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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23권, 정조 11년 2월 20일 무오 2번째기사 1787년 청 건륭(乾隆) 52년

헌납 유광천이 성군의 도리와 백성들의 구제에 대해 상소하다

헌납 유광천(柳匡天)이 상소하기를,

"전하께서 마음을 가다듬어 정사를 하시는데도 이루어진 성과는 아직도 아득합니다. 오늘날의 폐단을 말할 것 같으면 낱낱이 들기가 어렵지만 그 급무 가운데에서도 가장 먼저 해야 할 것만 추린다면, 첫째는, 성학(聖學)에 힘쓰는 것이요, 둘째는 경술(經術)을 숭상하는 것이요, 셋째는 선거(選擧)를 공정히 하는 것이요, 넷째는 검덕(儉德)을 숭상하는 것이요, 다섯째는 진정(賑政)을 엄정히 하는 것이요, 여섯째는 경계(經界)를 바로잡는 것이요, 일곱째는 융정(戎政)을 경계하는 것이요, 여덟째는 제술(製述)과 강경(講經)을 나누는 것이요, 아홉째는 관제(官制)를 변통(變通)하는 것이요, 열째는 균역(均役)을 혁파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성학에 힘쓰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전하께서는 서사(書史)에 환히 통하시어 질문하거나 변론할 필요가 없으나 가끔 슬프고 황급한 일로 인하여 법강(法講)을 철폐하기도 하니, 청컨대 지금 이후에는 강연(講筵)에 자주 나오소서. 무엇을 경술을 숭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홍계능(洪啓能)·홍양해(洪量海)의 여러 역적들이 불행하게도 초선(抄選)한 뒤에 나와 사람들이 도학(道學)을 숨기고 선비가 경술(經術)을 꺼려서 유식(有識)한 사람들이 걱정하고 탄식한 지 오래입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초선된 여러 사람에게 자주 유시를 내려서 기필코 불러서 오도록 하고 초야에 있는 경(經)에 밝고 행실을 닦은 선비를 모두 찾아 내게 하소서. 무엇을 선거를 공정히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붕당(朋黨)이 나오면서부터 선거가 공정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옛날에 진퇴(進退)할 때에는 편파적으로 의망(擬望)하였고, 근일에 탕평(蕩平)한 후에는 서로 대적(對敵)하게 하는데, 신은 편파적으로 의망하는 것이나 서로 대적하는 것은 공정한 것이 아니라고 여깁니다. 다만 마땅히 저쪽·이쪽을 논하지 말고 공평한 마음으로 배의(排擬)하여 쓸만한 자는 쓰고 쓸 수 없는 자는 쓰지 않아야 합니다. 무엇을 검덕을 숭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대(臺)를 짓는 경비가 1백금(百金)이 드는 것을 천자(天子)도 오히려 아꼈는데, 지금 한 몸을 치장한 것이 이보다 배나 됩니다.

삼가 생각건대 아랫사람들이 본받는 것은 오로지 윗사람에게 말미암게 되는데 신은 성상의 검덕(儉德)에 미진한 점이 없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엇을 진휼하는 정사를 엄정히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굶주린 사람을 구제하는 것은 굶주린 자를 널리 뽑는 것보다 귀하며, 굶주린 자를 구제함에는 곡식이 정(精)한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습니다. 각 고을 적부(糴簿)의 많고 적은 것이 고르지 못하니, 지금 마땅히 곡부(穀簿)를 검사하고 각 고을의 사정을 참작해서 여유 있는 곡식은 나누어서 환곡이 적은 곳으로 옮겨 보내고 관(官)의 곡(斛)을 바로잡아 간사한 폐단을 막아야 하며 저자의 말[斗]을 균평(均平)하게 해서 쌀값을 같게 할 것이며, 우금(牛禁)과 주금(洒禁)을 거듭 엄중하게 하여 흉년에 백성을 구제하는 정치에 일조(一助)가 되게 하소서.

