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역 장렴이 올린 문견 별단의 내용
수역(首譯) 장렴(張濂)이 올린 문견 별단(聞見別單)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작년 11월에 황제가 종인부(宗人府)에 유시(諭示)하기를 ‘짐(朕)이 황제의 자리에 오른 후 내년이면 짐의 팔순(八旬) 생일이 돌아온다. 이에 온 천하가 경사스러움을 표하고 있다. 짐도 화친왕(和親王)과 더불어 황제가 되기 전에 함께 친왕(親王)의 봉작(封爵)을 받았었는데 지금 여러 황자(皇子)들이 나이가 꽤 들었으니 참으로 성헌(成憲)을 따라야 할 것이다. 여섯째 황자 영선(永璿)은 질친왕(質親王)으로 진봉(晉封)하고, 열한 번째 황자 영성(永瑆)은 성친왕(成親王)으로 삼고, 열다섯째 황자 영염(永琰)은 가친왕(嘉親王)으로 삼고, 열일곱째 황자 영린(永璘)은 패륵(貝勒)으로 삼으며, 성친왕 이하는 전처럼 그대로 내정(內庭)에 거처하게 하면서 차근차근 그 부(府)를 나누어 주라.’고 하였습니다.
1. 작년 12월에 황제가 예부(禮部)에 유시하기를 ‘교외(郊外)와 종묘(宗廟)에 지내는 큰 제사(祭祀)는 짐(朕)이 몸소 엄숙히 거행하였으며, 비록 중사(中祀)의 제례(祭禮)더라도 또한 친히 참가하곤 하였다. 그러나 지금 하늘의 돌보심과 열성(列聖)의 보살핌을 입어 내 나이 벌써 여든에 이르렀으니 이치상 마땅히 몸을 보양(保養)해야 할 것이다. 이후로는 무릇 중사(中祀)의 때가 되면 관원을 보내 행례(行禮)하고 태묘(太廟)·사직(社稷)의 시향(時享)에는 나의 건강을 참작하여 친히 참가함으로써 제사의 전례(典禮)를 밝히겠다. 또 경연에서 학문을 강론하는 것은 원래 정신을 피곤하게 하지 않는 일이고, 위(衛)나라 무공(武公)의 나이013) 에 비하면 아직도 10년이나 젊으니 정사를 물려주기 이전에는 전례를 살펴 거행하겠다.’고 하였습니다.
1. 안남 국왕 여유기(黎維祈)가 쫓겨나간 뒤로 황제가 완광평을 특별히 국왕으로 봉하였는데, 그의 사은 주문(謝恩奏文)에 아뢰기를 ‘신의 나라 안남은 오복(五服)의 바깥 먼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전대(前代) 정씨(丁氏)가 왕업의 기초를 닦았을 때부터 대국(大國)에 귀복(歸服)하여 봉작(封爵)을 받았으나, 지역이 계강(桂江) 너머 외진 곳에 위치하고 황제의 대궐과 멀리 떨어져 있는 까닭에 교화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습니다. 송(宋)나라 황제가 여왕 항(黎王恒)에게 내려준 글과 원(元)나라·명(明)나라 때에 진왕 훤(陳王煊)에게 증명해준 기록은 오랜 동안의 미더운 역사 기록으로서 이 일을 더욱 고증할 수 있습니다. 대체로 가을처럼 엄숙한 뜻을 보이는 때는 많고, 봄날처럼 온화하게 베푸는 혜택은 적어서, 단지 함(函)에 담은 편지로 청명(請命)을 하면 그저 접수나 해 줄 뿐이었습니다. 진실로 오늘날 위대하신 황제께서 커다란 은혜를 내리시고 신 광평이 이러한 것을 받게 된 것처럼, 은혜로운 하사가 거듭되어 진주와 옥을 타이르는 말씀과 함께 영예롭게 내려 주시고 휘황 찬란한 황제의 친필로 어서(御書)와 칙서(勅書)를 함께 영광스레 내려주신 적은 없었습니다. 신은 광남(廣南) 지방의 농사꾼일 따름입니다. 하늘이 여씨(黎氏)에게 처음으로 나라를 세워주었으나 강포한 신하가 난을 일으켜 다함께 패망하는 바람에 교남(交南) 땅에는 주인이 없었습니다. 신이 다행히 동지(同志)들의 추대를 받아, 대궐에 나아가서 명령을 청함에 있어 비록 공순하고 변함없는 정성은 있었지만, 아직껏 드나들면서 세 번 뵙는 공경을 펴지는 못하였습니다. 