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얹는 것에 대신할 만한 것에 관해 논의하고, 전교하다
연신(筵臣)이 아뢰기를,
"다리를 이미 족두리로 대신하였기 때문에 부녀자들의 귀천의 표시가 없어졌으니, 시정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각자 남편의 직위에 따라 금권자(金圈子)나 옥권자를 품계에 따라 족두리 위에 붙여 등위(等威)를 표시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하자, 상이 대신 및 여러 신하에게 물으니, 모두 합당하다고 하였으나, 예조 판서 이재간(李在簡)과 도승지 심풍지(沈豊之)만은 전에 없던 격식을 새로 만들어낼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전교하기를,
"내가 처음부터 과감하게 결정하지 못하고 미루기만 한 것은 진실로 그 이유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예조 판서와 지신사(知申事)의 다른 의논이 옳을 뿐만이 아니다. 대체로 다리를 거듭 금지하는 것은 부득이한 데서 나온 것이다. 이 밖에는 좋은 제도이건 좋지 않은 제도이건을 막론하고 눈에 생소한 새로운 제도는 모두 긴요하지 않을 듯하니, 이것이 불가한 첫째 이유이다.
의장(儀章)을 붙여서 신분의 귀천을 표시하려는 것이라면, 내명부(內命婦)나 외명부의 저고리·치마·머리 장식·신발 등 모든 것이 품계에 따라 달리하는 제도로서 공사(公私)의 예식 때 쓰는 것이다. 거기에는 바꾸어버릴 수 없는 제도가 있는데, 이를테면 머리 장식에는 대유반자(大維盤子)가 9에서 1까지 있고, 원삼(圓衫)·장삼(長衫)·당삼(唐衫)에는 소매 색동의 다과와 비단 명색이 다르며, 흉배(胸褙)에는 종친 명부는 기린·연못 무늬이고, 문관 명부는 공작·기러기·백한(白鷴) 무늬이며, 무관 명부는 호랑이·표범·곰·말곰 무늬이며, 치마에는 구름·학·백한·까치·원앙을 그리며, 품대(品帶)에는 서각대(犀角帶)·금대·은대·철대(鐵帶)·비단대·명주대가 있으며, 패옥(佩玉)에는 청옥·황옥이 있으며, 신발에는 흑단혜(黑緞鞋)·홍단혜 및 흑웅피혜(黑熊皮鞋)가 있는 것 등이 모두 귀천을 표시하는 의장들이다. 대내(大內)의 예가 오랫동안 폐지되어 빈 예문만이 왕부(王府)에 간직되어 있을 뿐인데 지금 평복 중 평복이요 사복 중 사복인 족두리에다 갑자기 바둑알만한 옥편(玉片)이나 금괴(金塊)를 붙이려 하니, 이것이 불가한 둘째 이유이다.
후환을 염려하여 참람스런 사치를 없애려는 데 뜻이 있는 것이고 보면, 사람들의 눈에 익은 남자의 장복(章服)에 있어서도 시정의 서민들이 장가갈 때는 차길(借吉)한다는 핑계로 사모·관복·품대를 서슴없이 착용하는 것이 근래의 풍속인데, 어찌 이 부녀자의 족두리 위에 다는 금권자·옥권자만을 차용(借用)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칠보로 장식한 것을 세내어 쓰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것이 불가한 셋째 이유이다.
남자는 망건(網巾)을 쓰기 때문에 망건줄을 꿰는 데 편리하여 권자의 제도가 생겨난 것이니, 부녀자가 이를 본받아 권자를 단다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 이것이 불가한 넷째 이유이다.
여자는 땅 모양의 네모난 것을 본받아야 하기 때문에 명복(命服)에 차는 총형(蔥珩)140) 을 옛 제도에는 반드시 방옥(方玉)으로 취하도록 하였는데, 하물며 머리 위의 장식이겠는가. 남자의 사용물을 빌어 쓰는 것은 네모난 패옥을 차는 본의에 크게 어긋난다. 이것이 불가한 다섯째 이유이다.
옥은 반옥(磻玉)을 사용하고 금은 도금(鍍金)을 사용하도록 엄하게 법령을 세워 위반하지 못하게 한다 하더라도 규문(閨門) 안에는 금지하는 관리가 들어갈 수 없으니, 진옥(眞玉)·순금(純金) 따위를 집집마다 사람마다 함부로 사용한다 하더라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이것이 불가한 여섯째 이유이다.