무엇을 부세(賦稅)를 고르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나라는 양전(量田)을 한 지 이미 60년이 지나서 지금 혹 1등의 전지(田地)가 종전에는 5등의 전세(田稅)를 내기도 하였고, 옛날에는 2등의 전세를 내던 것이 지금은 6등의 전지(田地)로 변경되기도 하였습니다. 경계(經界)가 정해지지 않으면 부역이 고르지 못하게 됩니다. 서북 양도(兩道)는 전안(田案)이 분명하지 않으니 한번 바로잡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무엇을 융정(戎政)을 경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장수는 병사를 알지 못하고 병사는 장수를 알지 못하며, 향군(鄕軍)의 조련(操鍊)은 말을 세내어 점검(點檢)을 받으며, 영읍(營邑)의 무기는 태반이 썩어서 혹시라도 위급한 사태가 있게 되면 장차 무엇을 믿겠습니까? 청컨대 영읍에 신칙하여 엄중히 조사하여 충훈부(忠勳府)의 불법적인 점유와 향교나 서원의 남액(濫額), 정원 이외의 별군관(別軍官), 차첩(差帖)090) 과 가향임(假鄕任)을 한결같이 도태시켜 바로잡고 유학(幼學)으로 모록(冒錄)된 자는 병안(兵案)에 채워 충당하고, 불당(佛堂)을 철거하여 승려를 환속(還俗)하게 하면 무비(武備)가 거의 소흘한 데 이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무엇을 강경과 제술을 구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무릇 식년(式年)에 제술과 강경에서 각기 16인씩을 뽑기도 하고 혹은 정원을 더하여 분정(分定)하기도 하는데, 초시(初試)의 경우에는 경생(經生)과 술사(述士)로 뜰을 나누어 고시(考試)하여 입재를 뽑는다면 거의 옛 제도에 걸맞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찍 바치게 하여 고시를 재촉하는 폐단, 차술(借述)·매필(賣筆)하는 폐단, 사정(私情)을 써서 공정하지 못한 폐단을 엄격하게 제거하지 못한다면 선비들의 기풍을 바로잡을 수 없을 듯합니다.

삼가 원하건대, 장시관(掌試官)을 가려서 임명하여 이 세 가지 폐단을 엄격히 개혁하소서. 무엇을 관제(官制)를 변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의 음관(蔭官)은 관(官)을 집으로 삼아 7, 8개 고을을 다스리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지금의 무관(武官)은 주부 군현(州府郡縣) 사이를 두루 돌면서 옮겨 다니는데 유독 문관(文官) 만은 홍패(紅牌)를 끌어안고서 굶어죽고 있으니, 어찌 원통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만약 무관과 음관의 벼슬자리를 문관의 자리와 합쳐서 통틀어서 환차(換差)한다면 엄체(淹滯)된 것을 진작(振作)시킬 수가 있을 것입니다. 무엇을 균역(均役)을 혁파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베 2필(匹)을 감해서 1필로 하는 것은 은혜가 막대하지만 어염(魚鹽)의 수세(收稅)에 이르러서는 실로 취렴(聚斂)하는 신하 때문에 그르쳐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주 많던 어족(魚族)이 지금은 아주 귀해지고, 흙처럼 구워대던 소금조차 갑자기 값이 올랐으니, 이것이 어찌 물산(物産)이 옛날과 지금이 달라서 그런 것이겠습니까? 세금을 거두는 것이 무겁고 포리(浦利)가 박하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의 곤궁함이 이와 같으니 관가의 형편도 알 만합니다.

지난 경오년091) 에 절목(節目)이 처음으로 이루어지자 선대왕께서 연신(筵臣)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의논을 처음으로 주장한 사람은 그의 자손이 번성하게 된 연후에야 바야흐로 균역(均役)이 실효(實效)가 있음을 믿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돌아보건대, 지금의 시세(時勢)를 생각하면 이 법을 혁파할 기회인 것입니다. 대저 어염세(魚鹽稅)와 선세(船稅)는 수십만 금에 불과한 만큼 우선 이를 혁파한다면, 그 부족한 부분을 추이(推移)하여 채우는 것 또한 어찌 방편의 도리가 없겠습니까? 궁방(宮房)의 절수(折受) 가운데서 혁파할 만한 것은 혁파하고, 쓸데없는 관원(官員)의 비용 가운데 없앨 것은 없애야 합니다. 역가전(逆家田)이나 사위전(寺位田) 가운데 숨긴 것이나 누락된 것, 말이 없는 목장(牧場), 소나무가 없는 봉산(封山)의 세(稅)는 모두 찾아내야 합니다. 갈대가 자라는 늪지, 제언(堤堰)으로 몽리(蒙利)하는 곳도 조사해 내야 하고, 훈국(訓局) 외의 사군문(四軍門)의 군총(軍摠)도 적당히 헤아려서 줄여 정해야 하며, 팔도(八道)에서 단지 정병(精兵) 10만 명만을 선발하되 만약 감액하는 수가 있으면 모조리 균역청(均役廳)의 수포안(收布案)으로 돌리더라도 또한 저절로 여유가 있게 될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묘당으로 하여금 품처(稟處)하게 하소서."

하고, 또 말하기를,

"대통(臺通)092) 이 외람되고, 분관(分館)이 외잡(猥雜)스러우며, 역호(驛戶)가 조잔합니다."

