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의 호를 ‘현륭’이라 정하다
신원(新園)의 호를 ‘현륭(顯隆)’이라고 의논해 정하였다.
제신(諸臣)이 【영돈녕부사 홍낙성(洪樂性), 판중추부사 서명선(徐命善)·이복원(李福源), 영의정 김익(金熤), 좌의정 이재협(李在協), 판중추부사 이성원(李性源), 우의정 채제공(蔡濟恭), 이조 판서 김종수(金鍾秀), 좌참찬 김화진(金華鎭), 우참찬 조경(趙瓊), 예조 판서 이재간(李在簡), 호조 판서 서유린(徐有隣), 공조 판서 정창순(鄭昌順), 예문관 제학 오재순(吳載純), 형조 판서 심이지(沈頤之), 이조 참판 이병정(李秉鼎), 병조 참판 신응현(申應顯), 호조 참판 이헌경(李獻慶), 예조 참판 민종현(閔鍾顯), 형조 참판 유당(柳戇), 대사헌 조정진(趙鼎鎭), 규장각 직제학 김재찬(金載瓚), 부제학 이시수(李時秀), 대사간 박천형(朴天衡)이다.】 모여 의논하여 빈청에 ‘현륭(顯隆)’, 【현(顯)은 《상서(尙書)》에 "크게 드러났도다, 문왕의 모책(謨策)이여." 하였고, 《시경》에 "드러나지 않은 곳에도 또한 임하시네." 하였고, 두보(杜甫)의 시에 "바라건대 부지런히 애쓰는 뜻으로 힘들여 키워주신 현부(顯父)에 보답할지어다."라고 하였다. ○융(隆)은 융숭하게 보답한다는 뜻이다. 《설문(說文)》에 "푸짐하고 큰 것을 말한다. 물건의 가운데가 높다랗고도 성대한 것을 뜻한다." 하였다.】 ‘덕융(德隆)’, 【《당서(唐書)》에 "음악을 만들고 예법을 제정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덕(德)을 알게함이 융(隆)이다." 하였다.】 ‘헌륭(獻隆)’, 【헌(獻)은 《자설(字說)》에 "큰 것이다."고 하였고, 시법(諡法)에 "바탕을 알고 문채가 있는 것을 헌(獻)이라 한다." 하였다.】 ‘희륭(熙隆)’, 【희(熙)는 《설문(說文)》에 이르기를 "흥성하고 화목하며 넓고 장구한 것이다." 하였다.】 ‘계륭(啓隆)’, 【계(啓)는 《서경》에 "우리 후인을 계우(啓佑)하셨다." 하였다.】 ‘태륭(泰隆)’을 【《대대례(大戴禮)》에 "근본을 귀하게 여김을 문(文)이라 하고 친히 쓰는 것을 이(理)라 하는데, 이 두 가지를 합치어 문(文)을 이룩해서 태일(太一)에 귀결(歸決)함을 곧 태륭(泰隆)이라 한다." 하였다.】 써서 내렸는데, 빈청이 현륭·태륭·덕륭의 삼망(三望)을 의계(擬啓)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8책 28권 3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50면
- 【분류】왕실(王室)
○壬戌/議定新園號曰顯隆。 諸臣 【領敦寧府事洪樂性、判中樞府事徐命善ㆍ李福源、領議政金熤、左議政李在協、判中樞府事李性源、右議政蔡濟恭、吏曹判書金鍾秀、左參贊金華鎭、右參贊趙瓊、禮曹判書李在簡、戶曹判書徐有隣、工曹判書鄭昌順、藝文提學吳載純、刑曹判書沈頤之、吏曹參判李秉鼎、兵曹參判申應顯、戶曹參判李獻慶、禮曹參判閔鍾顯、刑曹參判柳戇、大司憲趙鼎鎭、奎章閣直提學金載瓚、副提學李時秀、大司諫朴天衡】 會議, 書下于賓廳曰顯隆、 【顯, 《書》曰: "丕顯哉文王謨" 《詩》曰: "不顯亦臨。" 《杜詩》曰: "庶以勤苦志, 報玆劬勞顯。" 隆, 報也。 《說文》曰: "豐大也。 物之中高。 又盛也。"】 德隆、 【《唐書》曰: "作樂制禮, 使民知德隆。"】 獻隆、 【獻, 《字說》曰: "大也" 《諡法》曰: "知質有文曰獻"】 熙隆、 【熙, 《說文》曰: "興也、和也、廣也、長也"】 啓隆、 【啓, 《書》曰: "啓佑我後人"】 泰隆, 【《大戴禮》: "貴本之謂文, 親用之謂理。 兩者合而成文, 以歸太一, 是謂泰隆。"】 賓廳以顯隆、泰隆、德隆三望, 擬啓。
- 【태백산사고본】 28책 28권 3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50면
- 【분류】왕실(王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