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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25권, 정조 12년 2월 24일 정사 1번째기사 1788년 청 건륭(乾隆) 53년

신대윤의 소장과 관련하여 조신들의 장소에 감히 ‘당목’이란 글자를 쓰지 못하도록 신칙하다

조신(朝臣)들의 장소(章疏)에 감히 당목(黨目)이란 글자를 쓰지 못하도록 신칙하였다. 전교하기를,

"전일 옥당 신대윤(申大尹)의 소에 대한 비답을 처음에는 단지 ‘소를 자세히 보았다.[省疏具悉]’로 반포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논단(論斷)이 자못 강직하여 고고한 뜻이 있으므로 원래의 비답에 ‘유의(留意)하겠다.’는 등의 몇 마디를 첨가하였다. 대체로 조시위(趙時偉)는 본래부터 음흉 간사하며 어리석고 분수를 넘어 하늘 높은 줄을 몰랐다. 김우진(金宇鎭)을 수신(帥臣)으로 주의(注擬)하기 전부터 내가 평소에 매우 미워했던 바임을 근밀(近密)한 대열에 출입하는 사람치고 누가 모르겠는가. 그가 정원에 있는 여러 해 동안 한 번도 순조로이 교체된 적이 없는 것을 보더라도 내가 가까이 하고자 하지 않았던 뜻을 더욱 징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가 겉으로 허세를 부려 마치 믿는 곳이 있는 것처럼 숨겼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이면의 사정을 모르고서 감히 그의 뜻을 거역하지 못하는 자가 많았다. 생각을 같이 하는 자들끼리 서로 성세(聲勢)를 빌어 점점 그 세력이 커져서 장차 함께 죄악에 빠질 염려가 있기 때문에 근일 소대(召對)한 자리에서 내린 윤음(綸音)에 미혹을 깨우칠 방법을 대략 언급했던 것이다. 이는 첫째도 세신(世臣)을 위해서고 둘째도 세신을 위해서였으니, 또 어찌 저 형세를 돕는 행위에 대해 경계를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옥당의 소(疏) 중에 기당(其黨)·거당(渠黨) 등의 말이 매우 눈에 걸렸다. 말하는 자의 본의가 엄하게 토죄(討罪)하여 잘못을 구제하는 데 있어 공사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잘 안다. 그러나 갑자기 그런 말을 대하고 보니 당이라 운운한 것이 마치 지난날의 명목(名目)을 말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연주(筵奏)나 장차(章箚) 사이에 말이 명목 두 자에 관계되는 것은 본디 설금(設禁)이 있다는 선조(先朝)의 분부를 받았으니, 선왕의 뜻을 계승해 수명(修明)해야 하는 나의 도리로 볼 때 이런 곳에 글자는 같으나 뜻이 다르다 하여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앞으로는 장소(章疏)에 감히 당목(黨目) 등의 말을 함부로 섞어서 말하지 말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5책 25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691면
  • 【분류】
    정론(政論)

○丁巳/飭朝臣章疏, 毋敢用黨目字。 敎曰: "日前玉堂申大尹疏批, 初則只以省疏具悉頒布, 更思之, 論斷頗錚錚, 有若浼之義, 就原批, 追添留意等數語。 大抵趙時偉, 自來陰慝癡濫, 不識天高地厚。 已自擬帥之前, 予素所切惡, 凡出入近密之列者, 孰不知之? 觀於多年在院, 無一番順遞, 尤驗不欲近之意, 而特渠外張聲勢, 隱若有所恃, 是故, 人不知裏面, 多有不敢違拒其意者, 而臭味所同, 聲氣相藉, 一轉再轉, 將有胥溺之慮, 近日筵敎絲綸, 略及牖迷之方。 一則爲世臣, 二則爲世臣。 亦豈忽於推波助瀾之戒也? 玉堂疏中, 其黨渠黨等說, 甚礙眼。 固知言者本意, 在於嚴討而拯誤, 亦足謂有補於公私, 而驟看之, 則黨之云云, 若說舊時名目者然。 筵奏、章箚之間, 語涉名目二字, 自有設禁之先朝受敎, 在予繼述修明之道, 此等處, 不可以字同旨異, 有所放過。 此後章疏, 無攻以黨目等說, 輕易混說。"


  • 【태백산사고본】 25책 25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691면
  • 【분류】
    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