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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23권, 정조 11년 1월 8일 정축 1번째기사 1787년 청 건륭(乾隆) 52년

왕대비에게 존호를 더 올리다

왕대비(王大妃)에게 존호(尊號)를 더 올렸다. 임금이 인정전에 나아가 직접 옥책(玉冊)과 금보(金寶)를 전하고, 경복전(景福殿)에 나아가 직접 의례(儀禮)대로 올렸는데 옥책문(玉冊文)에 이르기를,

"천시(天時)가 전위(轉危)하는 기미에 속하여 바야흐로 아름다운 운(運)이 돌아오고 동조(東朝)019) 께서 기미를 밝히는 교시를 내려 현호(顯號)를 더 올리니, 어찌 선양(宣揚)한다고야 하랴. 공손히 정성을 펼 뿐이다. 삼가 예순 성철 장희 혜휘 익렬 왕대비(睿順聖哲莊僖惠徽翼烈王大妃) 전하(殿下)께서는 영고(寧考)020) 의 덕에 짝하시고 인원후(仁元后)의 아름다움을 이어받아 중곤(中壼)에서 내조(內助)하는 날을 당해서 공(功)이 종국(宗國)에 있었으며, 장락궁(長樂宮)021) 에 존림(尊臨)한 이후에는 영(令)이 염위(簾闈) 밖으로 나가지 않았었다.

아! 나라의 형세가 눈썹을 태우듯 위급할 때를 당하여 비로소 자찰(慈札)로 마음을 펴서 유시하셨고, 난역(亂逆)이 조석(朝夕)에 닥칠 뿐만이 아니어서 장상(將相)이 가까운 종실(宗室)을 끼고 흉악한 일을 도모하였으나 의리는 춘추(春秋)의 글을 필적하시니 신료(臣僚)들이 취몽(醉夢)에서 깨어나게 되었다. 을미년022) 의 간험(艱險)한 때를 당해서 저사(儲嗣)를 보익하는 노고를 다하시어 밤중의 간측(懇測)한 유음(諭音)은 실로 선조(先朝)의 뜻을 본받은 데서 나왔던 것이다. 이미 왕법을 대략 시행하게 되니 우러르는 자공(慈功)이 더욱 높아지게 되었다. 미리 역적들의 정상을 통찰하시어 귀복(龜卜)처럼 환히 알게 되었고, 위태로운 시기에 나라의 운명을 반석(盤石)·태산(泰山)처럼 안정시켰다. 그 큰 덕(德)은 명명하기 어려움이 하늘과 같으므로 한두 글자로써 표현하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다. 작은 정성은 애일(愛日)023) 하는 데 간절하므로 억조 창생의 절실한 소망을 막지 못하였다.

임조(臨照)하심이 빠뜨린 곳이 없으니 어찌 한(漢)나라의 명덕 태후(明德太后)만 아름다움을 독차지 하랴? 아름다운 명성이 널리 전파되었으니, 마땅히 송(宋)나라의 선인 태후(宣仁太后)와 이름이 같아야 할 것이다. 삼가 여정(輿情)을 따라서 이에 이전(彛典)을 거행하여, 삼가 옥책과 금보를 받들어 ‘명선(明宣)’이란 존호를 가상(加上)하니, 겸덕(謙德)을 힘써 억제하시어 아래로 아름다운 칭호에 응하소서. 이름과 실상이 서로 부합하니 우주(宇宙) 끝까지 옥첩(玉牒)이 빛나고, 권명(眷命)이 더욱 굳게 되시니 천추까지 보록(寶籙)이 이어질 것입니다."

하였다. 【대제학 김종수(金鐘秀)가 지었다.】 그리고 인정전으로 환어하여 진하(陳賀)하고 반사(頒赦)하였다. 반사문에 이르기를,

"왕은 말하노라. 자지(慈旨)를 받들어 난역(亂逆)을 토벌했으니, 전에 없는 나라의 경사이다. 존명(尊名)을 정하고 덕휘(德徽)를 드날려서 책보(冊寶)를 가상(加上)하고 의장(儀章)이 이미 갖추어져 널리 알림을 이에 행하노라. 광대하신 태모(太母)의 종국(宗國)을 부호한 공은 과궁(寡躬)이 세자로 있던 날부터 있었다. 궁성(宮省)에서 간사함이 싹트는 것을 꺾어 인원후(仁元后)의 아름다운 규모를 이어받았고, 규위(閨闈)에서 신주(神籌)를 운용하시어 선대왕(先代王)의 큰 계책을 도우셨다.

