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실록22권, 정조 10년 11월 20일 경인 3번째기사
1786년 청 건륭(乾隆) 51년
종실인 이담의 졸기
종실(宗室)인 담(湛)이 사(死)하였다. 담은 은언군(恩彦君) 이인(李䄄)의 장자인데, 홍국영이 일찍이 나의 생질이라고 불렀던 자이다. 원빈(元嬪)의 상례 때에 대전관(代奠官)이 되어 완풍군(完豊君)으로 일컬어졌는데, 홍국영이 실패하자, 상계(常溪)로 호칭을 고쳤다가 이때에 이르러 갑자기 죽었는데[暴死] 한때 이인(李䄄)이 독살하였다고 떠들썩하였다. 그때 서유린이 예조 판서로 있으면서 그가 죽었다는 단자를 들이려고 하지 않았는데 임금이 부르자 서유린이 입대(入對)하였다. 승정원으로 하여금 예조를 독촉하여 빨리 거행하라고 하니, 예조에서 판서가 입시해서 나갈 수가 없다고 대답하자, 다음 당상이 대행하라고 명하였다. 이미 단자가 들어오자 낙천군(洛川君)244) 의 고사에 따라 상을 치르라고 명하였는데, 예조에서 본 부서에는 친왕손(親王孫)을 예장(禮葬)하는 격례가 없다고 아뢰자, 하교하기를,
"낙천군의 상이 특별히 내린 전교로 인해 예장을 치렀다면 친왕손에게 예장을 치르는 격례가 없다는 설도 또한 이치에 가깝지 않으므로 경을 추고하겠다. 계하된 별단(別單)에 따라 거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2책 22권 50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605면
- 【분류】왕실(王室) / 인물(人物)
- [註 244]낙천군(洛川君) : 이온(李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