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국영·송덕상·이담 등의 처벌에 대한 영의정 김치인의 계사
영의정 김치인 등이 아뢰기를,
"아! 통분합니다. 나라가 있은 뒤로 어찌 담(湛)처럼 흉악한 역적을 보았습니까? 기해년251) 부터 8년 사이에 그가 하는 대로 일임한 채 한 사람도 말하지 않음으로써 심지어 방 안에서 죽도록 놔두었으니, 이는 모두 신들의 죄입니다. 오직 우리 왕대비 전하께서 나라가 위태로운 것을 생각하고 난적(亂賊)이 자행하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두 자전(慈殿)의 성덕을 추모하고 선대왕의 유지를 본받아 탕약과 수라를 물리고 크게 언문의 전교를 반포하셨습니다.
그런데 말씀이 엄하고 의리가 정대하였으므로 신들이 머리를 맞대고 받들어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는데, 이는 진실로 충신과 역적, 안정과 위태로움이 달려 있는 분기점이고 윤리, 사람, 귀신의 관문인 것으로써, 목욕의 의리가 중하여 잠시라도 토벌을 늦출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서로 이끌고 나와 밤이 이슥해지도록 합문을 지키면서 뵙기를 청하였으나 정성이 감동시키지 못한 바람에 아직까지 불러 주시지 않으니, 신들은 진실로 놀라 어쩔 줄을 모르고 잇달아 가슴이 꽉 막혔습니다. 전하께서 곧 비록 종실을 돈독히 하는 인덕(仁德)으로 반드시 끝까지 비호하고 싶으시겠지만 국사는 어찌 하며 자전은 어찌 한단 말입니까? 아! 난신(亂臣)과 적자(賊子)는 어느 시대인들 없겠습니까마는, 어찌 홍국영처럼 지극히 흉악하고 참혹한 자가 있겠습니까?
지난 기해년 여름에 대계(大計)를 저지할 수 있고 왕위를 옮길 수 있고 역적 담(湛)을 기화로 삼을 수 있다고 여겨 완풍군(完豊君)이라고 불렀던 의미가 음흉하고 참혹하였는데, 안팎에 배치한 형세와 조석에 닥칠 망측한 걱정이 눈앞에 닥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성상께서 큰 결단을 내리시어 시원스럽게 내쫓은 뒤로 요원의 불길 같은 화가 조금 꺼지게 되었으나, 하늘을 해치려는 흉악은 여전하였습니다. 역적 담(湛)을 데려다 놓고 밤낮으로 모의하고 송덕상(宋德相)은 감히 네 글자의 흉악한 말을 방자하게 글에다 썼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 봐도 머리털이 곤두서고 가슴속이 찢어질려고 하는데, 홍국영은 관작을 그대로 가지고 있고 송덕상은 병들어 죽게 하고 말았으니, 고금 천하에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담(湛)에 있어서는 그전의 역적 행위가 실로 뿌리가 되었는데, 부의(賻儀)를 너무나 후하게 하였고 예장의 은전도 상격(常格)보다 훨씬 더 융성하게 하였습니다. 지금 이미 20일이 되어가나 그 역시 한 마디 말도 없으니, 이것 또한 신들의 죄입니다. 아! 국운이 불행하여 역적들이 거듭 발생하였습니다. 한번 5월에 원자가 죽은 변이 생긴 뒤로 안팎의 인심이 어수선하여 안정되지 않고 있는데, 9월 이후로 더욱 기대할 데가 없어졌습니다. 담(湛)은 이미 죽었지만 화근이 그대로 있으므로 지금 역적을 느슨하게 다스려서는 안됩니다.
신들은 홍국영과 송덕상에게 빨리 해당의 법을 시행해야 하고, 담(湛)에게는 사사로은 은정을 끊고 국법을 단행하여 그의 관작을 삭탈하고 족보에서 삭제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의 아비〈은언군(恩彦君)〉 이인(李䄄)과 인의 자식들은 서울에 놔두어 종사에 끝없는 근심을 끼쳐서는 아니되니 모두 외딴 섬에다 안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홍국영과 송덕상이 아직도 지상에서 머리를 들고 있는 것은 바로 김우진(金宇鎭) 때문입니다. 김우진이 측근에 출입하면서 매우 큰 은혜를 입었는데 그가 실각한 뒤로 감히 흉악한 꾀를 품었습니다. 비록 그 종적이 은밀하였지만 나라에 소문이 파다하게 났고 더구나 혼인을 권한 건은 속셈이 탄로난 것으로써 마음과 뜻을 여러 모로 썼습니다. 지금 그의 죄악이 훤히 드러나 엄하게 성토하고 있는데, 이는 그에게 있어서 별것이 아닙니다. 아! 역적의 괴수가 죽자 인심이 징계해야 한다는 쪽으로 모아지고, 적당(賊黨)이 여전히 치성하자 나라의 운명이 안위(安危)의 기틀에 달려 있습니다. 어떻게 한결같이 젖어들도록 놔두어 홍국영과 송덕상과 같은 무리들이 뒤따라 일어나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신들은 사판에서 삭제된 죄인 김우진을 빨리 의금부로 하여금 추국청을 설치하여 엄중히 문초해서 내용을 밝혀내게 한 다음 시원스럽게 국법을 시행하지 않을 수 없다고 봅니다."
