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정조실록 21권, 정조 10년 6월 1일 계유 2번째기사 1786년 청 건륭(乾隆) 51년

왕세자의 홍진에 삼과 부자의 약을 쓴 의관을 탄핵하는 어석령의 상소

전 장령 어석령(魚錫齡)이 상소하기를,

"아! 약원을 설치한 것은 미관상으로 한 것이 아니며, 의관(醫官)을 가려 뽑은 것은 그들의 출세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홍진의 유행은 천 사람이 똑같은 증세입니다. 비록 어리석은 아녀자라도 감히 감장(甘醬)이나 우육(牛肉)을 가까이 하지 못하는데 더구나 삼(蔘)이나 부자이겠습니까? 전하께서 구중 궁궐에 깊이 계시므로 예증(例症)에 약을 쓰는 처방을 들으실 길이 없지마는, 제조와 의관은 귀로 듣고 눈으로 보았으니, 만약 그들의 집안에 홍진을 앓는 사람이 있는데 삼이나 부자를 쓰라고 권할 경우 그들은 필시 매우 노할 것입니다. 그런데 유독 무슨 마음으로 잔인하게도 차마 쓰지 못할 약을 썼단 말입니까? 젖은 어린아이의 생명줄입니다. 노인도 젖을 복용하여 수명을 연장하였으니, 한(漢)나라 때 장창(張蒼)의 일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찌 5, 6세도 차지 않고 크고 작은 홍역을 치르지 않은 어린아이에게 지레 먼저 젖을 떼는 이치가 있었단 말입니까? 기르는 책임을 맡은 사람은 젖을 먹이라고 권하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터인데 도리어 앙청하여 젖을 뗀단 말입니까? 비록 그들이 무슨 설을 가탁하여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상리(常理)로 헤아려 볼 때, 그에 대한 설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전하께서 많은 백성들이 요사하는 것을 생각하여 의원들에게 약을 지급하라고 허락하여 그에 힘입어 살아난 사람이 매우 많은데, 모두 우황(牛黃)이나 안신(安神)의 양제(凉劑)였습니다. 이것으로 백성들을 구제하였는데 오직 우리 춘궁만 보호하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천명이겠습니까? 다만 보호하는 사람을 제대로 얻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 날 귀를 기울여 보았으나 여전히 해당된 법을 시행하지 않고 또 몸소 살펴서 하였다고 말씀하여 마치 약원을 곡진히 옹호하는 것처럼 하였으니, 신은 의혹하고 있습니다. 정부자(程夫子)께서 그의 조카인 예천령(醴泉令)의 상(喪)을 위하여 사수(謝帥)에게 편지를 보내어 용렬한 의원이 살인한 죄를 다스려 주라고 요청하였는데, 그 편지에 ‘본방(本方)과 같이 약을 쓰지 못한 사람은 도(徒) 2년 반이고, 고의로 본방과 같이 약을 쓰지 않은 사람은 고의로 살인한 것으로 논죄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로써 보건대, 홍역 뒤에 삼과 부자를 쓴 것이 본방과 같이 하지 못한 잘못이라고 해야 하겠습니까? 고의로 본방과 같이 쓰지 않았다고 해야 하겠습니까? 예천령이 병이 났을 때 의원은 약을 논한 데에 불과하였고, 살피고 약을 달인 것은 필시 그 집안 사람이 하였을 것인데, 정부자께서 너그럽게 용서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어찌 오늘날의 분명한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대체로 의관은 널리 선발하자고 건의하여 인재만을 뽑아야 합니다. 그런데 근래에 추천한 사람은 사사로이 아는 사람이 아니면 인척으로서, 오직 출세하려고 꾀하였지 의술에 정통한 사람을 선발하였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으니, 그 죄의 하나이며, 증세가 더하여 안위(安危)가 한 번의 투약으로 당장 판가름이 나는데 잠시 저녁의 동태를 본 뒤에 약을 쓰겠다고 아룀으로써 1년과 같은 긴 시간을 헛되이 보내다가 시간이 지난 뒤에 침과 약을 잡되게 써서 결국 망극한 변을 당하고 말았으니, 그 죄의 하나이며, 그리고 진어(進御)하는 약은 비록 강계다음(薑桂茶飮)이라도 반드시 조보(朝報)에 실어야 하는데 10일부터 그 다음날까지 약 이름을 하나도 쓰지 않았다가 양사(兩司)의 차자가 나온 뒤에야 비로소 삼과 부자를 거듭 썼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는 필시 그들도 삼과 부자는 절대로 부당하다는 것을 알고는 일부러 이처럼 숨기려고 꾀한 것입니다. 이처럼 마지않는다면 앞으로의 걱정이 말이 아닐 것이니, 그 죄의 하나입니다. 전하께서는 조종의 법을 시행하여 사람과 신의 분노를 풀어주소서. 이처럼 전에 없는 변을 당하여 생명이 있는 무리는 너나없이 이마를 찡그리고 마음 아파하고 있으니, 삼사의 반열에 있는 사람도 안절부절 안정하지 못하는 의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늦게야 합사(合辭)하여 대충대충 끝마쳐 책임이나 메꾸고, 임시 미봉하는 것처럼 하였으므로 신은 통분해 하고 있습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합사의 비답에 모두 말하였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50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571면
  • 【분류】
    정론(政論) / 왕실(王室) / 의약(醫藥) / 사법(司法)

