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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22권, 정조 10년 9월 18일 무자 1번째기사 1786년 청 건륭(乾隆) 51년

칙사의 통역관 왜극정액이 선조의 제사를 지내게 해 달라고 청하다

제사를 지내려 나온 칙사의 통역관 왜극정액(倭克精額)은 공부 상서 김간(金簡)의 일가 아들이었다. 그의 선조 묘소가 의주(義州)에 있었으므로 돌아갈 때에 제사를 지내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또 역관에게 말하기를,

"내가 나올 때에 김상서(金尙書)195) 가 ‘조선의 인물화 몇 폭을 만들되, 사모(紗帽)나 종건(騣巾)을 쓴 사람이나 관(冠)이나 입(笠)을 쓴 사람의 모습을 반드시 채색의 그림으로 그려 오라. 그러면 제사를 지낼 때에 벽에다 걸어 놓고 조선을 사모하는 뜻을 나타내겠다.’고 하였다."

하니, 관서의 도백이 인물화를 주었다. 김간의 선조는 본국의 사람으로 병자년196)정축년197) 의 무렵에 포로가 되어 기하(旗下)에 예속되었는데, 김간의 조부 김상명(金尙明)은 벼슬이 각로(閣老)에 이르렀다. 영조를 세자로 책봉할 때에 김상명이 아뢰어 허락을 받아내기에 힘썼다.


  • 【태백산사고본】 22책 22권 31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595면
  • 【분류】
    외교(外交)

○戊子/諭祭勑通官 克精額, 工部尙書金簡族子也。 其祖先墳墓, 在義州, 請於回還時致祭。 又言於任譯曰: "俺之出來也, 金尙書以爲: ‘朝鮮人物數帖, 或着紗帽, 或着騣巾, 或冠或笠, 必彩畫以來, 則行祀時掛置壁上, 以寓戀慕朝鮮之意。’ 云。" 關西道臣, 人工畫與之。 蓋金簡之先, 卽本國人, 丙、丁間, 被據屬旗下。 尙明, 官至閣老。 英廟冊儲時, 尙明題奏準請効力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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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교(外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