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제공의 사은 숙배를 끝내고, 채제공으로 인해 파직된 관리들을 복귀시키도록 하다
연영문(延英門)에 나아가 우의정 채제공에게 교지를 내리고 전교하기를,
"오늘 이후로 대관(大官)과 언관(言官)으로부터 관료와 백집사(百執事)에 이르기까지 다시 우상의 일을 말하는 자가 있다면 불경(不敬)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오늘날 조정에 임금의 기강이 있다면 어찌 대신 한 사람을 초치할 수 없겠는가. 내가 문에 임하여 친히 교지를 내리겠다. 대신도 신하인데 이런 때에 어찌 감히 구구한 사의(私義)만을 돌아보겠는가."
하고, 드디어 오위 장 이형묵(李亨默)을 임시 승지로 임명해 보내어 제공에게 유지를 전하고 숙배를 재촉하게 하니, 제공이 의금부로 나아가 명을 기다렸다. 상이 궁을 나가려 하다가 또 주서 김효건(金孝建)에게 명하여 가서 유지를 전하게 하였으나 효건이 명을 받들지 않자 효건을 의금부에 내려 형틀을 갖추어 엄히 수금하게 하였다. 그리고 다시 이형묵을 시켜 유지를 전하기를,
"임금으로 하여금 전(殿)에 임하여 경을 기다리게 하고서 경은 금오(金吾)에 물러가 있어 마치 심상하게 명을 기다리는 듯하였으니 오늘부터는 임금이 없는 나라라고 하여도 가할 것이다."
하고, 이어 채제공과 함께 오라고 명하였다. 제공이 조방(朝房)에 나와 명을 기다리니 상이 드디어 연영문에 거둥하여 시임 및 원임 대신들을 불렀다. 그리고 또 제공에게 전교하기를,
"경은 사양하는 소를 세 번 올리기 전에 나와서 숙배하는 것을 비례(非禮)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임금이 연영문에 거둥해 있는데 경은 신하가 되어 앉아서 소명(召命)을 항거하니 이것이 어찌 신하의 분의(分義)인가. 대의(大義)가 관계된 바이고 임금의 기강이 지극히 중하니, 다시 깊이 생각하여 즉시 조정으로 나오기를 바란다."
하였다. 형묵이 돌아와서 아뢰기를,
"제공은 어제 승지와 옥당이 죄를 입은 것 때문에 감히 무릅쓰고 명을 받들 수 없다고 합니다."
하니, 상이 또 전교하기를,
"경에 대한 비난을 이미 엄하게 배척했으니, 경의 도리는 그들의 일은 각각 그들에게 맡겨두고 오직 의리를 보아 거취할 뿐이다."
하였다. 제공이 금호문(金虎門) 밖에 나와 거적자리를 깔고 명을 기다리니, 상이 또 병조 판서 정호인(鄭好仁)을 시켜 가서 알아듣도록 타일러 달래게 하였다. 제공이 비로소 숙배 단자를 올리고 이어 갓을 벗고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기를,
"신하를 예로써 부리는 것이 옛 제도입니다. 신같이 변변치 못한 자는 족히 말할 것도 없겠습니다마는 전하께서 이미 신을 대관(大官)에 제수하시고서 신으로 하여금 어제 직임을 배수(拜受)하고 오늘 숙배하게 하시니, 이는 실로 사첩(史牒)에 아직 없던 바입니다. 정원과 옥당이 상소해서 번갈아 성토하여 한쪽에서는 논박하고 있는데 한쪽에서는 사은 숙배하는 것은 아무리 기탄없는 자라 하더라도 결코 감히 이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번의 일은 너무 서두는 것 같습니다. 이런 법이 한 번 열리면 뒤에 권신(權臣)이 즉시 숙배하려고 하는 경우가 생길 것이니 그때 전하께서는 장차 무슨 말로 그것을 막겠습니까. 신이 비록 감히 멀리 떠나 종적을 감출 수는 없습니다마는 아끼는 것은 국가의 체통입니다."
하니, 상이 갓을 쓰라고 명하고서 위로해 달래기를 마지 않았다. 제공이 물러나 숙배하니 상이 드디어 대내(大內)로 돌아가서 전교하기를,
"교지(敎旨)를 전해주는 예가 잘 끝나 일이 편안하게 귀착되었으니 앞으로는 조정의 체모가 태평해질 것을 점칠 수 있다. 어찌 다만 우상 한 사람만의 다행이겠는가. 실로 조정의 큰 다행이다."
하고, 작금(昨今)에 내렸던 제신(諸臣)을 견파(譴罷)하라고 한 명을 환수하고, 김효건(金孝建)만을 백령도(白翎島)에 귀양보냈다가 얼마 되지 않아 영의정 김치인의 말로 인해 김효건도 용서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5책 25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690면
- 【분류】왕실(王室) / 정론(政論) / 인사(人事) / 사법(司法)
○御延英門, 宣右議政蔡濟恭敎旨, 敎曰: "今以後, 自大官、言官, 以至庶僚、百執事, 更有言右相事者, 非不敬而何? 今日朝廷, 有君綱, 則不能致一大臣乎? 予嘗臨門, 親宣敎旨。 大臣亦人臣也, 此時焉敢顧區區私義乎?" 遂以五衛將李亨默, 差假承旨, 傳諭濟恭, 促令肅命。 濟恭詣義禁府胥命。 上將出宮, 又命注書金孝建往諭之。 孝建不承命, 下孝建于義禁府, 具格嚴囚, 復使亨默傳諭曰: "使君上臨殿待銜, 退處金吾, 有若尋常胥命。 自此謂之無君之國可也。" 仍命偕來濟恭, 進詣朝房胥命。 上遂御筵英門, 召時原任大臣, 又敎曰: "卿以三疏前出肅, 爲非禮, 然君上臨門, 卿爲臣子, 坐抗召命, 是豈義分乎? 大義所關, 君綱至重, 更冀深念, 卽爲造朝。" 亨默還奏曰: "濟恭以昨日承宣、玉堂之被罪, 不敢冒膺。" 上又敎曰: "雌黃之說, 業已嚴斥, 在卿道理, 但當物各付物, 去就惟義之視。" 濟恭詣金虎門外, 席藁俟命。 上又命兵曹判書鄭好仁往諭之。 濟恭始呈肅單, 因免冠頓首曰: "使臣以禮, 古之制也。 如臣無狀, 雖不足言, 殿下旣授臣以大官, 使臣昨日拜職, 今日拜命, 此實史牒之所未有。 喉院、玉堂, 陳疏迭討, 一邊駁正, 一邊肅謝, 雖無忌憚者, 決不敢出此, 而今者此擧, 殆若束迫。 此法一開, 後有權臣, 直欲肅拜。 殿下將何以斥之乎? 臣雖不敢高飛遠走, 而所惜者國體也。" 上命之冠, 慰諭不已。 濟恭退而拜命。 上遂還內敎曰: "宣敎禮成, 事歸帖妥, 自此朝象可占平泰, 豈獨爲古相一人之幸? 實朝廷之大幸。" 命還寢昨今諸臣譴罷之命, 特竄金孝建于白翎鎭, 尋因領議政金致仁言宥之。
- 【태백산사고본】 25책 25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69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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