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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24권, 정조 11년 8월 26일 신유 2번째기사 1787년 청 건륭(乾隆) 52년

병조에서 종을 쳐 민심을 혼란하게 한 자의 죄율을 정하기를 청하다

병조에서 아뢰기를,

"어떤 사람이 몰래 종각(鍾閣)에 들아가 때없이 종을 치고 의리를 일컬어 백성을 일으키려는 데 있다고 하는 데, 받았던 조적(糶糴)을 장만하여 바칠 길이 없어서 상달(上達)하려 한다 합니다. 무엄하기가 막심하니, 법사(法司)로 옮겨 율문(律文)을 살펴 죄를 정하게 하소서."

하니, 하교하기를,

"일찍이 실록(實錄)에 살펴 낸 것을 보고 비로소 제치(制置)한 본의(本意)를 알았다. 종을 둔 곳은 모두 세 곳이었는데, 첫째는 광화문(光化門)이니 곧 지금의 부어교 종각(鮒魚橋鍾閣)이 이것이고, 둘째는 누가(樓街)이니 곧 지금의 종각이 이것이고, 셋째는 종현(鍾峴)이니 지금은 종이 보존되지 않고 고개 이름만 전한다. 경향(京鄕)의 사민(士民)으로서 매우 원통한 일이 있는 자는 다 이 종을 치도록 하고 종소리가 나면 종을 맡은 자가 전달하였다. 옛일은 그러하나 백성의 풍습이 예전만 못하여 외람하기가 날로 심해지니 옛 제도는 오늘에 와서 문득 의논하기가 어렵기는 하나, 종을 폐지한 뒤로 합문(閤門)·궐문(闕門)에 오고(午鼓)를 두어 첩종(疊鍾)을 대신하였는데, 예전 선조(先朝) 때 오고를 친 자가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그때 처분하신 하교를 나도 우러러 들었다. 이번에 종을 친 일은 그 예(禮)를 사랑하는 의리에 대해서는 변상(變常)으로 논할 수 없거니와 고율(考律)하려 하더라도 조준(照準)할 만한 것이 없을 듯하다. 다만 이 일이 사건(四件)277) 에 관계되지 않는다는 것으로 다스리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4책 24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665면
  • 【분류】
    사법-탄핵(彈劾) / 풍속(風俗)

  • [註 277]
    사건(四件) : 상언(上言)이나 격쟁(擊錚)할 수 있다고 허용된 네 가지 일. 곧 적첩 분별(嫡妾分別)·형륙 급신(刑戮及身)·양천 변별(良賤辨別)·부자 분별(父子分別)임.

○兵曹啓言: "有人潛入鍾閣, 無時打鍾, 稱義興民, 而以所受糶糴, 無以備納, 欲上達云。 無嚴莫甚, 請移法司, 考律定罪。" 敎曰: "嘗觀實錄考出, 始知制置本意。 置鍾凡三處, 一曰光化門, 卽今鮒魚橋鍾閣是也。 二曰樓街, 卽今鍾閣是也。 三曰鍾峴, 今則鍾雖不存, 只傳峴名, 而京鄕士民之有切至之冤者, 皆許撞此鍾, 鍾聲出, 而典鍾者執奏。 故事卽然, 然民習不古, 踰濫日甚, 古制雖難遽議於今日, 而鍾廢之後, 閤門、闕門, 設午皷代疊鍾。 記昔先朝, 有撞午皷者, 伊時處分之敎, 予亦仰聆。 今番撞鍾事, 其在愛禮之義, 不可以變常論, 雖欲考律, 似無可照者。 但以本事之不關於四件治之事也。"


  • 【태백산사고본】 24책 24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665면
  • 【분류】
    사법-탄핵(彈劾) / 풍속(風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