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당에 원을 설치하고 창고를 세워 조적하다
미륵당(彌勒堂)에 원(院)을 설치하고 창고를 세워 조적(糶糴)하였다. 경기 관찰사 서유방이 아뢰기를,
"과천(果川)에서 수원까지는 두 참(站) 길인데 그 사이에 미륵당참이 있으니, 영릉(寧陵)을 옮겨 모신 뒤에 이천(利川)의 참에 행궁(行宮)을 설치한 전례를 준용하여 미륵당참에 하나의 원을 설치해서 이번에는 영구(靈柩)를 봉안하여 낮참을 쉬고 지나간다면 후일에 어가가 머무르시기에 편리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 점(店) 근처에 사는 광주(廣州) 백성들이 산성(山城)과 거리가 1백여 리나 떨어졌기 때문에 조적의 정사가 절박한 피해가 된다고 하니, 원을 설치한 뒤에 따로 하나의 창고를 세우고, 창고 밑의 민호(民戶)에게 연한을 정하거나 혹은 영원히 부역을 면제해 준다면 수년 안에 응모(應募)해 들어오는 자가 매우 많을 것이다. 혹 산성의 군량을 성외의 창고로 옮겨 두는 것을 곤란하게 여긴다면, 각 아문(衙門)에 곡식이 본래 여유가 있으니 비록 산성의 군량이 아니더라도 조치할 수가 있을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7책 27권 44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45면
- 【분류】교통(交通) / 재정(財政) / 군사(軍事) / 구휼(救恤)
○設院于彌勒堂, 置倉糶糴。 京畿觀察使徐有防曰: "自果川抵水原爲二站, 其間有彌勒堂站, 用驪州遷奉時利川行宮已例, 彌勒堂站設置一院。 今番則奉安靈幄, 如以晝停行過, 則日後便於駐駕矣。" 上曰: "廣州民之在此店近處者, 距山城爲百餘里, 糴政爲切瘼云。 設院之後, 別置一倉, 倉底民戶, 限年或永爲除役, 則數年之內, 募入者當甚多。 或以城餉之移置外倉爲難, 則各衙門穀, 本自有裕, 雖非城餉, 亦可措置矣。"
- 【태백산사고본】 27책 27권 44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45면
- 【분류】교통(交通) / 재정(財政) / 군사(軍事) / 구휼(救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