신은 이에 친조카 완광현(阮光顯)을 보내어 귀순하는 표문(表文)을 올렸는데, 몸이 미처 대궐에 이르기도 전에 은혜로운 선물이 벌써 내렸습니다. 신은 이어 가신(家臣)인 황도수(黃道秀)를 보내어 사은(謝恩)하는 표문을 올리고 바야흐로 명령을 기다리며 관문(關門)에 머물고 있는데 은혜로운 윤음(綸音)이 금세 내렸습니다. 신이 삼가 전후로 내리신 칙서를 읽어보건대, 성군(聖君)의 말씀이 진지하여 「하늘의 뜻에 순종하여 시행한다.」는 말로 따뜻하게 타일러 주었습니다. 성인(聖人)의 마음은 곧 하늘입니다. 하늘이 가꾸려는 자를 북돋아주고 기울어지는 자를 엎어버림에 있어서 그 대체(大體)는 자연 조화를 순응하는 것으로서, 살려주는 기틀이 정(貞) 다음에 원(元)을 일으키는 데에서 다하여 집어내는 것이 손으로 꿴 구슬처럼 잇따라 나타나는 것입니다. 천자(天子)가 복록(福祿)을 내려주려 하심은 일월 성신(日月星辰)이 북극성을 에워싼 듯 군왕의 자손이 군왕을 에워싸는 복록이 끝없이 이어지게 하고자 하는 기상입니다. 황제께서 내려주신 시(詩)는 그 뜻이 간절하고 절실하여 강토(疆土)를 지키어 자손들에게 전하라고 훈계하셨으며 또한 오래도록 유지해나가는 도리를 공경하고 너무 가득차는 것을 두려워하라고 권면하셨으니 그것은 더욱 경건히 지수(持守)하고 하늘의 보살핌을 고이 받들어 남방에서의 제후의 법도를 길이 지켜나가게 하고자 하신 것이었습니다. 대저 《춘추(春秋)》의 의리는 대일통(大一統)이니, 천자가 세상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고 다같이 감싸주고 골고루 보살피어, 은택(恩澤)과 성교(聲敎)가 미치는 곳에는 서오(胥敖)와 같은 미개지(未開地)014) 도 함께 있게 마련이나 이들도 모두 보살핌을 받는 가운데 들게 한다는 것입니다. 돌아보건대, 신은 실로 여러모로 부족한 사람으로서 이런 영광을 입게 되었는데, 본국(本國)의 여씨(黎氏)·진씨(陳氏) 이전부터 학룡(貉龍)이 나라를 세우던 초기에 이르기까지 처음 있는 드문 일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천지(天地) 같으신 은혜에 만분의 일이나마 보답하겠습니까. 신은 봉지(封旨)를 듣고 나서 즉시 예안(乂安) 지방을 거쳐 길을 출발하여 감격스럽고 기쁜 마음으로 한시바삐 은명(恩命)을 일찍 받고 싶었으나, 마침 피로가 쌓여 감기에 걸린데다 예전의 병이 다시 발작하였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신은 외람되게 봉작(封爵)을 받고 즉시 남쪽 지방 울타리 역할을 맡은 셈인데, 만약 몸을 스스로 아끼지 아니하여 병세가 더친다면, 이것은 신의 집안이나 나라로 보아서는 작은 일이지만 위대하신 황제의 하늘같은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 되니, 지은 죄가 더욱더 중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히 몸조리를 하기 위해 봉작을 선포하는 기일을 특별히 물릴 것을 여쭈기로 하였습니다. 애를 태우며 신음하는 중에도 한없는 황제의 은덕이 실로 더없이 크고 두려움에 고마워한 나머지 살과 뼛속까지 스미어 감기 증세가 어느덧 없어지는 듯합니다. 10월 15일에 삼가 황제의 시(詩)와 칙서(勅書)를 받았습니다. 이로부터 남교(南交) 지방을 맡아 다스리면서 신은 자손 대대로 황제의 가르침을 삼가 준수하여 대청국(大淸國)을 받들어 나갈 것입니다. 신은 서산(西山)의 보잘것없는 선비로서 영광스럽게도 봉호(封號)를 받게 되었으니 스스로 물어보아도 이를 보답할 길이 없습니다. 오직 내년 3월 상순(上旬)에 몸을 일으켜 서울에 가서 천안(天顔)을 우러러 뵙고 위대하신 황제의 팔순 만수절(八旬萬壽節)을 공축(恭祝)하는 동시에, 매일 가르침을 듣고 정치의 근본을 웬만큼 깨달아 그대로 준수하고 시행함으로써, 온 나라의 신하와 백성들로 하여금 그 음덕을 입도록 하는 것이 실로 신의 큰 소원입니다. 