아! 금일 역변이 망극한데 밤중에 자교(慈敎)를 선포하셨으며, 여름·가을의 상화(喪禍)로 놀란 마음이었는데 누가 안팎에서 규결(糾結)할 줄을 헤아렸겠는가? 장상(將相)이 흉모(凶謀)에 마음을 합했음을 중외에 영을 내려 들어서 알게 하였으니 군신(君臣)의 의리가 장차 없게 되었는데 자찰(慈札)을 어찌 그만둘 수 있었겠는가? 왕실과 친근한 데서 나왔으니 내 마음을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오직 국가를 위하여 멀리 염려하고 깊이 근심하여 충역(忠逆)의 분변에 대하여 성심(聖心)을 유시해 빈청(賓廳)에 10행(行)의 세자(細子)를 내리시어 기미가 있기 전에 적의 간담을 환히 살펴 보셨다. 천토(天討)를 대략 시행하기에 미쳐서는 자공(慈功)이 더욱 탁월함을 우러르게 되었다. 이매(魑魅)같은 형적이 도피하지 못하니 언교(諺敎)가 부절(符節)처럼 합치하였고, 역적의 우두머리에게 주륙(誅戮)을 빨리 가하게 되니 나라의 기반이 절로 반석과 태산처럼 굳어지게 되었다. 이에 군정(群情)이 간절히 기뻐 송축하면서 성덕(聖德)이 선양되기를 바라게 되었다. 지성(至誠)이 신(神)과 같으시니, 누군들 천지의 조화(造化)가 운행되는 것을 우러르지 않겠는가? 현호(顯號)를 여러 번 올렸으나 그래도 일월 같은 빛을 다 모사(摹寫)하지 못하였다. 비록 그러하나 겸덕(謙德)을 고집하신 자충(慈衷)은 ‘일을 마치지 못했는데, 어찌 이처럼 여론이 공을 나에게 돌리는가?’라고 유시하니, 모두 말하기를 ‘덕(德)은 반드시 이름을 얻는 것입니다.’라고 하여 이에 두 글자의 아름다운 칭호를 올려 만세까지 성대한 공적을 알게 하는 것이다. 멀게는 한(漢)나라에서부터 가깝게는 송(宋)나라에서 취하여 좋은 칭호를 전 사람과 아름다움을 같게 하였고, 옥(玉)에 새기고 금(金)에 주조(鑄造)하여 위대한 공렬이 후세에 빛나게 하는 것이다. 처음 염악(簾幄)에서 글을 선포한 것에 대하여 백성들이 이름을 짓지 못하였는데, 이제 보첩(寶牒)에 빛이 나게 되어 사책(史冊)에 이루 다 기록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금년 정월 초8일에 예순 성철 장희 혜휘 익렬 왕대비에게 ‘명선(明宣)’이란 존호를 가상하노라. 욕례(縟禮)024) 는 길일(吉日)에 거행하고, 명고(明誥)는 이어 사방에 반포하니 어찌 종묘 사직을 도운 공만을 천명(闡明)하는 것이겠는가? 영세토록 아름다운 모범을 남기는 것이다. 삼가, 스스로 어버이를 높이는 뜻에 부(附)하여 소자(小子)의 은미한 정성을 대강 폈는데, 이미 신인(神人)이 모두 기뻐하였으니, 상하(上下)가 함께 기뻐해야 할 것이다. 경사를 꾸미고 기쁨을 표시하려면 마땅히 광탕(曠蕩)하는 은전을 시행해야 할 것이고, 때와 흠을 씻어 주는 것은 모두 자부(慈覆)해 준 덕으로 돌려야 할 것이다. 이달 초8일 새벽 이전의 잡범(雜犯) 사죄(死罪)이하는 모두 사유(赦宥)하라. 아! 때가 삼양(三陽)의 모임을 만나니 협기(協氣)가 함께 유포(流布)되고, 정사가 일신될 기미를 만나니 군생(群生)이 다 육성(育成)되었네." 【대제학 김종수(金鐘秀)가 지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3책 23권 3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625면
  • 【분류】
    왕실(王室)

  • [註 019]
    동조(東朝) : 왕대비(王大妃).
  • [註 020]
    영고(寧考) : 영조를 말함.
  • [註 021]
    장락궁(長樂宮) : 왕후의 거처하는 궁전.
  • [註 022]
    을미년 : 1775 영조 51년.
  • [註 023]
    애일(愛日) : 세월이 가는 것을 애석히 여긴다는 뜻으로, 효자가 부모를 장구(長久)히 모시고자 하는 마음을 이름. 여기서는 백성의 임금에 대한 마음을 비유.
  • [註 024]
    욕례(縟禮) : 성대한 예(禮).

