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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25권, 정조 12년 1월 12일 을해 1번째기사 1788년 청 건륭(乾隆) 53년

춘당대에서 재숙하고서 대보단에서 예를 행하다. 명나라 사람들의 자손을 서용하다

전교하기를,

"명(明)나라 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가 무신년 정월 을해일에 천하를 소유하여 국호(國號)를 세우고 천자에 즉위하여 홍무(洪武)로 개원(改元)한 일곱 번째 갑년(甲年)이 거듭 돌아왔고 일진(日辰)의 간지(干支) 또한 서로 같으니, 어찌 이 날을 헛되이 보내서야 되겠는가."

하고, 드디어 춘당대에서 재숙(齋宿)하고서 대보단(大報壇)010) 에 예를 행하였다. 그리고 나서 명나라 사람의 자손들을 불러 보고 각각 성명과 세파(世派)를 묻고는 상생(庠生) 왕상문(王尙文)의 5대손 왕원충(王願忠), 안찰사(按察使) 왕즙(王楫)의 6대손 왕도성(王道成), 시랑(侍郞) 정문겸(鄭文謙)의 5대손 정창인(鄭昌仁), 상생 풍삼사(馮三仕)의 6대손 풍경문(馮慶文)을 군문(軍門)으로 하여금 장관(將官)으로 조용(調用)하게 하고, 상서(尙書) 전응양(田應揚)의 7대손 전세풍(田世豊), 강세작(康世爵)의 5대손 강상요(康尙堯)는 현재 시골에 있으니 상경하기를 기다려 병조로 하여금 계품해 수용(收用)하게 하였다. 또 제독(提督) 이여송(李如松)의 후손 이광우(李光遇)를 수령에 제수하고, 전당 태수(錢塘太守) 황공(黃功)의 증손 황세중(黃世中)을 오위 장(五衛將)으로 삼으라고 명하였다.

왕씨(王氏)정씨·풍씨·황씨 세 성은 효종이 심양(瀋陽)에 있다가 돌아올 적에 효종을 따라 우리 나라로 온 사람이고, 전씨·강씨 두 성은 숭정(崇禎) 병자년 이전에 우리 나라로 흘러들어와 우거(寓居)한 사람이다.


  • 【태백산사고본】 25책 25권 4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683면
  • 【분류】
    인사(人事) / 외교(外交)

  • [註 010]
    대보단(大報壇) : 임진 왜란 때 도와준 은덕을 기리기 위해 명(明)나라 태조(太祖)·신종(神宗)·의종(毅宗)을 제사하던 단(壇).

○乙亥/敎曰: "皇 太祖高皇帝, 以戊申正月乙亥, 建有天下之號, 卽天子位, 改元洪武, 年甲重回, 日干又符, 豈可虛度是日?" 遂於春塘臺齋宿, 行禮于大報壇。 召見皇朝人子孫, 各問姓名、世派, 命庠生王尙文五世孫願忠、按察使王楫六世孫道成、侍郞鄭文謙五世孫昌仁、庠生馮三仕六世孫慶文, 令軍門將官調用。 尙書田應揚七世孫世豐, 康世爵五世孫尙堯, 時在鄕里, 待上京, 令兵曹啓稟收用。 又命提督李如松後孫光遇除守令。 錢塘太守黃功曾孫世中, 爲五衛將。 二王氏三姓, 孝宗瀋陽時, 隨蹕東來者也。 二姓, 崇禎丙子前流寓人也。


  • 【태백산사고본】 25책 25권 4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683면
  • 【분류】
    인사(人事) / 외교(外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