또한 신은 큰 은혜에 감격하고 진심을 표하기 위하여, 삼가 가신(家臣) 완굉광(阮宏匡)·송명랑(宋名朗)·여양신(黎梁愼) 등을 선발하여 사은(謝恩)하는 표문(表文)과 함께 사례하는 물품을 가지고 가서 올리도록 하였습니다. 재차 이전의 관례를 조사하건대, 올해는 바로 신의 나라에서 정기 공물을 바쳐야 할 시기입니다. 지방의 특산물을 올리는 예절을 감히 늦추거나 거를 수가 없어서, 삼가 가신 진풍대(陳風大)·완지신(阮止信)·완제(阮偍) 등으로 하여금 공물를 가지고 함께 대궐에 가서 공손히 올리게 하였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의 은혜로써 여러모로 가엾게 봐주시고 신이 보낸 사신 일행의 이름들을 맞춰보고 대궐 뜰에 나아가 황제를 만나뵙고 사례하는 물건과 정기 공물을 올려바치도록 허락해 주소서. 그리하면 옛날의 전장(典章)을 삼가 준수하고 새로운 혜택을 길이 받으면서, 함께 같은 강토에 있는 직분을 어기지 아니하고 울타리로서의 역할을 실추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신은 아랫사람으로서 하늘 같으신 황제를 우러러 사모하는 심정을 누를 길이 없습니다.’ 하였습니다.
1. 안남 국왕의 사은(謝恩) 표문(表文)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태평한 세상으로 천하를 통합하였으니 정중(正中)하신 용덕(龍德)이 빛나고, 어진 정사가 온 천하에 흘러넘치니 깊고 넓은 홍은(洪恩)을 우러릅니다. 멀리 떨어진 곳까지 보살펴 주시어 평소 의지할 데가 없는 백성들에 대해 정성을 쏟아주셨습니다. 삼가 위대하신 폐하께서는 너그러움을 벼리로 삼고 중화(中和)를 법칙으로 삼으시어, 수양을 쌓고 학문을 연마하여 점잖게 도리를 지키어 천하를 감화시켰고, 공경하고 밝으며 문명하고 사려가 깊어 뛰어난 덕으로 세상을 안정시키니 오랑캐들도 다들 복종하였습니다. 북극성(北極星)이 제 자리에 있게 되니 남쪽 바다의 물결은 자연히 잔잔해진 셈입니다. 성심(聖心)은 귀순하는 자들을 넓은 도량으로 품어주어 위엄 끝에 사랑을 베푸니 만물이 윤택해졌고, 천도(天道)는 가꾸려는 자를 복돋아주고 기울어지는 자를 엎어버리는 법이어서, 산등성이가 골짜기를 인하여 변천되는 것입니다. 대체로 위대한 감화가 오늘날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황제의 가르침이 모든 지역을 다 차별없이 대하였기 때문입니다. 보내주신 여러 줄의 조서(詔書)는, 신이 이러한 은총에 힘입어 백성들을 잘 진무(鎭撫)하도록 도와주신 것으로서, 따뜻한 봄바람이 감싸주는 듯하고, 여덟 구(句)로 된 한 장(章)의 친필 시(詩)는 신이 왕업(王業)을 고이 지키고 강토를 보전하도록 권면하신 것으로서, 밝은 해가 비추는 듯하였습니다. 은혜로운 글이 내려오니 영광이 매현역(梅縣驛)에 어리었고, 고마우신 말씀이 선포되니 경사스러움이 계강(桂江) 너머에까지 흘러넘칩니다. 신이 감히 성모(聖謨)를 고이 받들어 제후의 규범을 삼가 준수하지 않겠습니까. 천안(天顔)을 지척에서 뵙는 일에 있어서는, 내년에 신이 몸소 봉궐(鳳闕)에 나아가 뵈올 생각이며, 지방의 특산물을 바치는 일에 있어서는, 대대로 상방(象方)의 옥백(玉帛)을 바치고자 합니다. 신은 아랫사람으로서 하늘같은 황제를 우러러 감격스러움을 금치 못하면서 삼가 표문(表文)을 올리어 사례하는 한편 의물(儀物)을 바치는 바입니다. 의물은 금 20일(鎰), 은 1백 일, 토견(土絹) 1백 필(疋), 나견(羅絹) 1백 필, 총 무게가 2백 근(斤)인 상아(象牙) 3대(對)입니다.’
