隻, 牙山 貢津倉漕船十二隻取用, 私船則以京江水下船二十隻取用, 而或値水生津闊之時, 則亦不可無預備之道, 水下船限十隻, 加數整待。" 辨曰: "無論公私船, 未及尺量前, 何以知容入幾許隻? 況訓船、漕船之高低, 若不相稱, 其中必有不堪用者, 而今以公私船合四十二隻, 牢定其數者, 太欠商量。 餘船幾隻之預備, 雖是不可已之事, 然兩頭作橋, 牢不可動, 則雖當水生津闊之時, 餘船無所用矣。 向來冰湖水生, 豈無餘船而然也? 猝當水生, 欲以餘船聯補, 則兩頭橋毁, 而復造之外, 無他道。 故浮板作橋之說, 亦出不得已也。" 節目曰: "勿論公私船隻, 若無團束整齊之規, 則必有統紀雜亂之慮。 且船隻使用, 自是江民生業, 江民中另擇其富實勤幹解事者, 使之作爲船契, 統率沙格, 專當擧行, 而船契應行條件, 採探物情, 別成節目。" 辨曰: "此條則姑俟擇船完定, 更加採探物情, 量宜決定爲好。" 節目曰: "牙山 貢津倉漕船十二隻, 移屬本司, 出付船契, 若其漕轉事目, 一依湖西已例擧行, 以爲船契人依賴之地, 而漕轉之後, 造橋之暇, 毋論遠近道公私卜, 亦許一次載運。" 辨曰: "擇船條, 已詳言之。" 節目曰: "私船之入於船契者, 不可不別設聊賴之資, 以啓樂赴之路。 三南漕船, 各道戰兵船之限滿舊退者, 一幷捧價, 出給於船契人處, 以備造橋船隻修補之需, 而戰兵船舊退者限三年, 漕船舊退者永屬契中。" 辨曰: "此是江民輩, 行貨所圖者也。 旣專漕稅之利, 又專退船之利, 則入於船契, 皆將不數年, 人人致富矣。 一戰船之退件, 恰造水下大船二隻, 兵船與漕船之退件, 亦能各造一大船, 而一大船之物力, 近入千金, 則其爲利也, 奚但以萬金論哉? 雖曰捧價出給, 旣不能準捧當價, 則渠輩獲利無可比矣。 旣如是則造橋一款, 一切使其契中, 專爲擔當, 事理堂堂, 而今乃偏蒙其利, 又欲使朝家, 費了許多錢穀, 依前浪用者, 烏在其公私俱利之本意乎? 朝家但當不費一文錢, 而使渠輩擧行, 亦必踴躍爭趨, 唯恐或後。 今乃敢生無厭之慾, 益占利上之利, 可勝痛哉? 此非行貨所致, 則堂上等, 必見欺而然矣。" 節目曰: "三南自納邑, 稅穀載運之役, 出付船契, 以資其業, 而此是八江衆民生涯, 則不可專屬船契矣。 訓局船自有定式, 漕船旣經漕轉, 不必更論。 水下私船三十隻, 湖南湖西兩道中, 參互道里遠近, 船價多少, 折半式從願劃定, 自本司移文戶惠廳, 以爲分送之地。" 辨曰: "京江船之昔過千艘者, 今至數百艘, 則可見生利之漸不如前, 而稅穀載運, 又分利於船契, 船契所付六十艘外, 百艘十艘船漢, 幾何不失業而渙散也? 另究方便聊賴之資, 俾無稱冤之端爲宜。" 節目曰: "公私船五十二隻, 合爲一契, 成置船案, 每十隻各出船長一人。 公船二十二隻, 差出監官一人, 私船三十隻, 差出監官一人, 公私船幷差出都監官一人, 以爲次次統領之地, 而監官三人, 分屬於三軍門, 別軍官通計久勤, 如或作窠, 自船契從公論圈點, 手本於主管堂上, 文移各軍門, 船長則亦爲圈點差出, 一體手本。" 辨曰: "舟橋船旣成一契, 則不必以公私船, 分而二之。 假令船爲五十隻, 則無論公私船, 自可雜以用之, 每十隻各出一隊長, 每二十五隻各出監官一人, 爲左右部, 別出都監官一人, 使之摠領, 然後可無彼此推諉之弊矣。 監官三人, 屬之軍門, 似甚不緊。 且三人輪回入直, 則職務自然相妨," 欲爲除本仕, 則軍門亦多掣肘。 