○前掌令魚錫齡上疏曰:

嗚呼! 設置藥院, 非爲觀美也, 揀取醫官, 非爲渠發身也。 疹患流行, 千人一候。 雖婦孺之愚者, 不敢近甘醬、牛肉, 則況蔘附乎? 殿下深居九重, 例症用藥之方, 雖無由聞知, 提擧、醫官, 乃耳聞焉、目覩焉, 若使渠輩, 家有疹症, 有勸蔘附, 則彼必大怒, 而抑獨何心, 忍用此不忍用之藥邪? 乳道, 卽小兒之性命也。 老人, 亦有服乳延齡, 以張蒼事觀之, 可知。 何嘗有未滿五六歲, 未經大小疫, 徑先停乳之理乎? 其在調養之任者, 惟當勸進之不暇, 乃反仰請而停乳乎? 雖未知託爲何說, 而揆之常理, 不得其說。 殿下念衆民之夭瘥, 許醫給藥, 賴以生活, 不啻千百, 皆牛黃、安神涼劑。 以此濟活生靈, 而獨不能保我春宮, 此豈天哉? 特以保護之不得其人故也。 側聽屢日, 尙稽當施之律, 又以親執看檢爲敎, 有若曲護藥院者然, 臣竊惑焉。 程夫子爲其姪醴泉令之喪, 移書於謝帥, 請治庸醫殺人之律, 而其書曰: "誤不如" 本方殺人者, 徒二年半。 故不如本方者, 以故殺傷論。’ 以此觀之, 疹後蔘附, 謂之誤不如本方可乎? 故不如本方可乎? 醴泉令之病, 醫人不過論藥而已, 看檢前藥, 其家人必當爲之, 而程夫子未嘗有所寬恕, 此豈非今日之明證乎? 夫醫官, 當建白廣選, 惟才是取, 而近所薦引者, 若非顔私, 乃是姻親, 惟爲發身之計, 未聞擇其術業之精者, 罪一也。 患候之有加也, 安危立判於一投劑之間, 而乃以姑觀夕間動靜後用藥爲啓, 虛過如年之長日, 過時之後, 雜試鍼藥, 竟遭罔極之變, 罪一也。 且進御之藥, 雖薑桂茶飮, 必頒朝紙, 自初十日至翌日藥名, 無一書布, 及乎兩司箚出, 始知荐用蔘附, 此必渠輩, 亦知蔘附之萬萬不當, 姑爲此掩諱之計者也。 若此不已, 則方來之憂, 無所不至, 罪一也。 惟願殿下, 按之以祖宗之法, 以洩神人之憤。 當此無前之變, 含生之倫, 莫不疾首痛心, 三司之列, 亦當有勃勃按住不得底意, 而晩後合辭, 草草了當, 有若塞責彌縫者然, 臣竊痛之。

批曰: "悉諭合辭之批矣。"


  •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50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571면
  • 【분류】
    정론(政論) / 왕실(王室) / 의약(醫藥) / 사법(司法)