하니, 비답을 내려 가납(嘉納)하고, 이어서 묘당으로 하여금 품처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3책 23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635면
  • 【분류】
    정론(政論)

  • [註 090]
    차첩(差帖) : 하급 관리의 임명 사령서(辭令書).
  • [註 091]
    경오년 : 1750 영조 26년.
  • [註 092]
    대통(臺通) : 대간으로 천거하는 것.

○獻納柳匡天上疏曰:

殿下勵精圖治, 而成效猶邈。 若言今日之弊, 有難殫擧, 而撮其急務之最先者, 一曰勉聖學, 二曰崇經術, 三曰公選擧, 四曰尙儉德, 五曰嚴賑政, 六曰正經界, 七曰詰戎政, 八曰分製講, 九曰變官制, 十曰罷均役。 何謂勉聖學? 殿下洞澈書史, 不須乎質卞, 而間緣悲遑, 法講乍撤。 請從玆以後, 頻御講筵。 何謂崇經術? 一自諸賊, 不幸出於抄選之後, 人諱道學, 士避經術, 有識之憂歎久矣。 伏願頻諭抄選諸人, 期於招致, 草野中經明行修之士, 幷令搜訪。 何謂公選擧? 朋黨出, 而選擧不公。 在昔進退之時, 則偏擬, 近日平蕩之後, 則互對, 臣則曰偏擬、互對非公也。 惟當無論彼此, 平心排擬, 可用者用, 不可用者不用可也。 何謂尙儉德? 臺費百金, 天子猶惜, 今也一身資裝, 倍蓰於此。 竊念下之慕效, 專由於上, 臣不能無疑於聖上儉德, 有所未盡也。 何謂嚴賑政? 賙饑貴於廣抄, 救饑莫如穀精, 各邑糴簿, 多寡不均。 今宜較撿穀簿, 參以邑情, 分其有裕之穀, 移於糴寡之處, 校正官斛, 以防奸弊, 均平市斗, 以齊米直, 申嚴牛酒二禁, 以爲荒政之一助, 何謂均賦稅? 我國量田, 已過六十年, 今或一等之田, 而從前五等之稅。 古爲二等之稅, 而今變六等之田。 經界不定, 賦役不均。 西北兩道, 田案不明, 不可無一番釐正。 何謂詰戎政? 將不知兵, 兵不知將, 鄕軍操鍊, 貰馬逢點, 營邑戎器, 太半陳腐, 脫有緩急, 將何所恃乎? 請飭營邑, 嚴行査現, 勳府冒占, 校院濫額, 額外別軍官, 差帖、假鄕任, 一幷汰正, 冒錄幼學, 塡充兵案, 毁撤佛堂, 歸俗居士, 則戎備庶不至踈忽矣? 何謂分講製? 凡於式年製講, 各取十六人, 或加額分定, 而初試則經生、述士, 分庭考取, 庶有得於古制矣。 早呈催考之弊, 備述賣筆之弊, 行私不公之弊, 不能痛祛, 則士風無以正矣。 伏願擇差掌試, 痛革三弊焉。 何謂變通官制? 今之蔭以官爲家, 佩符七八邑而不止, 今之武州府郡縣之間, 周流例遷, 而獨也文官, 抱紅牌而餓死, 豈不冤哉? 今若以武蔭之窠, 幷與文官, 而通瀜換差, 則淹滯可振。 何謂革罷均役? 二匹之減爲一匹, 惠莫大焉, 而至於魚鹽收稅, 實緣聚歛之臣所誤耳。 至賤之鱗族, 今也絶貴, 如土之煮鹽, 忽焉踊價, 是豈物産之今古異也? 斂歛重, 而浦利薄故也。 民困如此, 官況可知。 粤在庚午, 節目初成, 先大王語筵臣曰: "倡此論者, 子孫繁衍, 然後方信均役之有實效。" 顧念時勢, 此法之革罷, 卽其機也, 夫魚鹽、船稅, 似不過數十萬金, 爲先革罷, 則其所欠缺, 推移塡充, 亦豈無方便之道乎? 宮房折受中, 可罷者可罷也, 冗官之費, 可汰也。 逆家田、寺位田隱漏者, 無馬牧場, 無松封山之稅, 可搜括也。 蘆草泥生之地, 堤堰蒙利之處, 可査現也。 訓局外四軍門軍摠, 量宜減定, 八路只選精兵十萬, 若有減額之數, 盡歸均廳之收布案, 亦自有裕。 伏願令廟堂稟處。

又言臺通之冒濫, 分館之猥雜, 驛戶凋殘之弊。 賜批嘉納。 仍命廟堂稟處。


  • 【태백산사고본】 23책 23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635면
  • 【분류】
    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