不若專責本司之仕, 爲久勤之窠, 而差出時, 使渠輩圈點事無妨。 節目曰: "官廨就露梁鎭接界處設置, 坐起廳八間, 木物庫十五間, 米庫五間, 庫直、軍士守直間五間, 大門一間, 狹門一間, 虛間三間, 自本司出物力建設。 守直一款, 監官三人輪回入直, 下屬則庫直兼大廳直一名, 軍士一名永爲專當。" 辨曰: "此條雖似然矣, 更容商量。 節目曰: "應入雜物, 旣自本司措備需用, 則不可無物力區劃之道。 嶺南別會穀中, 大米限二千石式, 每年許劃, 作錢取用, 米布如有用處, 就貢津倉漕需中, 量宜取用。 物力出入用遺在, 則主管堂上, 另加照察。" 辨曰: "舟橋設施, 當以事簡費省爲第一經綸, 則大米二千石, 年年許劃云者, 似欠綜核。 江民輩生涯, 莫上於漕運, 而一入船契, 則其利可專, 故今方碎頭, 唯恐或漏, 至以千金行賂, 則民之大願, 可以推知。 旣從其大願, 則橋役之不日而成, 亦可指掌。 然則其中如干經費, 每年五百兩足矣。 且戰兵船、漕船之許劃, 旣是無前大利, 則又出無盡財力, 徒爲江漢輩益富之術者, 全沒着落。 米則員役輩料外, 不必如前浪費矣。" 節目曰: "造橋制度, 船隻隨其體制大小, 次次鱗付, 下碇牢竪, 以大葛索編結。 又以大圓環, 朴排於各船上下左右, 以小葛索貫結, 上鋪縱結木, 橫鋪長松板, 幷間用大小釘, 鋪以空石實土被莎, 兩傍設欄干, 以爲界限。 每船分置沙格三名, 以爲禁火防水之地。" 辨曰: "造橋制度, 當專主船之高低, 而只擧大小, 已昧其方。 大圓環朴排, 徒繁工役, 而反有悠揚之患矣, 尤萬萬不當。 空石實土, 亦無意味。 量船高低, 鱗次聯接, 以縱木兩頭相縛, 結之駕龍木, 以長板平鋪之, 以撑介緊促之, 以空石間間鋪之, 以莎片被之, 至且盡矣。 且甲船與乙船密接, 乙船與丙船密接, 次次如是然後可矣。 若以大環,對朴排, 則兩船接處, 自然間空, 波之所蕩, 豈無悠揚之弊耶?" 節目曰: "長松板四千立, 統營安眠島風落松中, 作板取用, 而每箇長九尺厚二寸, 廣則以一尺二三寸爲限, 自統水營治木, 賃船輸送, 以爲藏置入用之地, 而入用後, 堂上、都廳親執照數, 還爲入庫。 其中如有折傷之板, 自本司文移統水營, 風落松中, 作板取來, 這這充補。" 辨曰: "長板四千立之說, 太沒分數。 且以長爲九尺, 廣爲一尺二三寸磨鍊者, 尤莫曉其故。 露梁津廣, 假令爲二百把, 而一把爲六尺, 則卽爲一千二百尺。 每板廣爲一尺, 則其所容入, 自爲一千二百立, 此外更無所入, 而雖若干存剩, 豈至四千之多哉? 但御路以四把爲定, 則板亦四把爲長, 然後橋上可作平面。 以九尺板, 有若苟充補空之例者, 誠誤矣。 以風落松言之, 各處豈有許多風落松? 朝家雖以許多風落松, 知委各處, 斫伐生松, 名以風落, 自其例也。 此所謂名存實無, 而奸弊尤滋。 都不如磨鍊容入之數, 嚴飭該道, 使之斫送, 不害爲光明之事, 而木之長廣, 亦必以量水量船之尺, 磨鍊裁作, 然後可相符合, 此則自京造送一尺爲好。 統營太遠, 宜取長山安眠之間。" 節目曰: "縱結木四百株, 長自二十五六尺, 至三十尺, 末圓徑七寸許斫, 取於長山串, 自本邑賃船輸送, 以爲藏置入用之地, 而照數入庫, 折傷充補等節, 依長松板例擧行。" 辨曰: "縱木磨鍊, 亦似過矣。 總以三十尺爲之, 則二百五十箇足矣。 以四十尺爲之, 則二百箇足矣, 而此亦量船尺度, 然後可以確定實數矣。" 節目曰: "船頭橋所入木一百箇, 亦以長二十尺, 末圓徑八九寸, 斫取於長山串, 自本邑賃船輸送, 自本司藏置, 充補等節, 亦依長松板縱結木例施行。" 