○丁丑/加上尊號于王大妃。 上御仁政殿, 親傳冊寶。 詣景福殿, 親上如儀。 玉冊文曰:

天時屬轉危之機, 休運方屆, 東朝奉炳幾之敎, 顯號加隆。 敢曰揄揚, 祗伸忱悃。 恭惟睿順聖哲莊僖惠徽翼烈王大妃殿下, 配寧考德, 嗣仁元徽。 當中壼內助之辰, 功則存於宗國。 逮長樂尊臨以後, 令不出於簾闈。 嗟! 國勢迫燃眉之危, 廼慈札有敷心之諭。 亂逆非朝夕之故, 將相挾近宗圖凶。 義理媲《春秋》之書, 臣僚若醉夢得醒。 際乙年艱險之會, 幾殫翼儲嗣之勞, 故丙夜懇惻之音, 寔出體先朝之意。 旣王章之略施, 仰慈功之愈尊。 洞賊情於幾先, 燭照龜卜; 奠國步於造次, 磐石泰山, 大德難名於如天, 非待一二字摹狀。 微誠自切於愛日, 莫遏億兆民顒望。 臨照靡遺, 可但 明德專美? 譽聞普播, 允宜 宣仁齊名。 謹循輿情, 式擧彝典。 謹奉冊加上尊號曰。 伏惟勉抑謙德, 俯膺徽稱。 名實相符, 暎玉牒於窮宙, 眷命彌固, 綿寶籙於千秋。 【大提學金鍾秀製。】

還御仁政殿, 陳賀頒赦。

王若曰, 奉慈旨而討亂逆, 邦慶無前; 定尊名而揚德徽, 冊寶加上。 儀章旣備, 播告用脩。 洪惟太母扶宗國之功, 粤自寡躬在儲貳之日。 折奸萌於宮省, 克嗣仁元后徽規; 運神籌於閨闈, 遂贊先大王丕策。 嗟! 今日逆變之罔極, 而半夜慈敎之誕宣。 夏秋之喪禍驚心, 誰測表裏之糾結? 將相之凶謀連肚, 槪令中外而聞知。 君臣之義將亡, 慈札夫豈得已? 王室之親近出, 予心有不忍言。 惟是爲國家遠慮深憂, 諭聖心於逆順之辨; 所以下賓廳十行細字, 照賊膽於幾微之先。 逮天討之略行, 仰慈功之愈卓。 魑魅之形莫遁, 諺敎若合節符; 鯨鯢之誅遄加, 邦基自底磐泰。 斯切群情之頌抃, 冀效聖德之揄揚。 至誠如神, 孰不仰運天地之化? 顯號累上, 猶未盡摹日月之光。 雖然執謙之慈衷, 諭以事有未了, 奈此歸功之輿論? 僉曰: ‘德必得名’, 肆二字加進徽稱。 俾萬世咸知盛績, 遠取諸, 近取諸。 丕號匹美于前, 鏤之以玉, 範之以金, 偉烈垂耀於後。 始簾帷之宣札, 民無能名焉; 今寶牒之彰徽, 史不勝書也。 乃於本年正月初八日, 加上睿順聖哲莊僖惠徽翼烈王大妃尊號曰 。 縟禮載擧於吉日, 明誥仍頒於多方。 奚但闡翊社之功? 永貽來世之懿範。 竊自附尊親之義, 粗伸小子之微誠。 旣神人之胥歡, 宜上下之同樂。 开慶志喜, 合施曠蕩之恩; 洗垢滌瑕, 盡歸慈覆之德。 自本月初八日昧爽以前, 雜犯死罪以下, 咸宥除之。 於戲! 時値三陽之會, 協氣同流, 政屬一新之機, 群生咸育。 【大提學金鍾秀製。】


  • 【태백산사고본】 23책 23권 3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625면
  • 【분류】
    왕실(王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