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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27권, 정조 13년 6월 22일 병자 2번째기사 1789년 청 건륭(乾隆) 54년

부사과 강석귀가 감사 홍억을 탄핵하자 월봉 일등에 처하고, 강석귀는 파직시키다

부사과 강석귀(姜碩龜)가 상소하기를,

"작년 겨울에 윤음(綸音)을 받들어 본도에 펼 적에 전 안동 부사(安東府使) 신익빈(申益彬)의 행위가 그지없이 놀랍고 통탄스러웠습니다. 대간에 내리신 비답 중에 ‘이후로는 영읍(營邑)이나 유생을 막론하고 다시 본 사건을 제기해서 상주(上奏)하는 일이 있으면 모두 향전율(鄕戰律)027) 로 논죄할 것이고, 조성(助成)한 관장(官長)은 배가(倍加)의 형벌로 처치할 것이다.’고 분부하셨는데, 이것은 진실로 소요를 종식시키고 세속을 진정시키려는 성대하신 뜻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본도 감사 홍억(洪檍)은 향전율로 논죄하겠다는 전교를 빙자해서 금년 봄에 통문(通文)을 발송한 유생에 대해 본 고을에 관문을 보내어 넉 달 동안이나 가두어두게 하고, 한 차례 엄히 형문(刑問)하여서 남해의 섬 속으로 귀양보내게 하였습니다.

아, 성상의 비답이 반포된 뒤로 유생들은 감히 다시 소요를 일으킴이 없었는데, 감사는 반드시 죄에 얽어넣고야 말려 하였으니 조성(助成)한 관장이 홍억이 아니고 누구이겠습니까. 섬으로 귀양보내는 것은 특별 전교가 없으면 감사가 감히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신이 이미 대간의 직에서 체직된 이상 율명(律名)을 감히 청할 수는 없습니다만, 이 상소문이 체직되기 전에 이루어진 것이므로 감히 이렇게 말미에 진술하였습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경상 감사의 일로 말하면, 비록 사실이 어떠한지는 모르겠으나, 편벽되게 억압한 잘못에는 그에 상당한 책벌(責罰)이 있어야 하니, 해도의 감사를 월봉 일등(越俸一等)에 처하겠다. 특별 전교가 없으면 섬으로 귀양보낼 수 없는 것이니, 진실로 너의 말대로라면 감사의 일은 더욱 타당하지 않다. 당해 유생을 즉시 풀어보내도록 하라. 영남 유생으로 말하더라도 이후로 다시 본 사건을 제기하여 혹시라도 시끄럽게 구는 일이 있으면 곡직(曲直)을 불문하고 전에 내린 금령대로 처단할 것이니, 너는 돌아가서 그 고장 사람들에게 전하여 영남 인사들로 하여금 모두 거듭 유시한 뜻을 체득하게 하라."

하고, 또 전교하기를,

"영남 일대가 평소 추로지향(鄒魯之鄕)으로 칭해진 것은 윗사람을 친애하고 상관을 위해 대신 죽을 줄을 알아 예의를 숭상하기 때문이다. 일찍이 듣건대 예안(禮安)에는 수령의 선정비(善政碑)가 없다 한다. 이것은 악(惡)은 물론이고 선(善)도 입을 열어 칭찬하려 하지 않아서이니 그 뜻이 어찌 아름답지 않으며 그 풍속이 어찌 순후하지 않은가. 수령에게도 오히려 이러한데 하물며 감사에 대해서이겠는가. 대간의 직을 띠고 있는 몸이라면 무엇을 말해도 불가하지 않으니 수령·방백을 가릴 것이 뭐 있겠는가마는, 전관자(前官者)로서 도내 감사의 선악을 논한 것은 고사하고라도 규례를 무시한 잘못은 처분이 없을 수 없다. 이것은 곧 영남 사람들을 권면하여 잘하기를 바라서이니 부사과 강석귀를 파직하여 풍속을 도탑게 하고 사체(事體)를 중시하는 뜻을 보이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7책 27권 36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41면
  • 【분류】
    정론(政論) / 사법(司法) / 교육(敎育) / 인사(人事)

  • [註 027]
    향전율(鄕戰律) : 석전(石戰)이나 차전(車戰) 등의 희전(戱戰)을 한 자들에게 내리는 형으로 곤장 1백 대를 쳐서 먼 곳에 귀양보냄. 《대전회통(大典會通)》 형전(刑典) 금제(禁制).

○副司果姜碩龜上疏曰:

昨冬綸音之奉宣本道也, 安東前府使申益彬所爲, 已萬萬駭痛, 而臺批中有曰: "此後勿論營邑與儒生, 更以本事提起, 有登徹之事, 竝當以鄕戰之律論, 助成官長, 宜置加倍之典。" 此寔出於息鬧鎭俗之盛意。 本道監司洪檍, 憑藉鄕戰律之敎, 今春發通之儒生, 行關本縣, 四朔牢囚, 一次嚴刑, 定配於南海島中。 噫! 聖批頒布之後, 儒生無敢更鬧, 而道臣則必欲搆罪乃爾, 助成之官長, 非而何? 島配非有特敎, 則亦非道臣所敢擅便。 臣旣遞臺職, 律名雖不敢請, 疏成於未遞之前, 敢此尾陳。

批曰: "嶺伯事, 雖未知事實之如何, 偏抑之失, 宜有其責。 該道臣越俸一等, 無特敎則不得島配, 誠如爾言, 則道伯事尤未妥, 該儒生卽令放送。 雖以嶺儒言之, 此後更提本事, 或有紛紜, 無論曲直, 依前禁令處斷, 爾其歸傳州里, 俾嶺外人士, 咸體申諭之意。" 又敎曰: "嶠南一方, 素稱, 以其親上死長, 尙禮重義也。 曾聞禮安無守令善政碑, 惡固無論, 善亦不欲開口稱道, 其意豈不休美, 其俗豈不淳厖? 守令猶然, 況道伯乎? 身帶臺職, 則無言不可, 何擇乎守令道伯, 而以前銜人, 論道內方伯臧否姑舍是, 昧例之失, 不可無處分。 此乃責嶺人以求備, 副司果姜碩龜罷職, 以示敦風俗, 尊事面之意。"


  • 【태백산사고본】 27책 27권 36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41면
  • 【분류】
    정론(政論) / 사법(司法) / 교육(敎育) / 인사(人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