1. 안남 국왕이 공물(貢物)을 바치며 올린 표문(表文)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중도(中道)를 취하시니 요(堯)임금처럼 점잖게 가만히 앉아만 계시어도 천하가 잘 다스려져 정기적인 공물을 하우(夏虞) 때처럼 정성껏 마련하여 바치면서, 고개를 내밀어 황제를 우러러 머리를 조아리며 향(香)을 사릅니다. 생각건대, 위대하신 황제 폐하께서는 복덕(福德)을 겸비한 성인(聖人)이고 강상(綱常)의 종주(宗主)로 계십니다. 장수(長壽)를 벼리로 삼아, 동방에서 나타나 남방에서 알려지고 태괘(兌卦)에서처럼 기뻐하고 감괘(坎卦)에서처럼 애쓰셨습니다.015) 이것은 오래도록 유지하는 아름다움을 이룩하는 데에 그 범위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말과 행동이 교훈적이어서 동서 남북에 빠짐없이 두루 파급되었으니, 준칙을 반드시 앞세우는 덕행이었습니다. 이는 대체로 거룩한 도량으로 만물을 육성하고 천심(天心)을 몸받아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찮은 성의나마 곡진히 바치니 차마 따뜻한 교화를 국경 안에만 국한하지 않고 번방(蕃邦)으로 삼아 은총을 베풀어 주시니 새로운 임명이 외람되게 보서(寶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태산(泰山)의 높이나 창해(滄海)의 깊이에도 그 은혜를 비길 수 없으니, 어찌 하찮은 정성으로 능히 보답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신은 새로 만들어주시는 은덕을 입어 추대하고 친애하는 심정이 더욱 간절하기에 여러 가지 보물을 하찮은 의물(儀物)로 고이 바칩니다. 9천 리(里)의 바다와 산이 처음으로 통하게 됨을 기쁘게 여겨, 의관을 갖추고 성대한 모임에 참가하여 삼가 해와 달처럼 억만년토록 길이 비추고 계시기를 축원하고자 합니다. 신은 아랫사람으로서 하늘 같은 황제를 우러러 감격에 겨운 심정을 누르지 못하겠습니다. 올리는 세공(歲貢) 의물(儀物)은, 총 무게 2백 9냥(兩)인 금향로(金香爐)와 화병(花缾), 절금자(折金子) 21정(錠), 총 무게가 6백 91냥 되는 은분(銀盆) 12개, 절은자(折銀子) 69정(錠), 침향(沈香) 8백 82냥, 속향(速香) 1천 95냥입니다.’
1.명(明)나라의 여러 능(陵)에 대해서는 황제께서 특별히 수리(修理)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지난해 11월에 대신(大臣) 아미달(阿彌達)을 보내 능에 있는 전각(殿閣)들에 단청(丹靑)이 빛이 바래 벗겨진 것을, 관할하는 고을에서 비용을 대어 손질하게 하고, 이어 공부(工部)로 하여금 3년마다 당관(堂官)을 파견하여 가서 살펴보도록 하는 내용으로 일정한 규식을 정하였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29책 29권 59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113면
- 【분류】외교(外交)
- [註 013]나이 : 춘추(春秋) 시대의 현군(賢君)으로 일컬어지는 위나라 무공은, 95세의 고령(高齡)에도 불구하고 항상 자기 반성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간언(諫言)을 받아들이고 보다 나은 정치를 이룩하고자 노력하였다. 《사기(史記)》 권37 위강숙세가(衛康叔世家) 제7.