1품 명부(命婦)에게만 비로소 옥 다는 것을 허락할 경우, 문관·음관(蔭官)·무관 재상(宰相)의 부인들로 응당 달아야 할 사람의 수가 반드시 얼마 되지 않을 것인데, 더구나 실직(實職)으로 한정할 경우이겠는가. 녹사(祿射)로 승품(陞品)한 자와 노인직(老人職)으로 동지중추부사가 된 자와 납속(納粟)으로 위장(衛將)이 된 자 등 숭정(崇政) 이상의 아내들도 달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니, 그렇게 되면 3품 이하의 명망있는 사대부의 아내들이 도리어 이들보다 못하게 된다. 이것이 불가한 일곱째 이유이다.
문명으로 야만을 변화시키겠다는 뜻을 이미 윤음에서 말하였으니, 족두리 위에 정자(頂子)를 단다면 도리어 본의에 어긋나는 혐의가 없겠는가. 이것이 불가한 여덟째 이유이다.
이 중에서 한 가지만 있어도 시행할 수 없는데 하물며 8가지의 불가한 혐의가 겸해 있는 데이겠는가. 여러 사람의 의논도 근거한 바가 없다고 할 수는 없으나, 나는 그것을 사용해서는 불가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 족두리 위에 금권자나 옥권자를 다는 한 가지 사항은 모두 그대로 놓아 두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6책 26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9면
- 【분류】풍속(風俗) / 신분(身分)
- [註 140]총형(蔥珩) : 푸른 패옥(佩玉).
○筵臣有言: "髢髻旣代以簇頭里, 婦女之貴賤無章, 合有釐正。 各從夫職, 以金、玉圈子, 隨品貼着簇頭之上, 以表等威爲宜。" 詢于大臣及諸臣, 合議稱便, 惟禮曹判書李在簡、都承旨沈豐之言: "不必創出無前之式。" 敎曰: "予意之自初持難, 固非一端。 禮判、知申參差之論, 不惟爲然。 大抵加髢之申禁, 出於不得已。 外此無論好制、不好制, 凡係眼生新制, 都涉不緊, 此一不可也; 屬之儀章, 欲表貴賤, 則內外命婦上衣、下裳、頭粧、足穿等, 種種隨品別異之制, 用於公私大禮者, 自有不易之制, 如首飾大維盤子之自九至一, 圓衫、長衫、唐衫之斑袖多寡, 緞羅名色, 胸褙之宗親命婦麟、澤, 文官命婦雀、雁、鷴, 武官命婦虎、豹、熊、羆, 大裳之畫雲、鶴、鵰、鵲、鸂鶒, 品帶之犀、金、銀、鐵、緞、紬, 佩玉之靑玉、黃玉, 舃鞋之黑紅緞及黑熊皮, 無非表貴賤之儀章。 內朝之禮久廢, 惟有空文, 藏在內府。 今於便服之便服, 褻衣之褻衣, 簇頭里, 忽以如碁大玉片、金塊付之, 此二不可也; 意在慮患, 欲祛僭汰, 則雖男人之章服, 塗人耳目者, 市井白徒之嫁娶, 近俗稱以借吉, 帽袍品帶, 乃敢無難服着, 獨此婦女簇頭里上金玉圈, 寧有不借用之理? 然則何異於七寶粧之貰用乎? 此三不可也; 男人着綱巾, 故便於貫纓, 圈子之制出, 婦女之效以懸圈, 甚無謂。 此四不可也; 女象地之形, 方命服蔥珩, 古制必取方玉。 況於頭上之飾, 借用男人之物, 大違方佩之本意。 此五不可也; 玉用磻玉, 金用鍍金, 設令嚴立科條, 俾無得違越, 閨門之內, 禁吏不入, 眞玉、純金之屬, 雖家家人人濫用, 安得以知之? 此六不可也; 一品命婦, 始許懸玉, 文蔭武卿宰夫人應懸者, 數必零星, 況以實職爲限? 如祿射陞品, 老職同樞, 納粟衛將等, 崇政以上妻, 當無不懸之。 然則名士大夫三品以下妻, 反不若此輩。 此七不可也; 用夏變夷, 綸音旣言之, 簇頭里上懸頂子, 亦果無反違本意之嫌乎? 此八不可也; 有一於此, 不可爲。 況兼有八不可之嫌乎? 僉議非曰無所據, 予則決知其不可用。 簇頭里上懸金玉一款, 幷置之。"
- 【태백산사고본】 26책 26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9면
- 【분류】풍속(風俗) / 신분(身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