하였다. 예사롭지 않은 전교를 내리자 김치인 등이 반납하고 나가서 처분을 기다리니, 처분을 기다리지 말라고 유시하고 승지로 하여금 그 계사를 불태우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2책 22권 52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606면
- 【분류】왕실(王室) / 정론(政論) / 사법(司法) / 변란(變亂)
- [註 251]기해년 : 1779 정조 3년.
○領議政金致仁等啓言: "噫嘻! 痛矣。 有國以來, 曷嘗見凶如湛、逆如湛者乎? 自己亥八年之間, 一任其醞釀, 而無一人言之, 至使之斃於牖下, 此蓋臣等之罪也。 惟我王大妃殿下, 念宗國之孤危, 懼亂賊之肆行, 深追兩慈殿盛德, 克體先大王遺旨, 却湯劑、撤常膳, 渙發諺敎。 辭嚴義正, 臣等聚首奉讀, 涕淚交逬。 此誠漢賊安危之分也, 彝倫人鬼之關也, 沐浴義重, 有不容晷刻稽緩。 深夜守閤, 相率求對, 而忱誠未格, 召接尙靳, 臣誠愕然失圖, 繼之以抑塞。 殿下雖以敦宗之仁, 必欲終始曲庇, 奈國事何, 奈慈殿何? 嗚呼! 亂臣賊子, 何代無之, 而至凶極憯, 豈有如國榮者哉? 往在己亥之夏, 謂大計可以沮遏, 謂天位可以潛移, 謂逆湛奇貨可居, 完豐二字, 旨意陰慘, 內外排布之形, 朝夕罔測之憂, 迫在呼吸。 及夫呈斷斯爀, 夬行屛黜之後, 燎原之禍, 庶幾少熄, 而射天之凶, 猶復如前。 率置逆湛, 日夜綢繆, 德相則乃敢以四字凶言, 肆然筆之於書。 至今思之, 髮竪膽掉, 而國榮則爵秩自如, 德相瘦死而止。 古今天下, 寧有是耶? 至於湛, 則從前逆節, 實爲根抵, 而賻賵之節, 旣極優渥, 禮葬之典, 又出常格。 今旣二旬, 亦無一言, 此又臣等之罪也。 嗚呼! 邦運不幸, 亂逆層生。 一自五月之變, 中外群情, 遑遑靡所止泊, 而九月以後, 尤無所係望。 湛雖已亡, 禍根自在, 此時治逆, 不宜少緩。 臣等以爲國榮、德相, 亟施當律, 湛則割私恩、斷王法, 奪其爵秩, 絶其屬籍。 其父䄄及䄄之諸子, 不宜置之輦轂之下, 以貽宗社無窮之憂, 幷絶島安置, 斷不可已也。 今之國榮、德相, 尙戴頭於地上者, 卽金宇鎭是已。 宇鎭出入近密, 恩造何如, 而失志之後, 敢懷凶圖。 雖其蹤跡隱祕, 而國言藉藉, 況且勸婚一款, 便是眞贓, 設心用意, 無所不至。 目今罪惡彰著, 聲討方嚴, 而此在渠蕩物細故耳。 噫! 逆魁斃, 人心屬懲創之會, 賊黨猶熾, 邦命係安危之機。 豈可任其一向浸淫, 使國榮、德相, 復接跡而起也? 臣等謂削版罪人金宇鎭, 亟令王府, 設鞫嚴問, 明覈情節, 夬施王章, 斷不可已。" 下非常之敎, 致仁等繳還, 仍出胥命。 諭以勿胥命, 令承旨, 火其啓。
- 【태백산사고본】 22책 22권 52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606면
- 【분류】왕실(王室) / 정론(政論) / 사법(司法) / 변란(變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