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륭원의 공역이 완공되어 안원전을 거행하다
현륭원(顯隆園)의 공역이 완공되었다. 안원전(安園奠)을 거행하였다. 상이 연신(筵臣)에게 이르기를,
"나는 원(園)을 옮기는 한 가지 일에 대하여 오랫동안 경영하고 조처한 것이 있는데, 반드시 비용을 덜 들이고 백성들을 고달프게 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신연(神輦)과 여교(轝轎) 및 촉롱(燭籠)은 정련(正輦)을 쓰고, 신연(神輦)을 배호(陪扈)하는 군대와 의장은 법가군(法駕軍)을 썼으며, 계원(啓園)할 때에는 자문감(紫門監)의 군사를 쓰고 여사(轝士)와 상여를 끌어당기는 시민, 잔디를 떠내는 사람 및 각종 운반을 맡은 군정들도 다 내탕고에 비치해 둔 돈을 꺼내어 그 양식과 비용을 후하게 주었으며, 의복까지도 자체로 마련하는 것을 금하고 역시 내탕고와 호조의 비용으로 만들어 주게 하였다. 여러 신하들은 다들 나라의 전법(典法)에 없는 일이고 체모에 관계된 일이라는 점을 누차에 걸쳐 말을 하였지만, 나의 구구한 본의(本意)는 오로지 선왕의 뜻을 이어나가려는 ‘앙술(仰述)’ 두 글자에 있었으므로 모두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이밖에 순여(輴轝)를 메는 군사는 따로 별계군(別契軍)을 썼고, 양반 집에서 거느린 장정으로서 자원하여 응모하는 자들 또한 일체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전해 오는 대여(大轝)는, 멜채[杠幹]가 너무 무겁고 가로 세로로 놓인 대[井架]가 너무 빽빽한 까닭에, 힘이 약한 여사(轝士)들은 어깨가 서로 부딪쳐 길을 가는 데에 불편하였다. 그래서 그 멜채를 잘라냈고, 가로 세로로 놓인 대를 줄이도록 하였다. 또 습의(習儀)를 세 번에 걸쳐 하는 것은 모이고 기다리는 폐단이 있으므로 두 번은 줄였다. 발인하는 날에는 도청의 낭청 및 근시하는 무신에게 나누어 명하여, 떡과 고기를 싸가지고 가다가 10여 리를 갈 때마다 한 번씩 먹이게 하였고, 또 역참길에 식량을 지급하고 초소를 설치하여 밥을 지어 먹이게 하였으며, 신방제중단(新方濟衆丹)을 만들어 사람들마다 몇 알씩 지급하여 줌으로써 한기(寒氣)를 막게 하였다. 옛 원에서부터 신원까지의 노정이 실히 백여 리나 되어 여사(轝士)들이 모두 20번이나 교대하면서 운반하였는데, 첫날 강가에서 출발을 한 때가 이미 해가 돋은 후였는데도 정오가 되기 전에 과천(果川)의 숙참(宿站)에 안치할 수 있었다. 그 이튿날 새벽녘에 신원을 향해 출발하였는데, 채 신시(申時)가 되기 전에 정자각(丁字閣)에 도착하였다. 원(園)을 연 때로부터 원에 안치할 때까지 역사(役事)를 감독한 신하들과 호위한 장사(將士)들 및 여부(轝夫)·장수(匠手)·역부(役夫)들이 죄다 몸성히 돌아와, 마치 도와준 사람이 있는 듯하였으니, 참 기이하고도 기이한 일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8책 28권 38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68면
- 【분류】왕실(王室)
○戊辰/顯隆園工役告完, 行安園奠。 上語筵臣曰:
"予於遷園一事, 積有所經營措設者, 必欲下煩經用, 不勞民力。 神輦、轝轎及燭籠用正輦, 陪扈輦隊、儀仗用法駕軍, 啓園用紫門軍, 以至轝士引曳市民取莎及各項擔運軍丁, 皆出內帑備置錢貨, 以厚其糧費, 而服着禁其自辦, 亦以內帑度支之需, 造給。 諸臣咸以國典之外, 有關體貌, 屢爲之言, 而予之區區本意, 惟在於仰述二字, 幷不許。 外此輴轝擔陪, 另用別契軍, 而班戶率丁之自願應募者, 亦一切不許。 故事大轝, 杠幹太重, 井架太稠, 轝士力弱肩磨, 不便於行。 令斲其杠, 減其井, 而習儀之三度, 以聚待之有弊, 除二度。 靷日分命都廳郞及近侍武臣, 齎餠肉每十餘里饋之, 又於站路給糧, 設卡炊飯饋之, 製新方濟衆丹, 人給數丸以禦寒。 自舊園距新園程路, 恰近百里, 轝士之替運, 凡二十度, 而初日江頭進發也, 已日出而未午, 安于果川宿站。 翌曉, 發向新園也, 未申而到丁閣。 自啓園至安園董事臣僚、陪扈將士及轝夫匠手役夫, 無不穩還, 若有相之者, 奇矣奇矣
- 【태백산사고본】 28책 28권 38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68면
- 【분류】왕실(王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