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사가 직접 지방고을에 공문을 띄우는 일이 없도록 금지하다
내수사(內需司)가 직접 지방고을에 공문을 띄우는 일이 없도록 금지하였다. 앞서 영남에 나갔던 어사의 보고에
"하동의 관둔전(官屯田)에서 같은 토지에 이중으로 과세하였다."
는 말이 있기에, 이 일을 본도에 내려보냈더니 경상 감사 이조원(李祖源)이 장계하기를,
"이 토지는 본디 명선궁(明善宮)의 둔전이었는데, 병신년030) 에 궁의 둔전을 없애고 내수사에 이관한 결과 결복(結卜)은 호조에 넘어갔습니다. 그후에 내수사에서 호조에다 엄한 말로 공문을 뛰우고 한결같이 높은 배율로 조세를 징수함으로써 백성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토지도 경작되는 것이 없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지금부터는 경작하는 대로 조세를 거두되 한결같이 백성들의 자원에 따라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생각하건대, 직접 공문을 띄우는 폐단에 대하여는 본디 금령이 있는 것으로써 《대전통편(大典通編)》에 자세히 실려 있다. 그리고 내수사는 더욱 외부의 관청과도 다르며, 이른바 관리한다는 사람은 담당 내시이고 명색이 관원이란 자는 서리(書吏) 따위들이다. 설사 중앙관청의 문서라도 모두 서리가 하기 때문에 원래 첩정(牒呈)을 썼고 통관(通關)이 없는데 더구나 지방관청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근래에 지방 고을에 공문을 보내는 등의 일은 큰 월법이 될 뿐만 아닌데 게다가 혹시라도 공문을 직접 띄우기라도 한다면 그 죄가 어떠하겠는가. 이후 만약 털끝만큼이라도 법을 어기는 폐단이 있을 경우에는 내수사부터 먼저 엄중히 다스릴 것이며 해당 담당 내시는 형장을 쳐 귀양보내고 행수관리(行首官吏)도 또한 마땅히 형장을 쳐서 귀양보내야 한다. 이것으로 각 관청에 엄히 신칙하여 함부로 위반하는 관리도 마땅히 법에 의해 엄중히 다스리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0책 30권 36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134면
- 【분류】행정(行政) / 사법(司法)
- [註 030]병신년 : 1776 영조 52년.
○申禁內需司無得直關外邑。 先是, 嶺南御史有言河東官屯, 一土兩稅者, 事下本道。 慶尙監司李祖源狀啓言:
此土本明善宮屯土, 丙申罷宮, 移屬內需司, 而結卜則入戶曹。 其後內司移牒戶曹, 嚴辭發關, 一從高摠徵稅, 民多散亡, 土無起墾。
敎曰: "自今隨起收稅, 一從民願。 因此思之, 直關之弊, 自有禁令, 詳載於《大典通編》, 而內司尤與外司自別, 所謂句管者, 次知中官也; 名以官員者, 書題者流也。 雖於京司文簿, 以書題爲之, 故皆用牒呈, 元無通關, 況外邑乎? 近來若行關於外邑, 不但大是越法, 又或直關則其罪當如何? 此後若有一毫犯科之弊, 則先自內需司重治, 當該次知中使決杖定配, 行首官吏亦當刑配。 以此嚴飭各司, 冒犯官員, 亦當一依法典重勘。"
- 【태백산사고본】 30책 30권 36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134면
- 【분류】행정(行政) / 사법(司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