- [註 014]
미개지(未開地) : 이는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나오는 말로, 서오는 요임금 때 복종해 오지 않고 오만 불손했던 나라의 이름이고, 본문의 봉애(蓬艾)는 그 나라의 미개척된 상태를 나타낸 말로 쓰였다.- [註 015]
태괘(兌卦)에서처럼 기뻐하고 감괘(坎卦)에서처럼 애쓰셨습니다. : 태괘(兌卦)는 《주역(周易)》 육십사괘의 하나로 ‘기쁨’을 상징한다. 하늘의 뜻에 순종하여 백성들을 감싸줌으로써 백성들이 자기를 믿고 따르게 하였다는 뜻이다. 감괘(坎卦) 역시 주역 육십사괘의 하나로 ‘험난(險難)의 중복(重複)’을 상징하는데, 영도자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여서도 강중(剛中)한 행실로 신의를 잃지 않고자 노력한다는 뜻이다. 《주역본의(周易本義)》.○首譯張濂聞見別單。
一, 昨年十一月, 諭宗人府曰: "朕紹膺丕緖, 明年爲朕八旬壽辰。 普天臚慶。 朕與和親王在邸時, 偕受親王封爵, 今諸皇子年齒已長, 允矣式遵成憲。 皇六子永璿晉封質親王, 十一子永瑆爲成親王, 十五子永琰爲嘉親王, 十七子永璘爲貝勒。 其成親王以下, 仍居內庭, 緩其分府。"
一, 昨年十二月, 諭禮部曰: "郊廟大祀, 朕無不祗肅躬行, 雖中祀之禮, 亦嘗親詣。 今荷上蒼眷侑, 列聖垂庥, 已屆八旬, 理宜保養。 嗣後凡遇中祀, 遣官行禮, 若太廟、社稷時享, 候朕酌量親詣, 用昭祀典。 經筵講學, 原不勞神, 較衛 武之年, 尙少十歲, 歸政以前, 照例擧行。"
一, 安南國王黎維祈見廢之後, 皇帝特封阮光平爲國王, 其謝恩奏文有曰: "臣安南, 五服之外屛也。 自前代丁氏, 啓宇內屬受封, 而地僻桂郊, 天遠楓陛, 以化外之蹤。 宋皇所賜黎王 恒之書, 元、明所徵陳王 烜之記, 十年信史, 事尤可徵。 大抵秋肅之意多, 春溫之澤少, 秪以函封請命, 姑賜回容, 固未有恩施稠疊珍珠偕玉, 諭而寵頒, 宸翰輝煌, 御書幷勑書而榮錫, 如今日大皇帝之隆恩, 與臣光平之遭遇者也。 臣廣南之田舍子爾, 天造草昧于黎, 强臣構亂, 淪胥以敗, 交南無主。 臣幸爲同志所推, 叩闕請命, 雖有恪恭一念之誠, 而未得展出入三覲之敬。 臣所遣親姪阮光顯, 賫進投順之表, 身未及闕, 而恩賜已施。 臣嗣遣家臣黃道秀, 獻上謝恩表文, 方當候命在關, 而寵綸旋降。 臣伏讀前後勑書, 聖詔諄諄, 以順天而行, 播諸溫諭。 聖人之心卽天也。 栽培傾覆, 大都順其自然造化, 生機儘于貞下起元, 點出繼于手串之珠。 天子將賜履焉, 欲其合璧聯珠, 繞北宸而綿延, 不窮之象也。 御賜之詩諄切, 以守封疆, 傳子孫爲訓, 而且勉之以欽久道, 澟持盈, 尤欲其兢業持守, 祗承天庥, 以長守南服之侯度也。 夫《春秋》之義, 大一統。 聖天子一視同仁, 倂包遍覆恩澤, 聲敎所曁, 卽胥敖蓬艾咸在, 蓋容亭育之中。 顧臣寔寡昧, 膺此榮光, 由本國黎、陳以上, 迄于貉龍建國之初, 創見而曠聞, 何以答高厚始生之萬一? 臣自聞封旨, 卽由乂安起程, 感激懽欣, 急願早承恩命, 適勞頓感寒, 舊病復作。 