辨曰: "此橋與船頭相接, 則御路之廣, 當與舟橋之路廣同矣。 然則廣鋪長松木, 亦當與舟橋之長板同。 今以二十尺磨鍊者, 似是堅柱之資, 而橋上以雜木補空, 徒費物力, 用後消瀜。 此亦以長松板, 依舟橋鋪之, 年年仍用爲好。" 節目曰: "生葛三十巨里, 自本司每於當節, 貿取於畿內山邑産出處, 藏置入用。" 辨曰: "雖生葛一巨里, 各邑卜定, 爲弊百端。 此等些少物種, 自京貿用, 外邑貽弊, 一切除之。" 節目曰: "船頭橋所鋪杻把子, 限二百部, 自本司貿取入用。" 辨曰: "旣用長松板, 則不必用把子, 空石上補土足矣。" 節目曰: "大圓環及各項鐵物, 自本司隨所入貿用, 打造時炭價及諸般工費, 亦自本司需用。" 辨曰: "鐵物別無浩用, 而其中大環, 尤不可用。" 節目曰: "空石限五千立、別營二千立, 京畿沿江各邑三千立, 預爲分定, 臨時取用。" 辨曰: "空石三千立, 其直特不逾數十金, 而分定貽弊, 自京辦用爲宜。" 節目曰: "撑介眞木三百箇, 自本司給價貿用, 而藏置充補等節, 亦依他木物例施行。" 又曰: "橋上補空及左右欄干次小椽木, 自本司臨時貿用, 而欄干上橫木, 以長竹貿用, 幷爲藏置。" 辨曰: "欄干橫木以長竹爲之, 亦似有弊。 以小椽中, 稍長者用之無妨, 亦爲久用之道矣。" 節目曰: "造橋時役軍及負土負莎草軍, 自契中另擇丁壯, 容入雇立雇價, 每日二錢五分式上下, 而別定頭目, 領率赴役。" 辨曰: "此條最欠商量。 剝莎附近, 年年爲式, 則莎何以支當? 且募軍許多名, 雖能一一董飭, 惟以曠日受價爲主, 則錢何以支當? 況莎場漸遠, 工役倍遲, 其弊莫可捄矣。 已詳於鋪莎條, 捨此而更無他道理也。" 節目曰: "舟橋司都提調三公例兼, 提調兵曹判書、漢城判尹、三軍門大將例兼, 主管堂上濬川司主管堂上兼管, 都廳濬川司都廳亦爲兼管。" 辨曰: "提調不必多員, 使二三人主管, 則可以專責, 而無令出多門之弊矣。 且念, 來頭舟橋司如或有故, 則三公奔走待命, 諸堂俱是緊任兼帶, 則朝家處分, 亦必掣肘。 簡其員數, 專其責任, 誠爲穩便。" 節目曰: "造橋事役, 財穀出納, 本司主管堂上專管擧行, 例兼堂上則橋役時, 轎回往來, 看檢董飭。" 又曰: "造橋時, 三軍門將校各三人、軍士各六名, 以伶俐勤實者定送。" 又曰: "造橋時, 本司主管堂上出往時, 守摠兩營前排, 依例定送。" 又曰: "舟橋司印信, 一顆造成入用。" 又曰: "員役以濬川司員役, 兼役擧行, 而主管堂上色丘一名、庫直兼大廳直一名、軍士一名, 別爲差出, 加出員役料布及兼役員役加料等節, 參互濬川司例, 別爲磨鍊。" 又曰: "嶺南別會穀作錢條及牙山漕軍布, 依濬川司、兩司作錢條例, 自均廳捧留, 待本司主管堂上移文, 量其容入, 隨時上下。 牙山漕需米, 自本司捧下, 而依各軍門餉色例, 都廳專管擧行。 漕船如有改造改槊事, 依均廳外劃例, 安眠島附近邑米布中, 隨用換給。" 辨曰: "以上諸條, 自是細節目, 待舟橋講定, 可以量宜措置。"


  • 【태백산사고본】 30책 30권 65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149면
  • 【분류】
    왕실(王室) / 교통(交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