伏念臣謬膺封爵, 卽爲南服藩屛, 若不自愛其身, 病勢增劇, 是在臣家國爲小, 而辜負大皇帝如天之恩, 負罪益重。 用敢稟明調治, 另改宣封日期。 焦急呻吟中, 感念無量天恩, 實爲至優極渥, 淪肌浹髓, 夙恙頓除, 于十月十五日, 敬謹領受御詩勑書。 從此司牧南交, 臣世世子孫, 恪遵聖訓, 承奉大淸。 臣以西山布衣, 榮膺封號, 自問無可報答。 惟于明年三月上旬, 起身赴京, 瞻仰天顔, 恭祝大皇帝八旬萬壽, 幷得日聆訓諭, 稍知政治之本, 遵奉施行, 俾擧國臣庶蒙庥, 實臣之大願也。 臣仰感隆恩, 俯攄衷素, 謹奉遴選家臣阮宏匡、宋名朗、黎梁愼等, 賫進謝恩表文, 幷謝儀款奉進。 再奉査照向例, 今年正値臣國歲貢之期, 任土之禮, 不敢稽曠, 謹奉家臣陳風大、阮止信、阮偍等, 將貢儀一竝恭進至關, 伏望聖恩, 曲垂矜字, 準賜臣所遣行价等名, 恭詣闕廷瞻覲, 幷將謝儀貢儀上進, 庶得恪守舊章, 永覃新澤, 無缺共球之職, 不墜屛翰之修。 臣下情無任瞻天仰聖, 激切願望之至。"
一, 安南國王謝表有曰: "太和保合乾施, 昭龍德之正中, 郅治流行普錫, 仰洪恩之溥博。 隆瞻逮遠, 素悃瞻烏。 欽惟大皇帝陛下, 豈弟爲綱, 中和作則, 敬止緝熙, 穆穆久道, 而天下化成; 欽明文思, 安安惇德而蠻夷率服。 北極辰居其所, 南溟波不自揚。 聖心恢綏附懷來, 雨露繼風霆而潤澤; 天道申栽培傾覆, 山陵因淵谷而推移。 蓋洪勻陶鑄之至今, 斯皇德訓彝之無黨。 尺札千行天詔, 賜臣以藉寵靈而資鎭撫, 風行融液之春; 一章八句宸翰, 勉臣以謹持守而保封疆, 日朗光明之燭。 恩旨降而榮回梅驛, 德音宣而慶溢桂郊, 臣敢不祗承聖謨, 恪遵侯度? 天顔咫尺, 期明年身親鳳闕之勻韶, 地面十三, 願奕世承執象方之玉帛。 臣下情無任瞻天仰聖, 不勝激感之至, 謹奉表稱謝, 而恭進儀物, 金子二十鎰, 銀子一百鎰, 土絹一百疋, 羅紈一百疋, 象牙三對, 該重二百斤。"
一, 安南國王貢表有曰: "厥中允執, 衣裳咸仰于堯明; 惟正之供, 玉帛虔修於夏貢, 擡頭見日, 叩首焚香。 欽惟大皇帝陛下, 福德聖人, 綱常宗主。 壽考爲綱爲紀, 出乎震, 見乎离, 說乎兌, 勞乎坎, 範圍在久之美成; 言行是訓是彝, 漸于東, 被于西, 曁于朔, 訖于南, 規矩必先之德行。 蓋亭育丕恢于聖度, 而寧敷仰體于天心。 輸誠曲軫, 微衷不忍限暄和于銅柱; 作屛寵班, 新命遂獲登猥陋于寶書。 誠泰山滄海之難量, 豈勺水涓塵之能報? 臣仰蒙陶造, 劇切戴親。 琛球恪展微儀, 正忻九千里海山之初達; 冠帶願借盛會, 謹祝億萬年日月之長輝。 臣下情無任瞻天仰聖, 不勝激切之至, 而所進歲貢儀物, 金香爐花缾四部, 該重二百九兩, 折金子二十一錠, 銀盆一十二口, 該重六百九十一兩, 折銀子六十九錠, 沈香八百八十二兩, 速香一千九十五兩。"
一, 明朝諸陵, 皇帝另加修葺。 上年十一月, 遣大臣阿彌達, 陵上殿宇丹雘脫落, 令所管之官賠修, 仍令工部, 每三年奏派堂官往審, 著爲定式。
- 【태백산사고본】 29책 29권 59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113면
- 【분류】외교(外交)
- [註 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